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자 커피 향이 훅 들어온다. 입구 오른쪽에는 바 카운터가 있고, 왼쪽에는 페미니즘, 장애/복지, 성소수자에 관한 책과 매거진, 신문, 잡화가 진열된 서가가 보인다, 안쪽에는 묵직한 검정 소파와 테이블이 놓여있다. 이곳은 일본 이바라키현 츠쿠바시(つくば市)에 올해 6월에 문을 연 ‘북카페 사포’. 사장은 출판사 겐다이쇼칸의 편집자였던 야마다 아키코(山田亜紀子) 씨다.
『#KuToo』의 저자인 이시카와 유미 씨는 기업과 사회가 여성에게 구두와 하이힐을 강요하는 것에 반대하며 ‘#KuToo’ 해시태그 운동을 주창한 이다.(관련 기사: “화보 모델, ‘신발로부터 생각하는 페미니즘’을 말하다” https://ildaro.com/8650) 책에 이시카와 씨에 대한 트위터상의 비방글을 인용한 것이 작성자에게 저작권 침해로 고소를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도쿄지방법원이 “적법한 인용”이라고 판결해 승소했다.(고등법원도 항소 기각함.)
야마다 아키코 씨는 2021년 10월, 온라인상 비방과 폭력을 없애고 여성들이 안전하게 발언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운동을 시작했다. 잡지 『시몬느』에도 ‘인터넷과 페미니즘’ 특집을 꾸렸다.
“편집자가 되기 전에 페미니즘 책방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책 큐레이팅 일이 좋더라고요. 꼭 다시 한번 제대로 서가 큐레이팅을 하고 싶었어요.” 야마다 씨가 책방에서 일했던 것은 일본에서 #미투 운동이 시작되기 전이었다. 추천하고 싶은 학술서적들이 전혀 팔리지 않아, 시의성 있는 시사 문제와 엮어서 코너를 만들었더니 안 팔리던 책이 팔리기 시작했다.
“손님들과의 대화도 즐거웠어요. 그런데, 책을 만드는 사람이 되니까 읽는 사람의 얼굴이 안 보이더라고요. 옷가게에서 손님에게 어울리는 옷을 추천하듯이 ‘이럴 땐 이런 책이 있어요’ 추천하고 싶어요.”
북카페 사포의 문을 열게 된 배경이다.
페미니즘, 장애, 성소수자가 만나는 장
“요즘 SNS에서 트랜스젠더 차별이 심각하죠. SNS는 트랜스젠더 분들에게 소중한 공간인데, 그마저 빼앗겨버리니 그분들이 안전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리고 #미투 이후 일본에서 여성운동과 장애운동, 성소수자운동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생각을 했어요. 페미니즘, 장애, 성소수자 관련 서적을 함께 진열해, 각 운동이 교차하는 장으로 만들고 싶었죠. 하지만 책 판매는 수익률이 낮기 때문에 카페를 겸해서 경영 개선은 물론, 교류의 문턱이 낮아질 거라 생각했어요.”
또, 전부터 책방을 하게 된다면 “도심에서 떨어진 곳에 책방을 여는 것”을 고려했다고 한다. 야마다 아키코 씨가 자라고 지금도 거주하는 츠쿠바에서는 쇼핑센터 안 대형서점에 못 이겨 지역의 오래된 서점이 몇 년 전에 문을 닫고 말았다. 대형서점의 매대는 보수적 잡지가 점령하고 있고, 페미니즘 등의 책과 만나기 어렵다.
“대형서점과 싸우고 싶었어요. 그리고 여기라면 도치기현이나 후쿠시마현 분들이 이런 서점을 찾아서 도쿄까지 가지 않아도 되고요. 가까이에 장애인자립생활센터도 있고 츠쿠바대학도 있고…. 장애인과 학생, 교육자들도 오면 좋겠어요.”
커피는 이웃에 있는 장애인기업인 ‘천년일일 커피로스터리’에서 특별히 블렌딩해준 원두로 내린다. 탄산음료나 생크림이 얹어진 각종 음료, 베이커리, 브런치, 맥주도 즐길 수 있고 이벤트도 가능하다.
페미니즘의 역사를 배우는 것은 중요하다
야마다 아키코 씨의 어머니는 일하는 싱글맘이었다. 유소년기에 야마다 씨를 돌봐준 할머니와 이모도 계속 직장 일을 헀고 가부장적이지 않은 가정이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허세 떠는 남자애들이 진짜 싫었다”고.
10대 무렵부터 프랑스 문학에 흥미를 느꼈던 야마다 씨는 아녜스 바르다 감독과 만나게 되고 영화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1977)를 통해 페미니스트가 됐다. 학생 때는 불어를 공부했고, 찰학자 시몬느 보부아르(『제2의 성』 저자)도 알게 됐다. “저는 싸우는 일에 주저함이 없어요. 프랑스 문학을 배우면서 목소리를 내고 집회에 가고 권리를 주장하는 일이 긍정적인 행동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사포’는 버지니아 울프가 기르던 고양이의 이름이다. “바르다의 고양이 이름은 발음이 너무 어려워서 울프의 고양이 이름으로 했어요. 고대 그리스의 여성 시인의 이름(Sappho)이잖아요. 시인의 고향은 레즈비언이라는 말의 발상지인 레스보스섬. 가게 이름으로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어요.”
야마다 아키코 씨는 “보다 안전한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어쩌면 내가 안전하게 있을 곳을 만들고 싶었는지도 몰라요.”라고 말한다. “언젠가는 페미니스트 편집실도 하고 싶어요. 시골에서 페미니스트 활동을 하는 모델을 만들고, 그로 인해 마을이 활성화되고, 나를 둘러싼 커뮤니티가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저를 포함해 페미니스트들 역시 실패를 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페미니즘의 역사를 배우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하는 야마다 씨가 추천해 준 책을 사서 돌아왔다.
-〈일다〉와 기사 제휴하고 있는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 제공 기사입니다. (번역: 고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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