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성폭력 피해자였던, 나의 인턴 D 이야기

피해자 편에 서는 법[法] 국제변호사가 되겠다는 꿈 응원해

이은의 | 기사입력 2023/05/14 [12:03]

해외 성폭력 피해자였던, 나의 인턴 D 이야기

피해자 편에 서는 법[法] 국제변호사가 되겠다는 꿈 응원해

이은의 | 입력 : 2023/05/14 [12:03]

※지난 몇 년간 한국 사회에서 첨예한 논쟁이 된 성폭력과 미투 사건들을 맡아 해결해 온 이은의 변호사의 기록, ‘피해자 편에 서는 법[法]’을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나의 인턴 D를 처음 만났던 건 2019년 2월 어느 저녁이었다. 사회적으로 불어닥친 미투(#MeToo) 열풍 속에서 일도 많고 상담도 많아 야간업무가 일상이었다. 스무 살 갓 넘은 것 같은 앳된 얼굴의 피해자는 상담 내내 하염없이 울었다.

 

▲ 지난 1년 6개월 간 이은의법률사무소 인턴으로서, 다른 피해자들의 사건에 연대한 D. 서로의 가장 불행한 시기에 만났고, 힘겨웠던 날들에 다시 만나, 점점 행복해진 이야기를 전한다.   ©이은의

 

해외에서, 둘 이상 가담한, 약물 이용 준강간 사건

 

D는 대학 재학 중인 2018년, 학업 관련한 일로 유럽을 방문하고 귀국하는 과정에서 터키를 경유하는 항공편을 이용하게 됐다. 이스탄불의 에어비앤비(숙박 공유 서비스)에서 하루 묵게 되었는데, 약속 시간보다 한참이나 늦게 나타난 에어비앤비 주인이 미안하다며 근처 바(Bar)에서 술을 한잔 사겠다고 했다. 그곳에서 에어비앤비 주인의 지인을 만났는데, 그가 건넨 음료를 마시고 그만 정신을 잃었다. 약물을 탄 음료였다.

 

다음 날 아침에야 정신을 차렸고, 성폭행을 당했음을 알게 되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지만, 온 힘을 다해 터키경찰서를 찾아가 신고하고, 진술하고, 신체 감정을 받았다. 그리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당시는 한국대사관에 피해를 신고할 겨를도 없었고, 그런 생각을 하지도 못했다. D가 이스탄불 영사관에 연락을 취한 것은 한국에 돌아온 후, 자신의 사건에 대한 수사가 어떻게 진척되는지 알 길이 없어서였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해외에서 발생한 우리 국민의 성폭행 피해 사건에 대한 지원책이 제대로 마련되어있지 않았다. 그러잖아도 터키에서 겪은 성폭행 피해로 큰 충격에 휩싸여 있었던 D는, 이스탄불 주재 경찰 영사와의 소통 과정에서도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되었다.

 

D에게 일어난 사건의 실체는 에어비앤비 운영자가 가담하여 2명 이상이 약물을 이용해 저지른 준강간 사건이었다. 한국 변호사가 도와줄 수 있는 절차나 법률 조언이 마땅치 않았지만, D가 나를 찾아와 눈물을 쏟아낸 이유는 답답함 때문이었다. 터키 영사는 D에게 전화하여 언성을 높여 ‘성폭행하는 걸 눈으로 보았느냐, 왜 기억을 못 하느냐’라는 말을 하기도 했고, 이미 D가 범인이라고 특정한 가해자의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며 ‘그가 누구냐’ 되묻기도 했다. D가 현지 변호사를 선임하기 위해 관련 정보를 요청하니, 터키어로 쓰여진 변호사 명단을 보내왔다. 성폭행 피해를 입은 그날부터 계속 안개 속에 갇혀 길을 헤매는 것 같은 날들이었다.

 

나를 만나기 전까지 D에겐 수없이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터키 에어비앤비에서 성폭행을 당한 직후 눈을 뜬 아침, 항공편 시간이 다가오는 순간, 신고를 하기 위해 물어물어 찾아간 이스탄불 경찰서 앞, 터키 경찰관과 마주앉아 영어로 진술을 하던 때, 한국에 돌아온 이후 내내, 잊을 수만 있다면 잊어버리고 내려놓아 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D는 포기하지 않았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그 길 위에서 나와 마주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D와 같은 피해를 겪은 이가 분명 하나둘이 아닐 텐데, 큰 문제였다. 외교부가 관련 매뉴얼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미흡하니, 해외에서 성폭력을 겪은 피해자에 대한 지원책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D와 모 방송사 기자를 연결시켜주었다.

 

이후 D의 소식은 해당 보도가 나가는 날, 기자를 통해서 전해들었다. 그 사이 스스로 영어로 된 터키변호사들의 홈페이지를 뒤져가며 형사 전문 변호사를 알아보고, 변호사를 선임했고, 터키를 방문해 진술을 다시 하는 등 피해입은 사건을 제대로 조치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이야기였다. D가 자신의 사건을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에어비앤비를 이용하는 젊은 여성 여행자들이 많은데 자기 같은 피해를 입지 않기를, 그리고 해외 공관의 조력을 제대로 받지 못하여 상처받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취재에 응하였다는 말도 함께 들었다. 2019년 3월의 어느 날이었다.

 

명예훼손 ‘피의자’가 된 피해자를 다시 조우하다

 

후일담같은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이것으로 D의 소식도 끝이겠거니 했다. 그런 D와 2020년에 다시 조우했다. 당시 터키에서 돌아온 영사가 D가 허위사실로 자신의 명예를 훼손하였다며 고소를 한 것이었다. 피해자로 만난 D를 피의자로 마주하니 당황스러웠지만, 다행히 D는 전보다 훨씬 밝고 씩씩했다. 그 영사는 D의 제보로 보도된 기사 때문에 자신이 피해를 입었다며 D에게 10억 원의 손해배상소송도 걸었다.

 

그 과정에서 D의 전 남자친구까지 수사기관에 소환되었고, D가 성폭행 피해를 입고 앓았던 심각한 자살충동과 트라우마, 우울증 치료 기록들이 수사기관과 법원에 까발려졌다. 그 영사는 방송사 측도 고소하고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영사와 방송사 간의 다툼 과정에서 D도 모르는 사이에 D의 피해 사실이나 인적 정보가 수사기관이나 법원에 제출됐다. D로서는 끔찍한 일이었다.

 

나는 D가 감당해야 할 비용도 걱정이 되었다. “괜찮아요, 변호사님, 엄마가 ‘자식 ㅇㅇ대 보내려면 과외비가 억 단위로 든다는데, 넌 과외 한번 안 하고 갔으니 이 돈 써도 괜찮다’ 하셨어요.” 이렇게 말하며 오히려 자기 변호사를 위로하는 D를 보면서, 사건을 더욱 파이팅해서 가야겠단 의지가 끓었다.

 

그리고 2021년 11월, D에 대한 형사고소도, 민사소송도 모두 기각이 되었다. 같이 경찰서와 법원을 들락거리는 동안, 우린 서로 정이 들었다. D는 영리하고 호기심이 많은 이였고, 재기발랄하고 유쾌했다. 사건이 빨리, 그리고 잘 끝나기를 기다렸지만, 막상 그날이 오니 이젠 헤어지는구나 싶어 시원섭섭했다.

 

D의 판결에 대해 보도자료를 배포하였고 언론에 보도가 되었는데, 한 일간지 기자가 D의 신분이 드러나지 않게 인물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D는 흔쾌하게 수락했다. 2019년 2월 방송사 기자를 만나 울면서 피해를 호소하던 대학생은, 2년 9개월이 지난 후 일간지 기자를 만나 활짝 웃으며 극복과 치유를 이야기하는 빛나는 청춘이 되어있었다.

 

국제변호사가 되어 자기와 같은 피해자를 돕겠다는 포부

 

사건 뒷풀이를 하며 우리 곧 또 만나자고 말했지만, 정말 또 보게 될지는 미지수였다. 그런데 2개월쯤 지나 D에게서 메일이 왔다. 마치 옆에서 재잘재잘 떠드는 것 같은 내용이었다. 미국 로스쿨 진학을 준비하고 있는데 꼭 이은의법률사무소에서 인턴을 하고 싶다고 했다. 자기처럼 해외에서 성폭력을 겪은 피해자들이 어렵지 않게 신고하고, 해결 절차를 밟아나가는 데 있어서 도움을 주는 국제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단단하게 적고 있었다.

 

솔직히 나는 고민이 깊었다. 당시 나는 성폭력 가해자(를 두둔하는) 집단이나, 백래시 세력 등으로부터 온오프라인에서 공격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사무실의 일원으로 누군가를 들이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D가 성폭력 피해를 입었던 직후부터 그 피해를 넘고, 다시 후속된 2차 피해를 넘으며 보여준 태도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내가 뭔가 해줄 수 있다면 뭐라도 지원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피해자로 만나 의뢰인이 되었던 D가, 나의 인턴이 되었다.

 

▲ D는 인턴을 자원하면서, 자신처럼 해외에서 성폭력을 겪은 피해자들을 조력하는 국제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사진은 미국 로스쿨 진학을 준비하는 D의 공부 일지.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엔딩 대사가 적혀 있다.

 

인턴을 시작한 D는 한 번도 결근하지 않았고, 두꺼운 기록을 쉼 없이 읽고 과제를 했다. 뚜벅이 변호사를 따라 이 경찰서 저 경찰서, 이 법원 저 법원, 이 방송국 저 강의처 등을 함께 돌았다. 3개월쯤 있다 가려나 했는데, D는 6개월이 지나고 다시 6개월이 지나도 나와 함께였다. 보고 듣는 것들에 대한 소회를 솔직담백하게 나누고, 변호사로 살아가는 애환에 대해서도 나누다보니, 인턴인 D가 배우는 것보다 내가 느끼는 것이 더 많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렇게 1년을 지나 올해 봄이 시작될 무렵, D가 시험을 보고 원서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국 상위 랭킹 로스쿨들에서 합격 소식을 보내오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1억3천만 원의 학비를 장학금으로 지급하겠다는 곳도 있는데, ‘당신이 우리의 자산이 될 것임을 믿고 있다’라는 감동적인 문구도 함께 적혀있었다. 그렇게 파란만장 눈물겹게 지나온 D의 시간이 찬란하고 웃음가득한 일들로 보답받고 있었다.

 

현재 D는 미국 로스쿨들에서 하나둘 순차적으로 도착하는 합격 소식을 받고 있다. 아직 연락을 기다려보는 학교들이 남아있어서 최종결정하지는 않았지만, 이 중에서 D가 낙점한 운 좋은 로스쿨로 9월 입학할 예정이다. 이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면 D는 미국으로 떠나겠지만, 이제는 헤어짐을 준비하는 대신 이후 함께할 즐거운 작업들을 작당하고 준비하고 있다. D가 인생에서 가장 불행했던 날들에 처음 만나, 변호사로서 내가 몹시 힘겨워하던 날들에 선임과 후학으로 다시 조우한 우리는, 함께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 글을 자랑스러운 D에게, 아직 회복과 치유 중에 있는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하는 청춘들에게 보내고 싶다. [연재 끝]

 

[필자 소개] 이은의. 2014년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된 후, 서울 서초동 법원검찰청 코앞에 ‘이은의 법률사무소’를 열고 지금까지 여러 성폭력, 성차별 사건들을 다뤄왔다. 특별한 정의와 굉장한 진보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당연한 일들이 당연하게 처리되는 세상을, 합리적인 사고와 담론이 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어느새 9년째 말하고 글 쓰며 싸우는 최전방에서 세상을 계속 배워가는 중이다. 저서로 『삼성을 살다』, 『예민해도 괜찮아』, 『불편할 준비』, 『상냥한 폭력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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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수 2023/05/16 [13:01] 수정 | 삭제
  • 응원 합니다.
  • ㅇㅇ 2023/05/16 [10:55] 수정 | 삭제
  • 이 사건 뉴스에서 봤던 기억이 나는데.. 피해자분의 성장일지 같은 글 보구 얼마나 힘이 나는지 모릅니다! 인턴 생활할 때 두 분이 환상적인 케미였을 듯 ㅎ
  • 독자 2023/05/15 [19:26] 수정 | 삭제
  • 우와 뿌듯하네요. 인턴분 이제부턴 꽃길만 걸으시길...
  • 뚜리뚜밥 2023/05/14 [15:43] 수정 | 삭제
  • 내가 그런 일을 겪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보았어요. 생각만해도 무섭고 끔찍하고 막막한데... 정말 용감한 분이네요. 두 분 다 존경스러워요. 해피엔딩이라니 너무 좋구요!!! 국제변호사가 된 이후의 소식도 접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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