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갈 테니 기다려, 부산과 오노미치를 이어보자”

동네가수 이내의 로컬여행 7편: 떠나는 기차 안에서 참았던 눈물이…

이내 | 기사입력 2023/12/02 [10:08]

“부산 갈 테니 기다려, 부산과 오노미치를 이어보자”

동네가수 이내의 로컬여행 7편: 떠나는 기차 안에서 참았던 눈물이…

이내 | 입력 : 2023/12/02 [10:08]

싱어송라이터인 이내가 최근 가지게 된 꿈은 “마을과 사람들을 연결하는 것”이다. 이 꿈을 꾸게 만든 씨앗 같은, 짧지만 강렬한 여행이 있었다. 코로나 팬데믹 후, 일본 여행이 재개된다는 소식과 함께 떠난 그녀의 우연한 여행은 거기서 그치질 않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이내의 여행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한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이미 연결되어 있었던 우리의 이웃 마을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과거의 시간과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함께 느끼게 된다. 인연의 꼬리를 물고 계속되는 이내의 로컬 여행기, 종착지가 정해지지 않은 마을 이야기들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누구나 친절할 수 있을 거야

 

이번 여행 처음으로 늦잠을 잤다. 눈을 떴더니 체크아웃 시간이라 깜짝 놀라서 침대에서 스프링처럼 튀어 올랐다. 순간  초능력이 생긴 건지 나갈 준비 하고 짐 싸는 데 5분 걸렸다. 어제 아침을 먹은 킷챠우이(きっちゃ 初)가 문 닫기 전에 가야 했기 때문에 부랴부랴 달렸다. 조용한 가게에서 마감 준비를 하던 가게 주인 도이가 나의 간절한 표정을 읽고는 활짝 웃으며 두부 완자 아침 정식을 차려주었다. 무려 비건식이다. 전날과  같이 주방 가까운 곳에 앉아서, 이번에는 도이와 수다를 떨며 늦은 아침밥을 먹었다.

 

▲ 아침식사를 할 수 있는 킷챠우이(きっちゃ 初)에 다시 들러, 가게 주인 도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도쿄 근교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오노미치로 이주한 도이는 낡은 빈집을 고쳐 가게를 차렸다. ©이내

 

가게 이름이 특이해서 무슨 뜻인지 물어보았다. 일본에서는 커피를 파는 옛날식 다방을 ‘킷샤텐’이라고 부른다. 도이짱은 커피 말고 차를 내는 가게를 할 거라서 ‘샤’를 ‘차’로 바꾸는 말장난을 떠올렸다. ‘텐’(가게라는 뜻) 자리에 들어간 ‘우이’는 ‘처음’이라는 뜻인데 자신이 금방 오만해지는 타입이라 첫 마음을 기억하자는 의미로 지었다고 말했다. ‘어, 나도 금방 오만해지는 타입인데!’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꾹꾹 눌러 천천히 이야기를 이어가는 도이의 목소리와 말투가 그녀의 음식처럼 따뜻하게 몸에 스며드는 게 좋아서, 자꾸만 질문을 하게 된다. 오노미치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친절한 것 같다는 내 말을 듣고 미소를 짓던 도이는 천천히 차를 따르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시간이나 마음의 여유가 있으면 누구나 친절할 수 있을 거야.” 

 

도쿄 근교에서 직장 생활하다가 오노미치로 이주한 도이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었다. 전에는 요리할 시간이 전혀 없는 생활을 하다가 이 마을에 오고 나서 흥미를 발견했고, 지금은 좋아하는 요리로 가게까지 차리게 되었다.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배경음악 삼아 오늘도 모든 그릇을 깨끗하게 싹싹 비웠다.

 

도이는 한국 요리를 먹어보고 싶다고 했다. 다음에 오노미치에 오게 된다면 꼭 만들어 주기로 약속했다. 선물로 가져온 내 3집 앨범을 주고 싶은데 숙소에 맡겨둘 테니 나중에 찾아가라고 했다. 꼭 다시 만나자며 양손을 크게 흔들며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왔다.

 

Raise your vibration 너만의 박동을 일으켜! 

 

숙소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맙소사, 돈을 안 내고 나왔다는 걸 깨달았다. 부랴부랴 숙소로 달려가 사장 히로에게 ‘킷챠우이’에 연락해서 정말 미안하다고, 가격 알려주면 여기 맡겨 두겠다고 전해달라 안절부절 부탁했다. 잠시 후 도이는 3집 앨범과 물물교환하자는 답을 보내왔다.

 

도이에게 선물과 메모를 남기고, 게스트하우스 주인 히로가 내려준 마지막 커피를 마시고,, 배웅 못해 미안하다는 타마(게스트하우스 스텝이자 히로의 아내)와의 마지막 통화를 마치고, 오노미치역으로 향했다. 그때 내 등 뒤로 들려온 히로의 마지막 말이 바로 “오노미치는 여행하는 것보다 살기에 더 좋은 곳이야!”였다.

 

▲ 여행가이자 사진 작가인 고우가 마지막으로 찍어준 내 모습. (이내 제공)


고우(오노미치에서 만난 여행자이자 사진 작가. 여행기 5-6편 참고)가 오노미치역으로 나와 주었다. 배웅보다 훨씬 좋은 노을 선물을 나에게 선사하고도, 처음 약속을 잊지 않았다. 이내가 일본어를 배워서 정말 다행이야, 어제 헤어지며 고우가 말했었다. 내년에 워킹홀리데이로 뉴질랜드에 가고 싶다는 그에게 외국어를 몸에 익히는 게 이렇게 좋은 일이라는 걸 보여준 것 같아 기뻤다.

 

고우가 인화된 사진을 담은 봉투 하나를 건넸다. 여행 중에 찍은 사진 몇 장을 골라 편의점에서 인화한 선물이었다. 삐뚤빼뚤한 한글로 ‘감사합니다’라고, 그리고 영어로 ‘Raise your vibration’이라고 쓰여 있었다. ‘너만의 박동을 일으켜’는 고우의 시그니처 문구였다. 눈물이 나려는 걸 겨우 참았다

 

우리 건강만큼은 잘 챙기자고, 어디선가 꼭 다시 만나자며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모두가 움직이는 대합실에서 사진기를 들고 멈추어 서 있는 고우의 모습이 오노미치의 마지막 장면으로 남았다.

 

기차 안에 앉아 사진을 천천히 들여다보았다. 고우만의 리듬이 사진과 삶으로 울려 퍼지기를 마음으로 빌고 있는데, 타마에게 메시지가 도착했다. 오노미치에 와 주어 고맙다고, 내가 얘기한 “자신이 되고 싶다”는 말을 잊지 못할 거라고 했다.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서 엉엉 울어버렸다.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마음과 마음이 닿아 넘쳐흐를 수 있다니, 정말로 누군가 오노미치에 마법을 걸어 둔 것일까.

 

“부산에 갈 테니까 기다려. 오노미치와 부산을 이어보자!”

그녀의 마지막 메시지에 “기다릴게. 이어보자! 이을 거야!”라고 대답했다.

 

순간만 모으고 사는 내가, 과거는 다 내팽개쳐버리는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나를 너무 잘 알아서 솔직히 자신은 없다. 이 순간 할 수 있는 것들을 이어갈 뿐이다. 내 머릿속으로는 셈할 수 없는 어떤 형태의 결과물이 현재가 되어 나타나지 않을까. 관심이라는 사랑을 담아 나 자신의 박동을 따르는 매일을 살아가다 보면.

 

[필자 소개] 이내. 동네 가수. 어디서나 막 도착한 사람의 얼굴로 두리번거리며 걷는다. 걸으며 발견한 것들을 일기나 편지에 담아 노래를 짓고 부른다. 발매한 앨범으로 『지금, 여기의 바람』(2014), 『두근두근 길 위의 노래』(2015), 『되고 싶은 노래』(2017), 디지털 싱글 「감나무의 노래」(2020), 「걷는 섬」(2022) 등이 있고, 산문집 『모든 시도는 따뜻할 수밖에』(2018), 『우리는 밤마다 이야기가 되겠지』(2021, 공저) 등을 썼다. 가수나 작가보다는 생활가나 애호가를 꿈꾼다. 인스타 @inesbr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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