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임신중지약 승인한 日, 그런데 ‘제한’이 많다고?비싼 값, 지정의 처방, 배우자 동의, 입원 필요…접근성 문제 제기돼한국보다 앞서, 일본은 첫 경구 임신중지약(영국 라인파머제약)이 올해 4월 28일 승인되었다.
임신중지 방식으로 일본 사회에서는 소파수술이 주를 이루는데, 여성들은 오랫동안 몸에 부담이 적은 ‘먹는 임신중지약’의 조기승인을 요구해왔다. 이번 승인으로, 필요한 모든 사람이 손쉽게 경구 임신중지약을 이용할 수 있게 될까. 임신중지케어 카운슬러이자 RHR리터러시연구소 대표인 츠카하라 쿠미(塚原久美) 씨의 기고를 싣는다. [편집자 주]
‘일본의 첫 경구 임신중지약’으로 영국 라인파머사의 메피고팩(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 두 약제의 세트)이 4월에 승인되고 5월에 발매되었다.
“임신중지의 선택지가 늘어났다!”며 환영하는 목소리도 많지만, 약 사용에 제한을 두어 문턱을 높인 것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당분간은 입원이 필요한 점, 배우자 동의가 필요한 점, 모체보건법 지정의사만 처방할 수 있는 점, 비용이 높은 점, 규제 구분이 ‘극약’으로 지정된 점, 엄중한 취급이 필요한 점 등등.
필자 역시, 경구 임신중지약이 일본에서 경구 피임약의 전철을 밟아 그 획기적인 측면이 이해되지 못한 채 활용되지 않는 약이 되면 어떡하나 위기감을 느낀다. 일본의 15~49세 여성에게 ‘경구 피임약’ 사용률은 승인 후 20년이 지나도록 2.9%에 불과하다.(2019년 기준) 전 세계의 평균사용률은 8%이고, 선진국의 평균 사용률은 16.5%인데, 일본의 비율이 훨씬 낮은 데는 다양한 이유가 얽혀 있다. 여전히 강한 편견, 비싼 가격을 비롯하여 낮은 접근성이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1999년 6월까지 유엔 회원국 중 유일한 ‘경구 피임약’ 미승인 국가였다. 일반적으로 의약품의 승인에는 1년 정도 걸린다고 하는데, ‘성문란’, 저출생, 에이즈, 환경호르몬 등 다양한 핑계를 대며 경구 피임약의 심의는 9년이나 난항을 겪었다. 그러던 것이 남성이 사용하는 발기부전치료약 비아그라의 스피드 승인에 예기치 못한 힘을 얻었다.
비아그라는 미국에서 1998년 3월에 처음 승인되어, 이후 4개월 간 사용자 260만 명 중 123명이 사망하고 일본에서도 인터넷을 통해 개인 수입을 하던 60대 남성 한 명이 사망했다는 보고가 있었다. 그런데도 같은 해 7월에 일본은 서둘러 비아그라 승인을 신청했고, 당시 후생성은 ‘해외에서의 임상실험 결과만으로 충분하다’며 겨우 5개월만인 12월에 이례적인 스피드 승인을 했다.
피임약과 비아그라에 대한 ‘이중잣대’에 국내외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마침 1999년 6월 말에 유엔에서 예정되어 있던 ‘성과 재생산 건강의 진척상황’ 논의에서 세계적인 맹비난을 당할 것은 분명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서둘러 경구 피임약을 승인했던 것이다.
경구 임신중지약에 대한 승인 심사는 이상할 정도로 엄격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05년부터 경구 임신중지약을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했다. 2019년에는 필수의약품 중에서도 필수적인 약을 등재하는 ‘코어리스트’로 옮겼다. 코어리스트에 들어가는 약은 안전성과 유효성이 탁월한 데다가, 저가로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도 있다.
현재 이 두 약제(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를 세트로 한 ‘경구 임신중지약’의 전 세계 평균 가격은 1천 엔 정도다. 하지만 일본산부인과의사회에 따르면 일본에서의 판매가는 5만 엔이나 된다.
가격이 솟구친 것은 세계에서 이미 35년간이나 사용되어온 약에 대해, 일본의 심사기관이 기초적인 비임상시험(동물실험과 시험관 시험)부터 모든 시험을 다시 하도록 했고, 심지어 임상시험 제1상부터 3상까지 8년을 들여 12종류나 되는 임상시험을 의무화했기 때문이다. 라인파머사의 전 중역 마리온 울먼 씨에 따르면 “(일본 정부가 명한) 대부분의 실험을 해외에서 요구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시험 결과, 메피고팩은 ‘극약’으로 지정되었다. 왜 극약인지 후생노동성 담당자에게 문의하니, 한 가지 이유로 든 것이 동물실험에서 “(임신중지가 실패해) 태아가 살아남은 경우 새끼에게 기형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었다고 답변했다. 일본에서는 약으로 임신중지에 실패하면 외과수술을 하게 되어 있다. 존재할 수 없는 태아에 대한 위험을 이유로 ‘극약’ 지정을 한 것은 불합리하다. (후생노동성은 이후 7월에 메피고팩의 제2제의 유효성분을 ‘극약’에서 ‘독약’으로 변경했다.)
한편, 임신중지 업무를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일본산부인과의사회는 경구 임신중지약의 취급에 대해 일관되게 “극약인 중기 임신중지약 프레글란딘과 같은 엄중 관리”를 후생노동성에 요구했다. 프레글란딘은 1970년대에 일본에서 개발된 질좌제로, 당초에는 임신 초기의 임신중지에 대한 임상시험에서 높은 성공률을 보여 일본 국내외에서 유망하게 보던 약이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무슨 이유인지 1981년에 겨우 68건의 임상 사례가 첨부되어 승인 신청이 이루어졌다. 산부인과의 경영 악화에 대한 우려와, 일명 ‘생명존중파’인 보수파 정치인들에 의해 ‘성문란’을 우려하는 목소리 등이 들끓으며 후생성은 3년이나 시간을 들여 ‘이례투성이인 3중 속박’이라는 엄중한 규제를 두는 조건으로 1984년에 겨우 승인했다.
3중 속박이란 첫째 ‘임신 중기의 치료적 유산’에 대해서만, 둘째 ‘모체보호법 지정의사만이 사용가능한 극약’이라고 지정했으며, 셋째 부정 유출 방지를 위해 상세한 ‘관리-취급 요강’을 정하고 위반하는 자는 행정지도로 출하를 정지시켰다. 또한 1997년에 후생성은 해당 약에는 자궁파열과 자궁경관 열상의 우려가 있다며 주의를 환기했으나, 일본에서는 지금도 중기 임신중지의 우선 선택지이다.
사실 프레글란딘은 20세기 말에는 경구 임신중지약의 제2제 후보 중 하나였지만, 동일한 작용이 있으며 ‘보다 새롭고 손쉽게 사용할 수 있고 저가인’ 미소프로스톨에게 완전히 자리를 내어주고, WHO의 ‘안전한 임신중단 리스트’에서도 제외되었다. 경구 임신중지약은 용량을 바꾸면 중기 임신중지약으로도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다. 그러니 메피고팩을 오래되고 위험한 중기 임신중지약의 ‘엄중관리’ 기준에 맞출 것이 아니라, 안전한 경구 임신중지약으로 대체할 필요가 있다.
유엔은 여성과 소녀의 존엄과 선택을 중심에 둔 임신중지 케어를 요구한다. 불필요한 장벽을 제거하고, 안전한 경구 임신중지약의 접근성을 개선해야 한다. (번역: 고주영)
-〈일다〉와 제휴한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 제공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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