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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okeesalon.org)은 모든 나이듦이 존엄한 사회, 다양한 나이대가 호혜적으로 연대하는 사회를 꿈꾸는 페미니스트 연구소입니다. 지난 3년간 옥희살롱 연구활동가들이 노인요양시설 안팎의 돌봄에 대해 고민해온 바를 시민들과 나누려 합니다. 이를 통해 ‘정의로운 돌봄사회로의 전환’에 대한 페미니스트 사유 지평을 넓히며, 변화의 지향점을 좀 더 구체화해나갈 수 있는 토론의 장이 열리길 기대합니다.
‘2.5:1’이라는 숫자가 의미하는 것
간호사 김수련 님의 책 『밑바닥에서』(글항아리, 2023)를 읽었다. 얼마 전 간호법 제정안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끝에 국회에서 부결되고 만 후였다. 오래된 착취의 구조를 바꾸려는 모든 법안들의 처음이 그러했듯, 이번에 논의된 간호법 자체가 이미 현장의 요구에는 턱없이 못 미치는 한참 후퇴한 법안이었음에도 말이다. 책은 압도적으로 여성화된 직군 중 하나인 간호사들이 놓인 현실을 생생하게 고발하고 분석하는데, 그 고발과 분석의 행간마다 표정과 땀과 숨소리가 느껴져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잠시도 마음 편히 읽을 수 없을 정도다. 그러다, 익숙한 숫자를 발견했다.
2.5:1.
이 숫자를 알고 있다. 노인요양시설에서 요양보호사의 인력배치 기준 역시 똑같이 2.5:1이기 때문이다. 불길하고, 이상하고, 동시에 알 것 같았다. 이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이 법[의료법]에서는 종합병원의 간호사 배치 기준을 ‘1일 입원환자를 2.5명으로 나눈 수’라고 규정했다. 이렇게 보면 간호사 1인당 환자가 2.5인인 것 같지만 어림도 없다. 간호사는 환자를 24시간 보기 위해 교대근무를 한다. 데이, 이브닝, 나이트, 먹고 자야 되니까 오프. 이 중 누구도 아프지 않고 기계처럼 걱실걱실 잘 굴러간다 쳐도 간호사는 네 배가 필요하다. 여기에다 놀랍게도 간호사 수에는 행정 인력과 외래, 수술실 인력이 포함된다. 이 오래된 법상으로도 간호사 한 명이 근무 중 10~13명을 담당한다고 보면 된다. 심지어 이 법조차 처벌 조항이 없어 충족률은 종합병원에서 63퍼센트, 일반 병원에서는 19퍼센트다. (...) 한국의 종합병원은 16.3명, 일반 병원은 43.6명을 본다. 이게 가능한 숫자인가 싶겠지만 그렇게 한다.” -김수련, 『밑바닥에서』 208쪽
“2.5:1이라는 건 요양보호사 넷이 열 사람을 케어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처음에 제정할 때는 아무도 1년이 안 넘어가서 연차가 없었어. 이걸 반영하지 않은 것, 이거야말로 탁상공론이에요. 지금 이제 1년이 넘어가니까 하나가 연차를 써. 하나는 나이트 들어가. 하나는 나이트 했으니까 하루 쉬어야 해. (그러면 네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이 (10명을) 케어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인원 문제가... 지금 2021년에 빨간 날도 놀게 되었잖아요. 내가 벌써 흥분해서 음성이 커졌네. (...) 낮에 일할 인원이 안 되서, 나이트에 둘씩 하는 걸 하나 뺀 거예요. 위로(낮 근무조로) 올렸어요. (...) 그러니까 나이트 25명(을 한 명의 요양보호사가 돌보는 거예요.) 이게 지금... (...) 여기서 (한 어르신이) 뽀작뽀작 나갔는데, 저쪽 끝방에서도 무슨 푸드닥 소리가 나면 요양사는 하나인데 어느 쪽으로 가야해? 그래서 이쪽으로 갔는데 저쪽에서 꽈당 넘어졌네? ‘너 뭐했냐’ 이거지. (...) 우리가 신이예요? 그렇진 않잖아요.” -요양보호사 A (15년차, 요양시설 근무) [2021 옥희살롱 연구프로젝트 심층면접 녹취록 중]
의료법 시행규칙에 규정된 2.5:1 (환자 2.5명당 간호사 1명). 노인복지법 시행규칙에 규정된 2.5:1 (노인 2.5명 당 요양보호사 1명). 그러나 이 숫자는 현실을 적극적으로 왜곡하고 은폐한다는 점에서 ‘탁상공론’을 넘어 ‘사기’에 가깝다. 아픈 사람은 24시간 돌봄을 필요로 하고, 돌보는 사람은 24시간 돌볼 수 없기 때문이다. 3교대, 주 40시간, 법정 공휴일, 연차휴가를 고려하면, 2.5:1은 산술적으로 10:1 내지 13:1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도 ‘현실’의 비율은 아니다. 간호사/요양보호사 1명이 10~13명을 돌보라는 숫자마저, 환자/노인의 상태가 전혀 변하지 않고 간호사/요양보호사도 절대 아프지 않는, 진공상태 같은 가상현실에서나 성립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아프고, 누구나 살다 보면 개인 사정이 생긴다. 취약한 이들의 상태는 오전 오후가 다르다.
그 결과, 현실의 종합병원에서는 간호사 1명이 16.3명의 환자를, 일반 병원에서는 43.6명의 환자를 본다. (OECD 평균은 간호사 1명이 6~8명이다.) 그 결과, 현실의 노인요양시설에서는 1명의 요양보호사가 낮에는 10~13명, 밤에는 25~30명의 노년을 돌본다. 간호사 김수련은 “우리는 방패로 쓰였다”고 쓴다. 옥희살롱 연구활동가들이 만났던 15년차 요양보호사 A는 “우리가 신이예요?”라고 반문한다.
2.5:1 이라는 기준을 법에 새겨 넣은 사람들은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의 구체적인 몸과 일상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돌보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몸과 일상을 의도적으로 무시했던 것이 분명하다.
‘최소한’의 돌봄, ‘최소한’의 삶
노인요양시설에 대해 무엇을 어느 방향으로 논의해 나가야 할지 생각할 때마다, 항상 떠오르는 기사가 있다. “기저귀 하루 7번 교체, 욕창없는 요양원…그러나 대기 노인만 1313명”(한겨레 2019년 6월 5일자). 전국에 딱 2개뿐인 공공 요양원 중 하나인 ‘서울요양원’에 대한 기사였는데, 나는 두 가지 점에서 이 기사의 상징성을 생각한다. 하나는 우리가 희망할 수 있는 ‘좋은’ 요양원의 기준이 ‘겨우’ 기저귀 하루 7번 교체라는 것. 또 하나는 그런 ‘최소한의’ 돌봄조차 실현되는 곳이 너무나 드물어 대기자가 1300명을 넘어서는 게 한국사회 노인요양의 현주소라는 것. (현재 5821개에 이르는 전국 노인요양시설 중 공공 요양원은 서울요양원과 서귀포공립요양원 단 2개로, 정원으로 보면 전체의 0.1%도 못 미친다.(보건복지부, 2022 노인복지시설 현황)
‘2.5:1’과 ‘0.1%’로 상징되는 구조적 조건이 만들어내는 현실은 돌봄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돌봄에 대한 공적 지출(‘비용’)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것은 돌봄노동에 대한 인정과 보상을 최소화하고 돌봄노동자들을 최대한 쥐어짜는 것을 통해 이루어진다. “2.5:1은 노동이에요. 케어가 아니라.” 14년차 요양보호사 B의 말이다. 돌볼 수 없는 돌봄노동이라니 어불성설 같지만 핵심을 찌른다. 지금의 현실은 돌봄노동을 돌봄 없는 노동이 되도록 강요한다. 여기에는 조금의 ‘여지’도 없다. 한 사람의 개별성, 취향과 선호, 생애이력과 습관을 고려하는 것은 언감생심이고, 당장 다급한 돌봄의 필요에 응답하는 것조차 어렵다.
노년의 돌봄의존자가 조금만 열이 올라도, 배탈로 설사만 일으켜도, ‘최소한’으로 배치된 요양보호사 근무조 안에서 감당하기가 어려워진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화장실에 가서 용변을 보고 싶다는 절실한 바람이, 바쁜 요양보호사들 괴롭고 정신없게 하는 일이 되어버린다. 밥을 천천히 씹어 먹는 평생의 버릇이 식사시간을 지연시키고 시간표에 차질을 빚는 민폐가 되어버린다. 하루에도 수십 번 무리한 부축으로 요양보호사의 손목과 허리가 상할 때, 내 키와 몸무게마저도 죄송하다.
이렇게 ‘최소한의 돌봄’은 삶을 최소한으로 만든다. ‘최소한의 삶’을 강요받은 시민들은 이내 사회적으로 ‘최소한의 존재’가 된다. 어떤 노인요양시설은 ‘중증을 선호’한다. 와상이거나 의식이 없을 때 오히려 돌봄 제공이 ‘원활’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는 노인요양시설에 거주하는 시민들이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에 대해 모르고,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돌봄이 법적으로 ‘최소한’으로 설정되고, 더욱 더 최소화할 것을 강제하는 현실에서, 돌봄노동자들은 흔들리고 돌봄노동의 방향은 경합한다. 재가요양을 하는 요양보호사들이 ‘시설에서는 일 못할 것 같다’, ‘시설에서의 일은 단순하다’고 말하는 것. 반면 요양시설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들이 ‘우리 일이 그게 아니다’라고 입을 모아 말하는 것. 이 사이에 어떤 갈림길이 있는지, 누가 그 갈림길 앞에서 흔들리고 고뇌하며 분투하고 있는지, 그런데 법과 제도는 어느 쪽으로 등 떠밀고 있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나는)마침내 시스템형 요양보호사로 길들여진 건가?”라는 자문이 드러내듯(이은주, 『나는 신들의 요양보호사입니다』, 헤르츠나인, 2019, 86쪽), 지금과 같은 노인요양시설은 돌봄노동 자체를 ‘시설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이러한 압력에 맞서며 ‘시설’이 아니라 ‘삶’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실천들이 언제나 있어 왔다.
-그냥 뭐 말이 “요양보호사 기저귀만 갈러 가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게 아니잖아요, 그게. 그게 다가 아니죠. (요양보호사 C (8년차, 요양시설 근무)
-진짜 우리가 선한 거짓말을 막 하는 거죠. “지금 밤이라 못 가요. 감기가 유행을 해서 저도 지금 집에도 못 가고 있어요. 보세요, 저 어제 왔는데 아직도 있잖아요. 그니까 이거 잠잠해지면 가셔요.” 이렇게 ‘거짓말’을 하고. 그리고 막 전화해달라고 그러면 “지금 아들이 어디 해외 출장을 갔대요. 오시면 전화가 올 거예요. 좀 기다리세요.” 이렇게 해드리고. 다~ 소설가예요. (요양보호사 D / 10년차, 요양시설 근무)
-어르신이, “선생님 내일은 수제비가 먹고 싶어” 이러잖아요. 그럼 그 다음날은 못 해드리지만, 일기예보에 내일 비가 온다고 할 경우에 센터에 전화합니다. 내일 지원자 한 명 부탁한다고. (...) 이게, 말이 안되는 게, 돌봄 시간 안에 이걸 다 하게 되어있어요. 이거를 하면 돌봄을 할 수가 없어요. 물론 센터에서도 “선생님 그러시면 안됩니다. 그 현장에서 3시간 안에 하시고, 선생님 돌봄을 하고, 선생님 챙김을 하세요.” (라고 하지요.) 그럼 이용자는 누가 돌보나요? 가서 그거 하면 가사지원만 하는 건데. (요양보호사 E / 3년차, 사회서비스원 근무)
-재가(방문요양)가 일이 참~ 많아요. 내가 안 하면 없어요. 네! 일을 안 하면 없어요. 그냥 뭐 어르신 가서 가사일 도와드리고, 그냥 뭐 신체활동 시키고, 인지 교육 해라 하면 인지 교육하고. 고 부분, 우리가 배운 부분만 하면 일이 없어요. 그런데 그 외의 일들을 살피다 보니까 할 일이 너무너무 많아요. (...) 정말, 내가 만들면 만들수록 많은 게 일이예요. (사회서비스원 소속 요양보호사 F / 5년차, 사회서비스원 근무) [2021 옥희살롱 연구프로젝트 심층면접 녹취록 중]
돌봄이 ‘그게 아니라고’ 설명하는 요양보호사들의 이야기들에 밑줄을 그으며,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돌봄’ 개념의 비좁음과 납작함을 실감한다. 돌봄은 무엇이며, 무엇일 수 있는가. 돌보고 돌봄받는 것은 어떤 조건에서 비로소 ‘삶’일 수 있게 되는가. 요양보호사들의 이야기 사이사이에 각자의 돌봄 경험을 포개어 보며, 우리가 정말로 희망하는 사회의 모습을 더 크고 깊게 그려나갈 필요가 있다.
누구나 더 많이 돌보도록 격려받는 사회로
세상은 어둡다. 보건복지부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시행 15년 만인 올해 들어서야 요양보호사 배치 기준을 2.5:1을 2.3:1로 바꿨다. 하지만 시행규칙만 바꿨을 뿐 적용은 2025년부터라니 더욱 속이 터진다. 서울시와 서울시의회는 올해 사회서비스원 예산 210억 중 142억을 삭감했다.(68% 삭감) 윤석열 정부는 올해 치매안심센터 지원사업비를 43.8% 삭감했다. 모두 ‘실적이 적다’는 이유다. 그러나, 돌봄 받는 사람의 입장과 필요를 최대한 외면하고 빨리빨리 최소한의 돌봄만 제공하여 서류상 숫자를 맞추는 것이 ‘실적’이라면, 그런 실적은 적어야 마땅하다.
아프고 노쇠하고 인지장애가 와도 단지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 가능한 사회는 ‘최소한의 돌봄’으로는 불가능하다. 극도로 여성화된 돌봄노동자들에게 돌봄을 떠넘긴 후 ‘믿고 맡길 수 있어야 하지 않겠냐’며 쥐어짜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돌봄에 더 연루되어 돌봄의 시스템을 정의롭게 재구성하는 것. 그래서 저마다의 사정을 살필 수 있고 몸의 가파른 변화를 감당할 수 있는 돌봄의 조건을 만들어내는 것. 그런 변화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우선 우리 스스로 ‘당사자’가 되는 것. 우리가 희망해야 할 것은, 누구나 더 많이 돌보도록 격려받는 사회, 아무도 돌봄으로부터 ‘해방’되지 않는 사회다.
[필자 소개] 전희경.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연구활동가. 공저로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2020)와 『코로나시대의 페미니즘』(2020), 『페미니스트 모먼트』(2017) 등이 있다. junhk101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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