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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 예술감독 고(故) 니나가와 유키오 씨가 창단한 시니어극단 ‘사이타마 골드씨어터’를 중심으로, 일본의 사이노쿠니 사이타마예술극장은 고령화 사회에서 공공극장의 역할을 제시하며 주목을 받고 있다. 여기서 사이노쿠니(彩の国)는 ‘다채로운 도시’라는 의미로, 사이타마현이 정한 공식 애칭이다.
작년 가을부터 대대적인 보수공사에 들어가 현재는 휴관 중이지만, 내년 3월 방향키를 새로이 꺾어 재개관 예정이다. 그 준비를 담당하고 있는 사이타마현예술문화진흥재단 우케가와 사치코 씨를 만나 극장과 극단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애초에 니나가와 유키오(蜷川幸雄) 전임 예술감독은 왜 시니어극단을 구상했을까.
“전문 배우가 아니라 평범한 생활을 하는 노인들이 축적해온 경험과 감정을 이끌어내는 연극을 만들고 싶다고, 만약 성공한다면 지금까지 당신이 해온 작업을 때려 부수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고, 그 정도로 혁신적인 일이라고 니나가와 씨는 얘기했습니다. 다들 대사 외우느라 고생도 했지만, 자연스럽게 인생의 깊이가 배어나옵니다. 니나가와 씨도 연출로서 그것을 끌어내는 데 탁월했고요.”
단원들은 해외에도 초청을 받곤 해, 전문 배우들로 간주되기도 했다. “그만큼 지도방식도 엄격했어요. 재떨이가 날아다니지는 않았지만(웃음). 노인의 예술 활동과 관련한 풍부한 프로그램이 있는 영국의 극장조차 취미의 영역을 넘어서서 높은 예술성을 구현하는 사례가 없어, 사이타마 골드씨어터에 대해 굉장히 놀라워하더군요.”
하지만, 창단 15년이 지나니 평균연령이 82세에 달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외출이 불가능해지자 단원들의 기력도, 체력도 순식간에 쇠퇴했다. 극단으로서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 더 이상 어려워졌다고 판단해 2021년, 사이타마 골드씨어터는 해단했다.
한편, 코로나19는 새로운 가능성도 열어줬다. 지금도 온라인으로 계속하고 있는 파킨슨병 환자를 위한 무용 프로그램이 그 예이다.
“원래는 뉴욕의 저명한 무용단이 환자단체로부터 의뢰를 받아 만든 프로그램이에요. 2019년에 그 무용단을 초청해 강연과 연수를 하고, 연수에 참여했던 일본의 전통 있는 발레단인 스타 댄서즈 발레단에서 강사를 모셔서 대면으로 시작했지만 바로 온라인으로 전환했어요. 사회로부터 고립되기 쉬운 환자들이 집안에서 같은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과 연결된 것은 물론이거니와, 전국 어디에서든 참여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온라인의 쓸모를 실감하고 있습니다.”
파킨슨병 증상 개선의 효과가 있다는 연구논문도 발표되어 준텐도병원에서 도입되기도 했지만, 극장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창조적으로 즐기는 것. “참가자가 ‘마음이 움직였다’는 소감을 남겨 정말 기뻤어요. 몸을 움직임으로써 마음이 움직인다는 것이야말로 무용의 묘미이자, 수치화하기 어려운 문화예술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수치화하기 어려운, 문화예술의 역할
마찬가지로 온라인 작품으로서 일본과 영국이 공동제작한 〈The Home〉도 짜릿한 도전이었다. 런던 초연에서는 대학 기숙사를 가공의 노인요양보호소로 설정하고, 배우가 직원 역할을 연기하며, 관객이 2박 3일간 입주 체험을 하는 ‘이머시브 시어터’(immersive theater, 체험형·몰입형 연극)이었다. (현재 온라인 사이트에서 thedigitalhome.org 체험할 수 있다.)
“초현실적인 체험이었어요. 고급 요양보호소처럼 식사도 나쁘지 않고 문화프로그램도 충실했지만, 지금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못하고 하고 싶은 일을 원하는 때에 할 수 없으니까요. 관객으로 하여금 이런 게 통제를 당하는 것이구나, 하고 돌봄과 통제의 차이를 생각하게끔 했죠.”
“일본 버전을 연출한 스가와라 나오키(菅原直樹) 씨는 요양시설에서 일한 경험이 있고, 돌봄과 연극에는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면 자신이 있는 장소와 시간을 모르게 되는 지남력장애가 있는 사람의 세계에 함께 들어간다고 할까요? 연기하며 돌보면 당사자의 혼란과 불안도, 요양보호사의 스트레스도 줄어들어 상황이 원만해진다고요. 픽션의 효용, 예술의 가능성이죠. 그런 부분을 알고부터 저도 어머니에게 다정해졌습니다.(웃음)”
포스트코로나 시대, 언어보다 ‘신체 커뮤니케이션’을
고령자에 특화된 프로그램을 통해 존재 의미를 제시해온 극장은 그 기반 위에서 앞으로는 보다 다양한 특징의 사람들이 교류하는 창조 활동을 해나갈 예정이라고 한다. 무용, 연극, 서커스, 음악 등 장르도 횡단하고, 프로와 아마추어, 노인과 청년, 외국인도 함께 맨바닥부터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실천으로.
어떻게 구체화할지는 지금도 모색 중이지만, 한동안 비어있던 예술감독 자리에 안무가이자 무용수 곤도 료헤이(近藤良平) 씨가 취임하면서 무용의 비중도 커질 것 같다.
“언어를 매개로 하지 않고 직접적인 신체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무용은 포스트코로나 시대가 더욱 필요로 하는 표현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우케가와 씨 본인도 어릴 적부터 무용을 좋아했다. “젊을 땐 나 스스로에 대해 말로 표현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어요. 발화하는 순간 의미를 가져버리는 말이 무서웠거든요.”.
고등학교 때까지 리듬체조에 빠져 있었다. “발레학원도 없는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동아리가 유일하게 무용을 할 수 있는 기회였어요. 그러다 대학에 들어가 처음 본 공연이 윌리엄 포사이스와 피나 바우쉬였죠. 새로운 발레 표현을 추구하는 포스트모던이라고 불리는 무대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후 언어를 매개로 하지 않는 신체표현을 문화인류학적으로 기술하는 방법을 배우며 연구자의 길을 갈까도 생각했지만, “역시 현장에 미련이 있어서” 지금의 길로 오게 되었다고. 말로 표현하기도 어려울 만큼 마음을 뒤흔들었던 젊은 시절의 체험. 그것이 지금도 우케가와 씨를 움직이게 하고 있다.
-<일다>와 기사 제휴하고 있는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의 보도입니다. 고주영 씨가 번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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