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티머시 코디네이터는 영화나 TV 촬영현장에서 섹스신이나 누드신 등 성적으로 친밀한 장면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코디네이터입니다. 헐리우드의 미투 운동으로 인해 미국 HBO 등의 방송국에선 일찌감치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를 채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인티머시한 장면은, 흔히 ‘러브신’, ‘베드신’ 등으로 표현되는 성적인 장면을 말합니다.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는 섹스신, 누드신 뿐만 아니라 옷을 입고 하는 행위, 오프 스크린에서의 섹스신, LGBTQ+ 정체성 및 신경다양성을 가진 배우들의 성적인 장면 촬영에 함께 합니다. 현재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인티머시 코디네이터의 활약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인티머시 코디네이터 저팬에서 설명하는 ‘인티머시 코디네이터’의 의미
인티머시 코디네이터(Intimacy Coordinator, 이하 IC)가 되기 위한 교육, 일본의 방송/영화 제작 환경에 대한 이야기에 이어, IC로 일한 지 3년째로 접어든 니시야마 모모코 씨와 본격적으로 현장에서의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행운이었던 점이, 현장에서의 첫 작품이 일본에서 촬영하는 미국 작품이었어요. 다들 IC가 뭐하는 사람인지 알고 있어서 설명할 필요가 없었죠. 그에 반해 일본 작품을 할 땐 일단 ‘IC는 당신들의 적이 아닙니다’라는 걸 잘 이야기해야 했어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감독이나 제작 스텝들은 내가 자신들의 작업을 평가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더라고요. ‘이거 하면 안 됩니다. 저거 하면 안 됩니다.’라며 제동을 거는 사람, ‘이건 이렇게 해야 합니다’라면서 방해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요.
그래서 우리 IC는 ‘작품을 더 좋게 하기 위해, 서로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설명했어요. 그 부분을 계속 얘기해야 했죠. 그리고 한 번에 너무 많은 걸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상대방이 너무 부담을 느낄까봐요.
(일본에서) 처음 IC로 일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실패하면 안 된다’, ‘현장에 방해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내가 잘못하면, IC 고용이 더 늘어나지 않을테니까요. IC에 대한 편견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했고, IC의 목적을 잘 이해하도록 신경 써야 했어요. 그 부분이 힘들었죠. 사실 초반엔 그런 생각 때문에 해야 하는 일의 60% 정도 밖에 못했던 것 같아요. 물론 이젠 그렇지 않지만요. ‘처음’이라는 부담감이 꽤 있었어요. 근데 미국에서도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처음 IC 업무를 시작한 사람들은 그런 실패에 대한 두려움, 이 일의 확장성에 대한 걱정이 있었대요. 역시 처음은 쉽지 않아요.
-그럼 이제 현장 분위기나 반응은 달라졌나요?
처음엔 현장에서도 IC로 온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을 거에요. 그래서 굉장히 ‘특별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했죠. 그렇지만 우린 어디까지나 제작 스탭 중 한 명이에요. 그런 부분을 인지시키려고 했고, 이젠 다들 조금씩 적응한 거 같아요. IC는 액션 어시스턴트랑 비슷한 거 같아요. 필요한 때에 현장에 와서 작업을 진행하니까요.
-현장에서 일한 지 이제 3년이 되었다고 들었는데요. IC라는 새로운 직업이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혀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올해 3년째에요. 벌써 서른 작품 정도 했고요. 지금도 한 작품 하고 있고, 다음 달엔 두 작품 더해질 예정이죠. 꽤 많이 하고 있는 편이라 생각해요. 그렇지만 문제는, 이걸로 생계가 안 된다는 거죠. 여전히 CF 프로듀서, 프로덕션 매니저, 아프리카 현지 촬영 코디네이터 등의 일을 병행하고 있거든요. 병행해서 좋은 점도 있어요. 제작 쪽 일을 하니까 제작사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잖아요? IC 할 때 그런 게 도움이 돼죠. 제작 환경을 아는 건 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IC 활동으로는 생계 유지가 안 된다는 부분에 대해선 고민이 많아요. 보통 한 작품에 들어가면, 길게는 4일, 짧게는 하루 현장에 가요. 근데 촬영이 밀리고 어쩌고 하다 보면 일정이 정확하게 나오지 않아서, 다른 일을 잡기 어렵더라고요. IC가 되고 나서 연수입은 오히려 줄었어요. IC 임금이 낮거든요. 미국은 제작 스텝들을 위한 노조가 있고, 임금 기준이 정해져 있어요. 예를 들어, 하루에 8시간 일하면 대략 1,300달러(약 170만원) 정도? 근데 일본은 5천엔 정도?(약 50만원) 이것도 많이 받는 경우니까, 반도 안 되는 수준이죠. 정확히 모르겠지만, 한국도 비슷한 수준이지 않을까요? 오히려 더 적을지도 모르고.
매일 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상황에 따라서 한 달에 한 번만 일할 때도 있을텐데, 그럼 생계는 어떻게 하나 싶죠. 지금 나 같은 경우는 다른 일들도 있고 하니까 괜찮은데,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IC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죠. 그래야 IC라는 직업이 확장될 수 있을 거고요. 이런 것도 고민하는 부분이에요.
-현장에서 일하며 느낀 어려움이나 고민되는 부분도 있나요?
가장 큰 고민은 아무래도 커뮤니케이션이죠. 감독과 얘기하고, 배우와도 얘기하면서 조율을 해야 하니까요. 일본 문화에선 자기 의견 표현을 정확히 잘 하지 않아요. 싫다고, 거절해도 된다고 배우지 않았으니까요. 그냥 ‘네네’, ‘괜찮아요’라고 말하지만, 실은 동의가 아닌 경우도 있는 거죠. 한국도 비슷하지 않나요? 그렇다 보니, 그 ‘괜찮다’가 정말 ‘괜찮다’는 의미인지 파악하는 게 어려워요.
매번 촬영이 끝날 때마다 ‘이번 소통은 괜찮았나? 제대로 됐나?’ 자문해요. 예전엔 나 또한 현장에서 후배들에게 엄격하게 했거든요. 그런 부분을 반성하면서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생각하죠. 뭔가 아쉬웠다 싶은 부분이 있으면 다음부턴 더 주의하고요. 또 ‘내가 절대적으로 옳다’는 생각은 안하려고 해요. 늘 새로운 것들을 배워나가지 않으면, 일이 ‘포맷화’되어 버리니까요. ‘이럴 땐 이렇게, 저럴 땐 저렇게’라고 정해지지 않도록 신경 써요.
맞아요. 촬영 현장에선 감독의 말에 다 맞추려고 하거든요.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협의해야 한다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거죠. 그래서 전 리허설 할 때 감독과 배우, IC가 함께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만들어요. 그런 시간이 있어야 나를 비롯한 모두가 (촬영에 대해) 납득할 수 있으니까요. 의도적으로 그런 소통의 시간을 갖도록 하고 있어요.
-요즘 한국의 반성폭력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성적 동의, 적극적 합의’인데요. 일본 사회에선 이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되고 있는지도 궁금해집니다. IC로서의 견해도 듣고 싶고요.
성적 동의, 정말 중요하죠. 사실 꼭 성적인 것뿐만 아니라, 늘 동의를 얻는 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근데 일본은 아직 ‘No’라고 하지 않았다면 ‘동의’한 거라는 인식이 있어요. 최근에서야 ‘No라고 하지 않았더라도 동의는 아니다.’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죠. 저 또한 그 부분을 굉장히 중요하게 전달하려고 하고요. 개인적으로 ‘동의’에 대한 무료 워크숍도 종종 진행하고 있어요.
또 (내가 참여하는) 작품에 어떤 성적 관계가 나온다고 할 때, 동의를 얻는 장면을 넣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해요. 예를 들어 갑자기 벽에 밀치고 키스를 한다? 그런 거 예전엔 로맨틱하다고 여겨졌는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라고. 공포나 폭력이 될 수도 있다고요.
특히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한 작품에서 성적 장면의 경우, 콘돔을 사용하는 걸 넣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해요. 꼭 콘돔 사용 장면을 넣자는 게 아니라, 콘돔 봉투를 뜯는다던가, 가지고 있다던가, 봉투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장면 등이 있었으면 하는 거죠. 미디어에서 자꾸 그런 장면을 생략하고 넘어가버리는데다, 일본은 성교육도 보수적이란 말이죠. 젊은 사람들이 그런 정보를 배우기 어렵잖아요. 미디어에서 보여주면, ‘저렇게 콘돔을 쓰는 게 일반적이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런 의견을 전달하려고 해요. 일본은 성폭력에 대한 인식도 굉장히 낮은 편이라, 그런 것들이 신경 쓰이죠.
-정말 만만치 않은 일들을 해내고 계시네요.
커뮤니케이션, 소통 능력이 정말 중요해요. 현장에 대한 이해도 있어야 하고요. 그리고 사실 IC가 ‘누구의 편’인 건 아니거든요. 감독 편도 아니고 배우 편도 아니란 말이죠. IC는 배우 편이라는 오해가 있는데, IC는 감독의 의도에 맞는 장면을 만드는 것과 동시에 배우의 권리도 지켜질 수 있도록 하는 사람이에요. 감독이 원하는 장면을 잘 만들어 내기 위해 조율하는 사람인 거죠.
-지금까지 일하면서, ‘IC가 돼서 정말 좋다. 보람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나요?
코디네이터라는 건, 보람을 엄청 느낄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무언갈 해내는 사람이라기보다 그걸 위해 조율하는 사람이니까요. 종종 배우들이 ‘IC가 있어서 다행이었어요’라는 말을 하는데, 물론 기쁘죠. 그렇지만 그런 걸로 보람을 느끼진 않으려고 해요. 그런 평가에 얽메이면 안 되는 직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냥 ‘일이다’라고 생각해요.(웃음)
사실 일본에선 최근 몇 년간, ‘보람있는 걸 추구하는 게 좋은 거다’라는 흐름이 있었는데요. 근데 그런게 ‘급여가 낮아도 (보람이 있으면) 괜찮다!’라는 걸로 세뇌되기도 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그런 것보다 그저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일로 해내자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IC로서, 앞으로 업계에 어떤 변화를 기대하나요.
10년 정도 아프리카 현지 촬영 코디네이터를 하는 동안, 아무도 그 일을 특별하게 여기지 않았거든요. IC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IC가 필요한 때에 자연스럽게 투입되고, IC가 현장에 있는 게 특별하지 않을 정도로 당연한 일이 됐음 좋겠어요. 그렇게 되려면 IC의 수도 늘어야겠고, 일 자체도 더 많아져야겠죠. 전 지금처럼 IC가 (일본에) 두 명밖에 없어서 나한테 어떤 파워(권력)가 생기는 것도 무섭거든요. 더 늘어나야죠. 그렇지 않으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없을 거에요.
또 하나 얘기하고 싶은 건, IC를 현장에 투입한다고 해서 작품 자체가 안전하게 만들어지는 건 아니라는 거에요. IC가 투입된 장면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 외 현장에서 괴롭힘이 있을 수 있고, 저임금 노동이나 안전하지 않은 노동 환경이 있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제작 환경을 조율하는 일도 함께 하고 싶어요. ‘나만 임금 받으면 됐지’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제대로 된 임금 받았으면 좋겠고, 그들의 노동 시간이 지켜졌으면 좋겠어요. 더 나은 제작 환경이 마련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함께 하고 싶어요.
노조가 잘 운영되고, 안전한 제작 환경을 위한 가이드라인 등이 있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IC들보다, 일본이나 한국 등 아시아 국가에선 IC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다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IC로 일하는 게 재미있기도 하고요. 변화를 위해 열심히 해야죠.
-한국 콘텐츠들이 ‘K-드라마, K-영화’라며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지만, 아직 IC가 부재한 제작 환경이라는 점이 좀 부끄럽기도 합니다. 한국에서의 IC 양성에도 관심 있다고 들었는데요,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나요?
일본은 여전히 내수 시장에 맞춘 콘텐츠들이 제작되는 반면, 한국은 글로벌 시장에 관심이 크잖아요. 그런 면에서 일본보다 빨리 변화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렇기에 IC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저도 처음엔 제작자들이 ‘IC를 원할까?’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는데, 막상 시작하니까 여기저기서 부르더라고요. 또 분위기라는 게 있어서, ‘어떤 작품은 IC를 투입해서 촬영했다더라’ 하니까 ‘우리도 그렇게 해야 되는 거 아냐?’가 되는거죠. 그렇게 점점 늘어난 거에요. 이렇게 이야기만 들었을 땐 ‘그런 거 필요없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정말 현장에서 같이 일해 보면 다르거든요. 한번 일하고 나면 감독들도 ‘다음에도 같이 하자’는 얘길 하더라고요. 경험해 보는 게 중요해요.
내년 즈음 한국에서 IC 트레이닝 교육을 열어보려고 생각 중이긴 한데, 중요한 건 교육이 끝났을 때 일자리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 부분 먼저 파악하려고 하고 있어요. 수강생도 소수만 받아서 진행할 생각이에요. 무턱대고 IC를 여러 명 양성하기만 하면 그들의 일자리를 보장할 수 없으니까요. 한국에서도 IC가 분명 필요해 질 거라 생각하기 때문에 잘 준비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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