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와 가치, 두 개의 노동 사이에서

[페미워커가 만난 사람] 단체활동가이면서 보험설계사 난설헌

| 기사입력 2023/11/27 [20:39]

생계와 가치, 두 개의 노동 사이에서

[페미워커가 만난 사람] 단체활동가이면서 보험설계사 난설헌

| 입력 : 2023/11/27 [20:39]

이력서는 취직을 위해 고용주에게 보여주는 노동자의 구직 자기소개서이다. 이와 의미가 좀 다른 이력서로서, 청년 페미(feminist)+워커(worker)들이 같은 노동자의 위치에서 서로 “지금까지 해온 노동 이력”을 질문하고, 이야기하고, 소개하는 연재를 싣는다. 기록자와 인터뷰이는 모두 한국여성노동자회 청년여성 소모임 페미워커클럽 6기 노동기록팀이다. [편집자 주]

 

교집합이 전혀 없을 것 같은 두 가지 일을 하는 사람

 

“우하하하~” 공간을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호탕하고 우렁찬 웃음소리, 시선을 사로잡는 강렬한 색깔과 문구가 프린트된 티셔츠. 활동가 난설헌이다. 기자회견 참석부터 행사 기획 및 홍보, 회계 처리, 시위 현장에 찾아가 음악을 틀고 그에 맞춰 율동도 한다. 

 

▲ 7월, 환경교육센터 주최로 카페 어스돔에서 열린 활동가 시선 글 낭독회에서 ‘표류하는 언어’를 낭독하는 난설헌. (난설헌 제공)


‘활동가 난설헌’에게는 또 다른 이름이 있다. 바로 ‘보험설계사’. 평일에는 회사에 출근해 고객에게 전화를 돌리고 보험설계 대면 상담 약속을 잡는다. 영업을 뛰며 고객을 만나 알맞은 보험상품을 추천해 판매한다.

 

보험설계사 일을 하고 있지만, 난설헌에게는 ‘날 때부터 활동가’라는 이름표가 꼭 달려야 할 것만 같다. 그는 어릴 적부터 남성 양육자의 특공대 무용담을 들어왔지만 ‘군인’이 되기보다 군 개혁을 먼저 떠올렸던 사람이다. 중학교 시절부터 희망 직업란에 ‘인권운동가’를 적어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시민단체에서 뭐 하냐?”, “활동가는 무얼 하는 직업이냐?”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는데, 어떤 답이 적절할지 몰라 어색한 표정으로 굳어지곤 한단다. 난설헌은 “돈 안 되는 투쟁 현장을 따라다니는 사람, 그리고 엄마한테 혼나는 사람”이라며 농담조로 말하기도 하고, “활동가만이 유일하게 사회적 돌봄이 가능한 직업”이라고 정의를 내리기도 한다. “활동판을 버리는 방법을 모른다”고 할 정도로 진심이면서, 여전히 활동가로서 부족하다고 고민하는 사람이다.

 

난설헌은 친구와 같이 일을 하다 프로젝트가 어그러진 뒤, 보험설계사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활동가 노동’과 ‘보험설계 노동’은 그에게 차별의 구체적인 얼굴을 만나는 경험이자, 교집합 하나 없을 것 같은 두 가지 노동에서 ‘닮은 점’을 발견하는 경험이었다. 시민단체 활동과 보험설계, 한없이 멀어 보이는 이름 사이에서 난설헌이 찾은 건 무엇이었을까?

 

활동가의 눈으로 본, 보험설계 노동의 세계

 

시민단체 활동과 병행하기 위해 생계로 시작한 보험설계 노동에는 취업부터 부당노동, 동료들의 소수자 혐오 발언, 불쾌한 고객까지 크고 작은 문제들이 켜켜이 쌓여있었다. 난설헌이 일했던 노동 현장은 사회가 만들어 온 담론을 그대로 재현하고 재생산하는 한국 사회의 소우주였다.

 

생계로 시작한 일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생계를 지탱하기에 보험설계 일은 모든 게 불안했다. 임금이 성과에 따라 매달 달라지고 생활을 유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스케줄을 관리해 시민단체 활동에 시간을 쓰려던 초기의 계획도 어그러졌다. 임금은 유동적인데, 출퇴근 시간은 빡빡했다.

 

“처음에는 기본 월 200, 300에 매달 지원금도 있고 시간도 자유롭게 쓸 수 있다고 했어요. 그래서 ‘아, 오전에는 보험설계 일하고 오후에 기자회견하면 되겠지!’ 싶었죠. 근데 실제로 받은 건 하나도 없어요. 판매한 건마다 수당을 받는 시스템이라, 달에 버는 돈은 30~80만 원이고 많이 받으면 180만 원? 심할 때는 5천 원을 받은 적도 있었고. 시간 구애 안 받는다는 것도 다 거짓말이죠. 원래대로면 특수고용직이라 정시에 올 필요도 없는데 9 to 6 출퇴근이더라고요. 뭐, 거의 취업 사기죠. 나중에 따졌더니 곧이곧대로 믿은 내가 잘못이라고 하더라고요.”

 

▲ 난설헌의 한 달 업무 일정표 (출처: 난설헌 님)


난설헌을 힘들게 한 건, 말도 안 되는 노동조건뿐만이 아니었다. 사람으로부터 오는 스트레스가 컸다. 사람을 대면하는 보험설계 일의 특성상 외모 품평은 기본. 사무실에서는 약자에 대한 혐오 발언도 아무렇지 않게 오고 갔다. 영업 차 만난 고객으로부터 듣는 말도 숨이 막히기는 매한가지다.

 

“‘능력이 인품이고, 가난한 건 정신병’이라는 말부터 줄 세우는 능력주의, 성과주의가 만연하죠.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두고 장애인에 대해서도 한 번씩 혐오발언 해주고…. 내부에 노조가 있으면 제소라도 할 텐데 노조가 없으니 이런 말들을 제지할 수도 없어요. 무엇보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이걸 큰 문제라 생각하지 않고. 영업 뛰다 만나는 고객들은 그 나름대로 문제예요. ‘아가씬데 왜 살쪘냐?’, ‘결혼은 했냐?’부터 시작해서 ‘이렇게 만나니 데이트하는 기분이 든다.’는 헛소리도 들었어요.”

 

한편, 보험설계 노동은 활동가의 눈으로 바라봤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불평등을 다시 보게 했다. 글로만 읽었던 추상적 삶이 피부로 다가오는 경험이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생각보다 암 환자가 많다는 걸 느꼈어요. 고객들 중에서 암보험을 들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았고. 그리고 여성들이 가장 불안해하는 것 중 하나가 남편은 연금이 나오는데, 자신은 연금이 나오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남편의 연금에 너무 많이 의존하게 되니까요. 그리고 그 결정권이 배우자인 남성에게 있는 경우도 많았죠. 보험에 있어서도 성별화된 문제가 있더라고요. 물론 문제가 있는 줄은 알았지만, 그 실체를 만나는 것 같았어요.”

 

보험설계사 일에 피로감만 있지 않았다. 반대로, 난설헌에게 무력감과 실망감을 준 건 그가 일했던 시민단체도 마찬가지였다. 그 점에서 보험설계 노동과 크게 다르지 않기도 했다. 보험설계사 일과는 다른, 그러나 ‘낙원’은 아닌 또 다른 답답한 현실이 펼쳐졌다. 같은 가치를 좇는 조직이지만 한편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과 몰이해를 똑같이 보여주는 곳이기도 했다.

 

“남초 환경인데다 여성혐오는 기본이고, 성소수자에 대해 모멸적인 말도 해요. 남성들이 많다 보니 술자리에서 허구한 날 여자 얘기죠. 여자의 몸을 어떻게 성적 대상화하는지 뻔히 보여서 역겨울 때도 많고요. 한번은 단체 이사진에 있는 교수들과 술자리를 가진 적 있는데, 우리 단체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투자를 해놓고는 자랑스레 떠들더라고요.”

 

‘그림자 노동’이라는 이름 아래

 

난설헌이 두 가지 노동을 떠올릴 때면, 친밀함과 실망감, 애증이 수시로 교차했다. 활동가로서는 털어놓지 못했던 말을 보험설계사 동료들에게 털어놓게 된다. 노동과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은 난설헌에게 복잡한 경험이었다. 가까워지다가도 멀어지곤 했다.

 

“보험설계사 동료들이 헛소리도 많이 하지만 또 꽤 친해요. 이런 친밀함은 오히려 시민단체에 있을 때도 못 느껴봤던 것들이고요. 못된 말도 많이 하지만 잘 놀기도 하고. 약간 친근한 동네 주민에 가깝다고나 할까요. 한번은 제가 활동가인 걸 동료들이 알게 되었는데, 그 후로는 동료들이 다들 의식적으로 다들 입조심하려고 해요.”

 

▲ 난설헌은 35곳의 보험 회사로부터 위임을 받아 보험을 판매하는 대리점에서 일하고 있다 (출처: 난설헌 님)


보험설계 일과 시민단체 양쪽에 대한 애정과 실망, 애증은 난설헌의 관점을 바꿔 놓았다. 전혀 다른 두 개의 노동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하나의 이름으로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사회의 또 다른 ‘그림자 노동’이었다. 스스로를 갉아먹고 탈진하게 만드는 노동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주위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비슷했다. 노동자에 대한 존중과 쉴 권리가 없다는 점에서 같았다.

 

“예전에는 보험설계사 일과 활동을 분리하려고 했었어요. 그게 맞다고 생각했었고. 그러다 활동에 지쳐갈 때쯤, 활동했던 단체를 거리 두고 보게 됐어요. 그렇게 양쪽을 동시에 볼 수 있게 된 거죠. 자세히 보니 닮은 것도 있더라고요. 일단 노동이 잘게 쪼개져 있고, 사람들로부터 꺼려지는 노동이죠. 보험설계사라고 하면 사람들이 대뜸 저더러 ‘저 보험 안 할 거예요’라고 하거나 ‘보험쟁이 하지 말라’고들 말해요. 활동가라고 설명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묘한 표정으로 ‘아…거기?’라고 하거나 ‘정치하려고 하시는 거예요?’라고 물어보죠. 그래서 활동가들끼리 있을 때는 보험설계사라고 하고,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는 활동가라고 해요. 이유는 모르겠어요.”

 

모순 속에서 고민의 끈을 놓치 않는 청년 여성 노동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일을 할 때면 마주하는 질문이다. 난설헌에게는 더욱 무거운 물음이었다. 난설헌의 가장 큰 고민은 자신이 하는 일과 추구하는 가치 사이의 정면충돌이다. 기후위기 대응을 말하는 활동가인 한편, 사람들에게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상품을 팔아야 하는 보험설계사이기 때문이다. 미래세대를 걱정하지만 그런 우려를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하는 보험산업에서 일한다는 씁쓸함을 느낀다. 자신의 노동이 자신의 가치관과 대립될 때 노동의 또 다른 얼굴이 드러난다.

 

“보험 자체가 불안을 계속 요구하고 환기시켜야 팔리는 상품이죠. 기후위기로 수명이 얼마나 될지, 한 치 앞도 모르는데 사람들한테 보험을 팔아야 한다는 게 마음에 남아요. 너무 우울해요. 미래가 보장되어 있지 않은 이 세상에서 기후위기 해결을 말하지 않고 상품을 ‘사라고’ 해야 해요.”

 

일에서 오는 정신적 피로감과 부채감이 그를 짓누른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뼈활동가’다. 우울감과 답답함을 안겨준 보험설계 일에 대해 푸념을 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활동가로서 난설헌은 자신이 발견한 문제의식과 대안적 미래에 대한 상상과 고민을 멈추지 않는다.

 

“앞으로도 보험업계는 활발해질 거예요. 기온 변화에 따라 심혈관질환이나 뇌혈관질환 환자가 늘어날 거고요. 보험 수요가 그만큼 늘면 보험산업은 자본을 늘려갈 테니까요. 그러다 한계를 맞겠죠. 보험도 언젠가는 사라져요. 문제는 공공의료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보험만 사라진다면 빈곤층만 죽게 된다는 거죠. 공공보험이나 공공의료가 준비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문제의식도 생겼어요. 그래서 최근에 공공보험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어요. 재해로 인한 농작물 피해를 보전할 수 있는 기본소득형 보험, 재난에 따른 임시 주거 보험도 생각해 보고 있어요. 앞으로는 공공의료 운동을 하는 활동가와 만나서 이것저것 얘기해보고 싶고요.”

 

난설헌은 보험설계사로서도 활동가로서도 포기하지 않는다. 삶 속에서 수시로 튀어 오르는 모순 속에서 치열하게 고민한다. 대중 조직과 운동 앞에 남겨진 문제에 대해서 생각한다. 보험설계 노동에서 끌어낼 수 있는 사회적 논의를 상상한다. 활동과 앞으로의 삶에 대해 “잘 모르겠다”고 머쓱한 얼굴을 하는 그지만, 어느 곳으로, 누구를 향해 가야 할지 이미 알고 있다.

 

[필자 소개] 현: 취업준비생 청년 여성입니다. 숨겨두고 싶은 부끄러운 감정과 욕망에 대해서 씁니다. 건조하지만 연결된, 평등한 유대관계에 대해서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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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ㅇㅇ 2023/11/28 [15:41] 수정 | 삭제
  • 멋진 분이네요. 추상적인 개념으로서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삶으로 살아낸 평등과 환경 활동가로서 10년 후에도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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