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사건을 상담, 지원하는 현장 단체들은 꾸준하게 성폭력의 판단기준을 ‘폭행과 협박’이 아닌 ‘동의 여부’로 바꾸는 법 개정과 사회 인식의 변화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성폭력 운동을 하는 단체들의 경험과 목소리를 토대로 현행법 상 드러나는 쟁점과 문제, 개정의 필요성을 담아 총 7회에 걸쳐 릴레이 칼럼을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지난 2월 8일, ‘비동의 강간죄’ 도입에 대한 입장을 묻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아동, 장애인 등은 특별법이 있고, 실질적으로 동의를 요하지 않는 규정들이 특별법상 굉장히 많다. (중략) 특별법으로 상당 부분 비동의 강간죄의 필요성을 많이 메꾸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과연 장애여성 성폭력 사건은 ‘폭행‧협박’이 없어도 특별법 안에서 제대로 가해자가 처벌되고 있을까?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6조 (장애인에 대한 강간‧강제추행 등) ④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로 항거불능 또는 항거곤란 상태에 있음을 이용하여 사람을 간음하거나 추행한 사람 ⑤⑥ 위계(僞計) 또는 위력(威力)으로써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가 있는 사람을 간음/추행한 사람
위 내용이 장애인 성폭력 사건에서 ‘폭행‧협박’ 없어도 처벌할 수 있는 특별법 조항이다. 해당 조항의 입법 취지는 비장애인과 다르게 ‘폭행‧협박’이 전제되지 않아도 장애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충분히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폭넓게 판단하기 위함이다.
위 조항으로 범죄를 입증하려면 다음과 같은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1)피해자의 장애 정도가 심하여 항거불능 상태였는지, 2)가해자는 피해자의 장애를 알고 이를 이용했는지, 3)‘폭행‧협박’이 아닌 ‘위계‧위력’을 사용했는지다.
수사기관과 사법부는 각 요건들을 입법 취지에 맞게 폭넓게 해석하고 있을까?
‘장애’로 인해 얼마나 무력하고 무능했는지 입증해야 성폭력 인정
피해자 지원 경험을 기반으로 보면, 수사기관과 사법부는 장애여성 대상 성폭력에 대해 매우 협소하게 판단하고 있다. 이로 인해 장애여성 성폭력 피해자 지원현장은 다음과 같은 첨예한 질문과 문제의식을 가지게 된다.
첫 번째, 피해자의 항거불능 상태는 ‘장애가 얼마나 심한가’이다.
수사기관은 피해자의 장애 정도를 파악하기 위해 피해자 가족, 지원기관에 종합심리평가 결과, 장애인등록증, 의사소견서 등의 제출하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피해자의 진술을 청취한 주변인들을 참고인 또는 증인으로 소환하여 피해자의 인지능력, 사리분별력/대처 및 문제해결 능력, 의사소통 정도, 상황에 대한 이해도 등을 질문한다.
재판에서 무려 9명이 증인으로 출석하여 11회의 증인신문이 이뤄진 적도 있다. 이같은 과정을 통해 장애여성 피해자가 얼마나 무력하고 무능한 존재인지 철저하게 입증되어야만 피해자로서의 ‘자격’을 부여받는다.
그러나 피해자의 ‘장애 무능’을 입증함으로써 가해자의 유죄를 판결하는 방식은 피해자에 대한 정당한 권리 보장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는 오히려 피해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며, 그로 인해 장애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인권의 문제들이 드러나기 어렵게 된다.
장애여성 중에서도 무능력하고 무성적인 존재를 선별하여 보호하고자 하는 법의 태도는 성적 자율성 대신 성적 보호를 선택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성적 자율성과 성적 보호 어느 하나도 제대로 달성하지 못하게 된다. 성폭력으로부터의 보호와 성적 자율성의 증대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동시에 추구되어야 달성될 수 있다. (김정혜, 지적장애여성 성폭력 판결의 판단 근거 분석, ⌜장애와 성폭력, 이게 최선입니까?」 자료집, 2016)
대부분의 장애여성 성폭력 피해자는 장애 정도가 심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수사기관은 ‘일반 초‧중‧고 졸업, 직장 근무, 일반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였고, 응용력이 떨어졌을 뿐 일상적인 정상 생활이 가능하였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먼 거리를 혼자 이동하거나, 지능에 비해 사회적 기능을 비교적 잘 해내고 있고, 진술시 의사 표현은 어느 정도 명확하게 하는 편이며, 독립적인 생활하는 것이 가능하다’ 등의 파악된 내용을 바탕으로 장애여성이 일상생활이 가능한 ‘의사결정능력’이 있기 때문에 항거불능 상태가 아니며,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 할 정도의 장애는 아니라고 판단한다.
왜 장애여성 성폭력 사건의 유무죄 판단 근거가 피해자의 ‘장애’가 되어야 하는가? 왜 장애여성의 일상생활 능력이 성적 자기결정권 행사 능력으로 협소하게 해석되는가?
두 번째, 대부분의 가해자들은 상대방의 장애를 몰랐다고 주장한다. 장애를 ‘이용’해 성폭력을 행사했다는 고의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수사기관과 사법부도 앞서 언급한 장애여성의 일상생활 능력을 근거로 가해자가 장애를 몰랐을 수 있다고 가해자의 주장에 손을 들어준다.
심지어 ‘똘똘해서, 동정심에 물건을 사주고, 학용품점을 구경 가고, 훈계한 적은 있는데, 돈을 달라고 해서 줬다’는 등, 가해자가 피해자의 장애를 알았다는 것을 의심할 만한 언행이 충분함에도 가해자의 진술 신빙성은 인정을 받는다.
세 번째, ‘예쁘다, 사랑한다, 결혼하자, 돈을 벌게 해주겠다, 필요한 거 사 주겠다’ 등 가해자의 고의적인 언행은 피해자가 ‘사랑을 해줘야 하나, 호감, 절친, 예뻐서 준 거’와 같이 생각될 정도로 충분히 ‘오인, 착각’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수사기관에서 법원에서 가해자의 해당 언행은 친근감을 표시하며 접근하는 행위, 만남을 제안하는 내용, 편익을 제공하는 것에 불과할 뿐, 피해자에게 ‘오인, 착각’을 일으키는 행위인 ‘위계’로 판단하지 않는다. 가해자의 위계적 언동으로 피해자가 피해 행위에 이르게 된 맥락적 동기와 내심의 의사, 가해자가 피해자의 심적 상태를 이용한 점은 중요하게 분석되지 않는 것이다. 그로 인해 피해자는 본인 의사에 기반하여 스스로 선택하여 ‘자발적으로 성적 행위에 합의’한 것이 되어버린다.
‘위력’의 경우, 도구를 이용해 목을 누르고, 양팔을 잡고, 손목을 잡은 채, 어깨를 누른 행위가 피해자에게 충분히 위협적인 상황임에도, 위력을 행사했다고 판단하지 않는다. 최소한의 ‘물리적인 위력’조차도 인정되지 않는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업무상 위력 간음죄’가 주목을 받았을 때, 일부 법조인들이 성인여성에 대한 ‘위력’ 성폭력은 인정이 어렵다고 하면서, 미성년자이거나 장애인인 경우에만 해당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위세와 권세인 위력이 왜 피해자의 나이와 장애 여부로만 판단되어야 하는가? ‘위력’은 차별적이고 불평등한 위치에 있는 ‘누구나’에게 행해질 수 있다. 수사기관과 사법부는 ‘위력’에 대한 아래의 대법원 판례를 적극 적용해야 한다.
[‘위력’이란 피해자의 성적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세력으로 유형적, 무형적이든 묻지 않으며, 폭행‧협박 뿐 아니라 행위자의 사회적‧경제적‧정치적인 지위나 권세를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위력으로서 추행한 것인지 여부는 피해자에 대하여 이루어진 구체적인 행위의 경위 및 태양, 행사한 세력의 내용과 정도, 이용한 행위자의 지위나 권세의 종류, 피해자의 연령, 행위자와 피해자의 이전부터의 관계, 피해자에게 주는 위압감 및 성적 자유의사에 대한 침해의 정도, 범행 당시의 정황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하고…] (대법원 2019.6.13 선고 2019도3341 판결 등)
장애여성이 ‘주체’가 되는 동의 ‘항거불능’한 삶을 강요하는 구조적 차별에 저항하기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강간죄를 판단할 때 실질적으로 ‘동의를 요하지 않는’ 규정들이 특별법으로 많다고 했다. 법 적용에서 그 대상은 ‘보호’라는 이유로 사리분별 및 동의능력 등이 성인(성년)의 결정과 동일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미성년자(아동‧청소년), 장애인일 것이다. 그렇다면 장애여성 피해자의 ‘동의’란 무엇일까?
장애여성은 시민, 동료, 친구로서 존중받아본 경험보다 무시와 차별을 일상적으로 경험하며 살아간다. 장애여성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 당시 가해자의 요구를 참고 들어줌으로써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는 것 외에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었을까? 일상의 차별이 내재화되어 있는 장애여성이 본인에게 성적 권리가 있고 상대방에게 동의 여부를 말하고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경험을 하는 것이 가능할까?
동의의 표현은 자유권에 기반해 진공상태에서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표현 가능한 ‘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동의‘의 권리는 당연히 존재하지만 그것을 실현시키는 과정에는 실패와 연습, 좌절, 지지 등 평등을 위한 대안적 관계와 사회적 조건들이 필요하다. 따라서 국가와 사법부의 책무는 장애여성의 취약성과 능력의 입증이 아닌, 취약한 인권의 고리를 찾는 것이다.(이진희, 장애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 ⌜인천대학교 기초학문진흥을 위한 제2차 컬로퀴엄」 자료집, 2023)
그리고 장애여성의 불평등한 위치성과 구조적 차별에 대한 통합적인 이해에 기반하여, 장애여성의 진정한 ‘동의’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사회적‧사법적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강간죄를 개정해야 한다. 강간죄 개정 운동이 성폭력의 구성요건을 ‘동의 여부’로 바꾸고자 하는 것은 동의를 요하지 않는, 부동의 의사가 무시되기 쉬운 존재들이 무력한 피해자로만 호명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또한 시민으로서 필요한 사회적 권리의 조건들을 더 알려내고 구체적으로 요구하기 위함이다.
장애여성운동은 강간죄 개정 운동을 통해 장애여성은 동의를 ’요‘하지 않는 존재가 아니라 동의의 ’주체‘라는 것을 드러내고, 장애여성의 ‘항거불능’한 삶을 강요하는 구조적 차별에 저항하며 진정한 ‘동의’가 무엇인지를 더욱 명확히 정의할 것이다.
[기록] 장애여성공감: 장애여성인권운동을 하는 단체입니다. 장애여성을 배제하는 제도와 기준이 가진 문제에 공감하고 다양성이 인정되는 사회를 만들고자 1998년에 창립했습니다. 장애여성이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서 선택과 결정이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어나가며, 소수자들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사회에 변화를 일으키는 움직임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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