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혼 지원조례는 ‘제도화된 차별’ 이제는 폐기해야성‧인종차별적인 ‘국제결혼 지원조례’ 폐지 촉구 기자회견, 토론회 열려2021년 5월경, 경상북도 문경시에선 ‘인구 증가를 위한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사업을 추진하고자 했다. 당시 문경시가 법무부 출입국민원 대행기관인 모 행정사사무소에 보낸 협조문에는 “지속적인 농촌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젊은 세대와 여성의 농촌 이탈이 심화되는 가운데 농촌 인구 증가와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혼인 연령을 놓친 농촌총각과 베트남 유학생의 자연스러운 만남을 통한 농촌총각 장가보내기를 추진하고자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사실이 알려진 후 베트남 유학생들을 포함하여 여러 곳에서 항의가 이어졌고, 문경시는 해당 사업을 철회했다.
하지만, 이런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류의 사업은 여전히 다른 지역들에서 계속되고 있다. 심지어 지자체의 국제결혼 지원조례로 만들어져 운영되고 있다. 이주여성을 결혼 대상과 인구 재생산의 도구로 삼는 이런 방식은 성차별적이고 인종차별적인 행태임에도 말이다.
지방정부 주도 하의 ‘농촌총각 장가보내기’…아직도?
2021년 문경시 사태 당시,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이주여성 유학생들, 이주여성 인권단체, 공익변호사 등이 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 농촌총각과의 결혼 대상으로 지목된 유학생 당사자들과 함께,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 진정도 넣었다. 남지은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활동가는 문경시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사업’의 문제점을 재차 짚었다.
“첫째, 이주여성(베트남 유학생)을 잠재적 ‘배우자’로 상정한 점. 한국인 남성과의 혼인으로 한국에 정착하는 걸 ‘유리한 기회’로 제공한다는 국가·인종·성별 우위적 관점이 해당 사업에 내포되어 있다. 둘째, 농촌 인구 감소와 고령화의 해결 수단으로 이주여성을 이용하고, 가족 내 성역할을 고착화한 점. 셋째, 현재 정착 중인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편견과 젠더 기반 폭력 대응 취약성을 강화한 점. 출산과 양육, 가사일과 농사일 등에 대한 의무를 당연시하고 주어진 ‘의무’를 다하지 않을 경우, ‘혼인의 진정성을 의심하게끔 구조화했다. 넷째, 지방자치단체의 결혼중개 적극 개입 문제와 공공기관으로서 성차별, 차별금지 의무를 위반한 점.”
“시민사회의 비판”과 “여성가족부의 성별영향평가에 따른 권고 등”이 이어진 덕에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조례와 사업을 폐지”했지만, TF팀이 2023년 상반기 기준 자치법규정보시스템을 통해 전수 조사한 결과, “여전히 28개 지자체에서 국제결혼 지원조례를 유지하며 혼인성사 중심의 소위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사업’을 진행하고 있음을 파악”했다.
이런 식의 “국제결혼 지원조례 및 유사조례(국제결혼 지원조례와 유사하나 ‘이주여성’으로 국제결혼 대상으로 한정하지 않는 등)은 ‘관내 농어업 종사 미혼 남성’에게 ‘(국제)결혼 소요비용 일부’를 지원하여 ‘가정을 이루게 함’으로써 ‘저출산, 고령화, 농어촌 위기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성격”을 띄고 있다. “‘(국제)결혼 소요비용 일부’는, 항공료, 체재비, 맞선비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주여성 당사자가 묻다, 누굴 위한 정책인가?
이주여성 당사자이자 TF팀에서 활동한 이선미 활동가는 국제결혼 지원조례가 왜 차별적인지, 특히 이주여성 당사자에게 어떻게 다가오는지 조목조목 설명했다. 일단 조례의 명칭이다. 이선미 활동가는 여전히 남아있는 조례들의 명칭에서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는 용어인 “농촌 총각, 농촌 거주 미혼 남성, 농어촌 총각” 등을 짚으며 “왜 남성/총각일까?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이런 명칭에서 조례가 “한국 남성과 외국인 여성이 결혼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다시 말해, 외국인 여성을 수동적인 위치로 고정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바로, “성차별”이다.
또한 “한국인 남성과 결혼하는 국제결혼 여성을, 모국에서의 어려운 경제적 상황을 탈피해야 하는 이들로 보는 것”, 즉 “계급차별”도 지적했다. 이선미 활동가는 “국제결혼 지원조례의 내용과 목적을 살펴보면,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함으로써 영농의욕을 고취시키고, 농어촌 사회의 활력을 도모한다’고 되어있는데, 왜 국제결혼으로 영농의욕을 고취시키고 사회의 활력을 도모하는건지 이해가 안 된다”고 꼬집었다. 이런 목적이 담긴 건 “이주여성을 출산과 보육을 담당하는 대상이자, 인구 증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본 것”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는 것.
이런 차별은 “이주여성을 ‘상품화’시키고, 한국인 남성들의 가부장적 결혼관도 강화”할뿐더러 “이주여성에 대한 학대, 폭력, 노동강요 등”으로도 이어진다. 이선미 활동가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일했을 때의 경험도 공유했다. “정말 많은 결혼이주여성을 만났는데, 그들이 들려준 이야기 중 참 슬펐던 건, 남편이나 시어머니 등으로부터 ‘넌 돈으로 사왔다. 그러니까 집 나가고 싶으면 돈을 다 갚고 나가라’는 식의 말을 많이 들었다는 거다. 또한 남편이 의심이 많은 경우, 국적 취득하면 도망갈까봐 국적 취득도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국제결혼 지원조례 내용의 또다른 특징은, 나이가 특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만 30세 이상 50세 미만, 만 35세 이상, 만 33세 이상 등 나이가 지정된 부분에 대해서도 이선미 활동가는 의문을 표했다. 국제결혼의 상당수는 남성이 연상이고, 부부 사이 나이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이 활동가는 “한국 남성들이 ‘개발도상국’ 출신의 젊은 배우자를 선택하는 건, 배우자 선택 과정에서 연령의 우월적 지위를 취하고, 이를 통해 배우자에 대한 지배권을 가지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선미 활동가는 “이런 국제결혼 지원조례가 과연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재차 비판했다.
차별과 배제가 제도화되어선 안 된다
이런 조례가 현실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백소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자치법규는 지역주민의 권리의무 관계, 행동기준을 정하며 지역사회 구성원의 삶과 직접 관계 맺는다는 점에서 국가 법령보다 실질적 규범으로 작동한다”고 설명했다. “성차별, 인종차별적 입법과 공공정책은 헌법적 가치나 성평등 이행 의무라는 상위법이 지향하는 가치와 충돌한다는 점에서 체계적으로도 문제고, 그 가치의 실질적 구현과 사회규범으로서의 정착을 방해한다는 점에서 사회에 크나큰 해악을 끼친다”고 경고했다.
또한 “차별적 입법과 공공정책은 이주민과 여성에 대한 선입견을 바탕으로 구성된 것이라 볼 수 있으며, 이것이 제도로 작동하면서 다시 이주민과 여성에 대한 선입견을 강화시킨다”고 강조했다. 백 변호사는 “국제결혼지원조례나 다문화가족지원조례가 제공하는 ‘혜택’은 혼인, 출산, 양육이라는 성역할을 해내는 결혼이주여성의 생애주기에 국한된 지원이라는 점에서, 여성에게 가족 내 성역할을 강요하고 결혼이주여성의 정체성과 역할을 한정짓는다는 점에서 성평등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덧붙였다.
백소윤 변호사는 “이주민 배제는 노동자, 유학생과 같은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이주여성들이 각자의 정체성에 맞는 권리를 가지지 못하는 현실로도 이어진다”며 “이주민, 여성, 노동자 각 위치에서 발생할 이중, 삼중의 배제도 예측된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지속되어 온 차별에 대한 구조적 해결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 또한 차별의 한 유형”이라 강조했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건 차별적, 배제적 정책이 아니라 이주여성 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정책이다. 백 변호사는 “입법과 공공정책을 통해 ‘차별 금지와 평등권 보장’이라는 절대원칙이 실질적으로 확보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수단과 목표에 반영되어야 한다”며 “혐오나 차별을 ‘인권’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려는 시도가 있다면, 국가가 보위하는 기본 원칙이 헌법적 가치라는 점을 차별적 입법의 저지나 법령 폐지로 확인해 이를 저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 외에도 “입법과 공공정책이 시행되기 앞서 성인지적 관점에 따른 심사가 이뤄질 것”과 “이주여성이 혼인의 대상, 양육자, 가사노동자와 같이 제한된 역할이 아닌 다양한 욕구를 가진 권리 주체로서의 다양한 서사와 욕구가 반영할 것”을 제언했다.
차별적 조례 폐지에 ‘참여’와 ‘연대’의 힘 필요해
여전히 남아 있는 차별적 조례를 어떻게 폐지할 것인가에 대해선 ‘연대가 중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우삼열 아산이주노동자센터 소장은 2008년, 충남 아산시에서 제정된 ‘아산시 거주외국인 지원조례’ 사례를 들었다. “조례 내용 중 차별적이고 인권침해적인 규정이 하나 있었다. 지원대상을 규정한 조항 내용 중 ‘다만, 출입국관리법 등에 의해 대한민국에서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는 지위를 가지지 않는 외국인은 제외한다’는 단서조항이 달려있었던 것. 이는 체류 자격을 상실한 미등록자에 대해선 아무런 지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어서,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이후 2014년 10월, ‘충남도민인권선언’이 선포되었고, 여기엔 의미 있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었다. 바로 ‘체류자격’이다. “이주민의 체류자격에 따라 차별적인 처우를 해선 안 된다는 걸 분명히 밝히고 있었던 것”이다. “아산이주노동자센터는 시의회 의원들에게 ‘도민인권선언’의 정신을 따를 것을 강조했고, 2014년 10월 시의원의 발의를 통해 문제의 조례 내 단서조항은 삭제”되었다. 인권선언이 만들어지고, 이후 조례 내 문제 부분을 지적한 것 모두 시민사회에서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자 오랫동안 노력한 결과였다.
김나현 이주민통번역센터 링크 활동가는 이주여성 당사자로서, “당사자들의 네트워크 만들기 중요성”을 짚었다. “이주민이 경험한 차별적이고 부당한 사례들이 알려졌을 때, 시민단체들의 움직임도 중요하지만, 이제 이주민들이 한국에서 살아가는 시간이 길어지고 수도 많아지고 있다. 이에 당사자를 중심으로 한 운동도 늘어나고 있다. 이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고, 변화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이주여성들이 직접 참여하고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경험도 쌓여야 한다. 김나현 활동가는 “이주민 관련 정책이나 제도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이주여성이 직접 자리할 수 있어야” 하며, “해당 이주여성이 단지 개인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이 아니라, 이주여성들이 처한 현실이나 문제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도록, 교육 및 훈련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성·인종차별적 국제결혼 지원조례 폐지 TF팀은 토론회가 열리기 전, 국가인권위원회에 “국제결혼 지원조례는 가부장을 중심으로 한 ‘정상가족’을 중시하는 입장에서 이주여성을 한국의 사회적 재생산 위기의 해결의 수단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전제로, 이주여성과 혼인한 남성에게 결혼중개수수료를 포함한 결혼비용을 지원하는 제도입니다. 이는 남성에게 종속된 ‘정상 가족’ 내 여성의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성차별적 제도이며, 특히 이주여성에 대한 선입견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출신국 및 인종차별 정책”이라며, 폐지하도록 권고를 요청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정부 및 지자체 모두 이 목소리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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