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를 일터와 삶터에서 피부로 느끼고 그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는 전국의 여성농민들을 만납니다. 여성농민의 시선으로 기후와 농업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대안의 씨앗을 뿌리는 새로운 움직임과 공동체적 시도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해수면 상승, 해안 인근 농민들이 겪는 피해
“해안에 인접한 인근 마을은 농업용수를 폐쇄했어요. (작년에 가뭄 들었을 때) 어느 날 농업용수를 뿌렸는데 작물이 다 시들시들해져서 ‘왜 이러지?’ 했는데 알고 보니 짠물이 올라온 거였어요. 결국 마을 한참 벗어난 곳에 겨우 관정 하나 세워서 물을 끌어왔다고 하더라고요.”
섬에서 농사짓는 사람은 육지의 농민과는 다른 문제를 겪는다. 제주 대정읍에서 30여년 간 농사를 지어온 김정임 씨(63세)는 해수면 상승으로 인근 지역의 농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전한다. 바닷물이 땅으로 스며들어 농업용수인 지하수가 짠물이 돼 버린 것이다.
정임 씨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용머리 해안은 해수면 상승으로 산책로가 물에 잠겨 지난해 종일관람일수가 고작 6일에 불과했다. 정임 씨는 “우리 아이들 어릴 적엔 만조 때에도 갈 수 있는 곳이었다”라고 말하며 안타까워한다.
49일간 내린 비로 양파 농사 망쳐
제주는 기후위기의 영향을 크게 받는 곳이다. 일례로 기후변화로 태풍이 더 강력해지면서 태풍의 길목인 제주는 더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육지라면 태풍으로 인해 과실이 떨어지거나 작물이 쓰러지는 상황을 걱정하겠지만, 제주 농민은 여기에 또 다른 걱정이 덧붙는다.
“태풍이 오면 파도가 높게 쳐서 바닷물이 엄청 멀리 가잖아요. 작년에 제주도 전체 나무들이 막 타들어갔어요. 유실수(먹을 수 있는 열매가 열리는 나무) 포함해서 많은 나무가 짠물에 시들었다고 하더라고요.”
태풍뿐만이 아니다. 제주는 육지에 비해 장마 기간이 긴데 2020년에는 평년보다 17일이나 길게 지속된 장마로 양파 농사를 망쳤다고 정임 씨는 말한다.
“만생 양파는 6월 초에, 늦어도 6월 20일 전에 수확이 끝나요. 그런데 몇 해 전에는 장마가 일찍 와 버리고 또 길게 와 버리는 바람에 미처 수확을 못 한 거야.(2020년 제주도 장마는 평년보다 9~10일 일찍 시작됐고 7~8일 늦게 종료돼 총 49일 동안 비가 내렸다.) 다 썩어버렸지. 예전에는 그래도 3~4년에 한 번씩은 농사가 잘 됐거든요. 그러면 그 사이에 손해봤던 것도 보충하고 재기할 수 있었는데...”
기후변화로 인해 “가물었다 하면 왕창 가물고 비가 왔다 하면 왕창 오고 하니까 이제까지 해 왔던 농법으로 농사지을 수 없는” 상황을 어디에 하소연해야 할까. 정임 씨는 “(정부에서) 농작물 재해 보상을 해 주긴 하지만 제주도의 특별한 상황을 좀 더 고려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 나이 되면 삶이 힘들어지지 않아야 하는데, 여러 단체에 기부도 해야 하는데 그걸 못 하니까 속상하지.”
한 가지 일을 30년 이상 했으면 부자는 못 돼도 안정적으로 먹고살 수는 있어야 하지 않나. “결혼하고 나서 감자, 무, 배추 이런 거 농사지었는데 맨날 똥값 되니까 맨날 갈아엎다가, 생활에 도움이 될까 해서 하우스를 지은 후에는 빚만 엄청 늘었다”는 정임 씨. 정임 씨의 농사 역사는 한국 농업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월동작물인) 감자 농사짓느라고 추운 겨울날 감자 캐서 포장을 했지. 알뜨르(아래 있는 넓은 들이라는 뜻의 제주어) 흙이 가벼우니까 귀, 코, 손톱에 흙이 다 들어가. 그렇게 감자 농사지어서 서울에 40박스 올려보냈는데 돈을 주기는커녕 나한테 돈을 보내라는 거예요. 워낙 싼 값에 팔리니까 나한테 줄 돈은 없고 감자를 다시 내려보내려면 물류비가 드니까 (오히려) 돈을 보내라는 거야. 그래서 됐다고, 그냥 거기서 알아서 하시라고 했어요.”
정임 씨는 농작물 공급이 과잉돼 가격이 떨어질 땐 아무 대책이 없다가 “농산물 가격이 오르면 바로 수입해 버리는 정부 정책”을 비판한다. 흉년이면 흉년이어서, 풍년이면 풍년인대로 농민의 삶은 팍팍하다.
밭농사로 먹고살기 힘들었던 정임 씨는 ”시설을 지으면 돈을 좀 벌려나“ 싶어서 천 3백여 평 땅에 하우스를 만들어 친환경으로 딸기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제주가 바람이 장난이 아니에요. 겨울에도 태풍이 오니까. 안 되겠다, 하우스를 짓자. 그런데 시설을 지었더니 그다음부터 계속 돈이 들더라고. 예를 들어 가온(加溫)을 해야 돼, 그러면 또 그 시설을 하느라 돈이 들어가. 팬을 돌려야 돼, 또 돈이 들어가는 거야. 그러니까 빚이 쌓일 수밖에 없어요. 요즘에는 누가 하우스 짓는다고 하면 내가 짓지 말라고 해.”
13년간 딸기 농사를 지었는데 빚만 늘었다. 지금은 원금상환은 포기했고 이자만 갚는 수준이다. 최근 몇 년간은 기후변화로 겨울 일교차가 너무 커서 수정이 잘 안 되는 현상이 반복됐고, 결국 정임 씨는 딸기 농사를 접고 블루베리 농사로 전환했다. 그게 작년 일이다.
“사람들은 왜 농민한테만 보조금을 주냐고 하는데, 농민한테 백 프로 보조금을 줍니까? 안 그렇거든요. 40프로는 농민이 내고 60프로 (국가) 보조를 받아요. 그런데 이걸 합친 백프로의 돈이 어디로 가냐, 다 기업들한테 가요. (농업 보조금은 대부분 시설, 설비 투자를 할 경우 주어진다.) 기계 만들어 팔고 자재 만들어 파는 기업한테요. 농민들은 (보조금으로 시설 지었는데) 일 년 농사가 안 되면 그게 다 빚으로 남는 거예요. 이게 쌓이고 쌓여서 농가 부채가 늘어나는 거지.”
정임 씨는 “까놓고 보면 빚 없는 농민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정임 씨 말처럼 “만약 한국에 농민이 없다고 하면 농업으로 인해 파생되는 (일에 종사하는) 수천수만의 사람이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된다.” 그런데 농사만 지어서는 먹고 살기 힘들고, 농민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정임 씨는 “농부의 수고로움을 인정하는 농산물 가격이 보장돼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각 지자체가 조례 등을 통해 농산물 최저 가격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기준이 되는 가격이 턱없이 낮게 책정돼 있다는 것.
“(현행 최저 가격제도는) 공판 가격에서 한 3년 동안을 평균 내서 그 이하로 떨어졌을 때 보상한다는 거거든요. 그런데 그 공판 가격 자체가 너무 낮게 책정돼 있던 거란 말이에요. 지금 인건비와 자재비 등 생산비가 계속 상승하고 있는데 그걸 따라잡지를 못하는 거죠.”
농민의 목소리가 정치에서 소외되는 현실을 바꾸고자 정임 씨는 작년에 정의당 소속으로 제주도의회 도의원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비록 낙선했지만, 도의회의 편향된 구성의 문제를 환기하는 역할을 했다.
“도의회가 농민 측, 자영업자 측 이렇게 분배가 있어야 되는데 건축업자들이 대부분이다 보니까 맨날 개발하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있어요. 농업이나 수산업 같은 소외된 분야의 목소리를 책임지고 대변하는 도의원이 없는 거죠.”
정임 씨는 작년에는 서귀포산업과학고등학교에서, 올해는 대정고등학교에서 동아리 수업으로 학생들과 텃밭 활동을 하고 있다. 같이 농사를 짓던 아들이 몸이 안 좋아서 농사를 접게 되면서, “농사를 이어갈 사람이 있을까” 고민이 깊었던 정임 씨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결론 내렸다.
“(학생들 중 나중에 농사를 지을 사람이) 단 한 명이 나오더라도 한번 해 보자는 마음이에요.”
정임 씨는 ‘신규 농업인 현장실습 교육’ 제도를 통해 청년 농부 김지영 씨의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 지영 씨는 [기후위기와 여성농민] 시리즈의 여덟 번째 주인공이기도 하다.(관련 기사: 제주에서 생태 농사를 짓는 청년의 고민, ‘땅’ https://ildaro.com/9615) 거의 매일 밭에서 만나서 같이 농사를 짓는다. 정임 씨는 멘티인 지영 씨가 해 보고 싶어하는 생태 농사 실험을 독려하는 편이다.
두 사람은 밭에서만 만나는 게 아니라 새만금 간척 사업을 다룬 다큐멘터리 〈수라〉(황윤, 2022)를 보러 극장에 가거나, 송악산 지킴이 활동, 해양 쓰레기를 줍는 활동도 함께 하고 있다. 나이 차이가 거의 30살 가까이 나는 후배 농민과 동행하며, 정임 씨는 희망을 놓지 않고 미래 세대와 만나고 있다.
기후위기를 더 재촉하는 제주 난개발에 맞서다
정임 씨는 2019년 송악산에 대규모 숙박시설을 지으려고 했던 ‘뉴오션타운’ 개발 사업을 막아내는 데 중차대한 역할을 한 지역 활동가이기도 하다. 지금도 ‘송악산을 사랑하는 사람들’ 대표로서 송악산뿐만 아니라 제주 곳곳의 난개발에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제2공항을 지으려는 지역에 ‘숨골’이 있어서 많은 비가 지하로 가고 있거든요. 숨골이 다 막혀 버리면, 기후위기로 엄청난 비가 한꺼번에 국지적으로 쏟아질 때 그 지역은 물난리가 날 가능성이 커요.”
‘숨골’은 용암이 분출해 흐르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균열이다. 숨골을 통해 짧은 시간 많은 빗물이 지하로 들어가서 지하수를 형성하기 때문에 홍수를 막고 지하수를 함양할 수 있어 제주도민들에게는 중요한 지형이다. 그런데 제2공항으로 숨골을 막아버리면? “제주도가 물 속으로 가라앉는 걸 앞당기는 꼴”이 된다는 것이다.
정임 씨는 또한 “제2공항이 들어오려면 한꺼번에 52만 평이나 되는 농지를 다 밀어버리게 되는데, 그러면 (가뜩이나 낮은) 식량 자급률을 더 떨어뜨리게 된다”고 경고한다. “농사는 우리 삶을 지탱해 주는 가장 기초적인 업이라는 걸 잊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임 씨의 어깨에 너무 많은 짐이 놓여있다. 이제 우리가 그의 짐을 나누어져야 하지 않을까.
※ [기후위기와 여성 농민] 연재를 마칩니다. 연재를 통해 도시의 독자들이 여성 농민과 연결감을 느끼길 바라며 한 편, 한 편 정성껏 썼습니다. 관심 가지고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필자 소개] 나랑(김지현) 독립 인터뷰어. 글쓰기 안내자. 목소리가 되지 못한 목소리를 기록한다. 그런 목소리들이 자기 이야기를 쓸 수 있게 안내한다. 지금은 제주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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