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아스파라거스는 착취의 맛” 독일판 깻잎 투쟁기‘이민자 국가’ 독일 사회의 경험⑥ 동유럽 출신 계절노동자들한국의 농업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다룬 우춘희 연구활동가의 『깻잎 투쟁기』(교양인, 2022)를 읽었다. 독일에서 웬만한 한식 재료는 아시아마트에서 구할 수 있지만, 깻잎만큼은 직접 키우지 않으면 맛볼 수 없다. 그런 깻잎을 한국 살 땐 귀한 줄 모르고 먹었다. 그런데 그 깻잎이 한국에 온 외국인 노동자의 눈물로 수확된 것을 알게 됐다.
이주노동자들을 ‘불법체류자’로 만드는 문제가 많은 현 고용허가제 하에서, 낯선 얼굴을 한 농민들이 있었다. 이 농민들은 이주노동자들의 출신 국가의 물가와 평균 월급 운운하면서, 한국인과 똑같이 최저임금을 적용하면 우리만 손해라고 말한다. 월급을 적게 줘도 여기서 일할 수밖에 없는 이주노동자들의 처지를 이용해 하루 10시간씩, 한 달에 28일, 300시간 넘게 일을 시키고, 좁디좁은 공동 기숙사의 방값을 인당 31만 원으로 받아 챙기고 125만 원을 준단다. 시급이 4,000원인 셈이다.
“그래요? 우리가 못사는 나라에서 왔으니까, 최저임금의 절반만 준다고요? 그럼 못사는 나라에서 왔으니까 세금도 절반만 낼게요. 못사는 나라에서 왔으니까 음식 값도, 버스 값도 절반만 낼게요. 그러면 될까요?” (『깻잎 투쟁기』 96쪽)
캄보디아 출신 비스나 씨의 억울한 호소가 생생한 이유는, 독일에서 초여름 별미로 많이 먹는 슈파겔(아스파라거스)도 동유럽 계절노동자들의 땀과 눈물로 식탁에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겪는 문제는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제는 4월 중순 슈퍼마켓에서 슈파겔이 보이면 반가운 마음보다 무거운 마음이 앞선다.
코로나 기간 독일 정부 국경 폐쇄 결정, 농장계 “밭에서 아스파라거스가 썩어간다" 계절노동자의 입국 허가 강력히 요청
매년 30만 명의 계절노동자들이 독일에 왔다가 일하고 본국으로 돌아간다. 이중 농업 분야에 종사하는 계절노동자들은 27만 명으로 독일 전체 농업 종사자의 약 30퍼센트다. 라인란트팔츠 주 같은 경우는 전체 농업 노동자의 절반이 계절노동자이며, 함부르크(44%), 브란덴부르크(40%),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34%)에 있는 농장 및 농기업들도 계절노동자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대부분 주에서 봄부터 가을까지 노동집약적인 채소 재배 및 과일, 와인 재배를 위해 계절노동자를 필요로 하며, 이들은 대부분 동유럽 출신이다.
4월과 5월, 특별 위생 요건을 갖춘다는 합의 하에 총 8만 명의 계절노동자의 입국이 허용됐다. 루마니아 클루지나포카 공항에서 독일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1,800여 명의 노동자들이 뉴스를 통해 보도됐다. 안전거리도 없이 빽빽하게 몰려있는 사람 중에는 마스크도 없는 이들이 있었다. 코로나 감염의 공포 속에서도 생계를 놓을 수는 없는 이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독일로 향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열악한 작업환경이었다. 한 루마니아 노동자가 찍은 영상에는 이들이 작은 막사에 갇혀 지내는 모습이 담겨 있었고, 일부는 바닥에서 자는 모습도 있었다. 루마니아 노동자들은 하루 10시간, 주 7일 일하고 숙소 비용과 작업에 필요한 물품 비용까지 직접 부담하고 있었다.
이 영상이 소셜미디어로 퍼질 때쯤, 4월 바덴뷔템베르크 주 프라이부르크(Freiburg) 인근의 한 슈파겔 농장에서 57세 루마니아 남자가 코로나에 감염되어 사망했다. 계절노동자 사망으로는 처음이었다. 이후 전국적으로, 다수의 계절노동자가 일하는 집단 농장들에서 약 400명 이상의 감염자가 발생했고, 열악한 숙소에 대한 민원이 170건 이상 접수되기도 했다. 8월 바이에른 주 마밍(Mamming)의 한 야채 농장에서 발생한 수확노동자 232명 감염 사례는 전국 최대 감염원으로 기록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방역 조치로 인해 일정 기간 농장 운영이 중단되고 계절노동자 공급에 차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해 독일은 전년 생산량의 90퍼센트 가까이 되는 슈파겔을 수확했다. 이는 유럽연합(EU) 전체 생산량의 38퍼센트로, 독일에서 수확되는 슈파겔은 독일뿐만 아니라 다른 유럽 국가에 팔려나가는 중요한 수출품 몫을 했다.
유럽으로 수출되는 독일의 채소 과일 등 식재료 가격이 싼 이유 계절노동자에 대한 ‘임금 덤핑, 부당 임대료, 부적절한 보험 혜택’
독일 옥스팜은 수년 동안 계절노동자의 실태를 조사하고, 이들에게 공정한 대우와 사회보험 혜택을 보장하기 위해 일해왔다. 올해 5월, 옥스팜은 ‘공정 농업 이니셔티브’(Fair Farm Work Initiativ)와 함께 독일 슈파겔 농장과 딸기 농장에서 계절노동자들이 여전히 ‘임금 덤핑, 부당한 임대료, 부적절한 건강보험 혜택’ 등을 겪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현장 조사와 더불어 진행한 인터뷰에서 계절노동자 중 일부는 “우리는 노예처럼 일했다.”, “그들은 우리의 여권을 빼앗고, 일을 제대로 안 한다고 총과 칼로 위협을 하기도 했다.”, “다시는 독일로 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독일 정부는 2015년 1월부터 계절노동자에게도 법정 최저임금이 적용되게 했다. 원칙적으로 시간당 12유로(2022년 기준)로 책정되어 있지만, 계절노동자들이 명세서 없이 현금으로 받는 월급은 최저임금보다 낮은 경우가 많다. 고용주가 사회보험을 제공할 의무가 없어 노동자 스스로가 건강, 연금, 실업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채 일하는 노동자들이 다수다. 또한 고용주는 법정 최저임금 외에 식사와 숙소(2022년 기준 각각 월 270유로, 241유로)를 현금으로 제공하게 되어 있지만, 이보다 더 높은 가격을 책정해 임금에서 삭감할 수 있다.
현장 조사 결과 브란덴부르크의 한 농장에서는 계절노동자들이 2주 동안 126시간 근무를 하고 635유로(약 89만 원)를 받는다는 것이 드러났다. 곰팡이가 핀 숙소에서, 주방 없이 이동식 스토브를 사용하고 있었으며, 50명을 수용하는 건물에 화장실이 단 하나였다. 고용주는 막사같은 숙소를 제공하면서 평방미터당 40유로를 청구하고 있었는데, 이는 뮌헨과 같은 대도시 집값과 비교해도 매우 높은 가격이다. 건강보험이 가입되어 있지 않아 아파도 참거나, 병원에 가도 본인이 부담해야 했다. 이처럼 고용주들은 계절노동자들의 실제 임금을 낮추기 위해 온갖 수법을 동원하고 있었다.
옥스팜은 이런 지속 불가능한 노동조건의 책임은 농장뿐만 아니라, 슈파겔과 같은 농작물에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을 지불하는 슈퍼마켓에도 있다고 지적했다. 독일 식품소매 시장의 85퍼센트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대형 슈퍼마켓들은 농기업 및 농장에 극심한 가격 압박을 가하고 있고, 농장들은 현장 노동자들에게 그 부담을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옥스팜은 대형 소매업체들이 적절한 가격을 지불하고 농식품을 구입해야 하며, 정부가 소매업체들이 생산 비용 이하로 농작물을 구매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도 계절노동자가 사회 보험료 납부 대상으로 고용되어, 노동하는 동안 완전한 법정 건강보험 혜택을 받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계절노동자가 없다면 슈파겔도, 딸기도, 와인도 없을 것”
독일 연방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EU 내에서 약 710만 명이 다른 EU 회원국에서 일하고 있다. 그중 독일에서 일하는 EU 회원국 노동자는 약 280만 명이며, 이것은 독일에서 일하는 전체 외국인 노동자(EU와 비EU 국가 모두 포함) 약 500만 명 중 절반 이상에 해당한다.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도 EU 회원국 노동자들에게 중요한 목적지지만, 독일은 유럽 내에서도 취업을 위해 고려되는 1순위 국가이다. 독일에서 일하고 있는 EU 회원국 노동자의 대부분은 폴란드, 루마니아, 이탈리아, 크로아티아, 불가리아, 그리스, 헝가리 등에서 온 사람들이며, 발칸반도 출신 노동자도 상당수다.
1980년대 말, 구 공산진영 국가들의 붕괴는 유럽 내 대규모 이주를 불러왔다. 1990년대에는 매년 평균 약 60만 명이 구공산 국가에서 서유럽으로 이주했고, 이 중 많은 수가 독일로 들어왔다. 1989년부터 2002년 사이에 주로 구소련, 폴란드, 루마니아 출신의 독일계 인구 약 290만 명이 독일에 들어왔다고 집계된다. 이 외에도 파종 기간이나 수확철에 독일에 머물면서 일하고 돌아가는 계절노동자들이 많이 생겼다. 1990년대 독일의 인접국가인 폴란드 노동자의 4분의 3이 ‘독일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고 답할 정도였다.
1990년 통일 이후, 독일 정부는 자국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동유럽에서 오는 이민자 수를 제한하고, 계절노동자의 활동을 1~3개월로 제한하는 정책을 펼쳤다. 이런 제한 조치로 1990년 중반 이후 많은 폴란드인들은 스페인, 영국, 벨기에, 프랑스, 이탈리아, 아일랜드 등으로 이주했다. 폴란드 계절노동자들이 빠져나간 부분을 루마니아, 불가리아에서 온 계절노동자들이 메웠다. 이들은 독일에서 농업 분야뿐만 아니라 호텔, 레스토랑, 건설 부문에서 필요로 하는 계약 노동을 담당했다.
EU의 확대도 유럽 내 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2004년 5월 초, 동유럽 8개국인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헝가리,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가 EU에 가입했고, 2007년 루마니아와 불가리아에 이어 2013년에 크로아티아가 가입하면서 EU는 더 확대됐다. 이들 동유럽 국가 사람들에게 독일은 기회의 나라가 되었다. 2004년 당시 폴란드의 1인당 소득은 EU 15개국 평균의 44퍼센트에 불과했고, 실업률은 19퍼센트로 EU 평균(8.2%)보다 훨씬 높았다. 2007년 불가리아와 루마니아도 마찬가지였다. 신규 EU 회원국의 노동자들은 주로 경제적인 이유로 독일로 이주를 결심했다.
당시 독일은 2004년 동유럽 국가들이 EU에 들어오면서, 이들 회원국에게 주어지는 유럽 내 이동과 노동의 자유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노동시장이 완전히 개방될 경우, 국내 노동시장에 과도한 부담을 주고 또 이것이 임금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이에 독일은 신규 EU 회원국 노동자들이 EU 가입 2년 후부터 3년간 일할 수 있고, 그다음 2년은 일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에 폴란드 노동자들의 상당수는 2004년 EU 가입 초반에 영국으로 노동이민을 갔지만, 독일로 일하러 들어오는 수가 급격히 줄지는 않았다. 2014년 2-3-2년 제한조건이 없어진 이후, 최근 몇 년간은 불가리아와 루마니아 노동자들이 독일로 많이 유입되고 있다.
2010년 전후, 유럽 재정위기 상황도 유럽 내 이주를 더욱 활발하게 만들었다. 특히 국가부도까지 가는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은 남부유럽(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 등) 국가에서 상당수가 더 나은 삶을 위해 경제상황이 나은 다른 유럽 국가로 이동했다. 2013년 그리스는 청년실업률 60퍼센트를 기록했고, 2014년 이탈리아는 청년실업률 42퍼센트를 넘었다. 1960년대 손님노동자로 독일에 온 남부유럽 사람들과 많이 다르지 않은 얼굴로, 이들은 2010년대 독일로 향했다.
‘우크라이나 간병인 구함’…더욱더 싼 노동력으로 들어오는 사람들
가난한 유럽 국가 사람들이 독일로 와서 독일 사람들이 꺼리는 일을 하고 있다. 독일 청소노동자 40퍼센트가 독일 국적이 아니다. 독일 내 식품 생산 및 가공업, 건설 현장, 호텔 및 관광업소 서비스직, 유럽 전역에 화물을 나르는 트럭(LKW) 운전자, 택배 및 배달 서비스, 도축·육가공업, 계절별 수확노동, 노인 간호 분야는 이민자 없이는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 성매매가 합법인 독일에서 성 노동자의 80퍼센트가 외국인이다. 대부분 루마니아, 불가리아, 헝가리 출신 여성들이다.
24시간 상주해서 독일인을 간병하는 인력의 경우, 주로 폴란드인이 담당해 왔다. 이 일을 중개하는 업소들이 그동안 독일인 피간병인들에게는 높은 서비스비를 받으면서 상주 폴란드 간병인에게는 월 최저임금으로 지급하는 관행들이 드러나 문제가 되었다. 20시간 일하면서 하루 6시간 근무 기준의 최저임금을 받으며, 피간병인 가족과 중개사무소의 무책임 속에 괴로워하는 동유럽 여성들의 이야기가 종종 언론에 보도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독일 내 24시간 노인 간병을 해줄 ‘우크라이나 간병인을 찾는다’는 사설 중개업소의 광고가 성행하고 있다. ‘독일어 필요 없음, 월 급여 700유로’를 버젓이 명시하고 있다. 전쟁과 함께 더 싼 값의 노동이 독일에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일을 하고 있지만, 드러나는 경우는 극히 일부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떠난들, 그 자리는 더 싼 노동력으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폴란드 노동자들이 떠난 자리를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노동자들이 채운다. 폴란드보다 경제 사정이 더 좋지 않은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노동자들, 이제는 전쟁에서 피난을 나온 우크라이나 노동자들이 독일에서 더 적은 비용으로 힘든 일을 할 의지를 가지고 있다.
독일에 살면서 좋은 점이 갖가지 채소와 과일, 소시지를 비롯해 각종 육가공 식품, 유제품이 싸고 풍부한 것이라고 종종 말했었다. 하지만 그 뒤에는 장시간 노동에 저임금 노동을 하고 있는 동유럽 노동자들이 있다. 우리가 누리는 풍요로움, 편리함 뒤에 생계가 절박한 노동자들의 희생이 있다. 이들의 노동 환경과 처우가 개선되지 않고는 독일은 결코 좋은 사회라고 말할 수 없다.
[필자소개] 손어진. 한국과 독일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현재 프랑스 파리에서 정치/사회 부문 기고, 리서치, 번역, 라디오 방송 리포팅을 하고 있으며, '지속 가능한 삶'이란 키워드로 독일에 사는 한국 녹색당원들과 만든 움벨트(umweltkorea.com)에서 활동하고 있다. 일다에서 [기후위기 시대의 정치! 독일 녹색당 이야기], [베를린에서 온 기후 편지] 등을 연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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