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다〉는 여성 노동자가 겪는 구조적 차별을 드러내기 위해, 연속 세미나 [다섯 가지 키워드로 본 여성과 노동]을 기획했다. 세 번째 키워드 ‘화장실/젠더 건강’에 관한 논의는 9월 1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사무실에서 열렸다. 기록노동자 희정이 진행과 기록을 맡았다. [편집자 주]
화장실 조건에 몸을 끼워맞추는 노동자들
학습지 방문 노동자였던 나의 어머니는 화장실로 인한 불편함을 겪고 싶지 않아, 일할 땐 물을 거의 마시지 않는다고 했다. 그게 버릇이 되어 신장에 문제가 생겼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이하 한노보연)에서 다양한 직군의 여성 노동자 88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성노동자 일터 내 화장실 이용 실태 및 건강영향 연구〉에 따르면, 이동/방문 군의 응답자 57.7%가 근무 중 원할 때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이 거의 대체로 불가능하거나, 전혀 가능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여성 노동자들이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하는 조건에 자신의 몸과 일상을 맞추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공통적으로 흔한 방식은 화장실에 가고 싶은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본인이 알아서 수분이나 음식 섭취를 제한하고, 그래도 가고 싶게 되면 참다가 점심, 휴식 시간에 다녀오거나 근무 사이에 주변에 양해를 구하고 급히 다녀오는 방식이다.”(연구 보고서 중)
이나래(한노보연 활동가): 화장실 이용 실태를 보며 느꼈던 건데, 일터와 삶터가 딱 분리되지 않잖아요. 서로가 영향을 미치거든요. 일터에서 형성된 습관이나 몸의 상태가 퇴근하고 돌아갔을 때도 유지되잖아요. 학교 급식실 노동자분을 만났을 때, 화장실 일지 쓰기를 함께 했어요. 그 일지를 보면, 이분은 일하는 시간 동안에는 한 번도 화장실을 가지 않다가 퇴근하고 집에 가면 더 여러 차례 화장실을 가게 되는 거죠.
신장에 돌이 생길 때마다 어머니도 나도 그 원인을 알았지만,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는 몰랐다. 나 또한 취재를 주로 하는 이동 노동자로, 취재 현장에 가면 화장실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지금껏 나는 그것을 강한 의지와 집중력이라 생각했는데, 실은 일터의 조건이 만든 몸의 변화였다. 당연히 방광염이 따라왔다. 그런데도 왜 이것을 노동이 아닌 의지의 문제로 여겼을까.
인간은 자신에게 닥친 사안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길 바라고, 내게 화장실 사용은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그러니 나는 ‘이겨내고’, 나의 어머니는 적응했다. 많은 이들이 그런다. 투덜거리거나 불만을 말하지만 그 불만을 제기하진 못한다. 화장실을 ‘어쩔 수 없는’ 것이니.
여성과 화장실
김미르(『미르의 공장 일지』 저자): 화장실 잘 못 가고 하다가 옆구리 통증이 갑자기 와 가지고 그대로 엎어졌어요. 응급실로 갔는데, 신장에 이만한 돌이 있대요. 수술해야 한다고 했는데, 저도 모르게 그랬어요. ‘일하러 가야 하는데요. 일단 퇴원을 하고 회사에 말하고 올게요.’ 그런데 회사에서 수술 날 병가를 못 쓴다는 거예요. 병원을 바꾸래요. 제가 수술을 받아야 하는 날에 제사 때문에 빠지는 사람이 있고, 인원이 빈다고 안 된다는 거예요. 나는 죽을 것 같이 아픈데, 그래서 진짜 안 되겠다 싶어서. ‘그건 제 몫이 아닌 것 같아요.’ 확 내지른 적이 있어요.
일터에서 화장실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 김미르가 해준 이야기이다. 수술을 위해 병가를 썼다는 이야기지만, 일하는 사람들은 안다. 병가는 눈치 싸움을 동반한다. 이것은 미르가 20대였고, 제조업에 종사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임신 순번제마저 암암리에 유지되고 있는 현실이다.
희정: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여성 안전에 대한 무관심이 조사 부족으로 이어지고. 조사가 부족하니까 특정 성별이나 특정한 몸에 닥칠 수 있는 위험 요소가 발견되지 않고. 발견되지 않으니까 정책이나 제도가 없고, 정책이 없으니까 다시 무관심하고. 이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 같아요.
어디든 비슷하다. 화장실 사용의 문제가 어떤 권리로 여겨지지 않는 것이.
여성들이 화장실에 관한 기억을 떠올릴 때 월경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일터의 화장실 문제는 단지 ‘오줌권’ 문제가 아니다. 이때의 권리는 생식에 관한 전반의 권한을 말한다. 하지만 소위 오줌권에 무심한 일터가 여성의 월경권을 보장할 리 없다.
“생리할 때는 예를 들어 동대구에서 출발해서 숙소까지 오면 한 몇 시간 걸리지? 한 6시간. 옛날에는 막 서울역에서 잡혀있고 막 잡혀있으니까 6시간 정도. 근데 생리할 때 꼼짝하기 싫잖아요. 동대구 출발해가지고 수색까지 온 거야. 그러고선 딱 수색에 딱 차를 세우고 일어났는데 난리, 난리 그동안 참아왔던 걸 내가 다 쏟아 낸 거지. 신발까지 막 난리 났어. 그런 거 상관없어. 신발까지 난리가 났어. 집에 걸어갔어.”(연구 보고서 중)
월경에 무심한 사회가 임신과 출산과 같은 재생산권 문제에 민감할 리가 없다. 완경기와 같이 나이가 들고 몸이 변화하는 생애주기가 고려될 리 없다. 생애주기를 겪는 하나의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의 고유의 삶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야기. 그러니 우리는 노예, 기계와 같은 단어를 마음에 품고 산다.
다른 신분, 다른 몸과 화장실
일터가 무관심한 것은 여성의 몸만이 아니다.
이나래: 여성이 차별받는 문제가 지금보다 더 부각이 되어야 하는 것은 맞는데. 젠더를 차별하는 것은 여성의 성만 차별받는 문제가 아니잖아요. 일하는 몸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를 균형 있게 잘 드러내려면 조금 더 질문을 잘 던져야 할 텐데.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까.
이수정: 젠더 차이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신분과 고용 형태에 따른 차별도 봐야 하는 거죠. 학교라는 공간을 예로 들면, 교사들은 학교에서 작업복을 입지 않잖아요. 조리사는 위생복을 입고, 경비노동자는 제복을 입고, 학생도 교복을 입으니까. 내가 어떤 신분이냐가 내가 입고 있는 옷에 따라 확연히 드러나죠. 그간 학교는 급식실 노동자의 휴게 공간을 고려해본 적이 없어요. 최근에야 노조의 요구로 급식실 노동자들의 휴게 공간이랑 화장실을 마련하기 시작했는데, 그래도 이용에 어려운 점이 있는 거죠. 위생복을 환복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참았다가 휴게 시간에 몰아가는 거예요. 화장실이 붐비니까 급할 때는 교직원용 화장실을 간단 말이에요. 그러면 혹시나 왜 교직원 화장실을 쓰냐고 타박을 당할까 봐 마음이 불편한 거예요. 게다가 급식노동자용 화장실은 청소를 급식노동자들이 한다는 거예요. 다른 화장실은 따로 청소하는 노동자가 있는데. 이렇게 사회적 신분에 따른 차별이 드러나는 것도 화장실이라서. 굉장히 중층적으로 문제를 드러내고 있구나.
한숨 나올 만한 현실이지만, 한숨을 쉬면서도 연구하고 분석하고 이야기 나누는 것은 이러한 일화들을 피해로 환원하고, 그 피해의 크기를 재고, 피해 경험을 나열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나래: 일하는 사람들 사이의 공통의 전선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런 까닭에 ‘다양한 몸’들이 경험하는 공간으로서의 일터가 더 이야기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이나래: 성소수자, 장애인, 질환자 등 다른 몸이 진입조차 안 되는 일터가 많죠. 하지만 우리가 다양한 몸들로 구성된 일터를 지향한다고 했을 때, 화장실을 포함한 노동 환경이 어떤 몸의 기준에 맞춰져 있는지를 먼저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지, 노동의 적당한 속도와 적당한 강도를 이야기할 때, 특정한 몸(주로 남성)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다양한 조건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맞춰진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더 설득력 있게 말할 수 있을 거 같고. 공통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거 같은 거예요.
성중립 화장실은 남자와 여자가 화장실을 같이 쓰는 문제가 아니다. 화장실이라는 공간이 어떠한 ‘다른 몸’들의 존재를 허용하고 있는가의 문제이다. 마치 교직원용 화장실에 갈 수 없는 급식실 조리 노동자와 같은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는 사회적 노력이다.
동시에 한노보연의 화장실 연구조사는 개방의 여부가 큰, 또는 화장실 내부가 노출되는 화장실의 문제도 말한다. 여성 화장실을 지나쳐야 나오는 남자 화장실의 동선이 일하는 여성들에게 불안감을 안겨주는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우리의 일터는 노출되지 않는 화장실과 성중립 화장실이 공존해야 하는 과제를 가지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이수정: 화장실이 개선되었다고 하더라도, 누구에게는 와닿는 개선이지만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와닿지 않는 개선점인 거지요. 우리가 겪는 차별이 굉장히 다양한 거죠. 이 차별에 바탕을 두면서, 어떤 공간이 좋은 화장실인지, 이런 것들을 상상할 수 있는 계기들이 더 필요하겠구나.
이나래: 좋은 화장실을 상상할 힘들이 아직 많이 쌓여있지 않구나. 그런 생각도 했어요. 실제 구체적인 경험을 접한 일도 많이 없고, 이 문제를 가지고 토론하는 경험들도 많이 없다 보니까. 이런 이야기들이 더 나누어져야 할 것 같아요.
화장실 실태 연구가 실제로 일터를 바꾸려면…
이렇게 남은 과제가 많은데, 조사연구에 참여한 사람들은 후속 작업에 관한 아쉬움을 이야기했다.
청소년 인권 활동을 주로 해온 이수정은 처음 화장실 연구를 한다고 했을 때,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를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를 했다고 한다.
이수정: 제가 주로 만나는 이들은 청소년이다 보니까, 일터에서 협상력도 적고 어떤 세력이라는 것도 만들기 힘든 거예요. 문제를 수면 위로 올리고 문제를 계속 이끌고 가서 변화를 만들어 내는 데까지가 힘이 드는 거죠. 그래서 조직된 노동자들과 이 작업을 한다는 데 기대가 컸어요. 이 연구를 결과로 무언가가 변화될 수 있겠구나.
모든 연구 활동이 그렇듯, 연구의 내용을 현실에 접목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수정: 이게 조사로만 끝나지 않고 실제 일터에 반영될 수 있는 내용으로 이어지려면, 이 연구에 함께 참여했던 노동조합 내에서 활발하게 이 이야기가 나눠지고 돌아야 할 것 같아요.
이나래: 한 사람씩 만나 정말 많은 이야기를 들었는데, 연구 보고서에는 우리 멋대로 입맛대로 제목 붙여서 우걱우걱 구겨 넣은 것은 아닌지. 이 이야기가 살아있지 못하는 아쉬움이 많아요. 길게 이어지진 않는다 해도, 2-3년은 연구의 문제의식이 노동조합 내에서 살아있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이야기가 살아 나눠지기 위해서는, 연구 작업의 준비와는 또 다른 일터의 준비가 필요하다.
김미르: 일하는 사람으로서 내는 해결책이라? 딱 드는 생각은, 노동조합이라도 생기면 좀 나을 텐데.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이상한 사람 취급 안 하는 거. 너는 왜 이렇게 화장실을 자주 가? 불편한 걸 왜 이야기를 해? 옆의 동료가 어떤 불편함을 이야기했을 때, 나는 그게 익숙하다고 생각해도 같이 이야기해보는 것.
그런 발화의 조건은 다시 고용안정의 문제와 연결된다.
김미르: 스쳐 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안 될 거 같아요. 저는 계약직이었기 때문에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었거든요. 우리 말은 힘이 없는 거예요. 계약직 비율이 너무 늘어나고 있고, 그래서 힘든 부분을 이야기해도 이게 여기서 계속 일할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서, 더 쉽게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할 수 있는 거 같아요.
우리는 이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필자 소개] 희정. 살아가고 싸우고 견뎌내는 일을 기록한다.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 『일할 자격』, 『베테랑의 몸』 등을 썼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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