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송라이터인 이내가 최근 가지게 된 꿈은 “마을과 사람들을 연결하는 것”이다. 이 꿈을 꾸게 만든 씨앗 같은, 짧지만 강렬한 여행이 있었다. 코로나 팬데믹 후, 일본 여행이 재개된다는 소식과 함께 떠난 그녀의 우연한 여행은 거기서 그치질 않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이내의 여행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한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이미 연결되어 있었던 우리의 이웃 마을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과거의 시간과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함께 느끼게 된다. 인연의 꼬리를 물고 계속되는 이내의 로컬 여행기, 종착지가 정해지지 않은 마을 이야기들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일본 기차 여행은 도시락이지
일찌감치 하카타역에 도착해 오벤토(お弁当, 도시락) 가게를 기웃거렸다. 일본에서는 기차에서 꼭 벤토를 먹어야만 할 것 같은 이미지가 있다. 에키벤(駅弁, 역도시락)이라는 단어가 따로 있고, 기차에서 도시락 먹는 이야기만으로 드라마가 만들어질 정도니까. 배가 별로 고프지 않았고 고기가 대부분 들어가 있어서 그냥 포기할까 하다가, 그래도 첫 신칸센 경험인데 싶어 생선이 들어간 작은 사이즈의 벤토를 골라 기차를 탔다.
목적지인 오노미치로 가기 위해선 신칸센을 타고 가다가 일반 열차로 환승하기 위해 후쿠야마(福山)에서 내려야 한다. 출발할 때는 짐도 많고 수면부족이 계속 따라다녀서 환승만 할 생각이었는데, 역에 정차하마자 창 밖으로 바로 보이는 후쿠야마 성의 우아한 자태에 이끌려 코인락커에 짐을 맡기고 조금 걸어보기로 했다.
7개 섬을 잇는 자전거 길의 출발지 젊은이들이 다시 찾아드는 ‘도시재생’의 대표적인 마을 이방인을 경계하지 않는 선주민들의 개방성
작은 역에 다 들르는 열차를 20분쯤 타고 오노미치에 내렸다. 후쿠야마보다 더 작은 동네였지만 내리자마자 활기찬 에너지가 느껴졌다. 오후 햇살이 부드럽게 비치는 상점가에 교복 입은 무리가 자전거를 타거나 삼삼오오 걸어 다니고 있으니 일본 청춘영화 속을 걷는 것 같다.
역에서 게스트하우스 야도카리(Yadoka-ri)는 걸어서 5분 거리다. 4시 체크인 시간에 딱 맞춰 도착하니 선하고 밝은 얼굴의 직원이 기다리고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히로’의 아내, ‘타마’는 일주일에 하루만 체크인 업무를 하고 있었다. 마침 그날 도착해 타마를 먼저 만날 수 있었던 걸 생각해보면, 나의 여행 운을 다시금 실감할 수 있다.
3층짜리 오래된 목조 건물을 아늑하게 고쳐서, 들어가자마자 오늘은 잠을 잘 잘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내 방 창 밖으로 깨끗한 거리와, 바다와, 맞은편의 섬이 보인다. 그 섬이 이름마저도 ‘무카이지마’(向島, 맞은편 섬)이라는 사실은 다음날 자전거를 타며 알게 되었다.
또 하나 중요한 자원은 선주민의 개방성이다. 오노미치는 역사적으로 히로시마 원폭이나 전쟁 이후 피난민들이 많이 정착했기 때문에 외부인에 대한 경계심이 적다고 한다. 내가 도시재생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오노미치에 왔고, 일본어를 왕창 쓰는 게 여행의 목표라는 이야기를 했더니, 타마가 누군가의 하우스 파티에 저녁 먹으러 같이 가자고 (주최한 사람에게 묻지도 않고) 제안했다. 이방인을 경계하지 않는 마을 사람다운 얼굴이었다.
동네 사랑방이면서 이방인들이 오고 가는 게스트하우스, 야도카리
저녁 초대를 받고 편의점에서 맥주라도 사서 가려고 바다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조금 걸었다. 제주도로 이주한 친구가 해질녘 석양을 매일 볼 수 있는 바닷가 마을에 살아서 행복하다고 말했던 게 떠올랐다. 코발트색과 오렌지색의 그라데이션이 끝내주는 하늘과 바다가 산책 친구였다. 에비스 캔맥주와 한국 김 맛(?) 감자칩을 골라서 타마의 퇴근을 기다렸다.
게스트하우스 야도카리는 동네 사람들의 사랑방이기도 한가 보다. 누군가 갑자기 뛰어와 화장실을 빌려 쓰고, ‘공유 주방’ 간판을 달고 있는 게스트하우스의 사무실 소파에 털썩 앉아서 타마에게 실연 소식을 전했다. 남자친구가 갑자기 이별을 고해서 이유를 끈질기게 물었더니 “손에 닿는 피부의 감촉이 맞지 않아서”라고 했단다. 다른 이유가 있는데 변명을 한 게 아닐까 추측해 보았지만, 그게 진짜 이유였단다. 타마와 내가 흥분하며 화내는 모습을 보면서, 그녀는 ‘주위 사람들의 그런 반응을 모으며 실연의 아픔을 이겨내는 중’이라고 했다. “한국에도 이 이야기를 전해서 더 욕을 퍼트리자”는 타마의 농담에 다 같이 웃었다.
어쩌다 보니 글로벌한 파티! 젊은 오노미치 이주자들과 함께
도착한 곳은 1년째 빈집을 고치고 있는 중이라는 유우 씨의 집. 아직 완성된 건 아니지만(2층이 남았다며 오노미치의 ‘사그라다 파말리아’라고 말했다), 그동안 도움을 준 동네 친구들을 초대해 1층 거실에서 작은 축하 파티를 여는 자리였다. 카레나 후무스를 만들어 온 사람, 커다란 생선을 들고 온 사람, 오니기리를 만들어 온 사람, 칵테일 만드는 도구와 술을 준비해 온 사람 등등이 동그랗게 둘러앉았다. 조금 어색하게 자리를 잡고 앉아서 인사를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한 친구가 직접 유기농으로 농사짓고 그날 도정한 쌀을 들고 와서 밥을 지었는데, 한 숟갈 입에 넣으니 여기가 바로 천국이다. 긴장이 사르르 풀렸다.
일대일 대화까지는 무리가 없었는데,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쏟아내는 일본어를 따라가는 건 좀 어려웠다. 하지만 한국에서 온 이방인에게 관심을 듬뿍 주는 친절한 사람들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특히 한국 사람을 처음 본다는 히로와 타마의 두 초등학생 아들, 에이타로와 린타로의 질문 덕분에 파티의 낙오자가 되지 않을 수 있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단어를 한국어로 뭐라고 하냐고 계속 물어서, 잠깐 한국어 교실이 되기도 했다. 나중에는 한국과 일본의 외교 문제까지 질문이 확장되어 땀을 조금 흘렸지만, ‘가까운 나라니까 친하게 지내는 게 좋겠다’는 에이타로의 정리 덕분에 어려운 주제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마무리되었다.
사실 이 자리는 오스트리아, 독일, 뉴질랜드에서 온 친구들도 있는 (어쩌다 보니) 국제적인 파티였는데, 모두 일본어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게 낯설고 신선했다. 그날 모인 젊은 오노미치 이주자들이 대부분 그림을 그리거나 그림책을 만들거나 DJ를 하거나 글을 쓰거나 농사를 짓거나 커뮤니티 활동가라는 사실은 나중에 인스타를 통해 알게 되었다. 한 명 한 명 제대로 대화를 나눌 기회는 없었다는 게 지금 돌아보니 아쉽다.
혼자서 밤길을 되돌아 걸어 숙소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타마가 알려준 가게들의 위치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조용한 골목과 마음에 쏙 드는 오노미치의 상점가를 음미하려고 평소보다 천천히 걸었다. 2층 내 방에는 두꺼운 자주색 이불과, 커다란 고릴라 동상과, 은은한 조명과, 창 밖 밤바다의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혼자 떠났지만 절대 혼자가 되지 않는 여행이 계속되고 있다. 따뜻한 이불 속에서 일기를 쓰고 며칠 만에 처음으로 깊은 잠에 들었다.
[필자 소개] 이내. 동네 가수. 어디서나 막 도착한 사람의 얼굴로 두리번거리며 걷는다. 걸으며 발견한 것들을 일기나 편지에 담아 노래를 짓고 부른다. 발매한 앨범으로 『지금, 여기의 바람』(2014), 『두근두근 길 위의 노래』(2015), 『되고 싶은 노래』(2017), 디지털 싱글 「감나무의 노래」(2020), 「걷는 섬」(2022) 등이 있고, 산문집 『모든 시도는 따뜻할 수밖에』(2018), 『우리는 밤마다 이야기가 되겠지』(2021, 공저) 등을 썼다. 가수나 작가보다는 생활가나 애호가를 꿈꾼다. 인스타 @inesbr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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