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머슴은 없다

문이정민 | 기사입력 2003/11/30 [18:26]

[기자의 눈] 머슴은 없다

문이정민 | 입력 : 2003/11/30 [18:26]
“우선 여성들의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남자를 볼 때 외모나 경제력을 볼 것이 아니라 머슴을 고르는 눈을 길러야 합니다.”

<여성의 관점에서 본 ‘보호노동의 사회화’ 쟁점과 과제> 심포지엄에서 “캐어노동(보호노동)의 남성참여”를 강조한 한국여성개발원 김혜련 연구위원의 발표에 대해 한 남자교수가 농담을 섞어 던진 코멘트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농담에는 웃을 수 없다. 농담을 못 알아먹을 만큼 꽉 막혀서가 아니다. 지겹도록 들었던 그런 식의 농담에 깔린 진부하고도 위험한 전제 때문이다. 왜 양성평등한 일의 분담을 말하는데 그 전제가 ‘머슴’이어야 하나.

사실 ‘머슴’이라는 말은 흔히 일상에서 남성들이 사용하는 비유다. 남성들은 자신이 ‘애처가’임을 드러내기 위해, 혹은 집안일을 잘 ‘돕는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난 집에서 완전 머슴이야”라는 농담을 곧잘 하곤 한다. 그러나 사정을 들여다보면 그 ‘머슴’질 이라는 것은 고작해야 한 끼분 설거지를 하거나 아이와 몇 시간 놀아주는 것 정도다. 여성들은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고 수행하는 그 모든 노동들을 남성들은 그야말로 조금 ‘거들’ 뿐인데도 자신을 ‘머슴’이라고 지칭한다.

집안일을 ‘돕는다’…? 문제는 거기에 있다. 현실을 보자. 아이들을 돌보고 키우고, 노인을 부양하는 등의 보호노동은 실제적으로 가족범주 안에서 당연한 역할처럼 여성에게 전가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최저 출산율 기록은 이런 현실의 불합리함이 가져온 결과다.

결혼한 여성들은 흔히 말한다.
“설거지 한번 하고 나면 얼마나 유세를 떠는지.”
“남편은 집에 애 내버려 두고 편히 술 마시러 나간다. 왜냐, 집에 내가 있으니까.”
“집안일 분담하는데 15년을 싸웠다.”
“남녀평등에 대해 이론적으로는 진보인데 현실적으로는 완전 보수다.”

대다수 남성들이 가사노동이나 양육, 노인부양 등의 ‘집안일’은 당연히 여성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자신의 영역이 아닌 ‘집안일’을 조금이라도 하는 것은 ‘특별히’ 아내를 사랑하고, 돕는 일이 된다. 그것이 당연한 ‘분담’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대단한 희생이라도 하듯 의기양양하거나 ‘머슴’이라고 엄살을 부릴 수 있다.

집안일에 대한 남성들의 시혜적인 입장, 여성의 일을 남성이 돕는다는 것, 여성이 해야 마땅한 집안일을 돕는 남자는 ‘머슴’이라는 것, 그러니 여성의 일을 묵묵히 도와줄 ‘머슴’을 구하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는, 나름대로 여성주의적인(?) 충고가 가능한 것이다.

심포지엄 말미에 한국여성개발원 유희정 연구위원은 결국 답답증을 토로하며 “보호노동(보육 등)논의는 ‘남녀 모두의 것’이라는 양성평등이 전제가 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못 박았다. ‘여자가 할일을 남자가 도와준다’는 식의 생각은 결국 ‘사회제도를 마련해줄테니 잘 이용해서 다 네가 해라’ 식의 대안밖에 돌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성에게 전가돼 있던 ‘보호노동’ 지원방안을 모색할 때 그 대안은 여성만이 보호노동에 노출돼 있는 차별적 현실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왜 여자만 해야 하나, 왜 여자만 하고 있나.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어떤 대안이 제시되더라도 결국 여자를 조금 ‘도와주는’ 시혜적인 미봉책에 그칠 수밖에 없다. 대안을 마련하고 논의하기 위해서는 보호노동이 ‘남녀 모두의 것’ 이라는 기본적인 전제가 필요하다. 이러한 전제가 합의된다면, ‘머슴’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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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냉이 2003/12/11 [15:27] 수정 | 삭제
  • 여성의 사회적진출이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남성의 가사노동의 분담은 실제적으로 거의 이루어 지고 있지 않으며 여성의 가사노동은 여전히 줄어 들지 않고 있다는 통계가 일반적이다. 여성은 직장과 가정의 이중노동의 부담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지는 않는다. 가정도 직장도 여성이 여성의 역할을 잘 감당할 것을 요구한다. 즉 우리사회는 여성이 슈퍼우먼이 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자녀의 출생으로 인한 보호노동이 필요한 때에 대개의 경우는 여성은 직장을 포기한다. 즉 자녀양육에 관한 사회적 시스템의 부재와 보호노동의 여성전가의 이데올로기는 남자는 집밖에서 여자는 집안에서라는 전통적 역할 분담의 체제를 더더욱 공고화 시키고 있는 것이다.

    시대가 변하고 여성이 처해 있는 상황이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통적 역할분담에 대한 인식은 남성에게나 여성에게나 여전히 깨어지지 않고 있다. 가사일은 여성의 의무로 당연히 여성이 해야한다거나 혹은 남성이 가사일을 하는 것은 여성을 도와주는 차원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일반적이다. 많은 수의 여성들조차도 자신의 개인적시간(예를 들면 여가시간이나 잠자는 시간등)을 희생해서 가정과 직장의 이중부담을 감당해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 가사노동의 전적분담을 당연시 여기거나 남성의 가사분담을 기대하지 않거나 혹은 이런 구조에 불만을 가지지 않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왜 일까?

    전통유교사회에서 가정은 항상 개인에 우선했다. 도덕을 이루는 가장 최종단위는 개인의 자유가 아니라 가족이익을 전제하는 것이었다. 여성은 자신를 희생해서 남편이나 자녀를 뒷바라지 할 것을 사회적으로 항상 요구받아왔다. 또한 전통사회에서 가족이란 서로 사랑하고 이해해야 할 존재지 경쟁과 충돌의 존재가 아님을 경쟁과 충돌의 존재는 외부에서 찾아야 함을 강조해 왔다. 여기서 강조하는 가정의 화합은 가족 전구성원의 협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여성에게만 요구되어지는 희생에 의해서다. 이와같이 무조건적인 여성의 헌신과 사랑만을 강조해 온 유교전통 가족이데올로기는 여성이 가사일과 직장일의 이중부담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가사일의 전적부담을 전가해야하는 희생을 요구한다.

    많은 아내들은 남편이 실질적으로 얼마나 가사일을 했느냐와는 상관없이 말로 아내를 위로하고 격려할 때 또는 아내의 가사노동을 이해하려는 제스처만으로도 만족하거나 불만을 품지 않거나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또는 남편의 가사노동참여를 돕는 개념으로 인식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돕는다거나 사랑하지 않기때문에 돕지 않는다고 여긴다. 혹은 자녀양육에 있어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가질 것을 요구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노동을 분담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자녀와 아버지의 관계의 친밀감을 위해서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여성들이 남편의 가사노동의 참여를 기대할 때 실질적 가사노동의 참여(가사노동을 얼만큼 했느냐)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가져오는 결과적 효과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즉 얼마만큼의 가사노동을 분담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사노동이 부부관계에 있어서 서로에 대한 기대와 가치의 한 표현의 수단으로서 중요해지는 것이다.

    현재의 상황에 대한 만족이나 불만은 나의 기대정도에 따라서 그리고 그 비교대상에 따라서 달라진다. 직장여성이 가정에서 전적으로 가사노동을 분담함에도 불구하고 불공평함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여성은 가사노동에서 항상 남성이 아니라 다른 여성과 비교를 하기때문이다. 대다수의 여성이 모두 가사노동을 전적으로 분담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가사노동을 전적으로 분담하고 있다는 것에 좀처럼 불만을 느끼지 못한다. 반면에 남성은 자신과 자신의 아버지나 할아버지와 비교를 하곤 한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과거보다 더 많이 가사노동에 참여하고 있다고 여긴다. 이와같이 서로의 비교기준이 다름으로 인해 여성이나 남성이나 모두 남성의 가사노동참여에 더 높은 평가를 주면서 남성이 여성과 동등하게 가사노동을 할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종종 아내의 일은 부업정도로 취급되어진다. 가정의 모든일을 마친 후 여력이 생겨서 하는 일이거나 혹은 아이의 과외비를 벌기위해서 하는 노동으로 여기기 쉽다. 상대적으로 남성의 사회에서의 직장생활은 늘 긴장과 경쟁의 연속이고 노력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음을 그래서 한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는 남편의 직장생활은 절대적임이 끊임없이 강조된다. 남성의 직장생활과 여성의 직장생활에 대한 이러한 이분법적인 인식이 여성이 가정경제의 일부를 감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여성이 전적으로 가사노동을 분담할 것을 요구한다.

    오늘도 아내는 하루종일 직장에서 시달리고 가정으로 향하지만 가정은 다시 그녀를 가사일로 쉴 틈을 주지않는다. 그리고 저쪽에서 세탁기를 돌리고 있는 남편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뭔가 잔뜩 화가 나 있는 남편은 집안이 왜 이렇게 지저분하냐고 투덜거린다. 그리곤 남편은 이내 곧 신문을 집어들고 TV를 보면서 저녁밥이 자기앞에 차려지기를 기다린다.
  • 우껴서.. 2003/12/08 [17:20] 수정 | 삭제
  • 우선 남자는 바같일을 하고 여자는 집안일을한다. 만약 남자가 집안일을 하려면 여자가 바같일을 해야 한다. 그 전제는 빼고 머? 남자는 밖에서도 일하고 집안일도 햐야 하냐? 이런 썩어빠진 인간들..
  • 공감! 2003/12/02 [09:23] 수정 | 삭제
  • 그런 정도의 가사일을 하는 것을 '머슴'에 까지 말한다는 건

    결국 '머슴'이 아닌 정상적인(?)남성이라면

    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담긴 거죠.

    평소 뭔가 찜찜했었는데 잘 짚어주셨네요.

    글 고맙게 잘 읽었어요.

    늘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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