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는 우리의 노동에 큰 혼란을 가져왔어요

[기후위기와 여성농민] 경남 남해에서 마늘 농사 짓는 구점숙①

나랑 | 기사입력 2023/03/21 [20:26]

기후변화는 우리의 노동에 큰 혼란을 가져왔어요

[기후위기와 여성농민] 경남 남해에서 마늘 농사 짓는 구점숙①

나랑 | 입력 : 2023/03/21 [20:26]

-기후변화를 일터와 삶터에서 피부로 느끼고 그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는 전국의 여성농민들을 만납니다. 여성농민의 시선으로 기후위기 그리고 농업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대안의 씨앗을 뿌리는 새로운 움직임과 공동체적 시도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기후위기로 가중된 농민 노동

 

“시금치는 서리를 맞고 얼었다 녹았다 해야 당도가 높아지고 맛있어요. 보통 씨 뿌리고 두 달 있다가 수확을 해요. 9월에 씨 뿌리면 11월에 수확하고 10월에 뿌리면 12월이나 1월에 수확하는 식이에요. 그런데 재작년에는 날이 따뜻해가지고 시금치가 너무 빨리 큰 거예요. 10월에 심었는데 11월에 다 성장을 해 버려서 제값 못 받고 일찍 캐 버린 사람들이 많았어요.”

 

남해에서 농사짓는 구점숙(54세) 씨에게 기후위기로 인한 어려움을 묻자 시금치 얘기를 꺼냈다.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이하 전여농) 사무총장을 지냈고 2019년 남해군 여성농민회를 설립한 점숙 씨는 우리 농업의 현주소와 여성농민의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 농민 페미니스트 구점숙 씨 (촬영 : 나랑)

 

점숙 씨가 사는 남해는 따뜻한 남쪽 지역이라 이모작을 한다. 겨울에도 쉴 짬이 없다. 남해 는 시금치가 유명하다. 그런데 가을 기온이 너무 높은 탓에 시금치 농사에 차질이 생겼다고 한다.

 

기후위기는 농민들의 노동에 혼란을 가져왔다. 전에는 절기에 맞추어 작물의 생육 속도와 노동량을 가늠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예측할 수 없는 기후 탓에 갑작스레 과도한 노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농촌 사회학자 정숙정은 이러한 “급성 기후 사건으로 인한 농작물 피해를 막기 위해 농민들은 일시적으로 과도한 노동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을 겪는다”고 말한다.

 

“수확할 농산물이 썩거나 망가지는 일도 빈번하고, 농산물을 급히 수확해야 하는 상황을 겪는다. 또 수확한 농산물을 자연적으로 건조시키지 못하고 기계 등을 동원해 건조시키는 일, 비닐하우스 등 농업 시설 피해를 예방하거나 복구해야 하는 조치 등이 한꺼번에 발생하게 된다.” (정숙정, ⌜‘여성×농민’의 교차성 : 여성농민의 불평등 경험과 정체성」, 농촌사회 제31집 1호, 2021년)

 

기후위기로 인해 여성농민들의 일이 많아졌냐고 묻자, 점숙 씨는 “당연히 그렇다”고 답한다.

 

“(태풍으로) 쓰러진 벼를 세우는 일, (가뭄으로 마른 논밭에) 물을 주는 일, (냉해 방지를 위해) 밤새 하우스에 불을 피우는 일. 생명을 섬세하게 돌보는 여성농민들은 비가 적거나 많거나, 냉해가 생기거나 하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생명을 살려내고자 하게 돼요.”

 

▲ 쓰러진 벼를 일으켜 세우는 남해 여성 농민들 (구점숙 제공)

 

농촌에 사람이 없고 일손이 부족할수록 여성농민들의 노동은 가중된다. 그런데 열심히 일해도 농사만으로 먹고 살 수가 없어서 투잡을 뛰는 여성농민들이 많다. 기혼 여성의 경우 육아까지 떠맡는 데다가, 이제는 기후위기로 인해 예측할 수 없는 노동의 과중까지... 여성농민으로 살아가기엔 현실이 너무 고달프다.

 

남편은 경영주, 아내는 이름만 있고 권한은 없는 ‘공동경영주’?

 

2020년 농림어업총조사(통계청)에 따르면 농업종사인구의 48.2%, 농업주종사자의 50.7%가 여성이다. 한국 농업은 여성농민의 존재 없이는 굴러가지 못한다. 그럼에도 여성농민은 오랜 시간 농민 관련 정책이나 제도에서 소외되어왔다. 한국의 농업정책이 개별 농민이 아닌 ‘농가’를 기본단위 삼아 시행돼 왔기 때문이다.

 

2009년부터 시행된 ‘농어업경영체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은 ‘농가’ 단위로 경영주 등록을하게 했다. 부부 농민의 경우 남성 농민이 경영주로 등록하게 되어, 여성농민은 같이 농사를 짓고 있음에도 ‘무급 가족 종사자’로 취급돼 온 것. 2016년에서야 공동경영주 제도가 도입됐다.

 

“2016년 처음 공동경영주 제도를 도입했을 때는 남편이나 시아버지의 동의가 있어야 (기혼 여성농민이) 공동경영주로 등록할 수 있었어요. 여성농민들이 반발하면서 2018년 동의 절차 없이 공동경영주 등록이 가능하도록 바뀌게 되었죠. 여성농민도 명백한 농업의 주체이니만큼 남성에 의해 규정되는 공동경영주가 아닌, 독립적 주체로 정의하라는 요구였어요.”

 

하지만 여전히 “공동경영주 제도는 미흡하기 짝이 없는 제도”라고 점숙 씨는 말한다. “공동경영주에 대한 법적 정의가 없기 때문에 그 권한도 없다”는 것. 현행 농업 관련 어떤 법에서도 농업경영체 내에서 공동경영주의 지위를 인정하는 조항이 없다. 경영주가 보장받는 다양한 권리- 농민수당, 직불금, 농업용 기자재 면세율 적용이나 재해 보험, 연금 보험 같은 사회 보장제도 등에서 공동경영주는 배제되고 있다. 유일하게 보장받는 것은 고용보험을 통한 출산수당뿐이다.

 

▲ 구점숙 씨가 속한 ‘남해 새지매 공동체’ 여성 농민들. ‘새지매’는 남해 사투리로 ‘작은 엄마’, ‘숙모’라는 뜻이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점숙 씨. (출처: 언니네텃밭)

 

다행히 점숙 씨가 사는 경상남도는 최근 공동경영주에게도 농민수당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자체는 여전히 농가 단위로 농민수당을 지급한다. 이렇게 제도만 있을 뿐 실질적인 권한과 혜택이 없다 보니 여성농민들의 “공동경영주 등록률은 현재 10% 미만으로 저조하다”고 점숙 씨는 말한다.

 

두 집 걸러 한 집 여성농민이 ‘투잡’하고 있는데…

 

점숙 씨는 또한 공동경영주인 여성농민이 다른 일과 농사를 병행할 땐 그 자격을 상실하는 문제를 지적한다. (공동경영주가 아닌 경영주의 경우에는 겸업을 해도 자격이 유지된다.)

 

“4대 보험에 가입한 여성농민은 공동경영주로 등록할 수 없어요. 그렇게나 농외소득 창출을 얘기해놓고도, 실은 겸업을 하는 여성농민의 경우 농민으로 인정을 해주지 않는 거죠.”

 

2018년 여성 농업인 실태조사(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여성 농업인 32.1%가 농외소득활동을 하고 있고 농외소득의 월평균 소득은 87.2%가 150만 원 이하인 상황이었다. 점숙 씨는 “요양보호사나 식당 직원, 마트 점원으로 일하지 않고 농사만 짓는 50대 여성농민을 만나기 어려울 정도”라고 말한다. 두 집 걸러 한 집의 여성농민이 투잡을 뛰고 있는데, 제도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셈이다.

 

여성농민이 겸업을 할지라도 일정 소득 이하이면 공동경영주 자격을 박탈하지 않는 것, 결국 농업 관련 기본법에 공동경영주의 지위와 권한을 경영주와 동등하게 규정하는 개정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여성농민들은 말한다. (인터뷰가 2편으로 이어집니다.)

 

※참고자료

-박민선, 정숙정, ⌜인정투쟁에서 법적 투쟁으로- 여성농업인의 지위 향상 방안」, 농촌사회 제 32집 1호 (2022년)

-오순이(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원장), ⌜여성농민 법적 지위 보장 방안」, 성평등한 농촌! 여성농민 법적 지위 보장을 위한 여성농민 정책대토론회 토론문, 2020년

-정숙정, ⌜‘여성×농민’의 교차성 : 여성농민의 불평등 경험과 정체성」, 농촌사회 제31집 1호, 2021년

 

[필자 소개] 나랑(김지현) 독립 인터뷰어. 글쓰기 안내자. 목소리가 되지 못한 목소리를 기록한다. 그런 목소리들이 자기 이야기를 쓸 수 있게 안내한다. 지금은 제주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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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 2023/03/25 [12:39] 수정 | 삭제
  • 읽으면서 이주여성 농민들이 자꾸만 생각이 났습니다. 경제적 주권이 있어야 존엄하고 행복하게 삶을 살 수 있잖아요..
  • 소소 2023/03/23 [17:12] 수정 | 삭제
  • 공동경영주...이름 뿐이라도 등록하는 편이 안하는 거보단 낫지요. 여성농민회분들이 조금씩 끌고가는 아 가부장 농촌의 변화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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