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는 취직을 위해 고용주에게 보여주는 노동자의 구직 자기소개서이다. 이와 의미가 좀 다른 이력서로서, 청년 페미(feminist)+워커(worker)들이 같은 노동자의 위치에서 서로 “지금까지 해온 노동 이력”을 질문하고, 이야기하고, 소개하는 연재를 싣는다. 기록자와 인터뷰이는 모두 한국여성노동자회 청년여성 소모임 페미워커클럽 6기 노동기록팀이다. [편집자 주]
수많은 직업을 거쳐온 도마는 어떤 사람일까?
박스 물류창고, 호텔 서빙, 시민단체, 홍삼 공장, 빕스, 막걸리집, 개인 카페, 올리브영, 콘서트 안내, 의류매장, 쇼핑몰 안내, 주점, 텃밭 가꿈, 프렌차이즈 떡집 빚은, 화장품 공장, 삼각김밥 공장, 마켓컬리 물류창고, 항만회사, 노동조합…
지금까지 도마가 해온 일들을 열거한 것이다. 도마는 2012년~2023년까지 약 10여 년간 다양한 직종에서 일했다. 어떤 일은 일용직이었고, 또 어떤 일은 단기계약이었으며, 때로는 정규직으로 일했다. 10인 미만 사업장도 있었고, 500인 이상 사업장도 있었다. 어떤 일은 서비스직이고, 어떤 일은 생산직이었으며, 어떤 일은 사무직이었다.
“10대 때 저는 항상 직업적인 꿈이 확실한 사람이었어요.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때까지는 요리사가 되고 싶었고, 고등학교 때는 푸드 스타일리스트, 상담사, 노동운동가, 이렇게 되고 싶다는 게 늘 확실하게 있었어요. 고3 때쯤에는 사진작가가 정말 되고 싶어서 사회를 보는 눈을 키우고 싶었어요. 그래서 사회학과로 진학을 선택했어요.”
하고 싶은 공부가 있어서 간 대학이지만, 입시와 마찬가지로 순위와 경쟁이 있는 조직에 또다시 속하는 건 도마에겐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제일 힘들었던 것 중에 하나가 같이 생활했던 친구인데, ‘얘를 넘어서야 가고 싶은 학교에 갈 수 있는 거’였거든요, 대학교 입시가. 그렇게 해서 대학교에 갔는데 또 경쟁이잖아요. 숫자로 나를 검열하고 평가받는 그걸 4년 더는 못 하겠는 거예요. 그런 경쟁을 또 하는 게 너무 싫었어요, 그때는. 그래서 1학기만 하고 자퇴를 하고 대안대학을 찾아서 들어갔는데, 대안대학도 결과적으로 제가 만족하지 못해서 졸업하지 못하고 끝났어요. 두 번이나 학교를 자퇴하고 나니까 엄청 방황하게 되더라고요. ‘내가 하고 싶은 게 뭐지?’ 이걸 떠나서, 그냥 사람 자체가 맹해지고 멍해지고. 사람들 만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고 무섭고 그랬던 것 같아요.”
도마는 학교를 다니면서 올리브영 매장 등 서비스업종에서 일을 병행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난 뒤에는 하는 일도 바꿨다.
“사람들 만나기 힘들어지면서는 단기 알바를 많이 했어요. 하루 일하는 거나 일주일 일하는 거. 백화점 안내, 물류 창고, 의류 창고, 의류 매장 아니면 호프집, 이런 거를 전전하면서 그냥 페이가 센 일만 골라서 했어요. 많이 했던 것 중에 하나가 콘서트 안내하는 알바였어요. 그렇게 낯선 사람들을 단기적으로 만날 때는 별 생각이 안 들었던 것 같아요.”
“그냥 잊혀지더라고요. 한국에 있을 때 고민하고 걱정했던 것들이.”
학교를 그만두고 단기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중, 도마는 그동안 모아놓은 돈으로 일 년 동안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스페인 순례자의 길, 남미, 모로코, 아프리카 등을 두루 돌아보는 세계여행이었다. 일 년 동안 세계여행을 하겠다는 건, 내겐 아주 큰 결심이 필요한 일로 느껴졌다.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혹은 내려야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도마의 대답은 간단했다.
“저한테는 고민할 이유가 없었어요. 스무 살 때부터 친구들이랑 거의 매년 배낭여행을 갔던 것 같거든요. 배낭여행 하는 게 너무 재밌고 잘 맞았어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게 저는 너무 재밌어요.”
언제나 일을 했고 또 해야 했던 도마가 한 달, 혹은 일 년간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여행 경비뿐 아니라 여행하는 동안 중단될 수입까지 미리 준비해야 했을 것이다. 녹록한 일은 아니지 않았을까?
“예산은 한 달에 한 80만 원에서 100만 원, 이렇게 잡았던 거 같아요. 친구들이랑 계획을 엄청 일찍 세워놨거든요. 여행 가기 한 7, 8개월, 길게는 1년 전, 1년 반 전에 잡아놓고 여행을 갔어요. 그때는 학교 다닐 때라 다 아르바이트를 했으니까 그때까지 빡세게 돈을 모아놓고 갔다 오는 식으로, 늘. 일을 그만둘 때는 그냥 미련 없이 여행 때문에 그만두는 거예요.”
여행의 무엇이 도마를 그토록 사로잡았을까?
“그냥 잊혀지더라고요. 한국에 있을 때 고민했던 거나 걱정했던 것들이 생각이 안 나고, 오로지 오늘 그 하루 사는 거에만 집중하게 되고. 그 하루 먹을 거, 그 하루 볼 거, 그 하루 놀 거에만 집중하게 되는 그런 일상이 즐거웠어요.”
그렇게 도마는 일 년 동안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 여행을 기점으로 다시 한국에 왔을 때,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돈을 모으자.’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다시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어요.”
도마는 거의 100군데 가까이 이력서를 넣고 면접도 20번 이상 본 것 같다고 했다. 그 과정 끝에 도마가 출근하게 된 곳은 인천공항에 입점한 프랜차이즈 떡 가게였다. 그곳에서 도마는 떡 만드는 일, 발주하는 일, 매장 관리하는 일, 손님 응대하는 일, 매장 청소 등 다양한 일을 하게 되었다. 공항은 워낙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니 쉴 틈 없이 바빴다.
“두 번 피크 타임이 있는데 점심 시간이랑 저녁 시간이에요. 3교대가 있었는데, 오후 1시에 출근하면 그때가 가장 피크 타임 중에 하나거든요. 점심시간에 사람들이 몰려올 때 주문받고 진동벨 주고, 안에서 음식 나오는 거 도와주고, 주문 받고 커피 내리고. 이렇게 한 2시간 반복하면 점심시간이 대충 정리가 돼요. 그러면 저녁 시간을 위한 준비를 또 해놔요. 떡 만들고, 포장하고, 얼음 채우고, 얼음 머신이랑 커피 머신 청소하고, 주방 정리 도와주고. 그리고 좀 한숨 돌린다 싶으면 바로 2차 피크 타임이 와요. 같은 일을 또 2시간 정도 반복하고 나면 마감 준비를 해야 되거든요. 마감 준비도 한 1시간 반 정도 걸려요. 그러면 이제 밤 10시쯤 야간 비행 손님들이 우르르 몰려와요. 마지막 피크 타임인데 그때 교대를 했어요. 그렇게 8시간 근무하면 하루가 가 있어요.”
그런데도 도마는 그런 바쁜 일과를 오히려 잘 맞는 일로 기억하고 있다. 그건 도마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와도 비슷하다.
“바쁜 곳에서 일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한가하면 잡생각이 많이 들거든요. 일에 대한 생각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인생에 대한 불안감이나 이런 것들도 밀려오고. 잡생각들이 너무 많이 드는데 저는 그게 싫거든요. 일할 때 딱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이 좋고, 그런 환경이 갖추어지는 게 좋아요.”
사실 도마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일, 즐거웠던 일이나 어려웠던 일을 물어보면, 대부분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 주위 사람들과 있었던 일에 대해 얘기한다. 그만큼 도마에겐 사람과 관계가 중요하다. 도마가 이 곳에서 한 경험을 좋게 기억하는 가장 큰 이유 역시 함께 일했던 동료들 때문이다.
“그때 사람들이랑 관계가 진짜 애틋했고 끈끈했어요. 저랑 같이 퇴근하는 이모가 있었는데, 이모랑 같이 팔짱 끼고 잠들면서 집에 간 것도 기억나고. 거기는 진짜로 돈을 벌기 위해서 그냥 모인 거잖아요, 다들. 그러니까 정시 딱 되기 전 58분부터 다 유니폼 벗고 착착착 기계처럼 ‘야, 야, 옷 벗어, 옷 벗어’, ‘정리해, 정리해.’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서 퇴근길을 다 같이 바쁘게 나섰던 것도 너무 재밌었어요.”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은 일상의 풍경을 바꿨다. 공항이 폐쇄된 것이다. 도마 역시 다른 매장으로 발령을 받았고, 동료들과 흩어지게 되었다.
이력서를 250군데 넘게 쓰고, 어렵사리 채용된 직장
새로 출근하게 된 사업장은 강남에 있는 작은 매장으로, 점주 외에 고용된 노동자는 도마 뿐이었다. 교통비를 제외한 임금, 고용체계 등 기본적인 노동조건은 같았지만, 도마가 경험한 매일은 무척 달랐다. 점주는 폭언을 예사로 하며 직장 내 괴롭힘으로 도마를 압박했지만, 그로 인한 고통과 부당함을 나눌 한 명의 동료조차 없었다.
어려운 시기를 보낸 후, 도마는 취업수당, 실업급여를 받으며 국비 지원 학원에 들어가 건축 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전문적인 직종에서 일해보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건축 기능사 자격증을 따고자 했을까?
“시기적으로 그게 제가 가장 빠르게 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했고, 제가 완전 안 해본 걸 해보고 싶었어요. 주얼리 공예도 생각해 보고 미용도 생각해 봤는데 그런 건 다 제가 관심이 있었던 것들인 거예요. ‘내가 완전 관심 없었던 걸 해보자’ 이렇게 해서 선택하게 된 게 건축이었어요.”
그러나 ‘완전 안 해본 일’이기 때문에 자격증을 딴 후에도 취업이 쉽지는 않았다.
“국비 학원 가면 보통 학교랑 연계해서 취업을 시키는 경우가 많거든요. 근데 전 그게 너무 하기 싫어서 그냥 제가 찾아서 갔어요. 이력서를 250군데 넘게 썼어요. 면접을 거의 진짜 30군데 정도 본 것 같아요.”
그 많은 이력서를 계속해서 내며, 채용까지 겪어야 했을 여러 번의 탈락을 도미는 어떻게 견뎠을까?
“(초등) 6학년 때부터 친한 친구 이름이 민지거든요. 기억나는 게, 제가 50군데 정도 돌파했을 때마다 ‘민지야, 나 이력서 50군데 돌파했어.’ 이랬어요. 그러면 민지가 ‘잘했어. 잘하고 있는 거야.’ 이런 식으로 말을 해주거든요. 그게 되게 재밌었어요. 힘이 많이 됐고. ‘100군데 돌파했어’, ‘150군데 냈어’, ‘200군데 넣었어.’ 이렇게 말할 때도 ‘괜찮아, 너의 재능을 몰라보는 걔네가 불쌍한 거야.’ 이런 식으로 말해줬어요.”
친구의 응원을 받으며 지원을 한 끝에, 도마는 한 항만회사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곳은 오래 일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어렵게 채용이 된 회사이니만큼 퇴사 결정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 짐작했으나, 도마의 대답은 이번에도 역시 간단했다.
“(퇴사 결정은) 쉬웠어요. 너무 힘들었어요. 사무직은 그 항만회사가 처음이었는데, 앉아서 일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고. 그전까지는 서비스직을 해왔으니까 계속 서서 일했는데, 그때보다 몸이 더 아픈 거예요. 가만히 앉아 있는 게. 눈이 진짜 너무 시리고, 빠질 것 같고. 그리고 사무실이 되게 조용했어요. 그 조용함도 너무 싫더라고요.”
‘이 회사는 정말 아니다.’ 생각하게 된 결정타가 있었다.
“회사 대표가 성매매 업소, 그런 룸이라고 하나, 그 비용을 회계한테 청구하는 걸 알게 됐거든요. 그런 일이 비일비재한 거죠. 그걸 알고는 완전히 이런 데서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재 도마는 대학에 진학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제가 홍대입구에서 일하거든요. ‘도대체 또 뭘 하고 싶은 거냐, 너는?’ 지금 이렇게 스스로한테 물어봤을 때, 홍대입구에 돌아다니는 학생들을 보며 너무 부러웠어요. 대학교 생활하는 게. 그래서 ‘대학교 생활을 하면서 돈을 벌어야겠다’고,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부하고 싶더라고요. 4년 동안 온전히.”
‘너 뭘 하고 싶어?’ 스스로를 탐색하는 여행과도 같은 삶 노동이 생계 수단이면서 자아실현이 될 수는 없을까
내가 본 도마는 마치 여행을 하듯,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하면 내가 즐거울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계속 묻고, 그곳을 가기 위해 계획하고, 준비가 끝나면 망설이지 않고 발을 내딛는 사람이다. 지도가 없는 길에 새로운 발을 디딜 때마다 불안하거나 두려운 마음이 들지는 않을까?
“어릴 때는 제가 원하는 틀이 있었어요. 원하는 틀이라기보단, 사회나 사람들이 만들어낸 틀에 맞춰서 들어가고 싶었어요. 공부도 잘하고 싶고, 어떤 것에 특출나게 뛰어난 재능도 있고 싶고. 그런데 스무 살 때부터, 그러니까 대학교 진학을 하지 않으면서부터 정말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삶을 꾸려나가고 있는 거거든요. 그때부터 ‘아, 정해진 틀이라는 것도 내가 만들었구나. 내가 만든 틀 속에 내가 갇혀 있었던 거구나’ 깨달았어요. ‘다른 사람들의 말, 특히, 나를 모르는 다른 사람들의 말, 정말 중요하지 않구나’ 이런 것도 깨닫고요.”
그렇다면 도마는 어떻게 자신을 규정하려 들던 그 ‘틀’의 무게를 비교적 가벼운 것으로 여길 수 있게 되었을까?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때 생기는 것 같아요. 제 주변 사람들은 다들 정말 개성 넘치는 삶을 살고 있거든요. 그런 삶을 보면서 그대로 그냥 존중하고, 그 삶을 이해해보려고 노력도 해보고, 그런 삶의 다양한 형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힘에서 나온다고 저는 생각해요.”
다른 사람을 존중할 수 있는 만큼 도마는 자신 역시 존중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의 저는 개성 만점인 것 같아요. 잘 사는 것 같아요. ‘자기 멋대로 잘 살고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저는 계속해서 저한테 맞는 새로운 일을 찾아가는 걸 좋아하는 편인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까지 딱히 ‘어떤 일이 잘 맞았다.’ 하는 건 없었어요. 공항에서 일했던 건 그나마 가장 좋았던 거지, ‘내 인생에서 가장 좋은 직장은 아닐 텐데.’ 생각해요. 궁극적으로는 그 일 자체는 그냥 돈을 벌기 위해서 했던 거거든요. 저에게 ‘노동’은 지금은 단순히 제가 이 자본주의 사회에 살아가기 위한 도구이자 수단이지만, 결국엔 ‘자아실현’이 되는 매개체였으면 좋겠어요.”
도마가 생각하는, ‘노동’이 살아가는 수단이면서 동시에 ‘자아실현’이 될 수 있는 방향은 어디일까? 도마도 아직 그 방향은 알지 못한다. 다만 그 방향을 찾아가는 방법은 알고 있다.
“저 자신한테 계속 물어보는 것 같아요. ‘너 뭘 하고 싶어?’, ‘도대체 뭘 선택하고 싶어?’ 그런 질문을 스스로한테 많이 한 덕분에, 뭔가 하고 싶은 게 항상 있어요. 그것에 감사해요.”
도마는 과정 중이다. 그러나 모든 존재는 과정 중이지 않은가?
[필자 소개] 영: 미디어 제작자와 활동가 사이 어딘가. 한 존재가 하나의 세계라면, 그 세계가 지닌 복잡하고 고유한 무늬를 알게 되는 순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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