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된 도리’로 내 삶을 펼쳐 보인다![박주연 기자의 사심 있는 인터뷰] 『잘하면 유쾌한 할머니가…』 저자 에디박에디라는 사람을 처음 알게 된 건 언제였을까? 실제로 만나서 조금씩 친해지게 된 건 언제부터였더라? 엄청 오래된 일은 아니지만,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는다. 인상적이지 않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조금이라도 활동을 해 봤다면 박에디를 모를 리 없고, 어느 순간 어디에선가 분명 그와 마주쳤을 테니까.
에디는 잘 알려진 트랜스젠더 활동가이지만, 물론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나에게 에디는 활동가 친구/동료일 뿐만 아니라 커피를 내려 주는 바리스타, 무대를 장악하는 스탠드업 코미디언, 온갖 행사 등에서 입담을 발휘하는 퀴어 셀러브리티, 조카들에게 열정적인 이모이자 두 댕댕이의 엄마인 여러 정체성과 재능을 가진 사람이다. 무엇보다 나의 세계를 넓혀 준 사람들 중 한 명이다. 그리고 이젠 에세이집 『잘하면 유쾌한 할머니가 되겠어』를 낸 작가가 됐다.
유쾌한 할머니가 될 준비를 마친 에디와 저자 인터뷰 자리를 빌어 유쾌한 수다 시간을 가졌다. 이 인터뷰가 박에디 매력의 10%라도 보여줄 수 있기를, 『잘하면 유쾌한 할머니가 되겠어』에 대한 독자들의 궁금증을 유발할 수 있기를 바란다.
-지난 1년 6개월 동안 쓴 책이 드디어 발간됐는데, 소감이 어떠십니까?
친구한테 선물 줄 때 포장을 하잖아요. 포장지도 고르고, 테이프로 붙이기도 하고. 어떻게든 포장을 끝내서 주긴 했는데, 속으로 이런 걱정을 하는 거죠. ‘그럴듯하게 꾸미긴 했는데 친구가 섭섭해하진 않을까, 허접하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하지?’ 등. 그런 기분이에요. 책 나온 지 이제 한 달 정도 됐는데, 아직 ‘사람들이 내 삶을, 내 글을 읽어주고 있다’는 생각까진 들지 않아요. 종종 산책 겸 광화문 교보문고에 걸어가서 확인하는데, 좀 신기한 기분은 들어요. 내가 쓴 책이 매대 위에 놓여있는 걸 보면 ‘내가 책 하나를 냈구나’ 싶은 느낌.
책이 나온 걸 언니는 알고 있는데, 엄마한테도 얘기했나 보더라고요. 엄마가 전화로 “대단하다”라고 “자랑스럽다”라고 했어요. 그런 말은 처음 들어봤거든요. 내 인생에 ‘자랑스럽다’는 말은 못 듣지 않을까 싶었는데, ‘엄마가 보기에도 괜찮은 일을 했구나’ 싶었어요. 그러고 나서 엄마가 “그래서 얼마 벌었냐?”라고 묻더라고요. 인세로 얼마 받았다고 했더니 “그것 밖에 안 되냐? 불쌍하다”라고. 자랑스럽지만 안쓰러운 걸로.(웃음)
-책 제목은 에디 아이디어에요?
출판사에서 “제목 뭘로 할까요?” 물었을 때 한 10개 정도 보내긴 했어요. 약간 장난으로 요즘 인기 있는 회귀물 웹소설 제목처럼 ‘다시 태어났더니 트랜스젠더인데 뭐 불만이라도?’(웃음) 등. 편집자랑 계속 이야기하면서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은 트랜스젠더 이런 얘기가 나왔는데, 할머니라는 말이 좋았어요. 사실 노년에 대한 두려움이 있거든요. 노년을 어떻게 준비해야 될지 모르겠고, 지금 아무리 준비한다고 한들 그게 대비가 되나 싶기도 하고. 늘 나한테 걱정거리인 거죠. 그래서 ‘유쾌한 할머니로 살고 싶다는 희망? 목표?’를 담아서 정한 제목이에요.
출판 계약할 때 편집자한테 “무슨 얘길 듣고 싶으신 거예요?” 물었어요. 그게 명확하지 않으면 책을 못 쓸 거 같았거든요. 그냥 에디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쓰고 싶은 거 쓰라고. 그래서 그럼 내 맘대로 쓸 테니 알아서 걸러달라고 하고 쓰기 시작했어요. 사실 나한테 어떤 작가 정체성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작가의 자세로 이런 이야기를 할 거야’는 애초에 생각도 안 했어요. 그냥 내 이야기를 하면 편집자가 책으로 잘 만들어 줄 거라는 생각으로 써서 힘들진 않았어요.
예상치 못하게 어려웠던 건 연도 맞추기? 이야기의 순서가 뒤죽박죽이 되면 안 되니까. 그리고 유년 시절, 청소년 시절 이야기를 쓰는 게 심적으로 힘들긴 하더라고요. 좋은 기억이 아닌데, 글 쓰다 보니 그때의 경험들이 다시 떠올라서 좀…. 그리고 최근에 성확정수술 하고 나선 글 쓸 땐 앉아 있는 거 자체가 힘들어서, 그때가 신체적으로 가장 힘들었다 정도?
-에디와 알고 지낸 초반엔 사실 ‘이 사람은 왜 이렇게 웃기려고 하지?’ 의문이 있었어요. 근데 그 이유가 책에 나오더라고요. “웃겨야 사는 여자” 부분을 읽으면서 그 때의 궁금증이 해소돼서 좋았는데, 또 다른 궁금증이 생겼어요. 그럼 웃겨야 사는 여자를 웃게 하는 건 무엇인가요?
내가 정말 미친 듯이 웃을 땐 우리 (트랜스)젠더 언니들 만났을 때. 언니들 만났을 때 들을 수 있는 언피씨한(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이야기들(웃음). 자신의 치부라고 할 수 있는, 상처가 될 수 있는 지점들을 되게 잘 이용하는 광대의 느낌이랄까? 분명 (트랜스젠더로서 경험한) 되게 아픈 이야기고 상처 입은 이야기지만, 언니들은 그걸 유머로 승화함으로써 힘든 시간을 견딘 거죠. 언니들의 그 이야기를 들을 때면 정말 침 흘리면서 웃어요. 이게 그냥 웃기기 위한 게 아니라, 삶의 애환이 담겨 있는 거니까. 웃음의 농도가 다르달까. 사실 웬만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오랜 시간 싸우고, 상처받고, 또 싸우면서 딱지가 생기고, 그게 살이 되는 시간들을 보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거니까. 정말 살아있는, 생기 있는 웃음이죠.
이렇게 언니들한테 배운 걸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 활동 등을 할 때 활용하기도 했어요. 청소년 트랜스젠더들 만나면, ‘당신들이 겪는 일들이 물론 힘든 일인 건 맞지만 인생을 넓게 보면 나의 모든 걸 다 내놓을 정도의 큰 일은 아니다. 괜찮다’고요. 그리고 그들을 웃게 함으로써, 그걸 넘어갈 수 있도록 에너지를 주는 거죠.
-멋지다. 내리사랑이 아니라 내리웃음이네요.
뭐 큰일을 한다기보다 연락 왔을 때 이야기 잘 들어주고 그러는 거죠. 가끔 누군가한테 그냥 이야기하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연락할 수 있는 사람, 그 이야기를 웃으면서 받아 줄 수 있는 사람의 역할을 하고 싶은 거 같아요.
문제가 없다는 걸, ‘정상’이라는 걸 증명해야 하니까요. 착한 아이가 되려고 했던 건, 증거가 필요했기 때문이었어요. 문제가 없다는 증거. 이젠 그 ‘정상’이라고 하는 게 시대와 사회 흐름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고, 그 ‘정상’이라는 개념 자체도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거라는 걸 알게 됐지만요. 그게 절대적인 게 아니라는 것도. 오히려 지금은 누군가가 그 ‘정상성’을 무기로 사용해서 사람들을 괴롭힌다는 걸 아니까, 그걸 추구하지 않게 됐어요.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그 ‘정상성’을 위해 몸도 수술하고 그랬는데, 그 과정이 지나고 모든 통증을 견뎌내고 보니까 그 ‘정상성’이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대체 ‘정상’이 뭘까? 진짜 여자가 아니네 어쩌네 해도, 적어도 난 내 질 길이도 알고 높이도 알고, 질을 관리하고 케어하는데 정성을 쏟으면서 내 몸을 이해했는데, 이건 ‘정상’이 아닌가? 그래서 이젠 혐오댓글을 봐도, ‘그러던가 말던가’ 해요. 해탈한 느낌?
-새롭게 알게 된 것도 있어요. 에디가 조카들이랑 친한 건 알았지만, 막내 조카 육아를 이렇게 담당했는진 몰랐거든요. 한국 사회에서 퀴어와 육아, 양육은 거리가 멀다고 해야 할까, ‘허락되지 않은’ 분야처럼 느껴지기도 한데요. 아이 돌봄이 에디에게 미친 영향이 있다면 어떤 걸까요?
‘애가 꼭 있어야 하나?’라는 생각.(웃음) 조카 돌봄으로 한번 양육을 해 봤으니까, 이걸로 됐다. 감사하다(웃음) 조카는 너무 사랑스러웠고, 정말 사랑하는데 그만큼 나의 시간, 나의 에너지를 줘야 하더라고요. 왜 미련 없이 사랑하면 이별할 때도 괜찮다 그렇잖아요. 그런 느낌이었어요. 물론 객관적으로 봤을 때 부족했을 수도 있지만, 난 정말 열심히 했으니까.
사실 내가 트랜지션을 시작할 때만 해도 재생산권에 대해 전혀 생각을 못 했어요. 근데 몇 년 후, 해외에서 온 트랜스젠더 동생이 트랜지션을 시작하기 전에, 미래의 출산 가능성을 준비하는 걸 보고 되게 충격받았어요. 트랜스젠더 여성으로 산다는 건 당연히 그걸 포기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누군가는 다른 선택지를 고려하고 준비를 하더라고요. ‘난 왜 저런 방법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더 깊이 생각하지 못했을까’ 싶어서 뭔가 놓친 기분이 들었어요. 이 생각도 조카 돌봄 이후에 하게 된 거긴 하지만, 그래도 그 돌봄의 경험이 나를 채워준 부분은 분명히 있어요.
양육과 아이라는 건 분명 인생의 큰 가치일 수 있지만, 삶에 그런 가치는 여러 개라고 생각해요. 만약 100개의 가치가 있고 한 사람당 5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면, 난 양육이 아닌 다른 5가지를 선택할 거 같아요. 사실 진짜 힘들기도 했고. 내가 술을 정말 잘 안 마시는데, 그때 애들 재우고 처음으로 냉장고에 있는 캔맥주 꺼내서 마셨잖아.(웃음)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에겐 고정적인 이미지나 편견이 있는데, 사실 그렇지 않잖아요. 정체성 안에서도 변하고요. 책에서도 트랜스젠더로서의 에디가 변화하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는데요. 에디가 처음 정체화 했을 때의 ‘트랜스젠더’와, 지금 생각하는 ‘트랜스젠더’의 의미는 달라졌나요?
너무 너무 너무 다르죠. 사실 난 트랜스젠더 혐오가 정말 심했어요. 내가 트랜스젠더지만, 트랜스젠더가 싫었고 무서웠어요. 우리 사회가 그랬으니까요. 심지어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들어오고 나서도 트랜스젠더 혐오를 많이 목격해서, 트랜스젠더는 그냥 빨리 수술해서 트랜스젠더인 적이 없었던 것처럼 티나지 않는, 과거가 없었던 것처럼 사는 걸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트랜지션을 하면 그 때부터 내 인생이 시작된다고 믿었고요.
물론 지금 성확정수술도, 성별정정도 끝나서 이렇게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걸지 모르겠지만, 그때의 그런 조바심은 필요 없었던 것 같아요. 그건 사회가 요구했던 거죠. 트랜지션이고 수술이고, 자신이 원할 때 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트랜스젠더도 그냥 사람이고,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는 거죠. 그래서 이젠 특별히 ‘트랜스젠더’의 삶이 아니라, 트랜스젠더 개개인의 삶을 볼 수 있게 됐어요. 트랜스젠더는 다른 사람에 비해 해내야 하는 퀘스트(quest)가 몇 개 더 있을 뿐이지, 그냥 평범한 삶이라 생각해요. 나도 마찬가지예요. 그냥 내 인생을 말하면 뭔가 설명이 더 필요하니까, 트랜스젠더의 삶이라고 말하는 것뿐이에요. 주변만 봐도, 이야기가 다 다르거든요. 트랜스젠더에게도 각자 추구하는 방식이 있고, 각자의 사정이 있어요. 난 남들이 뭐라 해도 그냥 좀 더 편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니까 이렇게 사는 거예요(웃음)
‘젠더된 도리’는 내가 받은 게 많아서 그래요.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에서 언니들이 정말 잘해줬거든요. 만나면 밥도 사주고 커피도 사주고. 호주에 워킹홀리데이 간다 그랬을 때 어떤 언니가 20만 원을 주더라고요. 왜 주는 거냐고 했더니 가서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하길래 그걸로 어학사전을 샀어요. 그렇게 여러 가지를 받았어요. 나이 많은 언니들이 “너의 가능성이 부럽고, 앞으로 네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 부럽다. 너는 잘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하면서 나에게 준 것들이 있으니까. 난 운이 좋구나, 그래도 시대를 잘 타고났구나 싶은 생각이 들죠.
-‘OO한 도리’로 뭘 해야 한다는 게 조금 부담스럽진 않을까, 힘들진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거든요.
그렇진 않아요. 내가 받아봤잖아요? 그걸 받아보니까, 또 내가 줄 수 있더라고요. 그게 어렵지 않았고요. 억지로 주는 게 아니니까. 그렇게 할 수도 없고. 그냥 내가 받은 거, 내가 가진 걸 주는 거죠. 그렇다고 뭘 물질적인 걸 준다는 게 아니라, 성별정체성, 트랜지션, 성확정수술 등을 고민할 때 ‘저렇게 재미있게 사는 사람도 있으니까 (트랜스젠더로 사는 거) 괜찮은가 보다’ 생각하게 하고 싶은 거죠. 그 정도만 해도 내 역할을 하는 거 아닐까 싶어요.
-벌써 2쇄를 찍었다고요, 반응이 빠르니 좋네요. 어떤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어요?
성별정체성을 고민하는 사람들. 나이가 적든 많든, 그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읽었음 해요. 그들이 읽고, ‘뭐 엄청 특별하지 않네, 그냥 만만하네’라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책 쓸 수 있다는 걸. 나도 하는데, ‘야, 너두?’(웃음)
네,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의 김일란 감독 연출의 〈에디와 앨리스〉가 내년에 공개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과 기대 부탁드려요.
-또 다른 계획들도 알려 주세요.
트랜스젠더 사랑방을 만들고 싶어서 계획 중이에요. 성별정체성을 고민하고 있거나 트랜지션을 시작한 사람들이 편하게 올 수 있는 공간이요. 쉼터는 아니고 그냥 와서 커피 마시고 이야기 나누고 얼굴 볼 수 있는 그런 공간이요. 이건 아마 10월~11월 사이에 오픈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거기서 자조모임도 하고 싶고요. 사람들에게 소속감을 줄 수 있는 공간이 됐음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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