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5년 전인 2018년 4월, “모두의 1층이 있는 삶을 보장하라”는 소송이 제기됐다. 공중이용시설의 접근성을 보장하라는 차별구제 청구소송이었다. 소송을 제기한 원고는 뇌병변, 지체장애 1급 장애인, 휠체어를 이용하여 이동하거나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지체장애 3급 장애인, 영유아를 키우고 있어 유아차를 이용하여 외출하는 경우가 많은 여성이었다. 피고는 GS리테일(편의점), 호텔신라(숙박시설), 투썸플레이스(까페) 그리고 대한민국이다.
대다수 편의점, 식당, 카페에 휠체어, 유아차가 들어갈 수 없다?!
편의점, 숙박시설, 카페는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해야 하는 생활편의시설 임에도 휠체어나 유아차, 노인 보행기 등이 들어갈 수 없는 경사로가 입구에 설치되어 있지 않아 이 시설을 이용할 수 없는 이들이 있다. 이것은 차별이며, 시정되어야 한다는 것이 소송의 골자였다.
이후 2020년, 소송단은 호텔신라 측과 서울신라호텔, 제주신라호텔의 3% 이상을 장애인 객실로 개조하는 것으로, 투썸플레이스 측과는 직영점에 접근로와 출입구를 마련하는 것 등의 조정에 합의했다. GS리테일, 대한민국과는 조정이 성립되지 않아 재판이 진행됐다. 2022년 2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GS리테일에게 판결 확정일로부터 1년 이내에 직영 편의점 중 2009년 4월 11일 이후 신축·중축·개축한 시설에 대해 장애인의 통행이 가능한 접근로와 출입문을 설치하라고 판결했다.
더불어 장애인을 위한 ‘건물 경사로 설치’에 예외를 둔 시행령은 무효라 판결했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은 장애인들의 접근이 어렵지 않게 건물 입구 경사로 등 편의 시설을 설치하라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같은 법 시행령은 음식점이나 마트, 카페의 바닥 면적이 300㎡, 약 90평을 넘지 않으면 설치 대상에서 예외로 두고 있다.) 법원은 “현 제도가 장애인의 행복추구권과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편의시설 설치 의무를 과도하게 면제하는 시행령을 만들고, 이후 23년이라는 장기간 동안 시행령을 개정하지 않은 국가에 대하여 원고들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같은 해 10월 6일 항소심 판결도 이 부분은 인정되지 않았다.
이렇듯 법은 소규모 편의점이나 음식점 등에 대해서도 장애인 이용을 위한 시설 설치 의무에 예외를 둬선 안 된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 판결 이후, 우리 사회는 달라졌을까? 한 가지 명확한 것은 “모두의 1층이 있는 삶을 보장하라”고 외쳤던 이들이 여전히 그 외침을 이어가고 있다는 거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기 때문일까?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걸까?
“1층이 있는 삶” 공익소송 이후
〈모두의 1층〉 프로젝트는 이동약자의 접근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활동이다. 식당, 카페, 편의점과 같은 공중이용시설에 휠체어 이용자, 유아차 동반자와 같은 이동약자가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고자 한다. 이 프로젝트에 함께하고 있는 건 사단법인 두루, 협동조합 무의, 아산나눔재단, 브라이트랩, 미션잇, 그리고 성동구청이며, 변호사, 활동가, 건축사, 디자이너들이 담당 실무자들이다.
또한 공익소송 “1층이 있는 삶”을 진행한 사단법인 두루 임성택 이사장, 서울 관광지역 점포 경사로 설치를 경험한 서울다누림관광센터 정영만 센터장, 서울 샤로수길 경사로 설치를 진행한 김지우 서울대배리어프리공동행동 활동가, 인천에서 개인디자인회사 수익금으로 경사로 설치를 해본 김유진 이센티 대표가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공유하며 〈모두의 1층〉이 있는 사회로의 청사진을 그렸다.
핫한 동네, 성수동에 경사로를 설치하려고 했지만…
〈모두의 1층〉 프로젝트 팀은, 요즘 청년 세대들에게 특히 인기가 좋은 서울 성수동 가게들에 경사로를 놓기로 했다. 인기 있는 지역인 아틀리에길 272개 점포 중 휠체어 접근 가능한 매장은 36개(13%)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판결 이후 보건복지부가 관련 시행령을 개정하긴 했지만 ‘신축’, ‘증축’, ‘개축’하는 곳에만 의무가 부과되기에, 대부분의 가게엔 경사로가 없다.
김남연 변호사는 “소송도 이겼고, 관련 법령도 달라졌는데, 왜 현실은 이렇게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럼 법령 개정이 해결책이 아니었던걸까? 실질적으로 뭐가 문제인지 알아보기 위해 실제로 경사로를 깔아보기로 했다”고 밝혔다.
프로젝트 팀이 시민인식 조사를 진행한 결과를 살펴보면, 시민들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경사로가 있는 점포에 방문객이 더 많을 것 같다는 응답이 60% 이상, 같은 조건이라면 경사로가 있는 매장에 방문하겠다가 71%”였고, “성수동 대부분 매장에 휠체어가 접근 가능하다면 성수동 이미지가 좋아질 것이라는 것에 동의하는 응답도 73%”였다. “휠체어나 유아차를 거부하는 매장은 불편하다, 기분이 좋지 않다는 응답도 76%”에 달했다.
점포주들의 상황은 조금 달랐다. 김남연 변호사는 일단 “지금의 법 상황, 경사로나 편의시설을 반드시 설치해야 하는 의무와 이 제도와 관련된 지자체의 지원 등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더 큰 문제는 대다수의 점포주가 건물주가 아니라 임차인이라는 점이다. 점포주들이 경사로를 설치하기 위해선 “건물주와 협의해야 하고, 원상 회복 의무 등을 지켜야 하기에 부담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또한 “도로와 인접한 점포들은 도로 점유 허가 등의 부분에 있어 지자체의 지원이나 허가가 필요”했다.
브라이트 건축사사무소 이충현 소장은 경사로 설치 자체도 문제지만, “가게 내부에서 휠체어나 유아차 등의 이동 공간이 확보되지 않는 문제”도 있었다고 얘기했다. 결과적으로 성수동 점포들(뚝섬역 근방) 중 경사로를 설치하게 된 곳은 단 네 곳이다.(모두의1층 홈페이지에서 참여 가게 정보를 볼 수 있다. https://모두의1층.org/store) 협의를 몇 번이나 진행했지만, 가장 임대료가 비싼 곳인 아틀리에길 점포들은 경사로 설치에 응하지 않았다.
누구도 제약받지 않는, 유니버설 디자인
2018 평창 패럴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접근성 개선’ 사업을 진행했던 종합건축사사무소 천산건축 이훈길 대표는 당시의 경험을 공유하며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 제품, 시설, 서비스 등을 이용하는 사람이 성별, 나이, 장애, 언어 등으로 인해 제약을 받지 않도록 설계하는 것)의 중요함을 설명했다.
평창 패럴림픽 접근성 개선 사업은, 선수와 동행인, 장애인 관람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패럴림픽이 끝난 이후에도 개최 도시의 베리어프리(Barrier-free) 환경이 유지될 수 있도록 진행됐다. 이훈길 대표는 “음식점과 숙박업소를 중심으로 경사로, 자동문, 입구 연결 통로와 화장실에 대해 사전 실태조사부터 시행했다”고 했다. 이후 유니버설 디자인을 중점에 두고 편의시설 개선 계획을 만들었다. 현장 조사를 했던 733개소 중 최종 256개소가 선정돼, 개선 사업이 진행됐다.
이 대표는 무엇보다 “유니버설 디자인을 확장한다는 개념을 갖고, 일회성이 아닌 유니버셜 환경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또한 그것이 주변으로 확장될 수 있도록 했다”고 사업 방향을 설명했다. 단지 몇 군데 장애인 편의시설을 설치하는 게 아니라, 공간 환경을 개선하고 그것이 지속적으로 기능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다. “기본적으로 경사로를 설치했고, 자동문도 마련했다. 화장실로 가는데 필요한 폭을 넓혀주기도 했고, 화장실 또한 장애인 화장실에 맞춰 개선했다. 또한 이런 환경이 조성된 업소엔 스티커를 만들어서 배포하고, 홍보도 진행했다.”
인식의 전환이 필요해
모두를 위한 ‘유니버설 디자인’이 실현되기 위해 사회와 시민들의 인식 또한 바뀌어야 한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대구의 번화가로 꼽히는 동성로에서 경사로 설치 관련 홍보활동을 하는 ‘서포터즈’를 운영한 최문숙 팀장은 앞으로 우리가 함께 해나갈 수 있는 부분들을 공유했다. 서포터즈는 장애인, 비장애인 구분없이 모집했고, 90명 정도가 모였다고 한다.
“경사로가 설치된 공간엔 ‘장애공감’ 로고 스티커를 배부하고, 경사로가 설치되지 않은 공간에 가선 경사로 설치 지원 사업 등을 안내”했다. 그뿐 아니라 “동성로 내 휠체어나 유아차가 갈 수 있는 화장실 및 베리어프리 점포들을 조사해서 지도를 만들어 시민들에게 배포”하기도 했다. 시민들이 지도에 있는 공간을 방문에 인증샷을 찍어오면 선물도 증정하는 이벤트도 진행했다. 이런 걸 통해 “시민들 또한 별 생각이 없이 들어갔던 가게들 중 휠체어 등이 못 들어가는 곳이 있다는 걸 깨닫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최 팀장은 또한 “장애인들의 저상버스 이용을 위해 버스 운전기사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했고, “5개 대학의 건축학과를 방문해 ‘유니버셜 디자인’ 및 인식 교육도 진행”했다고 보고했다. 특히 건축학과생을 대상으로 한 교육 이후, 학생들의 긍정적인 피드백이 있었다는 점도 강조했다. “수업 만족도를 조사했을 때 단 0.6%만이 ‘(수업의 필요성을) 잘 모르겠다’고 답했을 뿐, 99.4%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또한 67.7%가 ‘현장에 나갔을 때 적극적으로 유니버셜 디자인 설계를 적용하겠다’고 답했다.”
건축사인 이훈길 대표는 “서울시나 다른 자지체에도 사실 유니버셜 디자인 가이드라인 등이 다 마련되어 있다”고 안내하며, “이런 부분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건축설계나 인테리어를 하는 사람들에게 알려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 디자인이 실행되기 위해선 법적인 부분이 바뀌어야 하고, 그를 위해 인식 전환도 필요하다. 인식을 바꾸기 위한 교육이 많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대학교 근방 점포들을 대상으로 경사로 설치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김지우 서울대배리어프리공동행동 활동가는 경사로 설치를 위해 점포들을 설득하는 일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가게 홍보를 해 드리겠다고도 해 보고, 복지관이랑 같이 협업을 하고 있다고 ‘공공’의 이름을 빌려보기도 하고, 선의에 기대는 말들도 하는 등” 여러 방법을 썼지만,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다고.
그러나 긍정적인 변화를 느끼는 부분도 있다. “’모두의 1층’ 홍보 영상을 올렸을 때의 반응을 보며, 지지하는 마음이 늘어나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분은 ‘가게를 리모델링하려고 하는데 마침 이 영상을 봤다, 경사로도 만들기로 했다’고 알려주셨다. 여전히 답답한 부분이 많은 사회지만,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의 1층, 모두의 화장실, 모두의 놀이터…상상하고 설계하라
‘모두의 1층’을 만들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는 ‘모두의 화장실’, ‘모두의 놀이터’ 등으로 뻗어 나갔다. 경사로 설치가 시각장애인들에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유니버셜 디자인에 대한 논의도 뜨거웠다. 더 많은 공간을 ‘모두를 위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고민들은 결국 법, 제도의 변화, 사회의 인식 변화로 연결되며, 여러 주체가 함께 해 나가야 한다.
이동에 불편이 없는 이들에겐 약간의 문턱, 몇 개의 계단이 별 거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만 휠체어나 유아차 등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겐 이것이 차별과 배제로 작동한다는 사실. 이를 바꾸기 위해 나아가는 사람들에게 지지가 필요하다.
※'모두의 1층' 지지서명이 진행 중이다. https://모두의1층.org/sup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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