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사람 이야기, 어디서 접하고 있나요?

연극, 유튜브, 웹툰을 통해 드러나고 있는 다양한 질병서사

박주연 | 기사입력 2023/09/28 [12:25]

아픈 사람 이야기, 어디서 접하고 있나요?

연극, 유튜브, 웹툰을 통해 드러나고 있는 다양한 질병서사

박주연 | 입력 : 2023/09/28 [12:25]

아픈 사람들이 단지 ‘아프다’고 말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 질병권(잘아플권리) 이야기, 질병서사가 등장하고 있다. 출판 시장에서 아픈 몸들의 말하기가 새로운 질병서사의 흐름을 만들고 있다는 논의에 이어 (관련 기사: 아픈 몸들이 속속 말하기에 나섰다! https://ildaro.com/9710) 여러 플랫폼에서 질병서사가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질병권 논의 확장과 담론 만들기에 주력하고 있는 ‘다른몸들’이 새로운 포럼을 열었다.

 

▲ 9월 16일, 다른몸들이 주최하고 서울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에서 열린 질병서사 두 번째 포럼 〈질병 서사의 언어와 재현, 그리고〉 현장. 왼쪽부터 조한진희 다른몸들 대표, 최성민 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이해수 고려대학교 미디어학교육연구단 연구원, 박상은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일다


질병서사 두 번째 포럼 〈질병 서사의 언어와 재현, 그리고〉가 지난 16일 서울 환경재단 레이첼카슨홀과 온라인 줌에서 동시 진행됐다. 다른몸들 조한진희 대표의 사회와 함께 세 명의 발제자들이 각각 연극, 유튜브, 웹툰에서 질병이 재현되는 방식에 주목하고,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석했다. 플랫폼의 성격과 특징에 따라 질병서사가 드러나는 방식에 차이가 있긴 했지만, 비슷한 지점 또한 포착됐다. 질병서사, 어디까지 와 있을까?

 

연극을 할 수 있는 몸의 ‘기본값’을 깨뜨리다

 

연극 이야기부터 시작됐다. 박상은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은 ‘다른몸들’이 기획하고 진행했던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를 중심으로 질병권 연극에 주목했다.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는 공개 모집을 통해 모인 아픈 몸들이 공동 창작한 작품으로, 조현병부터 다낭성낭종까지 각자의 질병과 함께 살며 겪어낸 기쁨과 슬픔, 혼란 그리고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무대에서 표현했다. 상연 이후 온라인으로도 여러 관객들을 만나며 큰 호응과 반향을 일으켰다.

 

박상은 연구원은 자신 또한 크게 감명 받았다며 아픈 몸들이 연극을 하는 것의 의미부터 짚었다. “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를 무대에 올리기까지 과정과 비하인드를 비롯해 여러 에피소드가 담긴 책 『아픈 몸, 무대에 서다』를 보면, 연극을 준비할 때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 ‘아픈 몸이 글쓰기는 할 수 있어도, 연극은 어렵지 않냐?’고. 이런 질문이 나오는 건, 우리가 연극 배우라는 존재를 상상할 때 ‘정기적인 연습과 공연을 무리 없이 감당할 수 있는 건강한 몸’을 상상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연극으로서의 질병서사’는 “어떤 ‘기본값’을 깨뜨린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워크숍 과정을 살펴 보면, 아픈 몸들의 활동권을 고려하고, 서로의 몸 상태를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조율하면서 연습을 진행한다. 흔히 연극 연습한다고 하면 ‘운동장 10바퀴는 뛰고 와야 한다’고 할 정도이고, 공연할 때 실수가 생기거나 연습과 다른 몸 동작을 한다는 걸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는 그 전제가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걸 보여주며, 연극을 할 수 있는 몸의 표준값에 대해 질문했다는 것에 굉장한 의미가 있다.”

 

▲ 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의 장면 ©김덕중


또한 박 연구원은 워크숍 과정에서 배우와 제작진들이 아픔과 고통을 대했던 방식에서 깨닫게 된 부분도 설명했다. “배우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내는 과정에서 다시 마주해야 하는 고통이 있는데 그 때 ‘괜찮아. 빨리 다음 거 하자’고 넘어가는 게 아니라, 그 고통의 시간, 정적과 공백을 기다려 주고, 이 기다림과 머뭇거림이 존중 받아야 한다고 한 점”은 “개개인의 개별성과 공통성을 확인하는 과정”이라는 것. 이건 결국 “개인이 갖고 있는 사회적 조건에 대한 확인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박상은 연구원은 이런 맥락에서 질병권 연극인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가 “과거의 노동운동에서 (노동자가 겪는) 불평등과 모욕을 연극으로 담아내고 서사적인 방식으로 언어화해 대사와 몸 동작으로 보여줬던 노동연극, 더 나아가 과거의 (민중의 해학이 담긴) 마당극, 탈춤과도 연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극들은 “계몽성보다 공동체의 회복에 집중했던 부분이 있다”고 덧붙였다.

 

글과는 다른 언어, 질병 브이로거들의 ‘몸말’들

 

이해수 고려대학교 미디어학교육연구단 연구원은 질병, 특히 암 투병 중인 이들의 이야기가 담긴 브이로그(Vlog)을 시청하며 연구했고, 특히 영상 내 인물인 브이로거가 질병의 아픔과 고통을 드러내는 몸짓에 주목했다고 했다. 이 연구원은 이를 ‘몸말’이라 표현했다.

 

질병이라고 하면 주로 의학적 시각에서 이야기되지만 어떤 아픔, 고통은 의학적인 용어로 설명되지 않는다. “개인/환자들의 이야기와 경험이 주목되기보다 질병 진단과 치료를 수행하는 게 더 중요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다양한 개인들의 경험은 의료 현장에서 쉽게 무시” 당한다. 그렇게 의료 현장에서 배제된 이야기가 등장하는 곳이 유튜브의 브이로그라는 공간이다.

 

브이로그를 통해 사람들은 ‘인정’ 받지 못했던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고통을 설명할 언어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이해수 연구원은 “이 브이로거들의 말은 때때로 멜로 드라마 같은 비현실적 비유들로 가득하다”고 했다. 또한 이들의 고통은 언어로만 표현되지 않는다. “가파른 숨소리나 목소리, 꾹 닫은 침묵에서 새어 나오는 신음, 흔들리는 화면 등 다양한 몸말들이 영상을 통해 전달”된다. 이 연구원은 이런 아픔, 고통의 재현은 “의료 전문가들에 의해서만 전개되던 의학 담론 반대편에 출구를 만드는 시도이자, 과학적 사선으로 포착되지 않는 질병의 잊힌 목소리를 들리게 하는 실천”이라고 분석했다.

 

▲ 다른몸들이 주최한 질병서사 두 번째 포럼에서 ‘아픈 몸들의 브이로그와 돌봄의 몸말들’을 주제로 발표 중인 이해수 고려대학교 미디어학교육연구단 연구원 ©일다


흔히 질병과 세트로 이야기되는 ‘완치’에 대해서도, 브이로거들은 다른 대안 모델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질병서사를 통해 이제 완치의 허상이 이야기되고, 완치 중점의 이야기가 가진 문제들이 논의되는 것과 유사한 흐름이다. “브이로거들은 ‘완치 신화’에 의문을 품고, 질병 경험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이들에게 목표는 어떤 식으로든 건강한 몸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아픈 몸으로 어떻게 살아나갈지다.”

 

이 연구원은 “브이로거들이 건강한 몸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아픈 몸의 경험에서만 배울 수 있는 삶을 성찰하고, 그것을 영상에 담아 보여준다는 점에서, 투병 브이로그가 아니라 치병(治病) 브이로그라 불러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물론 아픈 몸들의 말하기가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이미 문학계에선 오래 전부터 투병 경험을 담은 이야기가 책으로 발간되어 왔지만, 브이로그와 차이가 있다면 아무래도 영상에 담기는 “몸말들”이다. 이 몸말들을 통해 브이로거들은 말하지 않아도 자신의 고통을 전달할 수 있다. 이런 서사 방식은 잘 정리되지 않아 불안정하지만, “그동안 치료와 극복 서사로 깔끔하게 수렴되었던 질병서사가 놓친 것들을 담아내는” 새로운 방식을 보여준다. 이것이 늘 잘 통한다곤 할 수 없다. 한편으론 이들의 고통을 의심하고, 증명해 내라는 요구도 계속된다. 그런 악플들이 있기도 하지만, 브이로거들의 이야기는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기도 한다. 이해수 연구원은 브이로그를 보는 시청자들과 브이로거, 그리고 시청자들 사이의 관계에도 주목하며 “아프다고 징징거려도 비난 받지 않는 공간에서 생기는 유대감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비질병인 중에서 ‘예비암환자’라는 말을 쓰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이 말을 쓰는 것에 불편함을 표현하는 이들도 있지만, ‘예비암환자’라고 한다는 건 누구에게나 암이라는 질병이 찾아올 수 있다, 인간은 모두 취약하고 늙고 병들며 상호의존적인 존재라는 걸 인정하자는 정치적 의미가 담긴 말이다.” 누군가의 지극히 개인적인 투병 기록에서 시작된 브이로그일지 모르지만, 그 이야기를 통해 “서로의 취약성을 드러내고 함께 서로 돌보는 공동체로 나아가고 있다”는 게, 이해수 연구원의 분석이다.

 

질병서사 웹툰이 만드는 공감의 커뮤니티

 

최성민 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은 질병서사가 이렇게 등장하게 되는 이유로, 의료현장의 변화를 짚었다. “의학적 전통에서 질병 이야기는 환자의 서사로, 질병을 치료하는 방향을 설정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현대의학에선 환자 이야기를 듣는 것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 특히 한국에선 이제 ‘3분 진료’라고 할 정도다.” 하지만 질병이 개인의 삶을 변화시키는 부분은 상당히 크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이 질병에 대해 어떻게든 이야기하고 싶어한다”는 것.

 

요즘 가장 핫한 콘텐츠인 웹툰에서도 질병서사는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웹툰은 ‘일상툰’이라고 하는 일상의 이야기를 담은 만화에서 시작됐기에, 개인의 경험과 연결된 질병서사가 등장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렇다면 웹툰에서의 질병서사는 다른 콘텐츠와 다른가? 최성민 연구원은 “연극이나 브이로그에서도 그렇긴 하지만, 투병 체험 이야기를 담은 웹툰엔 공감의 커뮤니티가 형성된다”는 점을 특징으로 꼽았다.

 

▲ 네이버웹툰으로 연재됐던 질병서사 웹툰들 중 〈아프니까 병원이다〉(고리타 작가), 〈광고감독의 발암일기〉(서감독 작가)


“네이버 영화 평점을 보면 9.0을 넘는 게 정말 없는데, 네이버 웹툰 평점을 보면 대부분이 9점대다. 괜찮은 작품이라고 하면 9.9점도 넘는다. 웹툰에선 이게 흔한 일이다. 무슨 말이나면, 이 웹툰을 좋아할만한 사람들이 모인다는 거다. 그러다 보니 만족도가 높고, 평점도 높다. 그래서 독자들의 공감과 교류도 높은 편이다.”

 

나의 아픈 이야기, 가족의 아픈 이야기 등을 담은 웹툰을 본 독자들을 댓글, 대댓글을 이용해 서로 정보를 교환하기도 하고, 공감하며 위로와 응원을 보낸다. “이 웹툰을 보고 힘을 얻었다는 이야기도 하고, 작가의 연재가 더뎌지면 건강 상황을 걱정하기도 하는” 일종의 커뮤니티가 형성된다. 최 연구원는 “유튜브 등과 달리 웹툰은 이 웹툰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댓글 공간이 다소 평화로운 편”이라며, 그렇기에 “이 공간에선 댓글이라는 글쓰기 방식이 긍정적으로 발휘된다”고 설명했다.

 

연극, 유튜브, 웹툰이라는 각기 다른 플랫폼에서의 질병서사 재현을 분석한 세 명의 연구자들은 다양해지는 질병서사의 재현의 의미, 그것이 질병인과 비질병인 모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설명했다. 다른몸들 조한진희 대표는 “이제 한국 사회에서도 질병 극복을 넘어 아픈 몸 자체에 대한 존중과 삶을 이야기하는 질병서사가 확실히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은 것 같다.”고 평가하며 이렇게 말했다.

 

“다른몸들은 질병권 보장을 위해서는 아픈 몸들의 질병세계 언어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외치면서, 저항적 질병서사 운동을 해왔다. 오늘 발표를 들어보니, 질병 극복을 넘어서 아픈 몸을 둘러싼 현실에 대해 좀 더 정밀하게 우리의 언어로 말해보자고 제안해왔던 것을 넘어서, 우리가 질병서사의 방향에 대해 더 구체적이고 급진적 이야기를 해도 괜찮은 시기가 왔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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