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튕겨 나오기를 두 번, 애증의 학창 시절을 보낸 한성과 가람. 두 사람은 트랜스젠더이자 퀴어로서 삶이 학교와 불화한 경험을 털어놓으면서도 청소년 트랜스젠더, 퀴어가 ‘절박하고, 불쌍하며, 딱한’ 이미지로만 비춰지는 것은 경계했다. 힘들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그 경험 속에서 그들은 각자 생존 방법을 터득하며 삶을 꾸려낸 사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부족했던 건 그들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주는 사람, 다른 삶의 방식을 시도할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해주는 사람들이었을 뿐.
〈무지개교실〉은 그런 문제 의식에서 시작된 프로젝트다. 또한 한성의 말마따나 자신의 “위치를 바꿔준” 대학 입학 후에도 자리잡지 못해 ‘애매하게’ 겉도는 이들이 의기투합한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이 프로젝트는 정치단체인 ‘노동·정치·사람’과 트랜스젠더 청소년 인권모임 ‘튤립연대’가 함께 주최하고 있다. 튤립연대에서 활동하던 한성이 노동·정치·사람에서도 활동하게 되면서 가람에게도 유혹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렇게 둘은 현재 노동·정치·사람 청년연대팀에서 무지개교실을 준비하고 있다.
두 사람에게 본격적으로, 무지개교실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과정과 의미, 이들이 꿈꾸는 교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가람: 22살 때까지 학교 ‘밖’에 있었는데, 내 인생의 다음 스텝이 뭘지 하나도 상상이 안 되더라고요. 그나마 할 수 있는 게 입시 준비였던 것 같아요. 딱히 목표가 있어서라기보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오게 됐다?(웃음)
한성: 자퇴생들 특기가 도망 갔다가 다시 돌아오고, 그리워하고 그런 거에요.(웃음) 정말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그리고 대학 가서 사회운동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거든요. 대학생이라는 걸 선망하기도 했어요. 15살 때부터 청소년 인권운동부터 시작해서 이런저런 활동을 했는데 그 때 과잠(대학 내 같은 학과 구성원들이 단체로 맞춰 입는 점퍼) 입은 사람들 보면 ‘대학에선 저렇게 모여서 작당모의를 하는구나’ 싶었어요. 또 학교 밖에서 알바하다 짤리는 등 부당한 일을 겪었을 때 ‘내가 대학생이었다면, 대학생 친구가 있었다면 대응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했고요. 내가 그런 대학생 친구가 되고 싶었달까. 근데 막상 대학 들어가 보니까, 뭐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별 거 없더라고요?(웃음)
-막상 대학에 오니까 실망스러웠다?(웃음)
가람: 다들 진짜 좀 똑똑할 줄 알았어요(웃음) 이미 선배들이 뭔가 하고 있어서 ‘난 숟가락만 얹으면 되겠지, 빨간 책으로 날 이끌어 주겠지’(웃음) 생각했는데, 다 쓰러져 가고 있어서 내가 상 차려야 되는?
-그렇게 지내다 ‘무지개교실’을 만들어 보자고 한 거잖아요.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궁금해요.
한성: 2020년, 원래 활동하던 트랜스젠더 청소년 인권모임 튤립연대에서 ‘튤립교실’을 연 적이 있어요. 학교 밖 청소년 트랜스젠더에게 안전하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거든요. 3개월 동안 고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를 대비하는 강의, 교양 강의 등을 진행했죠. 소규모 실험 같은 느낌으로 진행했는데, 제가 대학생활과 이런 저런 활동을 하다 보니 이어가진 못했어요. 그러다 대학 또 꼴도 보기 싫다고 휴학을 했는데(웃음) 친구들이랑 이제 뭘 해야 할까, 어떤 게 좋을까 이야기하다 ‘참, 우리 튤립교실을 했었지! 이걸 무지개교실로 살려볼까?’라는 생각이 든거죠.
대학생활에서 잘 적응이 안 되는 부분도 있었어요. 다른 트랜스젠더 친구들이랑 얘기해 봐도 비슷한 고민이더라고요. 성소수자 동아리나 페미니즘 동아리에서도 뭔가 이질감을 느낀다는 거죠. 우리 (트랜스젠더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니 뭔갈 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문제 의식이 있었어요. 동시에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로 ‘성평등’, ‘성소수자’를 뺀 교육과정 개정안이 나왔다는 소식 등을 접하면서, 성소수자 교육과 관련해서도 무언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어떤 제도를 바꾸고 법안을 마련하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다른 모델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서 무지개교실 논의를 하게 됐죠.
가람: 시작은 ‘후원 파티를 하자’는 거였어요. 이미 활동가들은 다 무급으로 일하고 있는데, 무지개교실을 운영하려면 돈이 필요했거든요. 거기다 서울퀴어문화축제 부스 참여를 하게 돼서 굿즈를 만들었더니, 그 (제작) 비용도 은근 크더라고요. 돈을 좀 모아야겠다 싶었죠.
한성: 무지개교실에서 활동할 사람도 더 찾고 싶었어요. 을지로 육일봉에서 하면 금요일에도 저렴하게 대관할 수 있다고 해서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사정이 생겨 목요일에 하게 된 거에요. “목요일은 너무 애매한 날이어서 하기 힘들겠다”는 말을 내뱉었는데 그 때 번뜩하더라고요. 애매함이랑 퀴어랑 잘 어울리는 것 같은 거에요. 그래서 말들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퀴어들이 또 임기응변에 강하잖아요?(웃음) 근데 정말 애매한 게 맞더라고요. 성별이 애매한 사람들, 학교 밖 사람들 등이 서울퀴어문화축제 전 평일인 애매한 날짜에 애매하게 모여서 각자의 애매함에 대해서 이야길 해 보면 의미가 있겠다 싶었어요.
-“애매한 파티”라고 했지만 확실한 즐거움이 있는 파티였어요. 특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요?
한성: 트랜스젠더가 그렇게 많이 모인 파티는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애매함’을 내세운 우리의 감성이 트랜스젠더를 끌어들였나 싶기도 하고(웃음) 퀴어가 놀 수 있는 클럽이나 커뮤니티도 동성애자 시스젠더 위주니까 사실 트랜스젠더로서 애매한 불화의 순간들이 많거든요. 그걸 느끼고 있던 사람들이 이 파티를 찾아왔던 거 아닌가 싶어요. 이성애자 시스젠더 친구들도 왔고, 사람들이 많이 왔다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애매함’을 매개로 우리가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좋았어요. 무지개교실의 취지도 그런 연결이거든요. 성소수자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거요.
가람: 파티 오픈 마이크 때 마지막으로 발언한 분 말이 기억에 남아요. ‘퀴어를 포용하는 건, 자기 스스로의 애매함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퀴어들도 사실 서로 되게 다른 경험을 함에도 불구하고, (’정상사회’에 소속되지 못하는) 애매함을 익숙하게 경험하기 때문에 서로 이어지는 거다. 모두들 자신의 애매함을 잘 들여다 보라’는 얘기였죠. 그 이야기에 공감했었어요. 퀴어들은 정말 ‘나의 애매함’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단 말이죠. 나도 그랬고요.
하나 예를 들자면, 내가 겪은 젠더화된 폭력의 경험이 내가 스스로를 여자라고 느끼지 못하게 한 부분도 있다고 봐요. 분명 어떤 상호작용이 있었을 거라고요. 다만 이걸 남들한테 얘기하면 (트랜스젠더의 서사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뭔가 애매하다, 트랜스젠더를 선택한 거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없고 그런 수사를 쓰기 어렵죠.
한번은 래디컬 페미니스트라는 분이 저에게 “왜 여자로 살기를 선택했냐”고 묻더라고요. 페미니스트들도 어떤 경험에 대해서 묵인하지 않고 떠들기로 선택하잖아요. 심지어 위험이 따를 수 있다는 걸 감수하면서도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고 자신의 존엄함을 지키기 위해서요. 물론 어쩔 수 없는 상황, 그런 선택조차 할 수 없는 상황도 분명 존재하지만요. 그럼에도 내가 어떤 젠더로 살기로, 자퇴하기로, 어떤 길을 가기로 선택했다는 건, 내가 나만의 고유한 삶을 만들기 위해 선택한 거거든요. 이게 존중 받아야 함에도 오히려 폭력적으로 다뤄지죠. 또 어떤 측면에선 선택을 했으니까 (차별이나 부당한 일을 겪더라도) 그 선택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너무 당연하게 여겨지고요. 트랜스젠더이건 자퇴를 했건, 인간의 삶은 존엄하게 다뤄져야 하는 거잖아요?
또 ‘트랜스젠더가 뭘 못 한다/할 수 없다’는 말. 예를 들어 화장실에 못 간다는 거. 물론 문제이긴 한데 자꾸 이런 이야기만 반복되는 걸 보면서, 내 인생이 이렇게 납작하게 다뤄져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시스템이 부재한 상황에서도, 우린 분명 고유한 삶의 교훈과 노하우를 만들어 가면서 살아가고 있거든요. 그에 대해 조명하기보다, 트랜스젠더가 힘들다는 이야기만 계속되다 보니까, 당사자들 내에서도 절박한 서사를 쓰게 되는 거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무지개교실이 필요하다고 봐요. 또래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공간, 우리만을 위한 교실이요. 우리 삶을 솔직하게 다루고, 정말 집합적인 경험으로 설명하는 언어를 만들기 위한 공간으로요.
-무지개교실이 상당히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 같아요.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 예정인가요?
한성: 내년 1월부터 4월까지, 4월에 치뤄질 검정고시에 맞춰서 주 3회 교실을 열려고 기획하고 있어요. 주 2회는 정규 과목 수업을 하고 주 1회는 교양 과목 수업을 하는 거죠. 교양 수업은 노동이나 젠더에 대한 것, 아니면 그냥 어떤 삶의 지혜가 되는 것들을 함께 공부하고 싶어요. 무지개교실에선 누구나 선생이 될 수 있고 또 누구나 학생이 될 수 있는 걸로. 같이 필기도 하고 자습도 하고, 공부하는 연습이랄까 습관 자체가 중요하잖아요. 특히 자퇴생들한텐 그게 어렵거든요. 함께 무언갈 할 수 있는 동기 부여를 해주는 거죠. 또 공부만 하는 게 아니라 함께 급식도 먹고 소풍도 가고 체육도 하고 엠티도 갈 생각을 하고 있어요. 다양한 실험들을 하면서 대안적인 교육 방법도 찾고 싶어요.
한성: 졸업식을 해 보고 싶어요! 자퇴하면 졸업 앨범도 없고…. 졸업이라는 경험을 만들어 주고 싶어요.
가람: 퀴어들 중 양육자랑 사이가 안 좋은 경우가 있는데, (탈가정 후) 월세를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게 어떤 건지, 국가장학금은 어떻게 신청하는지 등이요. 이런 정보를 찾아보는 게 정말 힘들었거든요. 그래서 알려주고 싶어요. 전 자취 경력이 좀 되는 편인데, 요리하는 방법 이런 것도 알려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소소한 자취생활 팁.
-앞으로 무지개교실 프로젝트를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가요?
가람: 이제 그래도 레즈비언, 게이 대상으로 하는 성적지향과 관련된 컨텐츠는 좀 많아진 것 같거든요. 근데 성별정체성에 대한 건 여전히 별로 없어요. 트랜스젠더들은 정말 1,2년 뒤를 상상하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려워요. 트랜지션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혹시 내가 트랜지션을 못하게 됐을 땐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 가족들에겐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트랜지션 하면 동창들이랑 연락을 다 끊어야 하는지 등 정보를 찾기가 너무 어려웠어요. 무지개교실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겐 미래를 생각할 수 있게 하고 싶어요.
한성: 트랜스젠더, 퀴어 커뮤니티도 갈수록 파편화되고 소위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각자 커리어에 맞게 잘 사는 방식이 강조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걸 보조하기 위한 법과 제도에 대한 (인정)투쟁을 하고 있고요. 근데 그 안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게 분명 있거든요. (가진 게) 별 거 없는 자퇴생들, 애매한 사람들도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이요. 이들 또한 함께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경험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깃발 아래 모이는 것 이상으로, 같이 부대끼면서 변화를 만드는 만드는 경험이요. 그걸 작은 단위에서부터 시작하고 싶고, 더 나아가 진보정치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싶다는 원대한 꿈이 있지만(웃음) 일단 무지개교실을 잘 시작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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