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을 비극적 역사로만 알고 있나요? 제주 여성사 발굴

73인의 구술채록, 〈제주 여성, 4.3의 기억〉 아카이빙 전시회

나랑 | 기사입력 2023/12/17 [11:02]

4.3을 비극적 역사로만 알고 있나요? 제주 여성사 발굴

73인의 구술채록, 〈제주 여성, 4.3의 기억〉 아카이빙 전시회

나랑 | 입력 : 2023/12/17 [11:02]

〈제주 여성, 4.3의 기억 : 제주 4.3 여성 구술채록 영상 아카이빙 전시회〉가 ‘포지션 민 제주’에서 열리고 있다. 12월 2일부터 오늘(17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제주 지역 여성인권단체인 제주여민회의 ‘4.3과 여성’ 위원회가 주관한다. 지난 5년간 4.3 여성 생존자들을 만나 구술 채록한 작업을 생존자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으로 만날 수 있는 자리다.

 

▲ 제주여민회 ‘4.3과 여성’ 위원회가 주관한 〈제주 여성, 4.3의 기억 : 제주 4.3 여성 구술채록 영상 아카이빙 전시회〉가 12월 2일부터 17일까지 ‘포지션 민 제주’에서 열리고 있다. (제주여민회 제공 사진)

 

전시장에 들어서니 증언자 다섯 명의 큼지막한 인물 그림이 걸려있다. 비극적인 역사인 만큼 전시장 분위기도 어두울 거라고 예상했는데, 다채롭고 선명한 색감의 인물 그림 덕분에 증언자 한 명 한 명이 생생하고 친근하게 다가왔다.

 

전시 오픈 날, 이곳을 찾은 증언자 김을생 씨(88세. 4.3 당시 14세)는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자신의 인물 그림과 증언 영상을 본 을생 씨는 “좋다, 너무 좋다”고 말한다.

 

관람객은 헤드폰을 끼고 증언자가 구술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볼 수 있다. 5년간 증언자들을 만나는 자리마다 카메라를 들고 동행한 노고의 결과다. 증언자들은 75년 전의 사건과 그 이후의 삶을 비교적 담담하게 말한다. 대부분 80세가 넘은 고령의 증언자들이지만 목소리만큼은 카랑카랑하다. 때로는 격앙된 목소리에, 간간이 젖어드는 침묵에 가슴이 저려온다.

 

▲ 구술에 참여한 4.3 여성 생존자가 〈제주 여성, 4.3의 기억〉 전시장에서 자신의 구술 장면이 담긴 영상을 보고 있다. (촬영: 나랑)

 

4.3을 여성주의 시각으로! 5년간 73인 구술채록

 

제주 4.3 사건은 한국 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가장 많은 인명피해가 있었던 비극적인 사건이다. 2003년 정부가 발간한 『제주 4.3 사건 진상조사 보고서』는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정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정의하고 있다.

 

제주여민회 ‘4.3과 여성’ 위원회는 2018년 4.3 70주년을 앞두고 “제주 4.3을 여성주의 시각으로 구술채록하여 제주 여성 생애사를 기록해야겠다는 의지”에서 결성됐다. 2000년 ‘제주 4.3 특별법’(제주 4.3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고 2003년에는 『제주 4.3 사건 진상조사 보고서』가 채택됐지만, ‘사건’ 중심의 역사 서술에서 여성들의 목소리는 배제되어 왔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주로 남성들의 피해를 증언하는 보조적인 증언자로 위치하거나, 4.3의 잔혹성을 드러내는 것에 이용돼 왔다는 것.

 

“그동안은 (여성 구술자들에게) 죽음이나 고문, 성폭력이나 고통에 대해 듣는다고 하더라도 그 잔혹함을 드러내기 위해서였어요. 이번에는 여성들이 그 고통을 겪으면서 어떻게 살아냈는지에 포인트를 두었어요. 남성 어르신들이 다 돌아가셨으니 마을을 먹여 살리고 가족을 먹여 살리는 건 여성들이었을 테죠. 내 이름으로 된 집이나 밭 하나 없이 자식들 다 키워내고 제주도 사회를 이룩해 오신 인물들이잖아요.” (안김현정 제주여민회 활동가)

 

▲ 제주여민회 ‘4.3과 여성’ 위원회가 주관한 〈제주 여성, 4.3의 기억 : 제주 4.3 여성 구술채록 영상 아카이빙 전시회〉 중 (촬영: 나랑)


이처럼 이번 구술채록 작업의 초점은 4.3의 전개 과정이나 역사적 사실 확인, 또는 ‘4.3에서 얼마나 큰 피해를 입었느냐’가 아니었다. “4.3이 증언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 이후를 어떻게 살아냈는지”(김오순 ‘4.3과 여성’ 위원회 위원장)였다. 지난 5년간 1920년생부터 1944년생까지 총 73명의 구술을 채록했다. 구술횟수는 총 134회였다.

 

가족 생계와 마을 재건에 한평생 바친 제주 여성들

 

‘4.3과 여성’ 위원회가 만난 증언자들의 삶은 그야말로 “가족의 생계와 마을의 재건을 위해 살아온 한평생”이었다.

 

“나무도 좀먹는 게 있고, 안 먹는 나무가 있어. 좀먹는 나무는 베어 가져오면 도끼로 잘라서 어머니가 지고 가서 팔고 와. 그걸로 돈 쓰고 제사 명절도 하고. 좀 안 먹는 나무는 집 지을 때 쓰고. 내가 열여덟 살 때 아흔아홉골까지 나무하러 갔다 왔어. 한라산 이제 아흔아홉골 있잖아. 내가 남자들보다 더한 일을 했어.” (김을생, 1935년생, 4.3 당시 14세, 현재 88세)

 

김을생 씨는 4.3 당시 아버지가 경찰서에 잡혀갔을 때 노루 먹일 풀을 뜯어 팔 정도로 강단진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행방불명된 이후에는(아버지는 대구형무소에 수감된 뒤 수장당한 것으로 추후 확인됨) 닥치는 대로 일하며 가족들을 먹여 살렸다. 24살에 결혼을 했지만 남편이 집 밖으로 나도는 바람에 결혼 후에도 사실상 가장 역할을 해 왔다.

 

4.3 이후, 제주에서 김을생 씨의 삶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여성들은 연탄이나 기름이 없던 시절 한라산에서 나무를 해다 땔감으로 식당에 파는 일, 공사장 품팔이, 남의 집 일, 공장 노동, 밭일, 물질은 물론, 육지의 방직공장에 가거나 일본까지 건너가 노동을 했다.

 

“4.3 이후 재건 사업을 할 때 본인 집만 짓는 게 아니라 마을 일에(재건 사업) 다 참여하고. 계 부어서 집 사고 과수원 사서 자식들 키우고 집안을 일으켰죠. 남편이 있건 없건 간에 이분(증언자들)이 가장이었어요. 다들 자존심이 세요. 다른 사람한테 맡기기보다 자기가 다 해버려요. ‘결국 해내는 게 할머니다.’라는 생각이 들죠.” (김오순 ‘4.3과 여성’ 위원회 위원장)

 

▲ 자신의 인물 그림 앞에서 선 김을생 씨(오른쪽)와 김오순 제주여민회 ‘4.3과 여성’위원회 위원장 (촬영: 나랑)


책임과 의무만 지고, ‘상속’ 등 권리는 빼앗긴 여성들

 

남자가 사라진 자리에서 여성들은 제주 사회 재건의 주체로 일했다. 그러나 여성들은 생계를 책임지는 의무는 부여받았던 반면, 교육이나 재산 상속의 기회는 박탈당했다. ‘4.3과 여성’ 위원회는 특히 ‘양자’ 제도를 “가부장제가 4.3을 만나면서 빚어낸 독특한 사회현상 중 하나”로 본다.

 

“가족 중 남자인 구성원이 몰살되거나 사라졌을 때 제사를 지내기 위해 양자를 들였다. 양자에게는 재산 증여‧상속의 권한이 주어졌다. 증여‧상속할 재산이 없는 경우는 현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 그로 인해 딸이나 며느리는 재산권에서 제외되었으며, 경제력의 상실은 교육기회 박탈, 원치 않는 결혼, 중첩된 노동으로 인한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가중시켰다.” (강은미 ‘4.3과 여성’ 위원회 직후팀 팀장, 〈2022 제주 여성 4.3의 기억 Ⅳ 자료집〉 중)

 

딸이 있다고 해도 제사는 반드시 남자가 지내야 한다는 가부장적 문화로 인해 친족 남자 중 한 명을 양자로 들였고 그에게 재산을 상속했다. 여성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친정에서 갖은 노동을 하며 축적한 재산이 친족인 양자에게 그대로 넘어가는 상황을 보고 있어야만 했다.

 

이는 4.3 관련 피해보상과 관련해서도 문제가 됐다. 국가유공자 자녀에게는 학자금 등이 지원됐는데, 남편이 4.3에 죽은 후 자녀 중 아들이 없어 양자로 들인 조카만 이 혜택을 받고 정작 자신의 자녀는 혜택을 받지 못했다고 말하는 증언자도 있다. 또 어떤 증언자는 자신의 남편이 양자 노릇을 하고 있는데, 아들마저 다른 친족의 양자로 보내야 했던 기구한 사정을 말했다. 이처럼 4.3의 여파는 가부장제와 만나면서 여성들의 삶에서 각기 다른 고난의 경험으로 드러났다.

 

4.3 트라우마가 후세대에게 미친 영향

 

이번 구술채록 작업에서 주목할만한 점은 후세대인 (생존자의) 딸, 손녀, 며느리의 구술도 채록했다는 점이다. 증언자의 가족 9명이 구술에 참여했다. 4.3의 경험과 기억이 당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후세대에 어떻게 대물림되고 영향을 주는지 살피고자 한 것.

 

▲ 전시 오픈식에 참여한 구술 증언자와 가족들. 구술 참여 후 2023년 작고한 홍춘산 씨의 딸 고금지 씨는 “너무 좋은 선물을 받았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촬영: 나랑)


4.3은 후세대의 삶에도 어둠을 드리웠다. 끔찍한 가난과 연좌제 등으로 직접적인 피해만 있는 게 아니다.

 

“노인이 되어서야 터져 나오는 하소연과 억울함, 트라우마로 인한 몸과 정신의 고통은 가장 가까운 딸과 며느리에게로 이어졌고, 이러한 어머니들의 고통을 아는 다음 세대는 그들을 이해하고 돌보는 데에 노력이 필요했다.” (‘제주 여성, 4.3의 기억’ 전시 도록 중)

 

아파트로 이사를 가서도 문단속을 강박적으로 하는 어머니, 쉴 줄 모르고 일만 하는 어머니, 남자 형제인 아들에게만 잘 해주는 어머니 혹은 딸에 대한 교육열이 엄청난 어머니,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으려 하는 어머니...

 

“얼마 전에 어머님 49재가 지났거든요. 제가 기억하는 어머니는 억척스러웠고 자녀들한테 독한 어머니셨습니다. 성적이 잘 나와서 성적표 갖고 가도 단 한 번도 ‘잘했다, 고생했다’라는 말을 하신 적이 없었어요.”

 

구술에 참여한 후 2023년 작고한 홍춘산 씨의 딸 고금지 씨는 “‘저희 어머님도 4.3 유족입니다. 인터뷰 해 보세요.’라고 얘기만 했을 뿐인데 너무 좋은 선물을 받았다”라고 말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4.3 트라우마로 생겨난 “어머니의 성격과 습관”을 감당하는 것 또한 후세대의 몫이었다. 구술채록 작업 과정에서 어머니나 시어머니의 4.3 경험을 처음 들었다는 후세대도 있었으며, 고금지 씨처럼 비로소 어머니를 이해하게 됐다는 자녀들도 있었다.

 

▲ 이번 전시에는 증언자들에게 의미있는 물품도 전시됐다. 현재 건강상의 이유로 요양원에 있는 고진옥 증언자의 딸 양영자 씨는 어머니가 손수 만들어주신 삼베적삼을 내놓았다. (촬영: 나랑)


제주 여성들의 삶이 역사에 새롭게 등장하는 순간

 

이번 전시는 “향후 제주 4.3의 여성사를 어떻게 계승할 것인지, ‧제주여민회가 축적한 구술채록 자료를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해석해나갈 것인지”(‘제주 여성, 4.3의 기억’ 전시 도록 중)의 과제를 남겼다.

 

‘4.3과 여성’ 위원회 마을팀 김영순 팀장은 “이번 작업은 제주 지역에 4.3과 여성이라는 키워드를 던지는 작업이었다”라고 말하면서 “여성의 교육, 재산분할, 양자제도, 사회적 위치 등의 주제를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하고 실현할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라고 덧붙인다.

 

구술채록은 ‧제주여민회 ‘4.3과 여성’ 위원회가 했지만, 여성들의 경험을 경청하고 해석하며 현재 제주 사회 여성들의 경험과 연결 짓는 것은 모두의 몫으로 남았다.

 

이번 전시는 그간 4.3의 기록에서 누락되고 소외된 여성의 목소리를 복원하고, 폐허에서 끈질기게 살아낸 재건의 주체로서 제주 여성들을 역사에 등장시켰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빛난다. 구술채록 작업에 참여한 김태연 씨는 이렇게 말한다.

 

“책으로 4.3을 보다 보면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고 폐허가 됐다’라고 생각하고 책장을 덮기 쉬운데, 구술채록을 다니고 나서는 그 이후의 삶이 어떻게 움트게 되고 살아내게 되고 2세대, 저 같은 3세대로 이어질 수 있게 됐는지 심층적으로 이해하게 됐어요. 글로만 이해해 온 4.3 너머의 삶의 이야기를 모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필자 소개] 나랑: 독립 인터뷰어. 목소리가 되지 못한 목소리를 기록한다. 지금은 제주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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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봉기 2023/12/26 [15:36] 수정 | 삭제
  • 동족이 서로 적을 대하듯 너무나 잔인한 살상을 저질렀던 가슴 아픈 비극. 그런데 이런 참혹한 비극이 역사적으로 보수 진영에 의해서만 자행되어 왔다는 점이 분노하게 만든다. 왜 보수 집단은 이토록 잔인한 참극을 서슴치 않는 것일까?
  • 하양 2023/12/18 [16:30] 수정 | 삭제
  • 삼베적삼 보는데 마음이 찡합니다. 이런 전시는 직접 가서 보고 싶은데.. 혹시 다른 지역에서도 순회 전시는 안 안열리는지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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