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의 말] 페미니스트로 살고자 하는 국어 교사들이 모여 교실과 학교에서 성평등한 국어 교육을 펼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성평등 국어교사 모임’을 만들어 고민을 나누고 대안을 만들어 온 국어 교사들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올해의 논제는 ‘노키즈존’(No Kids Zone)
교내에서 토론대회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토론의 주제를 무엇으로 제시할지 의견을 모은 결과 ‘우리 사회에 노키즈존은 필요하다’가 논제로 결정되었다. 의견을 낸 동료 교사와 평소에도 노키즈존(No Kids Zone, 영유아와 어린이의 출입을 금하는 장소)에 대해 논쟁을 한 일이 있기에, 반대하기 쉽지 않았다.
물론 알고 있다. 토론을 통해 학생들은 노키즈존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접하고, 각각의 주장과 근거를 분석함으로써 비판적 사고능력을 키우게 될 것이다. 노키즈존에 대한 막연한 생각이나 무관심, 또는 맹목적인 관점을 갖는 것보다는 찬성 측의 입장과 반대 측의 입장을 조사해봄으로써 우리 사회의 현 생태를 이해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토론 활동 이후 결과적으로 어떠한 입장을 갖게 되든지 간에 말이다.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동료 교사의 생각도 바뀌면 더 좋고.
하지만, 그래도 마음에 걸린다. 많고 많은 이슈 중에서, 토론의 주제가 꼭 노키즈존이어야만 했을까? 어떠한 대상이 토론의 주제, 즉 논제로 빈번하게 소환되는가? 이 글은 단순히 우리 학교의 토론대회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밝히는 내용이 아니다. 학교 현장에서 진행되는 토론을 보며, 교사로서 고민해 온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보려 한다.
자칫 경쟁으로 빠지기 쉬운 ‘찬반 토론’
‘어떤 문제에 대하여 여러 사람이 각자의 의견을 내세워 그것의 정당함을 논함.’ 토론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하지만 쉽게 찬성과 반대 양측으로 입장을 나누냐를 기준으로 토론과 ‘함께 검토하고 협의’하는 토의를 구분한다.
찬반을 나누지 않는 비경쟁식 토론도 대두되고 있고, 개인적으로 학습의 전 영역에서 협동의 가치를 강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회적 쟁점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논증 능력을 키워나가는 데에는 찬반 토론이 효과적임을 부정할 수 없다. 타인의 견해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의견을 피력하고 논박하는 경험, 절차와 규칙을 준수하고 예의를 갖추어 말하는 경험을 한 학생들은 우리 사회를 더욱 민주적으로 만들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토론의 기본 속성은 경쟁과 대립이다. 생략되는 경우도 많지만, 어느 측이 토론을 잘하였는지 평가하여 승부를 가르는 것까지 토론의 과정이다. 승패를 가르는 경쟁이 바로 토론을 효과적인 학습 도구로 만드는 핵심 요소겠지만, 나는 십여 년도 더 전에 한국 교육계에 파란을 일으켰던 핀란드식 교육을-‘경쟁은 스포츠에서 하는 것’이라던 핀란드 교장협의회 회장의 말을-잊지 못하였다. 단기적으로는 효과적이겠지만, 멀리 내다본다면 학습자에게 어떠한 가치관을 내면화하게 할지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게다가 대학 입시를 궁극적인 목표로 운영되고 있는 현재의 학교 현장에는 이미 경쟁이 넘쳐나고 있지 않은가.
대립은 어떠한가? 남녀 간의 대립, 세대 간의 대립,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대립…. 이러한 대립을 조장하고 부추기는 정치로 인해 우리 사회의 긴장도와 혐오는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지고 있고 그 분위기는 학교 현장으로 넘어온 지 오래다.
‘맘충’ ‘잼민이’ 등 비하 표현이 유행하는 사회에서
현재의 학교는 변변한 안전장치를 마련하지 못한 채로 사회의 문제를 그대로 투영해내고 있다. 낮은 출생률의 책임을 가임기 여성에게 묻고, 영유아와 어린이를 통제해 낼 책임이 ‘맘충’으로 대표되는 여성에게 몰려 있는 사회에서, 노키즈존의 필요성에 대한 찬반 토론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과연 어떤 시각을 배우게 될까? 주린이(주식초보자), 헬린이(헬스초보자) 등 어린이를 미숙한 존재로 상정한 신조어들과, ‘잼민이’(개념 없고 유치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비웃는 말로 사용됨)와 같이 어린이를 비하하는 표현이 유행하는 사회 속에서, 학생들은 어떠한 입장을 취하기 쉬울까?
나는 바란다. 이 일련의 토론 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자영업자의 권리와 어린이의 인권을 두고 저울질하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회 공동의 책임이어야 할 돌봄을 양육자만의 일로 한정 지은 채로 근거 자료와 판례를 수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를 키우지 않는 사람들과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린이를 미숙한 존재, 통제해야 할 대상으로 상정하는 일에 불편감을 느끼면 좋겠다.
하지만 일단 토톤을 시작하면, 첨예한 논증 과정에서 이러한 기원은 뒷전이 될 뿐이다.
어떤 것이 논쟁거리가 되는가
물론 성역은 없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무수한 찬반 토론을 거쳐 여기까지 왔다. 동물실험에 대한 찬반 토론은 동물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개발과 보존에 대한 토론은 더 이상의 자연 파괴를 묵과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냈다.
교과서에서는 보통 이렇게 사회의 중론이 모인 논제에 대한 가상 토론 장면을 설정하여, 학생들이 토론 절차를 쉽게 익힐 수 있게 한다. 토론 방법을 익힌 후의 실습 과제를 제시할 때 교사들은 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주제를 골라 학생들의 관심을 끌어낸다. 존엄사, 낙태죄, 사형제, 양심적 병역 거부 등 많은 논제가 학교 현장을 거쳐 갔다.
노키즈존 또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내는 과정 속에 있으며, 이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는 것은 필수 요소일지도 모른다. 사실 나는 학생들의 판단력을 믿는다. 학생들은 직접 찬반 의견의 근거를 조사하며 혐오 표현을 거르고, 정보가 타당한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적어도 공식적인 토론 장면에서 어린이에 대한 혐오 표현을 남발하는 학생은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의 권리가 손쉽게 논제에 올라가는 것부터가 ‘약자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솜방망이식 성범죄 처벌 문제나 상속세 감면을 위한 미술품 기부 등 기득권이 연관된 문제는 논제로 등장하지조차 않는다. 교복 자율화나 입시제도 등 학교 현장과 관련된 주제를 제외하고는 노키즈존, 장애인 이동권, 노동조합의 파업권, 심지어 개인의 성적 지향조차 찬반 토론의 만만한 상대로 소환되고는 한다.
작년에는 한 어린이잡지에서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시위에 대한 찬반 토론을 진행하겠다며 어린이들의 찬반 의견을 조사하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일이 있었다. 시위 방식에 대한 토론이 목표였다고 하지만, 장애인 이동권 자체에 대한 찬반을 묻는 것처럼 보였으며 마치 장애인은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 아닌 것처럼 기술 되어 있는 것도 문제였다. 또한 이 논제가 어린이들의 성장에 이로운 논제였는지도 생각해볼 일이다. 차라리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지원 방법을 주제로 삼는 것이 나았을 것이라는 사람들의 반응이 기억에 남는다.
이분법적 사고보단 공감과 연대가 필요한 때
사회에서 생생하게 논쟁하고 있는 주제를 교육 현장으로 가져오는 것은 교육을 살아있게 만드는 일이지만, 동시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사회의 부조리를 그대로 답습하고 그 모순을 증폭시킬 수도 있다. 토론을 어떻게 성사시킬 것인가, 토론이라는 학습 목표에 어떻게 도달하게 할 것인가와 같은 결과를 중심으로 할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우리 사회를 깊게 바라보고 사회 구성원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나가는 과정에 중점을 두었으면 좋겠다.
참고로, 노키즈존을 주제로 한 김세희 작가의 소설 『집으로』와 함께 한 독서 수업은 대성공이었다. 이야기의 도입부에서부터 노키즈존을 찬성하며 ‘맘충’을 적극적으로 비판하던 주인공이 일련의 사건을 겪는 것을 보며, 노키즈존을 둘러싼 다양한 입장을 두루 살펴볼 수 있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갈팡질팡하던 학생들도 작품과 관련된 자료를 조사한 후 ‘저출생 문제가 심각하다는 데도 노키즈존이 늘어나는 까닭은 무엇일까’, ‘아이의 주 양육자가 하루에 양육을 위해 쏟는 시간을 얼마이며, 유아차를 끌고 방문할 수 있는 곳은 어떤 곳들일까’, ‘어린이가 공공시설을 이용할 때 생기는 불편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작품 속에 남성 양육자의 존재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등의 질문을 만들고 답하며 사고의 깊이를 키워나갔다.
각자의 입장을 이분하여 논쟁하는 것보다, 약자의 처지에 대한 공감과 연대가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싶다.
*위 글은 성평등 국어교사모임에서 함께 이야기 나누고 작성한 내용입니다. 이메일 주소 femi_literacy_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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