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1년, 외교와 복지, 인권 등 여러 부분에서 문제점을 드러냈지만 특히 큰 이슈를 불러왔던 건 노동 분야라 할 수 있다. 글로벌 기준과는 동떨어진 주 69시간 노동을 추진하는가 하면, 이례적이고 폭력적인 노조 탄압을 포함한 윤 정부의 ‘노동개혁’은 많은 비판 속에 진행 중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노동권이 흔들리고 노동자의 위치는 취약해 질 수밖에 없다. 특히 여성노동자들에겐 더 그렇다.
여성노동연대회의는 지난 12일, 윤석열 정부 1년을 〈젠더 관점으로 살펴본 여성노동정책 평가 토론회>를 열고, 현재 노동 시장에서 여성들이 겪고 있는 다양한 문제를 분석했다. (여성노동연대회의는 2022년 7월 1일 ‘구조적 성차별’을 겪고 있는 여성노동 현실을 드러내고 대응하기 위해, 양대 노총과 전국여성노동조합,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등 단체들이 모여 발족했다.)
여성노동 정책이 저출산 대책?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외치며 탄생한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및 정책에서 ‘여성의 부재’는 이미 지적된 바 있다. (관련 기사: ‘여성’이 빠졌다…윤석열 정부 1년에 대한 여성계 평가 https://ildaro.com/9627) 노동 분야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양성평등 일자리 구현을 내걸고 있지만, 그 내용은 ‘육아휴직 확대’와 ‘단계별 성별 고용공시제의 도입’이며 이마저도 자율적, 단계적으로 시행할 계획”에 그치고 있다.
김경희 교수는 ‘양성평등 일자리 구현’이 “기혼 맞벌이 여성의 노동지원을 위한 출산 및 양육 관련 휴가와 제도의 개선에 국한된 점”을 짚으며, 정부가 여성노동 정책을 “저출산 대응과 인력 활용의 관점”으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성별 임금격차 등 성별화된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고용상 성차별의 문제는 다룰 공간이나 계획을 찾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심지어 “2023년부터 시행하는 제7차 남녀 고용평등과 일·가정양립 기본계획조차 공개되어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노조 때리기’가 여성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
정부의 ‘노조 때리기’ 논란이 일고 있는 건설노조 여성노동자의 목소리도 나왔다. 김미정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경기중서부건설지부 부지부장은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전부터 지지율을 높이고 지지자를 결집시키기 위해 ‘여성혐오’와 함께 노동조합 혐오와 탄압을 일삼고 있다”고 일갈했다. 또 노조 활동이 위축되면, 그로 인해 더 큰 어려움을 겪는 건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라고 설명했다.
“노동조합 활동으로 인해 이익을 얻는 집단. 즉 ‘노조 효과’가 높은 집단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집단인 여성과 비정규직 및 소수자임은 여러 곳에서 확인된 바 있다.” 김미정 부지부장은 “UC버클리 노동센터가 발표한 2018년 ‘노조 효과’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노조) 미조직노동자보다 조직노동자, 노조원 중에선 백인보다 비백인, 남성보다 여성, 선주민보다 이주민의 임금 인상 폭이 더 높았다”라고 전달했다.
“여성에게 노동조합 효과가 높은 건, 노조 내 여성 비율이 늘어나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노동조합 전통이 오래된 영국과 독일 노총의 경우, 10년 사이 조합원 수는 줄었지만 오히려 여성조합원은 늘었다. 민주노총의 경우도 2020년, 조합원 백만 명 중 여성 조합원이 37만 명, 비정규직 조합원이 32만 명으로, 그 비율이 (이전에 비해) 급격히 늘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노조를 탄압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까? “노조가 없는 사업장, 특히 노조 조직율이 낮은 여성노동자와 비정규직 일자리의 질은 더 하락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2021년 12월 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노조 조직율은 12.4%, 그 중 공공부문이 70%, 민간부문이 12.2%다. 공공부문은 조직율도 높고 단협 적용률도 높지만, 주로 여성노동자들이 근무하는 100인 이하 민간 사업장은 그렇지 않다. 여성노동자가 교섭과 투쟁을 통해 노동권을 확보하기 어려운 현실이기에, 노조 조직이 더 필요”하지만, 그것이 어려워 질 것이라는 경고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윤 정부의 건설노조 때리기가 시작되면서 “건설현장의 고용 현황은 급변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건설자본들이 앞다투어 건설노조 조합원들을 해고하고, 고용을 거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일하고 있는 조합원에 대한 감시와 통제, 괴롭힘의 정도도 심해지고 있다.” 김 부지부장은 이런 상황이 “여성건설노동자들이 상황을 더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고 했다.
“단체협약 현장에서 고용을 협의하면서, 대부분의 건설사들이 여성 채용을 거부하고 나섰다. 그 이유는, 단체협약으로 인한 비용의 문제, ‘여자라서 안 된다’는 뿌리 깊은 여성혐오에서 비롯된 것도 있지만, 그동안 노동조합이 나서서 만들어왔던 여성고용환경을 노조 탄압으로 인해 순식간에 후퇴시킨 것이 주된 원인이다.”
김미정 부지부장은 “노조 탄압 전엔 여성조합원들이 90% 이상 일하고 있었지만, 현재(5월 9일 조사 결과) 45%도 안 되는 상황”이 됐다며, “노동조합이 지켜왔던 여성노동자의 일자리, 그로 인해 만들어진 삶과 일상이 파괴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김용남 전국여성노동조합 정책국장은 “윤석열 정부의 노동탄압, 반노동 정책은 여성노동자의 건강을 더욱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로 주 69시간의 장시간노동이 가능케 하려는 시도는 과로사, 심혈관질환 등의 위험을 크게 높여 노동자 건강에 치명적일 것이라는 우려”가 있는 상황인데, 여성노동자에겐 더 위험하다.
“여성노동자에게는 장시간 노동 외에도 가정 내 돌봄이 더 전가될 것임으로 임금노동과 무급 돌봄노동을 함께 수행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여성노동자는 더 낮은 임금으로 더 긴 노동시간을 감내해야 할 것이며, 여성노동자를 노동시장에서 더욱 부차적인 위치에 머물게 해 더욱 질 낮은 일자리로 내몰리면서 여성노동자의 건강 또한 후퇴하게 될 것이다.”
사회서비스 약화로 불안해진 ‘돌봄’ 일자리
서울시사회서비스원 산하 센터에서 장애인 활동지원사로 일하고 있는 강연화 한국공공사회산업노조 서울사회서비스원지부 지부장은 “윤석열 정부 1년 동안 가장 큰 변화”로 “사회서비스 공공성의 퇴행”을 꼽았다. 특히 지난해 오세훈 서울시장 취임 이후 “서울시 사회서비스원은 본래의 설립 취지에 역행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서울시는 2019년 ‘좋은 돌봄 좋은 일자리’라는 슬로건 하에 300억 예산의 공공형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을 설립했다. 그리고 2019년 7월 성동종합재가센터 설립을 시작으로 현재 12곳의 종합재가센터와 든든어린이집 6곳, 데이케어센터 2곳를 운영 중이다.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은 장애인 활동지원 사업뿐 아니라 지역 내에서 장기요양서비스, 돌봄SOS센터와 연계한 긴급돌봄지원서비스, 발달장애인 청소년 방과후활동서비스 등 이용자 맞춤형 통합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사회서비스원 돌봄노동자는 “모두 정규직 채용이며, 서울시 생활임금 적용과 연간 60일의 유급 병가를 사용하는 등의 근로 조건”을 갖추고 있는데, 이에 대해 현 대표는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이 ‘돌봄업계의 삼성’이라고 비꼬며” 돌봄노동자의 근무 환경을 위협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서울시의회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강 지부장은 “서울시의회는 월급제를 시급제로 바꾸라는 내용을 포함해, 사회서비스원 기능을 축소해 민간기관에 이양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로 인해 서울시사회서비스원 장애인 활동지원사들은 극심한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더불어 “윤석열 정부가 사회서비스의 공공성을 축소하고 민간의 역할을 강화하려는 행위는 사회서비스 정책을 퇴행시키는 것”이라 비판했다.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지급? 성별 격차 더 커질 것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현재 노동시장에 성차별 해소를 위한 정책은 부재하다”며, “유자녀 가구에 대한 직접 지원을 골자로 하는 방안으로 저출산 대책을 발표했지만, 돌봄 책임에서 성평등에 대한 고민 또한 없다”고 지적했다.
배진경 대표는 여성노동 정책이 “가족 단위가 아닌 개인 단위 정책”으로 설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돌봄을 여성의 책임이 아니라, 노동자의 돌볼 권리로 관점을 전환”해야 한다며, “고용 영역에서의 ‘돌봄 차별 금지’에 주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한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62.3%(2021년 기준)에 육박, 여성의 기준임금이 최저임금에 맞추어져 있음”을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구분해서 적용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은 여성노동자를 더 취약하게 한다고 비판했다.
배 대표는 “저임금 산업 5개는 사회복지서비스업, 기타 개인서비스업, 교육서비스업, 음식점 및 주점업, 사업지원 서비스업”인데, “이런 저임금 산업은 여성이 집중적으로 고용된 산업”이라고 설명했다.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 지급이 현실화되면, 여성들은 업종 차별, 고용형태 차별, 성차별이라는 3중 차별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노동시장의 성평등 과제로 ‘최저임금 인상’은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 배진경 대표는 “최저임금 상승은 불평등과 양극화 극복, 성차별 완화에 큰 효과를 나타낸다. 성별 임금격차와 여성의 저임금을 완화시킬 수 있는 수단”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윤석열 정부의 사실상 유일한 여성노동 정책인 성별근로공시제(기업의 채용, 승진, 퇴직 단계에서 성별 비율을 공개하는 것)에 대해선 환영”하지만, “기업의 ‘자율’ 공시를 ‘유도’한다는 정책은 큰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강제력을 가진 공시와, 결과에 따른 후속 조치가 뒤따라야만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 배진경 대표는 “현재 관련 개정안이 2건 발의되어 있지만, 단편적으로 법을 고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며, “공시의 목적과 국가의 책무, 적용 범위, 후속 절차 등을 포괄적으로 명시한 구체적이고 폭넓은 내용을 담은 조항, 혹은 새로운 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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