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말이나 2018년 초 즈음이었을 거다. 당시 화제작이었던 소설 『딸에 대하여』(김혜진 작, 민음사)를 읽었던 건. 소설은 딸이 동성애자인 걸 알면서도 애써 무시하고 있던 60대 여성이 딸, 그리고 딸의 연인과 함께 한 집에서 살게 되는 이야기로, 엄마의 1인칭 시점으로 쓰여져 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소설을 읽는 동안 마음이 힘들었다. 소설 속 엄마가 하는 말들이나 생각이 계속 날 푹푹 찔러서, ‘내가 이렇게까지 엄마를 이해해야 하나?’ 하는 심정이었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다루는 노년 돌봄, 요양보호사의 노동, 비정규직 시간강사의 위치, 성소수자의 삶, 가족 구성의 권리 등에 관한 내용은 좋았지만, 어쩐지 나에겐 ‘엄마의 시선’은 좀 벅찼다.
다시 한번 『딸에 대하여』를 꺼내 읽었다. 나로썬 약간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지만, 다시 이 이야기에 다가서고 보니 인물들의 사정이 하나같이 ‘퀴어하다’ 싶었다. 딸 그린에게 모진 말을 내뱉는 엄마의 삶조차도. ‘정상사회’에서 이탈한 혹은 이탈되어버린 네 여성의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가져온 〈딸에 대하여〉는 다르지만 같고, 같지만 또 확연히 다른 여성의 삶을 전한다.
〈딸에 대하여〉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CGV상’과 ‘올해의 배우상’ 여자 부문(엄마 역, 오민애 배우)을 수상하고 퀴어 카멜리아(LGBTQ+를 주제로 한 영화들 중 최우수작품에게 수여하는 상) 장편 상도 받으며, 주목 받는 영화로 떠올랐다. 이미랑 감독은 왜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게 됐을까? 지금 한국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라 할 수 있는 돌봄권, 노동권, 가족구성권 등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영화를 관객들에게 선보인 이미랑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사실 김혜진 작가와 같은 학교 문예창작과를 다녔어요. 김 작가가 한 학년 후배였는데, 그 때부터 글 잘 쓴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렇게 아는 사이다 보니 등단했을 때부터, 그러니까 초기작부터 다 읽었거든요. 그러다 『딸에 대하여』를 읽었는데, ‘어떻게 60대 여성의 정서를 이렇게 잘 담아냈지?’ 싶어서 조금 놀랐어요. 엄마한테 완전 감정 몰입해서 읽었어요. 전 혼자 사는 비혼여성인데, 비혼여성으로서 느끼는 고독과 결핍에 대한 걱정이 있잖아요? 또 영화 일은 하고 싶은데 미래는 보장 안되고, 대출도 안 되는 시간강사고. 혼자 사는 여성으로서 생계를 위해 끊임없이 노동해야 하고…. 그래서인지 엄마가 딸(그린)을 그렇게 걱정하며 보는 게 너무 이해가 되더라고요.
-제작사인 아토에서 판권을 샀고, 이후에 감독님이 합류한 걸로 알고 있어요.
제정주 PD랑은 이창동 감독님과의 인연을 통해서 아는 사이였어요. 어느 날 제정주 PD로부터 “『딸에 대하여』라는 작품을 영화로 만드려고 하는데 한번 해 보겠냐?”는 연락이 왔죠. 나야 원래 김혜진 작가를 좋아했고, 이 책도 공감해서 읽었으니까. 부담이 없진 않았지만 ‘할 수 있겠다’는 용기가 나더라고요.
우리가 인생에서 어떤 결정을 할 때 항상 타이밍이라는 게 중요하잖아요. 사실 대학 졸업하고 영화감독 되겠다고 3년 동안 어떤 시리즈물을 썼는데, 작품으로 만들어지지 않는 거에요. 시리즈물은 큰 자본이 들어와야 하는 스케일이 큰 작업이다 보니 일이 내 마음대로 안 되고… 그러면서 번아웃이 와서 힘들어하던 시기에 제정주 PD한테서 연락을 받은 거죠. 타이밍이 잘 맞아떨어졌던 것 같아요.
이창동 감독님으로부터 영화를 배웠는데, 이 감독님도 원작이 있는 작품을 여럿 하셨어요. 〈밀양〉도 그렇고, 〈버닝〉도 그렇고요. 그런 작업들을 봐와서 그런지, ‘원작이 있는 작품이라서 내 이야기는 못한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그리고 문창과를 나왔다 보니, 영화를 위해 쓰여진 시나리오와 문학적 언어로서의 활자엔 큰 차이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어떤 부분이 다르고, 어떻게 다르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게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각색도 여러 방향이 있는데, 전 충실히 원작을 따른 편이에요. 이창동 감독님처럼 능력 있는 분들은 원작에서 주제만 가져오고 사건은 다 본인이 만들면서 비판적인 각색을 하거든요. 전 그런 깜냥이 아니어서, 원작의 이야기를 가지고 와서 영화로서의 구조를 쌓은거죠.
-관객에 따라서 이 영화를 여성영화, 가족영화, 퀴어영화 등으로 볼 것 같은데요. 전 조금 적극적으로 ‘퀴어영화’라 해석했어요. 단지 동성애자 캐릭터와 그들의 이야기가 나와서가 아니라, 엄마나 제희의 삶도 퀴어하더라고요. 이전엔 이 이야기가 비퀴어와 퀴어가 서로를 이해해가는 우여곡절의 여정이라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고 책도 다시 읽고 나니 ‘이건 그냥 퀴어들의 투쟁기다’ 싶었어요.
처음 소설을 읽었을 때, ‘딸에 대하여’가 아니라 ‘(---)에 대하여’라는 생각을 했어요. 어떻게 보면 ‘엄마에 대하여’ 같기도 한데 또 ‘딸에 대하여’이기도 하고, ‘레인에 대하여’, ‘제희에 대하여’ 일 때도 있고요. 그런 점에서 결국 ‘우리에 대하여’이기도 하다는 거죠. 그래서 이 이야기를 내가 할 수 있겠다 생각한 거거든요.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후 GV(게스트와의 대화)에서 사회를 진행하셨던 씨네21 송경원 기자님이 “이 영화는 ‘다름에 대하여’다.” 하더라고요. 무릎을 탁 쳤어요.
퀴어라는 단어도 어떤 의미로 말하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정상성’에서 벗어난 존재들이라 본다면, 영화 속 캐릭터들 안에 다 퀴어함이 있는 거죠. 엄마가 제희를 대하는 방식도 그렇잖아요. 진짜 가족도 아닌데, 누가 그렇게 적극적으로 그 사람 일에 개입하냐고요. 근데 엄마가 그렇게 하는 건, 제희의 일이 자신의 일이 될 수도 있다, 혹은 그린의 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린이 자신이 해고당한 게 아님에도 동료 시간강사의 부당해고에 맞서 투쟁하는 것도 마찬가지에요. 그 동료를 위한 것이지만 또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한 거에요. 그러니까 영화는 각자의 다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것이 ‘우리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그게 이 영화의 힘이 아닐까 싶어요. 퀴어함이 (나와) 다른 것 같지만, 그 또한 내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거죠.
영화제 GV 때 조금 놀랐던 건, 관객들이 질문을 하거나 소감을 말하면서 자기 얘길 꺼냈다는 거였어요. ‘인지장애가 있던 우리 할머니도 영화 속 제희처럼 보따리를 그렇게 찾았었다’, ‘사회복지사인데 돌봄노동에 대해서 맨날 걱정한다’ 등. 이런 모습을 보면서, 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 영화가 어떤 거울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가족들도 영화를 봤는데, 엄마도 그렇고 언니들도 영화 속 이야기에 공감을 하더라고요. 이들은 사실 ‘정상성’ 범주 안에 있는 사람들인데도 영화 속 캐릭터에 이입을 할 수 있었다는 거죠. 이게 영화라는 매체의 힘인가 싶기도 했고요.
영화 찍기 전, 취재를 위해서 책 『나는 신들의 요양보호사입니다』를 쓴 이은주 작가를 따라다녔어요. 작가님이 실제로 재택 방문 요양보호사이기도 하거든요. 사실 이 영화가 요양보호사들의 노동을 정말 제대로 담아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 노동의 힘듦과 디테일을 못 담았거든요. 촬영하면서 내가 가짜만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힘들기도 했어요. 제희라는 캐릭터에 대해서도 부채감이 있어요. 인지장애를 대상화시킨 것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에요. 이 영화 전에 제가 썼다고 얘기한 시리즈물이 정신병원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 인지장애를 가진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들의 삶과 증상이 어떤지 봤죠.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 제희의 이야기가 굉장히 순화된 거라는 걸 알아요.
영화 속 요양원도 고급인 편이죠. 실제론 그렇지 않은 요양원이 더 많잖아요? 엄마가 머리를 묶지 않고 일하는 것도, 사실 현장에선 안 되는 일이거든요. 머릴 묶지 않으면 언제 어떻게 잡힐지 모른단 말이에요. 이런 걸 알면서도 영화에서 어떤 수위를 조절한 건, 관객들에게 장벽을 낮춰주기 위함이었어요. 너무 힘든 이야기가 많으면 보는 사람도 힘들 것 같았거든요. 그렇기에 나 스스로는 이 부분을 제대로 재현하지 못했다는 부채감이 있는데, 관객들은 또 이런 노동, 돌봄 장면들을 보여줘서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아, 미디어가 정말 이런 걸 보여주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영화 찍을 때 에피소드도 궁금한데, 가장 촬영하기 힘들었던 장면은 뭐였나요?
제희가 있는 요양병원에 레크레이션 강사가 와서 노래하고 하는 장면 있잖아요. 다른 어르신들은 신나게 노는데 제희는 오히려 그게 싫은 듯한 표정이고, 그걸 엄마가 신경쓰는 장면. 그 강사님이 배우가 아니라 실제 레크레이션 강사였어요. 그리고 사실 이 장면을 오프닝으로 하려고 했던터라, 좀 힘을 줘서 찍었죠. 그 장면에 등장하는 배우도 많고, 그래서 카메라도 여럿이엇고요. 힘들게 찍었는데, 결과적으론 그걸 오프닝으로 쓰지 않았죠. 이렇게 원래 계획과 달라졌거나 아예 쓰지 않고 날린 장면들이 꽤 돼요. 독립영화는 예산이 빡빡하니까 그런 걸 신경써서 만든다고 했는데도 결국 제일 돈이 많이 들어간 장면들을 다 날렸더라고요(웃음) 근데 이게 영화계의 어떤 저주 같은 거거든요. 많은 감독들이 그런 실수를 하는데 나도 그럴 줄은 몰랐죠(웃음)
-그럼 감독님이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요?
소설엔 없던 장면인데, 엄마가 제희가 만들었던 재단 사무실에 찾아가서 ‘어떻게 제희한테 이렇게 할 수 있냐’고 따지잖아요. 그러니까 재단에서 일하는 분이 ‘왜 이렇게까지 관여하냐? 혹시 어르신(제희)가 숨겨둔 재산 있다고 했냐?’고 묻고 난 후, 엄마가 국수집에서 국수 먹는 장면으로 넘어가죠. 그 장면을 제일 좋아해요.
제정주 PD랑 촬영 감독이랑 재단 사무실으로 쓰려고 한 곳에 로케이션을 갔다가 너무 배가 고파서 근처 작은 가게에 들어갔었어요. 정말 허름한 곳이었는데, 국수가 너무 맛있는 거에요. 그 국수를 먹으면서 ‘아, 이 장면을 넣어야겠다’ 싶더라고요. 원래 그런 갑작스런 결정을 안 하는 스타일인데, 엄마의 마음이 생각나더라고요. 제희를 위해서 먼 곳까지 찾아왔는데, 자신의 선의가 그렇게 오해된다는 걸 알게 된 엄마의 복잡한 마음을 국수 먹는 장면으로 넘길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이런 게 영화적인 거라는 생각도 했고요.
영화를 다 찍고 나서 깨달았던 부분이 있는데요. 내가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들고 싶었던 이유는 사실 소설 안에 있었던 게 아니라 작가의 말에 있었어요. “다른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내가 아닌 누군가를 향해 가는, 포기하지 않는 마음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말. 그 마음에 대해 쓰고 싶었다는 말이 와닿았었거든요. 우리가 흔히 ‘니가 뭘 알아? 니가 뭘 이해할 수 있어?’라고 하지만, 그 이해하려는 행위 자체에 의미가 있다는 거죠. 그리고 그게 없으면 살아가기 너무 힘들고요.
근데 요즘은 소수자의 문제뿐만 아니라 타인을 이해하려는 행위가 많이 줄어드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많은 이들이 고독한 사람처럼 혼자 남겨져 있죠. 누군가 손을 뻗어주길 원하지만, 아무도 뻗지 않는. 근데 소설 『딸에 대하여』는 그걸 하고 있단 말이죠. 이런 이야기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 또한 고독하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타인을 이해하려고 하고 있나? 그런 행위를 하고 있나? 싶은 생각을 했고, 그 결과가 이 영화인 것 같아요. 소설도 그렇긴 하지만 영화는 더 시각적이고, 조금 더 대중적인 매체잖아요. 이 이야기를 보고, 타인을 생각하고 이해하는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요.
-저도 영화 보고 나서 엄마의 마음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하게 됐어요. 엄마랑 이 영화를 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그런 이야길 들으면 너무 기뻐요.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는 것, 그것만으로 이 영화가 할 도리는 했구나 싶죠. 이 영활 보면서 오로지 나라는 사람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타인의 마음을 생각하게 됐다면 충분한 것 같아요. 형부가 정말 마블 영화만 보는 사람이고(웃음) 전형적인 40대 남성인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보고 “부모님 모시고 한번 더 볼게”라고 하더라고요. 이 사람 마음의 방향 화살표도 조금 움직였구나 싶어서 기뻤어요. 나한테도 위로가 되더라고요.
-더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볼 수 있으면 좋을텐데요. 영화와 관련된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다가오는 서울독립영화제(11월 30일~12월 8일)에서 상영이 예정되어 있어요. 극장 개봉은, 아직 미정이에요. 물론 하고 싶은데, 어떻게 될진 모르겠어요.
-오민애 배우(엄마 역), 임세미 배우(그린 역), 하윤경 배우(레인 역) 모두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는데, 그 덕을 볼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그랬으면 좋겠어요. 오민애 배우도 내년에 공개되는 작품이 더 있는 걸로 아는데, 타이밍이 잘 맞으면 개봉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근데 극장 개봉은 정말 점칠 수 없는 부분이라. 제정주 PD랑 제작사 아토에서 잘 해 주실거라 생각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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