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선 내 미래를 상상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무지개교실’ 만들기 나선 한성, 가람 활동가와의 인터뷰 (상)

박주연 | 기사입력 2023/07/09 [14:13]

학교에선 내 미래를 상상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무지개교실’ 만들기 나선 한성, 가람 활동가와의 인터뷰 (상)

박주연 | 입력 : 2023/07/09 [14:13]

지금 대학에 다니고 있는 두 청년, 한성과 가람이 있다. 대학생이라는 것 말고도 이들에겐 ‘두 번의 자퇴 경험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결국 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검정고시로 교육 과정을 이수했다. 왜 두 번이나 자퇴를 ‘선택’했을까? 한 번의 자퇴 후 학교에 돌아갔던 이유는? 그리고 또 다시 학교 밖으로 나오게 된 이유는 뭘까?

 

십대 시절 그런 우여곡절 이후, ‘평범한’ 대학생이 된 이들은 지금 학교 ‘밖’에서 무언가를 해보고자 작당모의 중이다. ‘무지개교실’이라는 이름의 야학을 열기 위해서다.

 

이 정도 되면, 두 사람이 학교를 좋아하는 건지 싫어하는 건지 헷갈린다. 학교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이들이 꿈꾸는 교실은 대체 뭘까? 과연 이들의 솔직한 마음은 무엇일까? 여러 궁금증을 안고서, 서울 홍대입구 어느 카페에서 한성과 가람을 만났다. 두 사람은 먼저 자신들의 반복된 자퇴 경험, 학교 안/밖에서 불화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정치단체 노동·정치·사람과 트랜스젠더 청소년 인권모임 튤립연대가 함께 하는 프로젝트 ‘무지개교실’에서 활동 중인 한성(왼)과 가람(우) (제공: 무지개교실)


-자퇴 경험자인 두 분에게 학교가 어떤 곳이었는지, 학교에 대한 기억이 궁금해요.

 

가람: 청소년기, 특히 사춘기 때를 생각해 보면 신체 능력(피지컬)으로 우열이 나눠졌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남자애들은 남자애들끼리, 여자애들은 여자애들끼리 노는 형태가 돼죠. 그러지 않는 애들, 그러니까 남자애들이랑 노는 여자애나 여자애들이랑 노는 남자애는 이상한 시선을 받았어요. 교복이나 체육복도 정해진 걸 입어야 했고요.

 

중학교 1학년 때, 교복 하복을 입기 전까지는 사복을 입었는데 친구들이 헷갈려 했어요. ‘쟨 남자앤가?’ ‘잘생겼대, 같은 반이었음 좋겠다’ 등의 얘길 듣기도 했죠. 근데 교복을 입게 되니까 다들 알게 된 거에요. 다른 학교 남자 선배들이랑 단톡방에서 “형, 동생”하고 있었는데, 누가 거기 제가 하복 입은 사진을 올린 거에요. 사람들이 뭐야 뭐야 하길래, “여장한 거”라고 말해버렸어요.(웃음) 근데 남자 선배가 신체적 특징들을 짚으면서 “쟤 여자애다”라고…. 이후 중3 정도 되니까 남자인 친구들은 2차 성징으로 목소리도 굵어지고 키도 커지더라고요. 더 이상 그 무리에 낄래야 낄 수가 없다는 걸 인정하고 낙담하는 과정의 연속이었어요.

 

고등학교는 여고를 가니까 괜찮을 줄 알았는데, 또 다른 결의 힘듦이 있더라고요. 여자 친구들과는 동질감을 못 느꼈으니까요. 가슴이 커지려면 딸기 우유를 먹어야 한다, 가슴 수술 하고 싶다 이런 얘길 하는데, 물론 나도 가슴 수술 하고 싶었지만, 난 없애려는 거니까 방향이 전혀 다르잖아요?(웃음) 그래서 겉돌았던 거 같아요.

 

한성: 중학교 때 처음 (트랜스젠더로) 정체화를 했어요. 그 전까진 나의 이질적이고 지저분한 감정들을 일목요연하게 표현하기 어려웠는데, 트랜스젠더와 퀴어라는 개념을 우연히 알고 나선 너무 반갑더라고요. ‘아, 내가 이쪽이구나. 나를 이렇게 표현하는 게 적합하구나’ 깨닫고 나서 친구들한테 커밍아웃도 했죠. 그 땐 전교 부회장이었고 학교에서 나름 잘 지내고 있었거든요. 근데 점점 친구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나를 표현하고 싶더라고요.

 

또, 여자 친구들이랑 친하게 지냈는데, 남자인 친구들이 그렇게 그걸 질투해서…. 점점 그런 일들이 쌓이고, 친구들과도 하나둘 멀어지고 하다 보니까 궁지에 내몰렸던 것 같아요. 학교에서 지내기가 숨 막히는 기분이었거든요. 뭔가 다른 방식으로 크고 싶다는 욕구가 있기도 했어요. 그래서 중2 때 첫 자퇴를 했죠.

 

-왜 다시 학교로 돌아가게 됐나요?

 

한성: 학교 자퇴하고, 탈가정하고 나서, 청소년 인권운동을 하면서 만난 친구랑 같이 살았어요. 정당 활동도 하고, 이런 저런 사회/인권 운동에 참여하면서 그걸 매개로 다른 사람들과 날 구별 짓고, 나 자신을 좀 다르게 사회화하고 싶다는 욕구를 표출했던 것 같아요. 근데 자퇴하고 지내다 보니까 교복 입고 급식 먹는 친구들이 좀 부럽더라고요. 괜히 ‘나도 평범한 일상을 지내고 싶다, 가족의 품이 그립다’ 이런 거짓말 같은(웃음) 욕망이 꿈틀거려서, 가족이랑 적당히 화해하고 집으로 돌아갔어요. 그리곤 고등학교에 진학했죠.

 

고등학교를 선택할 때 학생인권조례도 다 찾아보고, 학교 규칙도 다 찾아봤어요. 그런 규칙들 보면,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거긴 하지만 ‘소수자를 위한 화장실 배려 시설이 있어야 한다’는 게 있거든요. 그래서 학교 들어갈 때 교장 면담 요청을 해서 “난 트랜스젠더인데, 학교 생활을 위해 이러이러한 게 있었음 한다. 남자 화장실, 여자 화장실도 아닌 장애인 화장실을 쓸 수 있냐?”고 물어봤죠. 그렇게 그 화장실을 쓰게 됐어요. 근데 막상 나 혼자 그 화장실을 쓰는 것도 참 이상하더라고요. 그 뿐만 아니라 자퇴 출신이라는 것, 외향적으로 ‘이상하게’ 보인다는 것 등으로 학교에서 또 겉돌게 됐죠.

 

한번은 체육 시간에 남자애들은 축구를, 여자애들은 피구를 하게 했어요. 선생님도 제 사정을 알고 있었어요. 그냥 벤치에 앉아 있게 해 달라고 했더니 그건 안된다고 하더라고요. “어느 쪽이든 아무데나 가라”고요. 근데 내 입장에선 무섭잖아요. 어느 쪽에 가든 분명 말들이 나올 텐데…. 그래서 “둘 다 못 가겠다”고 했더니 그럼 “운동장을 다섯 바퀴 돌라”고. 솔직히 어린 마음에 그게 너무 힘들었어요. 그 상황 자체가 너무 스펙터클하니까요. 다시 자퇴를 결심하게 됐죠. 학교 들어간 지 3개월 만이었어요.

 

▲ ‘무지개교실’을 함께 이끌 초동 주체들의 첫 워크숍이 3월에 열렸다. 워크숍에서 ‘평등한 공동체를 위한 약속’을 만들고 있는 모습. (출처: [노동·정치·사람 청년연대팀 활동 후기] 대학의 울타리 바깥에서, 드디어 우리의 무지개 학교를 찾았다 http://laborpolitics.org/?p=7447)


-가람 님은 언제 자퇴를 했나요?

 

가람: 첫 자퇴는 18살, 고등학교 2학년 때였어요. 이유는 ‘내가 트랜스젠더여서’라기보다 그냥 학교 내 주류 감성이랑 너무 안 맞았고, 공부도 힘들었고, 기숙사 생활도 힘들어서였어요.

 

그러다 20살 때 복학했는데, 그 때가 2018년 2월이었거든요. 한창 TV에서 ‘미투’를 통한 성폭력 고발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을 때였죠. 그걸 보고 내가 겪은 성폭력 피해를 공론화했는데, 이후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복학생이라 친구도 없고, 학교 다니면서 법적인 절차도 밟아야 했고, 언론에 내 사건이 보도된 후엔 악플도 달렸고요. 근데 학교 선생님들이 수업 시간에 미투 운동에 대해서 계속 조롱하더라고요. 매번 그럴 때마다 일일이 대응하긴 했는데, 선생님들이 점점 ‘쟤 땜에 이 반에선 수업하기가 싫다’는 내색을 하고, 반 친구들도 ‘쟤 때문에 우리 수업에 지장이 생긴다, 우리 생활기록부에 문제 생기면 어떻게 할 거냐’며 대놓고 날 싫어하고 욕하더라고요. 그래서 또 자퇴를 하게 됐죠.

 

학교 다녔을 때 가장 힘들었던 건, ‘여기도 내 자리가 아니고 저기도 내 자리가 아닌 것 같다’는 것보다 ‘나중을 상상할 수 없다’는 거였어요. 아직 의료적 트랜지션(호르몬 치료, 가슴 수술, 성확정수술 등)을 하지 않아서 여전히 여성으로 구별되지만, 지금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거든요. ‘대학 졸업하고, 어떻게 해서, 어떤 삶을 살아야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중·고등학교 땐 ‘부모님한테 말할 수 있을까, 트랜지션을 할 수 있을까, 성별정정도 할 수 있을까? 내가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싶어서 무서웠거든요. 미래를 상상할 수 없고, 낙담하는 하루하루가 계속 이어진다는 거. 그게 너무 힘들었어요.

 

-그렇다면 학교 ‘밖’은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어떤 공간이었나요?

 

한성: 갈 곳 없이 맨날 24시간 카페, PC방 같은 데서 시간을 때웠죠. 그러다 누군가 담배나 술 구해오면 그거 먹고. 근데 정말 할 게 없어요. 갈 데도 없고요. 남들이 보기에 ‘자퇴하고, 뭔가 빠그러진 못난 삶’이긴 하지만, 우리도 좋아서 24시간 카페나 PC방 돌아다니는 거 아니거든요. 그게 재미가 있어서라기보다 정말 할 게 없고, 내 진로나 미래를 상상할 여력이 없어서 에요. 옆에서 ‘너 몇 월 몇 일까진 이렇게 살아도 되지만, 그 이후엔 다른 걸 해야 한다, 무언갈 시도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 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지금 이렇게 하는 건 다 의미 없고, 이건 다 방황이고, 너네가 선택해서 벌어진 일로만 취급되는 게 속상했어요. 물론 분명 선택한 것도 있고, 방황일 수도 있는데, 학교 밖에서 교과서 없이 열심히 사는 친구들도 많았거든요. 우리에게 조금 더 따뜻한 말을 건네줬으면 어땠을까 싶죠.

 

가람: 학교를 다니면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를 가야 하는데 자퇴하고 나선 갈 곳이 없잖아요. 근데 엄마 눈치가 보이니까 도서관에 갔어요. 할 일도 없는데 도서관에 가는 내 모습이 되게 자퇴생 같았어요. 도서관 가면 내 또래는 아무도 없으니까, 거기 있는 내 모습에 풀이 많이 죽었던 것 같아요. 엄마가 부당한 얘길 해서 따지려고 해도 ‘학교나 제대로 다니던가’라는 말이 나오면 말이 막혔거든요. 모든 문제가 ‘자퇴해서’로 연결되는 느낌?

 

알바도 했는데요. 사회 생활이 어떤 건지 배울 수 있었어요. ‘너는 카운터에서 웃고 있는 게 일이다, 계속 웃어라. 손님 없을 땐 나가서 춤춰라’ 이런 얘길 들으면서, 학교 밖 사회에서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 수 있었죠.

 

한성: 학교 밖에서 알바를 하곤 했는데, 대학 오고 나서 알바 하니까 이게 너무 다르더라고요. 자퇴한 사람이었을 땐 내가 어떤 의견을 내거나 말을 하면, ‘공부나 열심히 하지, 자퇴해서 어쩌고 저쩌고’ 이러면서 절 하찮게 취급했거든요. (대학생이 된 후) 한번은 포장 알바를 했는데, 사실 일을 되게 못 했어요. 같이 일하는 중년 여성 노동자들이 일 못한다고 핀잔 주며 ‘너 고등학교는 다니냐?’ 이러길래 ‘OO대학교 다닙니다’ 이러니까 반응이 달라지는 거에요. 단순히 대학에 다닌다는 거 하나로 나의 위치가 달라진다는 걸 알게 돼서 기분이 정말 이상했어요. 사실은, 그런 현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대학에 갔던 것 같기도 하고요.

 

대학 입시를 준비한 이유 중 하나는 ‘이 지역을 빨리 떠나고 싶어서’였어요. 내가 자퇴한 채로 떠돌아야 했던 이 동네, 다른 학생들은 학교에 있는 시간에 갔던 카페 사장님의 시선, 날 의아하게 봤던 도서관 사서 등 그게 너무 지긋지긋했고, 정말 지워버리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대학 입학하고 바로 이사를 했는데, 막상 떠날 때 너무 슬프더라고요. 이 동네가 너무 갑갑했고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곳이었지만, 동시에 여러 추억이 소중하게 남아 있기도 하니까요. 또 새로운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다시 소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무서웠고, 실제로도 힘들었어요. 그래서 가람 집에 가서 맨날 놀고 그랬죠.(웃음) 자퇴한 트랜스젠더라니, 너무 반가웠거든요.

 

▲ 지난 3월, 한성과 가람이 속한 노동·정치·사람 청년연대팀에선 ‘성소수자의 학교 생활과 자퇴 경험에 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이후, 심층 조사를 위해 청소년 성소수자 당사자와 인터뷰를 했다. 그에 대한 후기를 가람이 만화로 그렸다. (출처: “무지개교실 활동 후기: 청소년 성소수자 당사자와 인터뷰를 가졌어요” http://laborpolitics.org/?p=7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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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이 잘 통했나 봐요.

 

가람: 같이 놀기도 했지만, 한성이한테서 (검정고시 준비를 위한) 과외를 받았거든요. 한번은 과외하는 날 백화점 식품관에 갈 일이 있었는데 한성이한테 전화해서 “과일 뭐 먹고 싶냐? 아무거나 다 얘기해라. 내가 사준다”며 가부장적 젠더를 충실히 따르기도 하고(웃음) 또 어떤 날은 ‘탈트랜스젠더’하겠다며, 나 이제 ‘남자’ 아니라 ‘부치’ 해 볼 테니까, 평가해 달라 하기도 하고.(웃음)

 

한성: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길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어요. 사실 가족이나 다른 사람들 앞에선 ‘절박한 트랜스젠더, 힘든 청소년 트랜스젠더’로서의 이미지를 만들어야 했거든요. 말이 잘 통하지도 않고요. 때때로 ‘트랜스젠더 해먹기 귀찮다, 여자 하기 힘들다’ 싶은 생각이 들었을 때 그냥 그걸 얘기하고 싶은데, 오히려 심각하게 받아들여서 이상해지고.

 

가람: ‘레즈비언은 닥터마틴(신발 브랜드)을 좋아한다’라는 커뮤니티 농담이 있잖아요. 자신의 성지향성을 자각하기 전부터 정말 취향이 그랬던 경우, 레즈비언으로 정체화하면서 닥터마틴을 알게 돼서 신게 된 경우, 주변의 레즈비언 친구들한테 영향 받아서 좋아하게 된 경우 등이 있을 거에요. 그럼에도 ‘나는 닥터마틴을 좋아해서 레즈비언이야’라고 하지 않잖아요. 이런 얘기를 하면 대부분 동의를 하는데, 트랜스젠더가 정체화하는 과정에 대해선 아직도 ‘나는 어렸을 때부터 구두가 싫었고 운동화가 좋았고...’ 이런 서사일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스스로를 어떤 성별이라고 정체화하느냐’의 이유는 성별 규범과 어긋났던 경험이 전부가 아닌데,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누군가 “왜 스스로를 남자라고 생각해?” 라고 물어본다면 시스젠더(cisgender, 출생 시 지정된 성별과 자신의 젠더 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들처럼 “그냥”이라는 대답밖에 못 할 것 같거든요. 근데 사람들의 인식, 진단서를 받기 위해 으레 해야 할 법한 말들... 그런 것들로 인해서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이 결국 스스로에게도 자꾸 거짓말을 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넌 어렸을 때 원피스를 좋아하기도 했으니까 다시 한 번 생각해 봐...’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도 이미 충분히 생각해 봤고, 나도 트랜스하기 싫고, 그런 거랑 상관없거든요’라는 말이 쉽게 받아들여 지지 않으니까 ‘사실 싫었는데 억지로 입은 거다’ 같은 말밖에 허락되지 않는 상황이 많다고 느껴요.

 

그러니까 ‘아, 나 트랜스젠더 하기 싫다. 그냥 탈트랜스젠더 할래’라는 말을 하면 정말 이해를 못하는 거에요. 한성이한테 얘기하면 ‘지금 가람이 뭔가 힘든 일이 있구나, 정신 건강이 안 좋구나’ 할 텐데, 가족들한테 얘기하면 “그래, 잘 생각했어.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라는 대답이나 들으니까. (하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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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게트 2023/07/10 [15:50] 수정 | 삭제
  • 자퇴의 경험이 힘들었을텐데 담담히 얘기하는 것도 그렇고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들도 젊은 기운이 느껴지는 거 같아요 자존감 같은 거.. 전달되어서 좋네요
  • near 2023/07/10 [13:01] 수정 | 삭제
  • 전교 부회장이었던 학생이 다른 성별 표현을 하면서 친구들과 멀어지고 자퇴하고 위험한 학교 밖 생활을 하고 대학에 가서 반추하는 이야기가 현재 시점에서 안도감이 들기도 하지만, 또 많은 십대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불안하기도 하네요. 중간에 재입학한 이야기 보면 학교가 조금씩 달라진 면도 있는 거 같기도 한데, 또 달라지지 않고 다른 존재를 밀어내는 모습도 여전하고.. 학교의 주체들이 이 기사를 읽고 고민을 조금 더 했으면 좋겠습니다.
  • 키드 2023/07/09 [20:42] 수정 | 삭제
  • 학교 안에서 튕겨져 나갔지만 학교 밖에 있으면서 교복 입은 친구들이 부러운 마음 너무 공감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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