-혼인, 혈연, 입양 관계만 ‘가족’으로 정의한 건강가정기본법 제3조 1항을 삭제하라고 요구하는 시민들이 10월 25일 국회 앞에 모였습니다. 한국여성민우회 등 25개 단체가 주최한 시민 발언대 “우리의 연결될 권리를 보장하라”에서 나온 다양한 목소리를 연재합니다.
시곗바늘을 되돌려 가부장제를 고수하려는 정권
남성 대학생이 성폭력을 저지르다 여학우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을 두고, 여성가족부 장관이 처음 한 말은 ‘여성폭력이 아니다’, ‘젠더 갈등을 부추기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남성 승무원이 스토킹하던 여성 동료를 일터 내에서 살해한 사건을 두고도, 기껏 하는 소리가 ‘여성혐오범죄가 아니’라고 못박는 것이었습니다.
여성을 국민 취급하지 않는 이 나라는 우리에게 매일매일 하나둘씩 죽어가는 여성들을 지켜보라고만 합니다. 여기서 더 후퇴할 수가 있나, 자조하는 와중에 이 가부장제 성차별 정부는 여성뿐만 아니라 소위 ‘정상’에 속하지 않은 시민들을 끊임없이 후려칩니다.
작년 국정감사를 앞두고, 여성가족부는 사실혼 가구와 동거 가구를 법적 가족으로 인정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뒤집었습니다.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뤄진 단위’만을 가족으로 인정하겠다는 겁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건강가정’이라는 차별적 용어를 가치중립적 용어로 수정하겠다는 계획도 뒤집었습니다. 기어코 ‘건강한 가정’과 ‘건강하지 않은 가정’을 나누고,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시민들을 ‘비정상’ 범주에 가두어 차별하려는 의도입니다.
‘아빠-엄마-아이’가 정상적이고 보편적인 가족인가?
저는 학교에서 일하는 교사노동자입니다.
많은 학교 구성원들이 성차별적이고 소수자를 혐오하는 학교 문화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힘에 부칩니다. 아직도 케케묵은 성차별 문화는 버젓이 살아 있고, 기울어진 법과 제도들이 차별의 공기를 지탱합니다.
거의 대다수 학교에서 학생들을 양육하는 사람을 ‘양육자’(또는 ‘보호자’)가 아니라 ‘학부모’(學父母)로 부릅니다. 가정환경 조사서에 부모님에 대해 적는 난이 있어, 부/모가 없거나 부모의 돌봄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을 곤란하게 합니다. 학생과 같이 사는 사람은 무조건 혈연일 거라고 넘겨짚기도 합니다. 혈연관계의 아빠, 엄마, 아이를 소위 ‘정상적’인 가족 형태로 상정하고, 또 그러한 가족이 정상적이고 보편적이라고 가르치는 편협한 교육관을 고수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비혼 동거 가구의 구성원입니다. 여성가족부가 현 건강가정기본법에 대한 입장을 고수한다면, 그리고 법이 개정되지 않는다면 저는 가족이 있어도 국가가 인정하지 않는 가족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건강가정기본법은 경제적으로도 큰 영향을 줍니다. 동거인과 함께 살 집을 구할 때, 신혼부부가 아니라는 이유로 청약에서 진작에 차별받습니다. 돈이 필요할 때, 역시나 결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출에서 장벽을 마주합니다.
건강가정기본법은 돌봄이 필요한 때에도 제약을 가합니다. 이미 동거인과 서로의 돌봄인이자 보호자로 살아가고 있음에도, 동거인에게 일이 생겼을 때 저는 법적 보호자 역할을 공식적으로 차단당할 것입니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형태의 가족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각자의 방식대로 평등하고 온전하게 살아가는 시민들을 국가가 나서서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밀어넣고 구획해서는 안됩니다. 정부는 1인 가구, 동거 가족, 위탁 가족, 동성 부부 등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인정해야 합니다. 가족과 관련한 법률들을 세밀하게 분석, 검토해서 차별적인 부분을 수정해나가야 합니다.
특히 여성가족부는 윤석열 정부의 ‘여성혐오’ 기조에 휘둘리지 말고, 본연의 역사적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성평등 정책을 강화, 구축하고 다양한 가족을 지원하는데 온 힘을 다해야 합니다.
[필자 소개] 손지은. 비혼 여성 초등교사. 현재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여성)부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학교의 희망은 페미니즘교육에 있다고 믿는 노조 활동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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