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넥슨이고, 또 집게손가락이다. 뭔가를 집는 표현으로 흔히 볼 수 있는 집게 손 이미지를 ‘남성에 대한 조롱’이라고 주장하며 ‘페미 색출’에 몰두하고 있는 일부 게임 이용자들의 억지를 토대로, 기업이 하청업체를 압박하여 한 노동자, 아니 여럿의 노동환경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을 심각하게 본 시민단체들이 “게임문화 속 페미니즘 혐오몰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 〈넥슨은 일부 유저의 집단적 착각에 굴복한 ‘집게 손’ 억지논란을 멈춰라〉를 열자, 단체 활동가들을 향한 협박과 괴롬힘도 시작했다. 관련 내용을 취재, 보도한 기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집게손가락 억지논란, 시작부터 여성혐오
김유리 전국여성노동조합 조직국장은 먼저 이번 ‘넥슨 집게손가락 억지 논란 사태’ 흐름을 짚었다. 시작은 넥슨에서 제작한 게임 〈메이플스토리〉 캐릭터인 ‘엔젤릭버스터’(줄여서 ‘엔버’라 불림, ‘전장의 아이돌’이라는 수식어가 있음)가 리마스터(일종의 업그레이드) 되면서다. 이 리마스터 과정에서 “엔버가 위문공연 다니는 것, 할아버지 캐릭터에게 “오빠”라고 부르도록 하는 내용 등이 삭제됐는데, 이에 일부 이용자들이 불만을 표시”했다는 것.
이후 11월 25일, “엔버가 (아이돌이다 보니) 노래를 하는데, 이 보컬을 담당한 ‘나래’ 씨가 과거 트위터에서 ‘넥슨 클로저스 티나 성우 교체 사건’(성우가 ‘여자들에게 왕자는 필요 없다’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은 사진을 SNS에 올리자, 이 티셔츠가 ‘메갈리아4’ 후원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임을 문제삼은 일부 이용자들이 불매에 나섬. 이후 넥슨이 해당 성우의 작업물을 삭제함)에서 해당 성우를 옹호한 기사를 리트윗한 것이 ‘공론화’”됐다. 이후 보컬을 향한 괴롭힘이 시작됐고, 엔버의 ‘Shining Heart’ 뮤직비디오에서 춤추는 장면에서 남성혐오를 의미한다고 주장되는 ‘집게손가락’이 등장한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뮤직비디오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스튜디오 뿌리’의 여성 직원 중 한 명이 과거 본인의 SNS에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는 것이 알려지며, 집게손가락 억지논란이 일명 남초 커뮤니티 사이에서 퍼지게 됐다.
채윤태 한겨레신문 기자는 “남초 커뮤니티에서도 처음부터 집게손가락 주장에 힘이 실리진 않았다”고 했다. “누가 ‘이거 집게손가락 아님? 엔버 페미임?’ 이런 이야기가 나왔을 땐 그냥 농담으로 넘기거나 ‘그냥 손펴는 동작이다’, ‘이걸 집게손가락이라고 하는 건 억지지’ 같은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이후 보컬 나래 씨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자, ‘페미’, ‘집게손가락’ 이야기가 많아졌고, 스튜디오 뿌리 여성 직원의 SNS가 알려진 이후, 어느새 “남초 커뮤니티에서 해당 직원은 ‘상업적 게임 영상에 남성혐오의 의미로, 의도적으로 집게손가락을 넣은 페미니스트가 되어 있었”다.
김유리 전국여성노조 조직국장은 이후 이 사태에 불을 지핀 넥슨의 움직임도 설명했다. 억지논란이 계속되자 넥슨은 주말임에도 26일, 재빠르게 사과문을 게시했다. 스튜디오 뿌리도 마찬가지였다. “넥슨은 심지어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통해 혐오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할 것임을 밝히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일부 정치인들 또한 ‘이번 사건은, 의도적인 남성혐오, 조롱’이라고 말을 보태며 스튜디오 뿌리 직원을 비난했다.
하지만 30일, 경향신문의 새로운 보도가 나왔다. “문제의 장면은 지금껏 이야기된 여성 직원이 그린 게 아니고 40대 남성이 그린 것이며, 이를 감수한 감독 또한 남성이라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또한 “넥슨이 하청업체인 스튜디오 뿌리에 사과문을 올릴 것을 강요했다는 것”도 알려졌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해고된 것으로 알려졌던 여성 직원은 해고되지 않았으며 여전히 일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집게손가락 억지논란’은 나비효과를 불러와, 온갖 게임에서 집게손가락을 찾아내고 이를 삭제, 수정 요구하기 시작했고, 여타 게임사들 또한 그에 대해 사과하고 있는 중”이다.
왜 이런 일이? 게임업계 내 성차별, 성희롱 문화를 보라
김유리 조직국장은 “2018년 (전국여성노조에)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 지회가 생긴 계기도, ‘페미니즘 사상검증’ 사건이었다”고 설명하며, 당시에도 “국가인권위원회를 비롯한 정부지관에서 페미니즘 사상 검증은 명백한 차별임을 인정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일이 왜 반복되고 있는가?
김 조직국장은 “게임업계가 왜 페미니즘을 두려워하는지 살펴봐야 한다”며 “이는 게임계의 성차별적인 문화와 관련되어 있다”고 짚었다. “여성게이머들 사이에선, 내가 여성이라는 걸 티내는 순간 게임을 즐길 수 없다고 한다. 실력을 의심 받는 일도 허다하다. 거기다 성희롱도 만연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게임이용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게임 전체이용자 중 게임 상 성희롱/성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다가 23.5%(2022년), 사이버폭력을 경험한 적 있다는 56.2%(2023년)”다.
성차별/성희롱 문화는 게임을 하는 여성 게이머에게만 미치지 않는다. 여성 창작자들도 마찬가지다. 전국여성노동조합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여성혐오적이거나 성차별적인 사이버불링을 경험한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는 54.8%”나 되었다. “청년유니온의 조사에선, 게임업계 직장문화 성평등 지수는 1.94점(5점 만점)으로 매우 낮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김민성 한국게임소비자협회 대표는 “게임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가 즐기는 문화”이며,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게임이용자 실태조사에서 드러난 걸 보면, 전체 남성의 75.3%가, 전체 여성의 73.4%가 게임 이용자”라 설명했다. “문제는 여성 소비자들이 게임 문화에서 배제된다는 것”이다. 김민성 대표는 “게임 커뮤니티 내 뿌리 깊은 여성혐오, 성차별에 동조하는 게임사의 행보는 여성 소비자들을 계속 이탈시키고 있으며, 이는 결국 여성 소비자가 과소평가 되는 결과로 이어지고, 또 다시 여성 소비자가 배제되는 악순환을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 역시 이런 문화는 “여성 소비자뿐만 아니라 게임업계의 여성 노동자까지 성차별을 겪는 사태로 이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창작자들에 대한 ‘페미니즘 사상 검증’ 중단하고, 악성 유저들에게 ‘업무방해죄’ 묻고 손해배상 청구해야
이런 성차별, 성희롱 문화는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페미니즘 사상 검증’으로 이어지고 있다. 신혜정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는 “2016년 ‘넥슨 클로저스 티나 성우 교체 사건’ 뿐만 아니라, 2018년 IMC 게임즈가 게임 원화가에세 ‘민우회 같은 단체를 왜 팔로우 했는가?’, ‘과격한 메갈 내용이 들어간 글에 마음에 들어요를 찍은 이유가 뭐냐고 사상검증한 일 등”을 나열하며 “이 밖에도 공론화되지 않았을 뿐, 여성노동자와 페미니스트를 검열하기 위한 여러 시도가 있었을 것이라 예상된다”고 했다.
페미니즘 사상 검증은 “노동자의 노동권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문제”다. “이런 ‘의혹’에 휘말린 상당수 여성노동자는 작업물을 공개하지 못하게 되거나, 기존에 공개했던 작업물이 회수되는 일을 겪는다.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페미니즘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생계와 직업이 위협받는 것이다.”
가스라이팅과 정신적 압박도 심해진다. “여러 사람이 협업해서 결과물을 내는 게임 업계의 경우, 여성노동자에게 ‘동료에게 피해를 준다’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주입”하기에, “스스로를 검열하게 되고, 자신이 한 발언이 문제가 되진 않을지, 혹여나 작업물에서도 그렇게 읽힐 부분이 있진 않은지 스스로를 감시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일터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에도 영향”을 미친다. “고용주가 노동자의 신념, 자유의지, 정체성까지도 통제하는 것이다.”
류하경 변호사는 “이런 일로 근로기준법까지 이야기해야 한다는 게 굉장히 우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근로기준법 제23조 해고 등의 제한에 보면, 사용자는 정당한 이유없이 해고, 휴직, 정직, 전직, 감동 그 밖의 징벌을 하지 못한다고 되어 있다. 그렇자면 정당한 이유는 뭐냐? 대법원 판례에선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는 정도로 근로자에게 책임이 있을 때, 횡령, 배임, 절도 등 회사에 대한 범죄행위를 하거나 과실로 인하여 중대한 사고를 일으킨 경우가 해당”된다.
류 변호사는 “예를 들어, 어느 근로자 몸에 땀이 많이 나서 파리나 모기가 많이 들어온다고 해서 해고를 할 순 없다. 회사는 모기채를 배치하는 등의 일을 해야지 하는 걸 해야지 근로자에게 불이익을 줘선 안된다”고 비유했다. 이번 ‘집게손가락 억지논란’의 경우에도 “회사는 오히려 위계와 위력으로 업무를 방해하는 가해자(악성 유저)들에게 업무방해죄를 물어야 한다. 혹은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소리’(Bullshit)를 무시하지 않고 승인하는 기업과 정치인들
‘집게손가락 억지논란’을 비롯한 게임업계 내 일련의 일들은 ‘메갈 색출’이라고 분석한 이민주 페미니스트연구 웹진 Fwd 연구자는 “이 일들은 하나의 연결된 반페미니즘 정치 현상으로서 ‘메갈 색출’의 역사적 맥락 안에서 통합적으로 논의되어야만 이번 사건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연구자는 "여성학자 권김현영은 2021년 GS25 광고물에서 촉발된 일련의 집게손 논란에 관한 닷페이스 인터뷰에서, 집게손 음모론이 힘을 얻는 과정을 ‘개소리’(bullshit)의 담론 전략으로 분석했다. 이는 한국에서만 있는 건 아니고 해외에서도 하고 있는 분석"이라며 "개소리 담론 전략은, 일관된 논리가 없고 사실이 아닌 근거 없는 주장을 반복, 노출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이를 의미 있다고 믿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개소리’ 전략을 무력화시키는 방법은 사회적 관심과 효능감을 부여하지 않는 것”이지만, “이번 사태에서 넥슨을 비롯한 다수의 기업과 일부 정치인까지 ‘집게손’ 억지 논란을 수용하고 승인했다는 점에서 문제 확산에 대한 굉장히 책임이 크다”고 짚었다. “‘반-페미’ 소비자 효능감이 증대되면서, 여성을 표적화한 감시와 괴롭힘 등을 탄압을 반복하게 된 상황”이 된 것.
기업은 ‘(악성 유저들 또한) 소비자이기 때문에 들어줄 수 밖에 없다’고 하지만, 이민주 연구자는 “기업이 소비자의 요구를 따를 뿐이라는 수동적 지위를 주장하며, 반페미니즘 정치에서 적극적 행위자로서 책임을 은폐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우리 사회에서의 이 사태에 대한 논의가 확장될 필요가 있다고도 지적했다. 이민주 연구자는 “실제로 ‘메갈 색출’이 경제적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 이상으로, ‘경제적 이익 때문에 이 사회 정의를 위한 정치 행동이나 누군가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없음, 이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는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집게손 억지논란’을 누가 주장하느냐 이상으로, 그것이 생산하는 여성혐오적이고 반페미니즘적 담론이 어떤 내용이고 왜 문제이며, 우리 사회의 어떤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는지에 관한 더 구체적이고 풍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것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토론회를 공동 주최한 장혜영 의원은 정치인들 또한 반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회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모양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해, 그걸 빌미로 다른 시민들의 인권과 노동권을 침해하도록 내버려두는 국가는 민주주의 국가라 할 수 없다. 또한 그런 논란을 조장하고 편승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동력을 획득하려는 정치인, 이런 일에 침묵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동력을 잃지 않으려는 정치인은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 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다.”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전 비상대책위원장 역시 “지금 우린 페미니스트가 곧 블랙리스트가 되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며, 이를 방조한 정치권을 비판했다. “합리적인 근거 없이 남성혐오라며 특정 커뮤니티에서 누군가를 괴롭히던 문화를 그대로 받아서 키운 건 정치권이다. 제도적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공적 발언을 통해 사이버불링(온라인에서의 집단 괴롭힘)에 동조하고, 차별과 혐오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굳혔다. 시민을 지켜야 하는 정치인이 앞장서서 말도 안 되는 괴롭힘에 가담한 것이다.”
토론 참여자들은 모두 “이제 그만”하라고 외쳤다. 더 이상 이런 말도 안 되는 억지주장에 휩쓸려 페미니즘 마녀사냥을 하거나, 반페미니즘 정치를 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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