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계 미투가 남긴 과제, ‘문법을 바꿔라’

[미투 이후의 시간은 이전과 다르다] 당신과 함께 만드는 역사

오빛나리 | 기사입력 2023/07/17 [09:11]

문학계 미투가 남긴 과제, ‘문법을 바꿔라’

[미투 이후의 시간은 이전과 다르다] 당신과 함께 만드는 역사

오빛나리 | 입력 : 2023/07/17 [09:11]

-한국 사회를 뒤흔든 미투 운동은 어떤 변화를 만들어냈을까? 각 분야에서 미투 운동을 해온 이들이 ‘변화의 순간’에 초점 맞추어 그 성과를 공유하고, 남겨진 과제를 짚으며, 앞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해본다. [편집자 주]

 

예술고등학교 미투, 졸업생들의 연대

 

2016년, 소셜네트워크 트위터를 통해 문단 내 성폭력이 고발됐다. 그 중에 고양예술고등학교 문예창작과 실기 강사의 성폭력을 고발하는 내용도 있었다. 소식을 접한 고양예고 문창과 졸업생들이 연대모임 〈탈선〉을 꾸려 그해 11월 11일, 고발자를 지지하고 연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첫 고발 이후 몇 주도 되지 않아 진행된 일이다. 이렇게 단시간에 백여 명의 졸업생이 모여 연대 성명을 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이 고발을 보자마자 ‘내 일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공감대가 어렵지 않게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 2016년 11월 11일 고양예고 문창과 졸업생들이 연대모임 〈탈선〉 기자회견 당시 방명록. ⓒ탈선

 

성폭력의 배경에는 대학 입시를 필두로 하여 예술적 성취를 구분 짓는 실기 과정, 내신 평가 과정에서 겪는 해로운 경쟁, 내 예술적 성취와 가치를 성적으로 평가하는 실기 강사에게 과도하게 의존하게 되는 구조, 왜곡된 성인지 감수성을 ‘문학적 과정과 사유’로 치환해버리는 예술계 조직 문화, 예술계 진입 전 학생이자 제자라는 이유로 권리구제의 주체로 서기 어렵게 하는 ‘지망생’ 문화, 여성을 취약하고 무력하게 만드는 여성혐오적인 사회가 한데 어우러져 있음을 우리는 직감할 수 있었다. ‘언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라고. 그만큼 우리는 폭력의 경험을 정밀하게 내면화하면서, 그것을 폭력으로 명명하길 주저해왔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고발과 연대 성명 이후, ‘이것은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개인적인 일’이라는,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어딘가 이상하기 마련’이라는, ‘너도 피해당사자냐?‘라고 묻는, 그 성폭력이 얼마나 잔인하고 폭력적이었는지 재현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마주칠 수 있었다. 성폭력을 탈정치화하고 자신에게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을 대하듯 선을 긋는 모습. 이들은 개인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가부장적 구조의 산물이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의 고발과 연대 성명에 응답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지망생’을 자처했던 사람들은 이제 권위자의 이름과 수단으로 자신의 예술적 성취를 평가받기보다 독립출판을 시도하기도 하고, 작가와 독자 할 것 없이 각자의 방식대로 자신이 속한 곳에서 문단 내 성폭력을 이야기하고 이어진 담론들을 밀어붙였다. 문학 출판사와 잡지에는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은 칼럼이 두루 실렸다.

 

당신의 문법은 어디에 근거합니까?

 

〈탈선〉은 멤버 몇 명이 남아 〈우롱센텐스〉로서 후속 행동을 이어나갔다. 우롱센텐스는 탈선 이후 공동행동과 자유로운 문학 창작을 꾀하는 모임으로 오빛나리, 정의현, 이규락이 공동운영을 맡았다. 우롱센텐스는 ‘Wrong Sentece’를 장난스럽게 발음한 것이다. 기성 사회의 권위적인 문법은 틀렸다는 의미와, 그것을 우롱해보겠다는 의미를 담은 팀 이름이다.

 

그러나 이름처럼 우리에게 즐거움과 포부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를 포함해 문단 내 성폭력 고발을 지지하고 연대했던 많은 사람들이 가해자의 법적 처벌 과정이 시작되거나 혹은 무마되는 식으로 공론화가 진행되고 나자, 각자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우리는 예전과 같은 발걸음으로는 과거의 잔상을 쫓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떤 글을 읽어도, 어떤 작가를 만나도, 어떤 독서나 합평 모임에 나가도, 전에는 애써 의식하지 않으려 했던 부분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대해 말하지 않고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의식적으로 문단 내 성폭력 고발이 남긴 문제의식을 언급하지 않는 것도, 혹은 지나치게 많이 언급하는 것도 마음을 힘들게 했다. 개별 성폭력 사건에 대한 법적 처리 절차가 우리의 문제의식을 해소해주지는 않았다. 어떤 이야기들은 너무나 쓰고 싶어서 터져 나왔고, 어떤 이야기들은 도저히 쓸 수 없어서 입으로만 떠들다 허공에 흩어졌다. 문단 권위로부터 배운 글쓰기의 한 방식을 버려야 했다. 두텁게 쌓아온 권위의 역사를 우리의 이름으로 새로 쓰는 일은 고단하게만 느껴졌다.

 

▲ 〈우롱센텐스〉 좌담회 “당신의 문법은 어디에 근거합니까” 현장 사진 ⓒ우롱센텐스


우롱센텐스가 기획한 “당신의 문법은 어디에 근거합니까”는 그런 문제의식을 담은 좌담회였다. 기성의 권위와 위계에 의존하지 않는 ‘좋은’ 합평은 어떤 합평인지, 등단이 왜 이토록 우리에게 중요했는지, 막상 등단하고 나니 무엇이 달랐는지, 어떤 것은 그대로인지, 나름대로 열심히 고민한 질문들을 모아 전국 문예창작학과 대학생들, 작가 ‘지망생’들, 신인 문인, 기성 문인 등을 패널로 두고 이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 누구라도 모여서 함께 떠들었다.

 

기성 문단 사회에 실망했지만 여전히 글을 쓰고 싶은 열망을 어디에 쏟아내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한 토크테이블 “너 아직도 글 써? ...응”도 기획했다. 독립문예지 출판기획자, 자기만의 계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작가들을 패널로 두고, 독립출판에 대한 고민과 문제의식에 대해 나누었다. 우롱센텐스 역시 디지털 지면을 이용한 독자와의 직접 만남 메일링 서비스 ‘월간 우롱’ 등을 기획하고 운영했다.

 

신인 작가들의 수월한 출판계약 진입을 위해 저작권 관련 강의도 열고, 문단 내 성폭력에 특화된 성폭력예방 강의를 개최했는데, 프리랜서 고용이 많은 문화예술계 특성상, 자신이 어느 권력/위계 구조에 속해 있는지 자각하기 어려운 현실에 주목했다. 우리가 어떤 권리를 가질 수 있는지, 보이지 않는 권력/위계 구조가 어떻게 우리의 창작활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강의했다. 우리를 괴롭히던 그 모든 구조와 폭력에 대해 직접 배우고 ‘구조’와 ‘폭력’이라고 적확하게 명명할 수 있어 참 기뻤다. 한편으로 씁쓸했다. 이렇게 불렀으면 됐을 걸, 싶어서.

 

우롱센텐스는 작년 하반기부터 무기한 휴가 중이다. 그래도 우리는 한 달에 한 번씩 꼭 만나서 서로 근황을 공유하고, 우롱센텐스 활동의 경험을 살려 무엇인가 또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기획할 수 있을지 아이디어를 나눈다. 지속가능한 연대가 가능하려면 충분한 자원과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하는 나날이다.

 

성폭력은 권력과 권위 구조 안에서 일어난다

 

한 순간에 모든 권력적 구조가 해체되거나 분산되지는 못하더라도, 개인들은 분명한 의식적 인지가 일어난 것처럼 보였다. 이 고발은 우리 모두의 일이며, 시민이자 개인으로서 폭력의 구조에 가담하고 있었다는 진실, 앞으로는 우리가 스스로 새로운 역사와 문학을 써야 한다는 의무와 기꺼이 새롭고 성숙한 사회와 다양하고 깊어진 문학을 받아들이고 향유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그런 의미에서 최근 실천문학의 행보는 참으로 기이하다. 실천문학은 1980년 군사독재 치하에서 고은 시인 등 여러 문인과 예술인들이 모여 만든 무크지에서 출발한 문학전문출판사다. 군사정권에 맞서 ‘사상, 표현, 출판의 자유’의 가치를 드높인 문예지였다.

 

고은 시인은 2017년경부터 성추행 의혹들이 제기되며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지금까지 한 마디 사과의 말도 없는 상태다. (고은 시인은 자신의 성추행을 폭로한 최영미 시인과 이를 보도한 언론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1심과 항소심 모두 패소했다.) 실천문학사는 올해 고은 시인의 시집과 대담집을 출간했다가 ‘사과 한 마디 없는 문단 복귀’라는 비판 여론이 일자, 대표가 사과와 함께 책 공급을 중단하고 계간지도 한 해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다가 돌연, ‘출판의 자유를 억압 받은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며 이와 관련해 설문조사를 세 번이나 실시했다. 〈출판의 자유권에 대한 설문조사〉, 〈출판의 자유권리 억압 사태에 대한 원인 분석 설문조사〉, 〈왜 하필 ‘고은’ 시인과 ‘실천문학’만 가지고 그러는지요?〉 제목부터 질문까지 어떻게든 고은 시인과 출판사의 권위를 복권하고 싶고, 독자들도 기꺼이 ‘인정’해주었으면 하는 의도가 투명하게 드러난다. 실천문학은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하필’ 고은 시인, ‘하필’ 실천문학이 아니다. 명실상부 문학계 대부의 위치에 있는 ‘고은’이어서 문제고, 역사, 전통, 권위가 있는 문학출판사 ‘실천문학’이어서 문제다.

 

성폭력은 개인의 도덕적 타락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폭력 구조 안에서 ‘작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폭력 고발’은 사회적 운동이 된다. 성폭력이 문단 내 권위가 있어서 일어난 일인데, 그 권위가 실추되는 것이 왜 두렵고 불안한가? 그 두려움과 불안함을 왜 독자들의 몫으로 떠넘기는가? 나는, 우리는, 그의 권위가 실추되는 것이 두렵지도, 불안하지도 않다.

 

대체 문학이 뭐길래…세상을 새로 쓰기

 

2016년 11월 11일 문단 내 성폭력 고발 연대 성명에서 〈탈선〉은 이와 같이 밝혔다.

 

“우리는 문학이 되어서 네 이름을 갉아먹고 성장할 것이고, 네가 눈 돌리는 모든 곳에 너보다 먼저 와 있을 것이며, 네가 내딛는 모든 발걸음에 문학이 된 우리가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문학이자 산증인으로서 우리 스스로를 증명할 것이다. 우리의 연대와 지지는 꺾이지 않을 것이며, 우리의 목소리는 잦아들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진흙탕에서도, 아스팔트에서도 기어나올 것이다. 우리는 이제 시작했다.”

 

▲ 〈우롱센텐스〉 팀 단체 사진. 왼쪽부터 이규락, 정의현, 오빛나리 ⓒ유수정

 

문단 내 성폭력 고발과 지지 운동을 하며 내게 가장 크게 남은 것은 ‘대체 문학이 가진 기호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러한 고민을 실감하는 이들은 ‘문학성’에 대해 새로 써야 했듯이, 결국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세상을 새로 쓰는 것이다. 정확히는 소외되고 비가시화된 이들의 눈으로 새로 쓰는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언제나 문학의 본질이라고, 모든 관성에 대해 머리를 깨부수는 도끼가 되는 것이 문학의 역할이라고, 내가 ‘선생님’들에게 가르침 받은 내용이다.

 

사실 문학이라는 기호에만 해당되는 일이 아닐 것이다. 내가 문학을 사랑하고 관습적으로 소비해왔듯 우리에게는 모두 열렬히 사랑하고 소비하는, 사고와 실천의 뿌리가 되는 기호가 있을 것이다.

 

처음 탈선 운동을 시작했을 때, 정말 우리의 목소리를 누가 들어주긴 할까 하는 회의감에 휩싸였던 것이 기억난다. 그러나 우리의 고발에 대한 ‘감응’은 비단 문학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나는 분노뿐 아니라 지난하면서도 피로한 얼굴로, 그러나 끝내 나의 두 손을 꼭 잡고 웃어 보이기를 선택하는 수많은 아름다운 사람들을 마주칠 수 있었다. 첫 기자회견 이후도 그랬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그렇다. 반성폭력 운동을 통해, 여성운동을 통해, 사회운동을 통해, 그리고 그저 한 개인에 불과하다면서도 끝끝내 내 말을 들어주고야 마는 당신들을 통해, 나는 진실로 ‘우리’라는 공통 토대를 감각할 수 있게 되었다.

 

우스갯소리로 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자기가 속한 현장에 진심이려면 그 현장에 대한 뿌리 깊은 회의가 있어야 한다는 말을 종종 하곤 한다. 문학을 하고 싶다면 문학을 회의해야 한다. 사회운동을 하고 싶다면 사회운동을 회의해야 한다. 그것이 가진 허망함과 입체성을 회의할수록, 내가 그것을 보다 열렬히 사랑하고 행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무엇을 회의하는 것은 쉽고, 회의하면서도 사랑하기를 택하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때로 삶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연속으로 느껴진다. 세상살이 대부분의 것들을 깊이 회의하는 나로서는 그것이 얼마나 내가 삶을 사랑하고 삶에 대해 거는 기대가 큰 사람인지 스스로 자각하게 만든다. 따라서 내게는 낙관, 연대, 희망, 그리고 사랑이 삶에 있어 선택지가 아니라 유일한 길이라고 느낀다.

 

나는 앞으로도 세상살이 대부분을 열렬히 싫어하고 회의겠지만, 기꺼이 당신들과 함께 또 다른 이야기와 담론, 고민을 나누면서 각자의 기호를 사랑하고 행하고 싶다. 그것으로 또 다시 시작하고 싶다. 우리가 또 다시 공동의 감각과 경험의 공유지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면, 또 다시 우리는 지금 시점에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것들을 언제 그랬냐는 듯 이름 붙일 수 있을 테다. 당신들이 있어 우리가 우리의 이름을 기억하듯이.

 

[필자 소개] 오빛나리. 2016년 문단 내 성폭력을 고발한 고양예고 졸업생 연대 〈탈선〉 대표로 활동. 이후 공동행동과 자유로운 문학 창작을 위한 모임 〈우롱센텐스〉 활동을 하다가 무기한 휴가 중. 2017년 문단 내 성폭력 고발과 연대의 글을 모은 『참고문헌없음』 필진 참여. 『지극히 사적인 페미니즘』 공저자. 2020년 제3회 페미니즘 연극제 〈스탠드 업 그라운드 업 vol.2〉에서 스탠딩 코미디언 출연. 2021년 한국여성단체연합 혁신위원회에서 외부위원으로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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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별매듭 2023/07/21 [17:46] 수정 | 삭제
  • 90년대 이후로 여성 작가들의 활약이 대단했는데 문단내 케케묵은 권력구도는 꺠지지 않았을까요.. 미투가 많이 바꾸어냈는지 궁금합니다.
  • 변화 2023/07/17 [23:21] 수정 | 삭제
  • 와... 문법을 바꿔라ㅡ 쉽지 않은 얘기지만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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