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인터섹스’인 사람들이 있다는 것, 상식이 되길인터섹스 권리를 위해 활동하는 닥터 스몰(Dr. Small) 인터뷰성소수자를 나타내는 LGBTQI+ 중에서 ‘I’는 인터섹스(intersex, 간성)이다. 중국어로는 双性人(쌍성인)이라고 쓴다. 성기, 생식기, 생식선, 염색체, 호르몬 분비 등이 ‘남자’ ‘여자’라는 성별 이분법에 들어 맞추기 어려운 사람을 이르며, 1.7%의 확률로 태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적지 않은 숫자다.
홍콩에 사는 닥터 스몰 씨도 그 중 한 사람. 현재는 인터섹스 당사자로서 국내외에서 권리옹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의학상 DSD(Disorders of Sex Development, 성발달 이상)이라는 용어도 있지만, 스몰 씨는 일부러 그 용어를 쓰지 않는다.
“DSD는 의학적 개념입니다. 인터섹스의 몸을 ‘질병’으로 보고, ‘평범한 신체’로 ‘치료’하는 데에 이릅니다. 지금까지 제가 겪은 고통을 생각하면 DSD로 우리를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태어났을 때 스몰 씨의 몸에는 작은 페니스 같은 것이 있었지만, 통상 질이 있는 부분에 요도구가 있어 남아와 여아 중 어느 쪽이라고도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제가 첫째였기 때문에 부모는 제가 남자아이이길 바랐죠.”
여덟 살 때부터 스무 차례 이상 수술을 받았다. 후에 비대해진 클리토리스라는 사실이 밝혀진 ‘페니스’에 요도와 요도구를 만들고 ‘페니스’를 크게 하는 수술이었다.
“학교에서는 소변보는 방법이 다르다고 같은 반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했어요. ‘서서 싸기’를 할 수 있으면 놀림을 당하지 않는다, 어엿한 남자가 될 수 있다는 의사의 말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페니스가 작으면 여성들과 제대로 사귈 수 없다, 아이를 못 가진다 같은 말도 들었어요.”
아이가 감당하기에 무척이나 괴로운 수술이 계속되었지만, 좋은 예후를 보장받지도 못한 과정이었다.
“스무 번 이상 수술했다고 말했지만, 사실 너무 고통스러워서 도중부터는 세기를 포기했습니다. 상처의 염증이 너무 아파서 마약 같은 강한 진통제를 쓴 적도 있었고요. 심할 때는 네 개의 구멍으로 동시에 배뇨를 하며 극심한 통증과 수치심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수술 때마다 의사는 실패했다고 했어요. ‘나는 실패한 인간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됐죠.”
열세 살 때, 같은 병실에서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자살을 했다. 충격과 함께, 살리지 못했다는 자책감 때문에 고통스러워할 때 의사는 또다시 수술의 실패를 전했다. 그 때 스몰 씨는 의사에게 “더 이상 수술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의사는 수술을 하지 않으면 더욱 힘들어진다고 했지만, 전 이런 인생이라면 오래 살아봤자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많은 어린이가 불필요하고 고통스러운 의료행위 당하고 있어
학교에서의 괴롭힘은 계속됐다. 열여섯 살 때 가슴이 살짝 나오기 시작해 학교를 그만두었고, 이후 직장에 다닐 때도 괴롭힘을 당했다.
나이 서른에 받은 건강검진을 통해, 체내에서 미발달된 자궁과 짧은 질이 발견되었다. ‘정소’ 조직을 검사해보니 ‘난소’에 가깝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의사는 스몰 씨가 ‘인터섹스’라고 했다. 그 후, 암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여 2009년에 남성기를 절제했다. 그리고 의사로부터 “당신이 받아온 것 같은 수술을 지금도 많은 아이들이 받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충격이었습니다. 내가 겪은 경험을 다른 어린이들이 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
스몰 씨는 혼자서 인터섹스 권리옹호 활동을 시작했다. 페이스북 페이지를 열어 상담을 접수받기 시작하자 홍콩뿐 아니라 중국, 대만에서도 상담 요청이 왔다.
“우선은 인터섹스인 어린이에 대한 불필요한 수술을 멈출 것. 그리고 인터섹스라는 이유로 우생중절 등을 당하지 않을 것, 의료진에 따라 의료수술과 의료행위를 당하지 않을 것, 태어난 그대로의 몸을 존중할 것,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보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의사가 된 후 인터섹스 당사자로 커밍아웃 ‘다른 것’은 병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몸을 존중하라
잦은 수술로 너덜너덜해졌던 자신의 몸을 돌보기 위해 한방을 공부한 것을 계기로 한의사가 된 스몰 씨. ‘스몰’이라는 이름은 스스로 지어 붙인 것이다.
“열세 살 때부터 ‘스몰’(Small)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싫었는데, 어느 날 저도 큰 목소리로 얘기하고 있더라고요. 저는 기독교 신자인데, 항상 겸허하라는 의미로 붙였어요. 이름이 불릴 때마다, 너는 작고 작은 인간이다 라는 가르침을 얻습니다.”
처음엔 “인터섹스 어린이의 권리를 주장하는 한의사”로서 발언을 해왔는데, 언론이 트랜스젠더와 인터섹스를 혼동하거나, 성소수자 운동 안에서도 인터섹스의 실태와 이들이 겪는 어려움이 잘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감각이 있었다.
그래서 닥터 스몰 씨는 2015년에 유엔에서, 이듬해에는 홍콩에서 인터섹스 당사자로 커밍아웃을 했다. 유엔은 2016년에 인터섹스를 대상으로 한 불필요한 의료개입을 막고, 고용과 교육 등에서의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언론에서 발언 기회도 늘어났고, 2017년 7월에는 자서전 『성별고백-‘그’라고 쓸 때』(性別告白-當我提筆寫「他」)를 홍콩에서 출판했다. 2020년 이후에는 국제적 네트워크와 연대하여 정치인들에게 인터섹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제화를 요청하거나, 당사자 상담을 받으며 착실하게 권리옹호 활동을 하고 있다.
“수술 당한 저의 몸은, 더 오래 살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지금은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단순해요. 사회 전체가, 인터섹스인 사람이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통역/협력: 아츠타 케이코]
-〈일다〉와 기사 제휴하고 있는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 제공 기사입니다. 고주영 씨가 번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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