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을 본 죄, 못 본 죄

다큐멘터리 영화 〈수라〉

박주연 | 기사입력 2023/07/25 [11:49]

아름다움을 본 죄, 못 본 죄

다큐멘터리 영화 〈수라〉

박주연 | 입력 : 2023/07/25 [11:49]

폭우 알림이 아니면 폭염 알림이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요즘, 외출은 큰 일이 됐다. 그래서일까, 영화관에 가는 일도 예전만 못하다. 특히 ‘상업영화’가 아니고, 가까운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닌 경우엔 더더욱. 하지만 다큐멘터리 영화 〈수라〉(황윤 감독) 개봉 소식을 들었을 때, 이 영화만큼은 꼭 극장에서 봐야겠다 싶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가 곧 방류된다는 두려움, 우리의 바다가 파괴된다는 공포, 해가 더해 갈수록 사나워지는 기후위기의 후폭풍에 대한 경각심… 기록적인 폭우와 홍수 피해를 겪고도 정부와 여당이 ‘4대강 재자연화’를 막고 오히려 지류, 지천까지 정비한다며 ‘포스트 4대강’ 사업 이야기까지 나오는 게 너무 우려되어서, 한편으론 새만금 간척사업이 30년 넘게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게 부끄러워서이기도 하다.

 

▲ 황윤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수라〉 포스터 (스튜디오 두마, 미디어나무, 스튜디오 에이드 제공)

 

하지만 꼭 짚어 말할 수 있는 정확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냥 보고 싶었다. 어떤 영화는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수라〉도 그랬다.

 

갯벌은 아직 살아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수라 갯벌은 전북 군산 미군기지 근처에 자리한, 새만금 개발 사업의 손이 ‘아직’ 닿지 않은 갯벌이다. 황윤 감독은 군산으로 이주하고 나서야 새만금 개발 사업으로 갯벌이 다 사라진 게 아니고, 남아 있는 갯벌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새만금 개발 사업은, 군산시 비용도동부터 고군산군도의 신시도를 거쳐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까지, 총 33.9km 길이의 방조제를 축조하여 갯벌을 매립하고 “글로벌 명품 새만금”을 건설하는 국책사업이다. 사업비만 22.79조 원. 1991년부터 시작된 공사는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진행되고 있다. 원래의 ‘거대한 농토’를 만들겠다는 계획은 이미 사라졌음에도 공사는 꾸역꾸역 이어지고 있다. 농업용지를 산업단지로, 복합개발을 하겠다더니, 이젠 군산 신공항을 짓겠다며.

 

수많은 생명들이 살고 있는 갯벌, 다양한 철새들이 계절을 보내며 알을 낳고 새끼를 양육하는 장소인 갯벌을 다 없애겠다는 이 사업은 사회에 큰 논란을 불러왔다. 황윤 감독은 20년 전인 2003년 3월, 네 명의 성직자가 65일간 전북 부안에서 서울까지, 305km를 걷는 ‘새만금 갯벌 살리기’ 3보 1배를 목격하며 이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리고 부안 계화도 갯벌에 머물며, 갯벌을 지키고자 하는 어민들과 시민들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 영화 〈수라〉 중, 방조제가 만들어진 후 방조제 안팎의 물은 점점 차이를 드러낸다. 방조제 안의 물이 점점 썩어갔기 때문이다. (스튜디오 두마, 미디어나무, 스튜디오 에이드 제공)

 

하지만 충격적인 일이 연이어 일어났다. 환경단체와 전북 주민 등이 ‘새만금사업 승인처분 무효화’ 소송을 진행했지만 2006년, 대법원이 원고 패소 판결을 확정한다. 그리고 감독이 카메라에 담고 있던 어민이자 동료인 故 류기화 씨가 갯벌에 나갔다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황윤 감독은 마음에 상처를 안고서, 카메라를 접고 갯벌을 떠났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흐른 2014년, 감독은 군산으로 이주하면서 갯벌과 다시 조우하게 된다. 이것은 무슨 운명이었을까.

 

새만금. 상처뿐인 그 이름이 사방에 널린 군산으로 이주한 건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생각했던 그 때, 황윤 감독은 다 사라진 줄 알았던 갯벌이 아직 남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무엇보다도 그 갯벌을 지키고, 갯벌을 찾아오는 생명체들을 기록하는 ‘새만금생태시민조사단’(이하 조사단)이 계속되어 오고 있다는 것도. 감독은 조사단의 오동필 단장과 알게 된 후, 그 활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활동을 시작했을 땐 20대였던 막내가 40대가 되고, 대부분이 50대가 될 정도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조사단은 여전히 갯벌의 생명들을 사진과 영상으로 찍고, 개체 수를 기록하고, 이 생명들의 움직임을 세심히 살핀다. 감독은 자연스레 이들이 바라보던 갯벌을 ‘함께’ 바라보게 된다.

 

2006년 대법원 판결 이후 결국 방조제가 만들어졌다. 바닷물이 더 이상 들어오지 않는 갯벌은 점점 말라가고, 하루에 두 번 들어오던 바닷물을 애타게 기다리던 갯벌 속 생명들은 집단 폐사한다. 인간이 만든 처참한 대재앙이 갯벌을 휩쓸었지만, 갯벌은 죽어버린 땅이 아니었다. 조사단이 바라보는 갯벌은, 누군가에겐 그냥 사라진 갯벌일지 모른다. 하지만 오동필 단장은 “언젠가 바닷물이 들어오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땅도 갯벌이라 생각한다. 갯벌이라는 이름을 놓지 않으면 언젠가 갯벌로 돌아갈 거다. 갯벌이었기 때문에 갯벌이라고 불러줘야 한다. 그래야 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갯벌엔 ‘비단 위에 수를 놓다’라는 의미의 ‘수라’라는 이름도 붙여준다.

 

▲ 영화 〈수라〉 중, 탐조 중인 새만금생태시민조사단 오동필 단장의 모습 (스튜디오 두마, 미디어나무, 스튜디오 에이드 제공)


수라 갯벌엔 수많은 생명이 공존한다. 멸종위기종, 법정보호종을 포함한 많은 생명들이. 오동필 단장을 비롯한 조사단원들, 오 단장의 아들로 어린 시절부터 조사단 일원이었고 지금은 생물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 된 승준 씨, 황윤 감독, 그리고 감독의 아들 도영 씨까지, 이들은 함께 갯벌이 ‘살아있음’을 찬찬히, 끈기 있게 목격하고 기록한다.

 

누군가에겐 일터, 쉼터 그리고 집

 

영화 속엔, 감독이 만들려고 했지만 실패했던 다큐멘터리의 장면들인 故 류기화 씨의 모습이 나온다. 직접 캔 생합으로 만든 생합탕을 끓여주는 ‘언니’이기도 했지만, 어민이었고, 갯벌이 일터인 노동자였다. 매일 갯벌에서 캔 생합 등을 팔며 자식들을 다 키웠다는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일터가 사라진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는다. 그는 갯벌을 지키려고 맞서 싸웠지만, 국가의 힘은 막강했다.

 

갯벌, 누군가에겐 소중한 일터였고 생활의 터전이기도 했던 장소는 사라져갔다. 황윤 감독이 다시 찾은 어민들의 마을은 생기를 찾아볼 수 없는 빈 집, 빈 가게들로 채워져 있었다. 어민들은 갯벌이었던 공간에서 이제 풀을 뽑으며 과거를 그리워한다. 청소 등 마을정비사업 일자리에 투입된 어민은 줄어든 수입을 얘기하며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울먹인다.

 

갯벌을 잃은 건 어민과 일부 시민들만이 아니다. 생합, 모시조개, 칠게, 흰발농게 등 수많은 생명체들이 갯벌을 잃고, 생명도 잃었다. 갯벌을 한 계절의 터전으로 여겼던 철새들 또한 피해자다. 단지 ‘자연’이나 ‘환경’이라는 말은 갯벌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한다. 영화는 갯벌의 ‘자연다움’을 보여주면서도 갯벌과 연결된 많은 생명들의 삶과 생애를 함께 좇으며 이 공간이 일터이자 쉼터, 생존 공간이며 집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 영화 〈수라〉에서 황윤 감독의 모습 (스튜디오 두마, 미디어나무, 스튜디오 에이드 제공)


아름다운 것을 본 죄

 

20년 가까이 갯벌을 지키며 갯벌의 삶을 기록해온 오동필 단장은 생물학자도, 환경학자도 아닌 목수다. 종종 아파트 보일러도 고친다. 조사단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각자 자신의 일을 하면서 조사단 활동을 이어나간다. 이미 개발사업은 진행됐고, 사라진 갯벌도 있는데 조사단은 어떻게, 왜, 이 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 걸까?

 

오동필 단장은 10만 마리의 도요새가 자신의 머리 위에서 군무를 추던 모습과 소리를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 아름다움을 본 죄가 있다고. 그리곤 바로 질문을 던진다. “근데 그것도 죄인가?” 상상만 했던 도요새의 군무를 직접 목격한 황윤 감독 또한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질문한다. “그럼 이제 나도 죄인이 된 걸까?”

 

영화 후반, 승준 씨는 군산 신공항 사업의 진행을 막기 위해, 수라 갯벌에 멸종위기종인 쇠검은머리쑥새가 살고 있다는 걸 증명해 내려고 쇠검은머리쑥새의 노래를 찾으러 다닌다. 그리고 그는 “억울하다”고 한다. 아빠가 본 것들, 이전 세대가 본 아름다움을 자신은 볼 수 없다는 것, 또한 그나마 자신이 본 것조차 다음 세대는 볼 수 없다는 것이 억울하고 슬프다고.

 

진짜 죄는 무엇일까? 도요새의 군무를 보지 못한 나는, 그 아름다움을 생각조차 못해본 나는 죄인이 아니니까 갯벌과 수많은 생명의 죽음에 책임이 없는 걸까?

 

▲ 영화 〈수라〉 중, 멸종위기종인 쇠검은머리쑥새의 노래 소리를 찾기 위해 녹음 중인 오승준 씨 모습 (스튜디오 두마, 미디어나무, 스튜디오 에이드 제공)


하루가 멀다 하고 기후위기와 관련된 뉴스를 접하는 요즘, 난리 난 세상 속에서도 좀처럼 바뀌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사회와,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모르고 호도하는 정치인들을 보며 우울해 하던 나에게 〈수라〉는 또 하나의 숙제를 안겨줬다. 갯벌이 남아있고, 여전히 살아있다고, 이걸 지켜야 한다고.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숙제를 받아든 마음이 무겁지 않다. 다 사라진 걸로만 생각했던 흰발농게가 십년을 버티고 버텨서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걸 발견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 개발사업 공사현장 옆에 알을 낳은 새들을 발견하고 그들을 위해 공사 중지를 요구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 갯벌이라는 이름을 잊지 않고 기꺼이 언제든 다시 불러주겠다고 기다리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희망은 있다. 20년 동안 활동해 온 새만금생태시민조사단이, 7년 동안 영화를 만든 감독이 그 희망을 보여줬다. 올해의 할 일 목록에 수라 갯벌 방문을 추가해 본다. ‘그 아름다움’을 본 죄든, 보지 못한 죄든, 이제 방관자가 아니라 죄인이 되기로 했다. 새만금신공항 개발사업 기본계획 취소소송 2차 재판이 진행 중이고, 새만금신공항 개발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활동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도 잊지 않을 테다.

 

※전북녹색연합(greenjeonbuk.org)에선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주최로 수라 갯벌을 방문하는 ‘수라갯벌에 들기’를 비롯해 기자회견, 집회 등의 소식을 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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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다 2023/08/09 [16:00] 수정 | 삭제
  • 수라.. 이 영화가 새만금에서 잼버리 난리 와중에 상영하고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눈물 날 것 같아요! 갯벌지킴이 분들, 황윤 감독님 고맙습니다 ㅠㅠ
  • 12 2023/08/08 [20:02] 수정 | 삭제
  •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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