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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상계동, 청계천, 용산, 아현 그리고 홍대입구. 이 장소들엔 공통점이 있다. 사라지고 쫓겨난 이들의 이야기가 있다는 거다. 이젠 잊혀가는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잊어선 안 되는 이유는 지금도 도시곳곳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식목일을 반기는 봄의 단비가 내리던 5일, 서울 전태일기념관에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채웠다. 함께 그 이야기를 기억하고자 〈2023 주거권 서울시티투어-서울 개발의 역사를 돌아보다〉에 참여한 이들이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너머서울, ‘서울지역노동자 주거권실천단(준)’에서 주관한 이 행사는 낮 1시부터 저녁까지 ‘주거권’, ‘재개발’, ‘공공임대’ 등의 주제를 생각해보는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매년 새롭게 공급되는 주택은 누구에게 가고 있나?
주거권 서울시티투어 오리엔테이션은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로부터 서울 개발의 역사에 대해 듣는 시간으로 채워졌다. 이원호 활동가는 한국의 주택 정책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면 “성공한(?!) 건설 공급 정책, 실패한 분배 정책”이라고 말했다. 국가는 “주택 공급을 늘려 집 없는 사람도 집을 가질 수 있게” 해주겠다며 “민간에서도 쉽게 개발해서 주택을 공급할 수 있도록, 재개발 재건축 규제 완화, 선분양 제도, 청약 제도, 합동 재개발 등을 도입”했다. 하지만, “그렇게 공급된 주택이 누구에게 갔는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1960년~197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대규모 개발 사업들이 이어졌고 2000년대엔 뉴타운 건설이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1990년부터 연간 45만호~50만호 주택이 꾸준히 공급되었음에도, 자가점유율은 1980년대에 58.2%, 2020년대 58.6%. 거의 변화가 없다.” 오히려 “전세가 많아졌거나, 2010년도 이후에는 월세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다. 이원호 활동가는 “주택 소유가 편중된 문제를 잘 들여다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계속되어 온 개발 사업을 통해 형성된 부동산 카르텔, 높은 집값, 아파트 중심의 공급 정책 사이에서 우리의 주거권이 계속 박탈당했다는 점을 잘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것이 이번 주거권 서울시티투어의 목적이다. 부동산 관점이 아닌 주거권 관점으로, 개발이 아니라 사람의 관점으로, 도시 역사와 현 상황을 들여다 보자는 것.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으로 살 수 있게”
시티투어 참가자들은 단편 다큐멘터리 영화 〈상계동 올림픽〉(1988)을 관람했다. 88서울 올림픽은 한때 대한민국의 경제적 성장과 성공을 증명하는 상징이자, 영광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올림픽을 위해 쫓겨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전두환 정권은 도시 ‘미관’을 위해, 일명 달동네 등 빈민촌을 마구 철거했다. 상계동 137번지 판자촌도 그 중 하나다. 주민들은 투쟁하며 버텼지만 결국 쫓겨났고, 명동성당 앞에 천막을 짓고 300일을 살다 겨우 겨우 부천으로 이주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손수 지은 임시건물조차 “1분도 안 되는 성화 봉송이 지나가는 자리”라는 이유로 무자비하게 철거된다.
“억울해, 억울해, 억울해” 절망하는 이의 목소리와 더불어 다큐멘터리 〈상계동 올림픽〉에서 가장 인상 깊게 남는 것은, 담담하게 내레이션을 끌고 가던 철거민의 말-“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으로 살 수 있게”-였다. 가난한 사람도, 자신의 삶의 터전에서 존엄을 잃지 않고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일 테다. 36년이 지난 지금, 서울은 가난한 사람이 ‘살 수 있게’ 됐을까?
2018년 11월 9일 새벽, 청계천 수표교 인근 국일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7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을 입었다. 고시원이라는 이름의 이 주거 공간엔 스프링클러가 없었고, 내부를 쪼개서 만든 내창방과 먹방(창문 없는 방)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보니 불은 금방 건물 전체로 번졌다. 사망자들은 다 먹방에서 생활하던 이들이었고, 중장년의 일용직, 비정규직 노동자,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였다. 가난한 이들이 살 수 있는 주거 공간은 최소한의 안전도 보장되지 않는 곳, 그럼에도 월세 20~40만원을 꼬박꼬박 내야 하는 곳이다.
이 사건 이후, 고시원에도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고 창의 크기와 최소 면적을 정하는 제도가 마련됐다. 하지만 주거권 활동가들은 미봉책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국일고시원과 같은 사고는 단지 안전장치, 화재 예방장치가 없어서 발생했다기 보다, 이 곳이 비적정 주거 환경이기 때문”이라고 짚으며, “적정 주거 환경으로 개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라진 것들을 대체하고 있는 것
사람에게 삶의 터전은 집이기도 하지만, 일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 터전을 빼앗긴 이들도 있다. 청계천 상인들은 ‘개발’이라는 이름 앞에서 소중한 일터를 잃었다. 장현욱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활동가는 세운상가와 청계천이 보이는 고가도로에서 높은 빌딩이 자리하기 이전에 존재했던 공간들에 대해 설명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이던 시절,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만들고 문화재를 복원하겠다며 청계천 복원사업을 진행했다. “이 공간에서 정말 오래 일하셨던 상인 분들을 불과 한 2개월만에 전쟁을 방불케 하는 강제집행으로 다 쫓았죠. 문정동 가든파이브로 이주시켜주겠다는 것뿐, 당사자들과 제대로 된 소통 없이 폭력적으로요.” 하지만 청계천은 비가 많이 오면 주변 하수 물들이 유입되어 물고기가 죽어 떠다니는 곳이 됐다. 사업의 결과 만들어진 건, 주변 집값의 상승과 각종 빌딩들이었다.
이어 오세훈 시장은 세운상가 개발에 적극 나선다. 하지만 오 시장이 중간에 시장직을 내려놓게 되고, 이후 故 박원순 시장이 을지로 청계천 지역을 도시재생하겠다고 선언한다. 철거하기로 했던 세운상가를 존치하고, 전면적인 재개발은 안 하겠다는 이야기에 상인들도 반겼지만, 재개발은 여전히 진행됐다. 그리고 현재, 다시 시장이 된 오세훈 시장은 또다시 전면적인 재개발을 발표한 상태다. “주상복합과 녹지가 어우러지는 공간을 만들겠다고 얘기하고, 높이 제한도 다 풀어버렸어요. 최대 40층, 이런 재개발을 진행하겠다는 거죠.”
역사와 전통이 있는 장인들의 거리를 하나둘 없앤 자리에 들어선 주상복합건물의 20평 오피스텔은 2020년 당시 분양가가 8~9억인 공간이 됐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이런 공간이 누군가에겐 이윤의 새로운 확장이 가능한 공간으로 보일 수 있지만, 여기 사라진 골목에 정말 많은 가게가 있었다는 것, 그 공간에서 일하며 살아간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개발이라고 하면 늘 좋은 것처럼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개발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어떤 것이 묵살되고 지워지는지, 또 그 방식은 얼마나 폭력적인지, 개발의 결과로 이득을 얻는 건 과연 누구인지 질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개발은 공공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소수의 누군가를 위한 것인가?
공공의 땅을 팔면, 우리에겐 뭐가 남죠?
용산의 뜨거운 감자 ‘용산 철도 정비창 부지’는 국가기관이던 철도청이 공기업인 철도공사로 전환되면서 이슈가 된 곳이다. 이원호 활동가는 “처음에 그냥 땅을 팔아서 수익을 얻으려던 철도공사는 뉴타운 붐 등 개발사업들이 흥행하는 걸 보고, 개발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 또한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를 공약했고, 이후 용산 정비창 부지에 국제업무단지 개발사업을 하겠다고 발표한다. 심지어 “지어진 지 몇 년 되지 않은 새 아파트까지도 철거”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2013년 부동산 침체로 사업을 진행하던 업체가 부도 처리되고, 투자자들끼리의 소송이 이어졌다. 2016년, 대법원 판결로 다시 철도공사가 이 토지에 대한 사용권을 획득하게 된다. 그리고 2020년 문재인 정부는 미니신도시급 주택 1만호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이원호 활동가는 “그 중 공공임대주택은 2천여 호밖에 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현재 오세훈 서울시장은 다시 국제업무단지를 조성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올해 초 윤석열 정부는, 토지 용도와 밀도 제한을 지방자치단체가 자유롭게 정하는 ‘도시혁신구역’ 도입을 발표했고, 용산 철도 정비창 부지에도 그것이 활용될 것이라 전망되고 있다.
이원호 활동가는 이 정비창 부지가 “서울 중심에 남아 있는 대규모 ‘공공’택지라는 점”을 강조하며. “이 땅을 개발해서 기업과 개인들의 소유로 넘기는 방식은 안 된다”고 목소리 높였다. “대안적인 개발을 통해 공공임대주택이나 공공시설 등 우리의 공간이 만들어 질 수 있도록, 보다 공적인 목적의 공공토지로 계속 남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높아지는 재건축 비율, 세입자를 위한 안전망 제로
‘개발’ 이슈 중 또 하나 주목할 것이 ‘재건축’이다. 일명 브랜드 아파트들이 들어선 아현동은, 재건축으로 집이 철거되어 쫓겨난 후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렵다. 어머니에겐 임대아파트를 드려서 나와 같이 되지 않게 해 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떠난 故 박준경 열사의 삶이 있던 곳이다. 당시 나이 37세로, 30대 청년이었다.
이원호 활동가는 “서울시에선 강제철거를 막겠다는 조치 중 하나로 동절기(12~2월) 철거 금지를 조례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11월에 철거가 굉장히 많이 이뤄졌고, 당시 박준경 씨도 11월 한달 동안에만 3번의 철거(원래 살고 있던 집이 철거된 후 빈집에서 지내다 철거, 또 철거)를 경험했다.”
당시 박준경 씨가 지낸 집은 ‘재건축’ 사업이 진행된 곳이다. “기반 시설(도로, 상하수도 등)이 양호하면 재건축을, 아닌 경우 재개발을 진행”하는데, “재개발은 미약하나마 임대주택 마련이나 주거이전비 같은 대책이 있는 반면, 재건축은 세입자 대책이 아무것도 없다.”
아현동에서 10년을 산 박준경 씨와 동네 사람들은 처음엔 ‘우리 동네를 좋게 개발한다’며 기대했고, 재개발하면 ‘임대주택에 들어갈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졌다. 뒤늦게서야 여긴 ‘재건축’이라 아무 것도 없이 쫓겨나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광남 전축철거민연합 아현동철거민대책위 위원장은 “총 24차례 강제철거 집행 때 그 어떤 협상이나 설명, 해결 등의 안내 없이 오로지 (세입자들을) 쫓아내는 것에만 급급한 국가가 폭력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했다.
이 위원장은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이 다시 취임하면서 무차별적으로 인허가를 내주고, 개발할 수 있게 규제를 많이 풀어주고 있는데, 이게 정말 올바른 것인지 생각이 필요한 때”라며, “아현동 668번지에서 박준경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살다 갔는지를 한번쯤 생각해 달라”고 덧붙였다.
한국의 개발 과정에서의 강제퇴거 방식은 유엔 사회권위원회로부터 단 한번도 빠지지 않고 지적 받아 온 문제다. 이원호 활동가는 “이제 서울 전체 정비 구역이 한 300여곳 되는데, 그 중 재개발과 재건축 비율을 비교해 보면 재건축이 더 많은 상황”이라며, 법적인 세입자 대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제 ‘주거권’이다
주거권 서울시티투어를 주관한 서울지역노동자 주거권실천단(준)은 민주노총 서울본부을 비롯한 여러 단체의 활동가들이 의기투합 해 ‘노동자가 나서는 주거권 행동’을 추진하고 있다. 김진억 민주노총 서울본부장은 “노동조합이 가장 강력한 사회운동 세력임에도, 보편적 가치이자 권리인 주거권, 공공의료, 기후정의 등의 활동을 많이 하지 못했던 것을 반성한다”며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활동해서 5년, 10년 뒤 더 나은 주거권을 확보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포부를 밝혔다.
시티투어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도시를 채운 빼곡한 집과 높은 건물은 누구의 것인가? 사라진 것들의 흔적은 무엇으로 채워지고 있는가? 이 불평등을 어떻게 멈출 것인가?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이러한 고민이 시작됐으니, 먼저 깃발을 들고 일어선 이들과 함께 나설 수밖에. 서울지역노동자 주거권실천단(준)은 같이 활동할 이들을 모집하고 있으며, 주거권 서울시티투어도 올해 한두 번 더 진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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