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여성들의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남자를 볼 때 외모나 경제력을 볼 것이 아니라 머슴을 고르는 눈을 길러야 합니다.”
<여성의 관점에서 본 ‘보호노동의 사회화’ 쟁점과 과제> 심포지엄에서 “캐어노동(보호노동)의 남성참여”를 강조한 한국여성개발원 김혜련 연구위원의 발표에 대해 한 남자교수가 농담을 섞어 던진 코멘트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농담에는 웃을 수 없다. 농담을 못 알아먹을 만큼 꽉 막혀서가 아니다. 지겹도록 들었던 그런 식의 농담에 깔린 진부하고도 위험한 전제 때문이다. 왜 양성평등한 일의 분담을 말하는데 그 전제가 ‘머슴’이어야 하나. 사실 ‘머슴’이라는 말은 흔히 일상에서 남성들이 사용하는 비유다. 남성들은 자신이 ‘애처가’임을 드러내기 위해, 혹은 집안일을 잘 ‘돕는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난 집에서 완전 머슴이야”라는 농담을 곧잘 하곤 한다. 그러나 사정을 들여다보면 그 ‘머슴’질 이라는 것은 고작해야 한 끼분 설거지를 하거나 아이와 몇 시간 놀아주는 것 정도다. 여성들은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고 수행하는 그 모든 노동들을 남성들은 그야말로 조금 ‘거들’ 뿐인데도 자신을 ‘머슴’이라고 지칭한다. 집안일을 ‘돕는다’…? 문제는 거기에 있다. 현실을 보자. 아이들을 돌보고 키우고, 노인을 부양하는 등의 보호노동은 실제적으로 가족범주 안에서 당연한 역할처럼 여성에게 전가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최저 출산율 기록은 이런 현실의 불합리함이 가져온 결과다. 결혼한 여성들은 흔히 말한다. “설거지 한번 하고 나면 얼마나 유세를 떠는지.” “남편은 집에 애 내버려 두고 편히 술 마시러 나간다. 왜냐, 집에 내가 있으니까.” “집안일 분담하는데 15년을 싸웠다.” “남녀평등에 대해 이론적으로는 진보인데 현실적으로는 완전 보수다.” 대다수 남성들이 가사노동이나 양육, 노인부양 등의 ‘집안일’은 당연히 여성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자신의 영역이 아닌 ‘집안일’을 조금이라도 하는 것은 ‘특별히’ 아내를 사랑하고, 돕는 일이 된다. 그것이 당연한 ‘분담’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대단한 희생이라도 하듯 의기양양하거나 ‘머슴’이라고 엄살을 부릴 수 있다. 집안일에 대한 남성들의 시혜적인 입장, 여성의 일을 남성이 돕는다는 것, 여성이 해야 마땅한 집안일을 돕는 남자는 ‘머슴’이라는 것, 그러니 여성의 일을 묵묵히 도와줄 ‘머슴’을 구하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는, 나름대로 여성주의적인(?) 충고가 가능한 것이다. 심포지엄 말미에 한국여성개발원 유희정 연구위원은 결국 답답증을 토로하며 “보호노동(보육 등)논의는 ‘남녀 모두의 것’이라는 양성평등이 전제가 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못 박았다. ‘여자가 할일을 남자가 도와준다’는 식의 생각은 결국 ‘사회제도를 마련해줄테니 잘 이용해서 다 네가 해라’ 식의 대안밖에 돌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성에게 전가돼 있던 ‘보호노동’ 지원방안을 모색할 때 그 대안은 여성만이 보호노동에 노출돼 있는 차별적 현실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왜 여자만 해야 하나, 왜 여자만 하고 있나.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어떤 대안이 제시되더라도 결국 여자를 조금 ‘도와주는’ 시혜적인 미봉책에 그칠 수밖에 없다. 대안을 마련하고 논의하기 위해서는 보호노동이 ‘남녀 모두의 것’ 이라는 기본적인 전제가 필요하다. 이러한 전제가 합의된다면, ‘머슴’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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