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보다 앞서 강간죄 개정한 일본…‘비동의 성교죄’ 들여다보기日 ‘비동의 성교 등 죄’ 도입, 당사자들의 목소리 전해졌다일본은 지난 6월 16일, 국회에서 ‘강제성교 등 죄’가 ‘비동의 성교 등 죄’로 변경되는 등 형법 성범죄 규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2017년 6월에도 법이 개정된 바 있으나, 그때는 한국의 현행 ‘강간죄’와 마찬가지로 폭행‧협박 요건이 삭제되지 않은 점, 공소시효 기간 등 남겨진 문제가 있었다. 당시부터 형법의 재검토와 개정을 요구하며 로비 활동을 해온 당사자단체 ‘Spring’의 대표 다도코로 유(田所由羽) 씨의 글을 싣는다. [편집자 주]
폭행‧협박 기준 삼는 ‘강제성교 등 죄’를 ‘비동의 성교죄’로 500회 이상 국회의원과 면담한 성폭력 피해자들
사단법인 Spring은 2017년 7월 설립 당시부터 형법 개정안 통과를 위해 성폭력 피해 당사자의 실태와 목소리를 입법의 장에 전달하고자 활동해왔습니다. 6년의 활동이 결실을 맺었습니다. 함께 목소리를 높여주신 시민들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새로운 형법은 폭행‧협박이 있을 경우에만 ‘강제성교 등 죄’가 성립하는 기존 법의 요건을 다시 검토했고, ‘동의 없는 성행위는 처벌의 대상’이라는 메시지를 조문과 죄명에도 명확하게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성적 동의 연령이 16세 미만으로 높아졌습니다. 지위관계성을 이용한 성행위에 대한 처벌규정이 포함된 점과, 공소시효가 재검토된 점 등은 큰 진전입니다.
① ‘강제성교 등 죄’(폭행 혹은 협박을 이용한)와 ‘준강제성교 등 죄’(심신상실과 저항이 현저히 곤란한 상태로 만든다) ⤑ ‘비동의 성교 등 죄’로 개정.
▶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사의 형성, 표명, 그리고 관철이 어려운 상태가 되는 여덟 가지 행위와 상황은 다음과 같다. -폭행 혹은 협박 -심신의 장애 -알코올 혹은 약물의 영향 -수면, 의식불명 -갑자기 피해를 당해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보일 틈이 없음 -공포와 놀람으로 경직된 상태 -학대에 의한 공포심 등의 심리 반응 -(상사와 같은) 경제적, 사회적 관계의 지위에 근거한 영향력
② 성교 등의 규정으로서 “질과 항문, 구강에 신체의 일부 혹은 물건을 삽입한다.”
③ 공소시효 15년. (피해 당시 18세 미만인 경우는 피해자가 18세가 될 때까지의 기간을 가산. 0세의 피해의 경우 15년+18년=33년으로)
④ 성교 동의 연령 16세. (피해자가 13세에서 15세 사이일 경우, 상대가 5세 이상 연상이라면 처벌. 5년 이상 연상이 아닌 경우라도 상기 ‘비동의 성교 등 죄’의 요건이 인정되면 처벌)
⑤ 16세 미만인 자에 대한 면회 요구 등의 죄 (신설)
⑥ 성적 촬영죄(제공죄, 보관죄, 기록죄 포함) (신설)
Spring은 형법 개정을 목적으로 한 로비 단체로서, 지금까지 연인원 500명 이상의 의원들과 면담을 거듭해왔습니다. 우리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준 분도 있지만, 성폭력에 대한 이해가 없거나 법 개정에 대한 견해와 의견이 다른 의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의원과도 말싸움을 벌이거나 일방적으로 요구하지 않고, 여러 조사에 근거한 증거를 제시하고 합의점을 도출하고자 대화를 이어가는 일을 중시했습니다.
대화를 통해 우리를 믿어준 의원에게 다른 의원을 소개받아 면담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서서히 형법 개정 의견을 함께하는 의원이 늘어났습니다. 그런 가운데 피해당사자가 사상 처음으로 법무성의 검토회의 및 법제심의회의 위원으로 선출되었습니다.
2019년 3월, 성폭력 사건에 대한 네 건의 무죄 판결이 잇따르자 ‘플라워 집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플라워 집회와 연대하며 성폭력을 없애자고 말하는 개인들의 메시지를 사진으로 찍어 가시화하는 ‘One Voice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또한 실태조사 설문을 통해 5,899건의 답신을 받았고, 이 답신은 형법 개정을 추진하고자 하는 의원들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서명운동, 기자회견, 원내 집회 등을 진행하면서 법무성 검토회의, 범제심의회에서 이루어진 논의에 기반한 요청서를 몇 번이고 작성하며 당사자의 실태를 위원들에게 전달해 왔습니다.
우리가 가장 강력하게 호소한 점은 사람이 성폭력에 직면하면 성별 불문하고 다수의 경우 공포와 놀람으로 인해 저항하지 못한다, NO라고 말하지 못하고 굳어버린다, 그 결과 막대하고 장기적인 피해가 발생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행위를 하려는 쌍방이 서로의 동의를 제대로 확인하기 위한 법 정비가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Yes Means Yes 형태로
2021년 5월의 법무성 검토회의 종합보고서에는 “성범죄 처벌 규정의 본질은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았음에도 성적 행위를 하는 점이다”라고 명기되었습니다. 이 일치된 결론을 기반으로 조문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사”라는 문구가 포함되었습니다.
수면·약물 복용 등의 영향으로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사가 형성될 수 없는 경우, 혹은 형성되었다고 해도 장기적인 학대의 영향이나 공포, 놀람 등으로 그 의사를 표명할 수 없는 경우, 표명을 했다 하더라도 상대의 고압적인 태도로 인한 공포로 도중에 저항을 포기하여 관철할 수 없는 경우 등에 입각한 여덟 항목의 요건이 마련되었습니다.
이는 “No Means No” 형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처벌 규정의 본질 및 조문에 부합하는 명칭으로서 죄명도 ‘비동의 성교 등 죄’로 변경되었습니다.
한편으로 과제 역시 남아 있습니다. 피해자가 성행위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재판에서 인정받아도, 가해자가 “동의했다고 생각했다”고 주장하면 무죄 판결이 나올 우려가 있습니다. 이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서는 성적 동의의 개념을 사회의 상식으로 삼아 “상대의 동의를 확인하지 않고 성행위를 한 자는 처벌한다”는 “Yes Means Yes” 형태의 처벌 규정을 형법에 포함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지위 관계를 이용한 성범죄, 공소시효 등 과제 남아
또한, 지위 관계를 이용한 성범죄 처벌 유형이 신설되지 못하고 교사와 학생, 의사와 환자 등 분명하게 대등성이 없는 관계성이 구체적으로 명기되지 못한 점은 한계로 남습니다. 장애인에 대해서는 장애 특성을 배려한 성범죄 규정의 창설이 필요합니다.
성교 동의 연령은 13세 이상 16세 미만의 경우 가해자가 5살 차 연상이라는 요건이 붙었지만, Spring은 성인 연령(18세) 이상의 자가 16세 미만과 성행위를 갖는 것은 법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대등성이 없는 관계이며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재검토가 필요한 부분이 공소시효입니다. 동의 없는 성교의 공소시효는 5년 연장, 그리고 18세 미만의 피해는 실질적으로 33세까지 공소할 수 있게 되었지만 아직 충분하지 못합니다. 어린 시절의 경험이라 성적 피해라고 인식하지 못하거나, 해리성 기억상실, 장기간의 심리적 돌봄 등의 이유로 피해를 신고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피해자들의 존재가 간과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우리의 염려를 국회 심의 기간 중에 의원들에게 계속해서 전달해, 중의원에서 수정 협의를 통해 부칙이 만들어졌고, ‘시행 5년 후의 재검토, 필요한 조사 실시’가 명기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새로운 형법에 근거해 동의 없는 성행위가 적절하게 처벌될 수 있도록 법의 운용 상황을 주시함과 동시에, 재검토를 위한 실태 조사가 실시되도록 강력하게 요구하며 앞으로도 계속해 활동해 나갈 것입니다.
-〈일다〉와 기사 제휴하고 있는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의 보도 기사입니다. 고주영 씨가 번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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