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없어도 고립되지 않고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사회퀴어가족정치의 장, 사회적 재생산 위기에 응답하다②[연재 소개] 우리 사회에서 친밀성과 가족의 변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혼인평등이나 생활동반자등록법 운동 등 법적으로 권리를 획득하고자 하는 가족구성권 운동이 가시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구성권연구소’는 현재 법적 논의들이 다루지 못하고 있는 가족정치-가족제도의 불평등과 사회적 재생산의 위기를 해소하고, 시민적 유대가 가능한 사회를 모색하는 길-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가족을 구성할 권리 운동이 가족을 확장하는 것만이 아니라, 함께 살고 유대를 맺고 상호의존할 수 있는 ‘사회적인 재생산 정의’를 향한 사회권 실현과 만나야 함을 논의하고자 한다.
결혼과 가족, 너무나 경제적이고 불평등하고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퀴어가족정치’는 기존 이성애중심적이고 성별이분법적인 가족의 협소한 정의를 폐지하면서 가족을 확장하는 것만이 아니라, 가족 단위로 삶을 맡기는 가족주의를 넘어서 시민적인 유대와 연대를 확장하는 정치적인 실천이다. 이를 위해서, 가족을 사적인 영역이 아니라 불평등의 의제이며 사회적인 의제로 제기하는 정치의 장을 퀴어가족정치로 규정할 수 있다.
가족제도와 불화하고, ‘불온한’ 시민으로 간주되는 존재들과 연대의 장을 모색해온 퀴어가족정치는 한국에서 가족을 구성할 권리운동 초기부터 성소수자만이 아니라 장애, 비혼 운동 등과 교차적인 만남을 통해서 확장되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호주제 폐지운동 과정에서 가족을 저항의 언어로 정치화하면서 ‘정상가족을 해체하라’, ‘이성애중심성을 해체하라’ 요구하는 운동의 흐름이 이어져왔다. 그 시기를 지나 현재는 기존 가족을 넘어 함께 살고 돌보고 의지할 수 있는 실질적인 삶의 토대, 즉 사회적 재생산의 정의를 요청하는 흐름과 가족을 구성할 권리가 교차되는 국면을 마주하고 있다.
차별 해소의 최종적인 관계의 모델은 동성혼? 왜 모두가 결혼으로 이어지는가?
관계의 위계를 해체하는 것은 왜 정치적이며, 저항의 과정일 수밖에 없는가?
한국 사회는 동성/이성 유무, 결혼/비결혼 유무, 가족/비가족 유무, 장애/비장애, 선주민/이주민이라는 여러 차원의 위계를 통해서 이성애 결혼/혈연 중심의 가족 제도를 유지해 왔다. 바로 그러한, 가족 제도가 시민 개개인의 삶에 큰 영향력을 미쳐왔다.
이렇듯, 관계의 위계가 공고한 사회에서 2023년 1월에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에서 동성혼 법제화를 핵심 투쟁의제로 설정하면서, 혼인평등연대를 중심으로 정치적인 활동을 본격화하고 있다. 동성이라는 이유로 법적으로 결혼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차별임이 분명하다. 또한 혐오정치를 넘어서 공적으로 평등한 시민으로 공존하기 위해서 혼인평등이 절실한 의제라는 것도 분명하다.
그러나 왜 결혼과 가족제도가 위기에 처해있는지, 그리고 가족제도가 불평등의 산물임을 체감하는 이 시점에 ‘우리’는 혼인평등을 이야기하는지, 동성결혼을 해야 획득할 수 있는 권리라면 그렇지 않은 퀴어들에게 혼인평등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등. 여러 갈래의 질문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누가 동성혼을 원하는지, 퀴어 내부에서 누가 동성혼을 할 수 있는 주체로 상상되는지, 동성혼 법제화를 통해서 이성애결혼과 동일하게 권리를 획득하는 것이 가족구성권 운동에서 중요한 평등의 모델이 될 것인지…. 이러한 질문들을 던지는 이유는 동성혼 전 단계로서 생활동반자법을 생각하고, 그리고 생활동반자법 전 단계로 생활공동체를 생각하는 관계의 모델들이 만들어내는 규범성이 당연한 수순이 아니라는 것을 정치화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돌봄 관계망에 기반을 둔 생활공동체는 임시적이기 때문에, 지속가능한 모델은 법적으로 관계를 등록한 생활동반자법이라고 상상되거나, 또한 퀴어가 경험하는 차별 해소의 최종적인 관계의 모델은 ‘동성혼’이라는 인식이 관계의 위계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족을 구성할 권리 운동이 사회적인 불평등을 해소하고 차별을 정치화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혼인평등 운동의 주요한 슬로건인 “모두의 결혼, 사랑이 이길 때까지”에서 ‘모두’는 누구를 전제하는 것인지, 왜 ‘모두’가 결혼으로 이어지는지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권력화된 결혼을 넘어, 새로운 유대와 돌봄을 향해
물론 혼인평등이 지향하는 것은 동성 간 결합을 부정하고 차별과 낙인을 씌우는 정치에 개입하는 움직임이다.
그런데 결혼은 이미 너무나 경제적이며, 불평등한 제도이다. 때문에 결혼 제도의 불평등을 정치화하는 과정은 이성애 결혼한 사람들과 ‘동등’함을 획득하고,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차별의 핵심적인 요소로 간주하기보다는, 결혼을 모든 시민의 토대로 상정하는 ‘그 정치’에 개입하는 쪽에 가깝다. 또한, 이성관계 안에서도 결혼할 수 없는 존재들, 즉 결혼할 수 있는 대상으로 간주되지 않는 장애인들, 결혼과 무관하게 시민으로서 존엄하게 살고자 하는 존재들과의 연대의 장이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지점에서 혼인평등 운동의 핵심은 결혼을 중심으로 한 권리를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 중심으로 가족제도가 작동하는 것에 개입하는 정치여야 하며, 동성이라는 이유로 시민권의 영역에서 내몰리는 소수자 정치의 장을 확장하는 연대의 장이어야 하고, 중요한 관계를 배우자로, 커플로 한정 짓는 기존 가족중심의 관계의 위계에 개입하는 친밀성 정치의 장이어야 한다.
결국, 동성혼 운동에서의 핵심은 국가권력이 시민의 삶에 작동하는 강제성에 개입하는 정치이며, 혼인과 무관하게 평등과 해방이 가능한 사회를 모색하는 정치적인 장으로 이어져야 한다, 즉, 동성이라는 이유로 결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권력의 위계, 결혼을 해야만 출산이 가능하다는 정치의 위계, 결혼 중심으로 시민권이 작동하는 위계, 결혼/가족 중심으로 복지가 작동하는 위계 등 여러 갈래의 위계가 작동하는 국가의 강제성에 개입하는 정치를 통해서, 권력화된 결혼의 의미를 낙후시키면서 새로운 유대와 돌봄에 기반을 둔 연결을 확장시켜야 한다.
많은 성소수자들은 사회적으로 대부분의 영역에서 차별을 경험하고 있다. 소중한 사람이 사망한 경우에도 애도의 주체가 될 수 없고, 일상의 삶에서 동반자 관계로 인정되지 않는 고통을 겪고 있다. 이렇듯, 애도의 불가능성, 삶의 존엄의 불가능성 앞에서, 우리는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어떤 정치의 방향을 택할 것인가? ‘배우자’ 중심의 권리, 그리고 2인이 동반자관계를 등록해야만 ‘가능한’ 애도나 동반자 관계를 인정받는 것만이 아니라, 왜 우리는 중요한 관계를 상상할 때 배우자이거나 커플로만 상상하는지, 왜 삶의 중요한 자리에 다양한 이름의 우정적인 유대는 중요한 관계의 모델로 상정되지 않는지에 대해서도 묻고 저항해야 한다.
관계를 떠날 수 있는 권리, 가족 없이도 존엄할 권리, 가족 상황과 무관하게 시민으로서 보호받고 돌봄 받을 권리
어떻게 하면 가족의 확장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유대와 연대의 확장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가족구성권 운동의 주요한 흐름인 동성혼 법제화나, 생활동반자법을 통해 차별을 해소하는 법 제정의 중요성을 공감하면서도, 〈가족구성권연구소〉는 사회적으로 소수자들이 정의하는 생활동반자 관계의 의미를 더 교차적으로 연결하고 논의하기 위해서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청소년, 트랜스/퀴어, 장애, 이주, 빈곤, 양육, 돌봄, 주거, 장례/죽음을 둘러싼 여러 갈래의 불평등에 주목해 온 여러 단위들과 함께 말이다. 이러한 정치적인 장을 통해서, 기존에 사회가 상상해 온 이상적인 관계성, 돌봄, 양육 모델에 어떻게 개입할지, 그리고 어떤 삶의 동반자 관계들을 사회적인 의제로 만들어낼지 함께 길을 여는 이야기 장을 모색하고 있다.
사실 그러한 삶의 동반자 관계의 모델이 쉽게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연결의 의지’를 확장하며 만남을 추진하는 이유는 이성애결혼중심성, 혈연중심성뿐만 아니라 가족중심으로 사회복지가 이루어지고 있는 시스템에 저항하면서, 가족상황과 무관하게 사회적으로 충분히 존엄하게 살아가기 위한 주거, 의료, 돌봄권이 확대되어야만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회적 재생산 위기가 일상화된 사회에서, 소수자들은 ‘위기’에 순응하는 존재들이 아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삶의 위기의 순간에 하나가 아닌 여러 갈래의 난잡하고/문란한 돌봄과 친밀성의 정치의 장을 모색해왔다. 생활동반자법에서도 성인 중심으로 논의가 이어질 때, 기존에 가족관계의 억압을 떠나서 청소년/퀴어들이 서로 의지하면서 함께 지역에서 살아갈 수 있는 권리는 또다시 주변화된다. 기존 가족을 떠날 수 있는 권리는 취약해 질 수밖에 없다. 또한, 가족구성권 운동에서 원가족이 부양의무를 책임지는 가족제도의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서는, 장애인들이 탈시설 이후에 자신들이 원하는 사람과 함께 다양한 돌봄 관계망을 만들고자 하는 ‘퀴어한/불구화된 존재들의 연대’는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퀴어가족정치의 핵심은 기존에 중요한 관계가 이미 2인모델인 배우자/커플 중심의 모델로 지정되고, 양부모 양육자 모델, 혈연 중심으로 삶과 죽음에 걸친 생존과 유대를 제도화해 온 관계의 문법에 개입하는 것이다. 하나이지 않은 여러 갈래로 타자와의 새로운 연결의 정동을 구축하는 것을 상호의존을 위한 새로운 사회의 방향으로 정치화하는 것이다.
동반자관계를 2인 중심의 배우자/커플 아닌 ‘연대인’으로… 연대인은 의료결정권, 연명치료결정권, 가족돌봄휴가, 강제입원이나 강제수용 등 상황에서 법원에 구제 신청할 권리 있어야
한 사회가 가족제도를 어떻게 운용하고 정책화하는가는 한 사회가 어떤 가치를 공고히 하는지, 어떤 시민을 보호하는지, 어떤 관계를 사회에 이로운 관계로 배치하는지 볼 수 있는 토대이다. 결국, 국가가 지정한 관계나 국가가 지정한 부양의무를 해체하기 위해서, 민법 779조에서의 이성애결혼/혈연 중심의 가족규정을 폐지하고, 건강가정기본법을 폐지하는 것을 우선적인 과제로 만들어야 한다. 즉 가족 단위로 생존을 맡겨온 가족정책의 새로운 방향을 필요로 한다.
가족구성권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사회에서 1,400여개의 현행 법률 중240여개의 법률에서 가족이 언급되고 있다. 가족의 범위에 대한 규정은 보훈/보상/포상, 재난/안전, 외교/안보/병역, 공공·민간영역의 선거 규제, 사회보장(보험/급여수급), 사회보장(취약계층지원, 사회서비스), 죽음/질병, 근로조건 규제, 교육, 가족관계 내 규제(가정폭력 등), 수형, 조세/각종세법, 토지/주택, 행정/ 사법 등 삶의 대부분의 영역에 관여하고 있다.(김현경·나영정·이유나·장서연, 〈2019 이슈 발굴 및 논의를 위한 N 개의 공론장 ‘법이 호명하는 가족의 의미와 한계’ 연구보고서〉, 서울특별시 청년허브, 2021)
이토록 많은 법 조항들 앞에서, 법적으로 등록된 가족 단위만이 아니라 개인 단위로, 그리고 개인이 의지하는 관계성 중심으로 국가의 복지가 운용되도록 하는 흐름을 어떻게 모색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그 질문의 핵심은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법 조항에 포함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연대를 확장할 수 있는 관계맺기에 대한 새로운 상상을 사회적으로 제기하는 것이다.
공공주택 정책에 지원할 수 있고, 임대차보호법으로 보호받을 권리
우선 가족구성권연구소에서는 법적으로 관계를 등록하지 않고도 자신이 의지하는 동반자 관계를 ‘연대인’으로 인정하면서 의료결정권, 연명치료결정권, 가족돌봄휴가, 강제입원이나 강제수용 등의 상황에서 법원에 구제 신청할 수 있는 권리, 그리고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등에서 삶의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주거에서도 함께 실질적으로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세대를 구성할 권리’가 주어지고, 공공주택 정책에 지원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임대차보호법에서 시민으로 보호를 받을 수 방안들을 지속적으로 의제화하고자 한다.
법적으로 관계를 등록하지 않아도 ‘실질적’으로 함께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삶의 동반자나 보호자로 인정하는 ‘연대인 제도’를 확장하는 것은 중요한 정치적인 싸움이자,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관계를 맺을 권리를 확장하는 가족구성권 운동은 가족제도 안에서 시민으로 보호받지 못해서 함께 살아온 동반자 관계들의 ‘실질적인’ 권리가 박탈되는 것뿐만 아니라, 부양의무제로 인해 가족과 관계를 단절해야 하는 강제적인 조건들이나, 충분한 돌봄과 양육에 대한 지원 부재로 인해서 자녀를 입양 보낸 억압적인 입양정치의 장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교차적으로 주목해야 한다.
사회적 재생산 위기가 일상화 된 사회에서, 퀴어가족정치는 기존에 이성애 규범적인 시민 모델이 만들어내는 폐쇄성, 부양자-피부양자에 기반을 둔 부양의무제 그리고 가족불평등을 보이지 않게 하는 가족/결혼에 대한 낭만화된 접근들, 부양 돌봄과 생존을 모두 가족에게 일임하는 가족제도 자체를 재구성하는 정치이다. 이를 통해서 사회적 재생산 정의를 향한 연대의 장을 시급하게, 절박하게, 절실하게 논의해야 함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원가족, 혈연중심이나 배우자/커플중심의 ‘시민모델’을 넘어서, 다양한 관계에 기반을 둔 돌봄모델, 양육모델이 시민들이 살아가는 삶의, 사회적 재생산의 조건으로 상상되고 연결되기를 바란다. 그러한 세계가 가능한 사회를 위해서, 사회적 재생산 정의와 가족구성권 운동이 더 교차적으로 논의되고, 다양한 삶의 이야기들이 전수되고 이어지기를 고대한다.
[필자 소개] 김순남. 가족 상황 차별을 해소하고 시민적 유대가 가능한 사회를 모색하는 가족구성권연구소 대표. 여성학 박사를 마치고 현재 성공회대학교에서 강의하며 젠더 연구소 연구교수로 있음. 주요 저서 『가족을 구성할 권리』, 『다시 쓰는 여성학』(공저), 『시설사회』(공저), 『무지개는 더 많은 빛깔을 원한다』 등.
※가족구성권연구소는 2006년 7월 13일, 당시 민주노동당의 제안으로 ‘다양한 가족형태에 따른 차별 해소와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연구모임’으로서 첫 모임을 가졌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장애여성공감, 언니네트워크, 여러 퀴어/페미니즘 활동가와 연구자들이 함께했고, 이후 사회복지연구소 물결도 합류했다. 2019년 1월 24일 연구소로 전환하였으며, 현재까지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familyequalityright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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