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고, 고독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나날을 나누어 갖기『고야마씨 노트』로부터③ 노트를 통해 고야마씨와 다시 만나다[기획의 말] 고야마씨는 도쿄의 한 공원 깊숙이, 비밀처럼 펼쳐진 텐트 마을에 살았다. 그녀가 써 왔던 노트에는 홈리스 여성으로서 끼니가 걱정되고 추위나 더위로 힘들고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을 지키듯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고야마씨의 세계가 풍부하게 펼쳐져 있었다. 그녀가 죽은 뒤, 그 ‘쓸모 없어 빛나는 세계’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모여, 방대한 양의 노트를 컴퓨터로 문자화하는 ‘고야마씨 노트 워크숍’을 시작해 8년이 흘렀다. 올해 10월 30일, 워크숍 멤버들이 문자화된 노트를 편집하여 『고야마씨 노트(小山さんノート)』(etc. books)가 출판되었다. 『고야마씨 노트』중 고야마씨 노트 일부와 멤버들의 에세이를 번역하여 6회 연재한다.
1회 “어느 홈리스 여성이 남긴 기록, '쓸모 없어 빛나는' 세계”(신지영, https://ildaro.com/9768), 2회 “우리는 그녀의 노트를 태우지 않기로 했다”(이치무라 마시코, https://ildaro.com/9786)에 이은 3회 연재다. 매해 12월 22일 동짓날에는 ‘홈리스행동’(homelessaction.or.kr)에서 무연고로 돌아가신 분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집회를 열고, 월동 프로젝트(socialfunch.org/2023homeless)를 시작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 글의 필자 요시다씨가 고야마씨와 공유했던 “가난하고 고독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불안한 나날”들에 대한 기록이 권력에 의한 가난과 차별 속에서 죽어간 분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길 바란다.
하지만 그런 생활은 어느 날 갑자기 끝이 났다. 행정 권력의 거듭된 폭력적인 홈리스 배제에 계속해서 맞서다가 얻게 된 번아웃 상태, 혹은 당시 참여했던 홈리스 운동과 홈리스 커뮤니티의 마초적이고 호모소셜(homosocial, 배타적으로 유지되는 남성들 간의 카르텔)한 분위기. 여러 가지 일들이 겹치면서 마음이 지쳐버려 홀로 틀어박히게 된 것이다. 사회운동과도 멀어지고, 임금노동 등 사회생활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고독과 궁핍에 시달리는 나날들. 내가 고야마씨를 만난 것은 그런 때였다.
어느 날, 고야마씨의 베갯머리 옆에 여러 권의 노트가 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읽어도 돼요.”라고 고야마씨가 말했다. 하지만 뭔가 아주 중요한 내용이 담겨 있는 것 같아서 “다음에 천천히 읽어 보겠습니다.”라고 사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야마씨는 세상을 떠났다. 고야마씨와 함께한 시간은 짧았고, “다음에”는 이뤄지지 못한 채 그대로 마지막이 되어버렸다.
그때부터 나는 매일같이 고야마씨의 노트를 읽고 컴퓨터에 입력했다. 대다수가 남성인 텐트 마을에서 고야마씨는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살아왔을까. [홈리스 공동체에서 생활하면서] 어려움을 많이 겪었던 나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고야마씨의 노트는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내용이었다. 거기에는 텐트 마을에서의 생활, 과거의 경험, 그녀의 머릿속을 맴도는 다양한 생각과 공상이 정말 풍부하게 표현되어 있어 마치 고야마씨가 살아온 날들을 다시 경험하는 것 같았다.
나에게도 그러했듯이, 가난, 폭력, 고립 등 여러 어려움 속에서 매일매일을 살아가는 이웃인 고야마씨가, 이 노트가 읽혀지는 순간 활기차게 숲 속 오솔길을 걸어 나타나기를 살며시 기대하게 된다.
[필자] 요시다 아야코(吉田亜矢子) 2003년경부터 홈리스 운동에 참여했고, 2011년에는 아라카와 하천부지에서 살았다. 그후 운동에서 드롭 아웃(dropout)하여 한때 홀로 틀어박혀 지냈다. 현재는 ‘고야마씨 노트 워크샵’ 이외에도 여성 홈리스 그룹 ‘노라’나 ‘반올림픽회’ 등에 참여하고 있다.
#『고야마씨 노트』로부터 발췌
1991년 1월 7일 어릴 때부터 있던 성질이 변하지 않는다. 언제나, ‘여자인 주제에 건방지다’라고 억눌리고, 계속 억눌려 왔다. ‘현실 속 자신은 어떤 존재인가’ 라고 물어 온다면, [나는] 그 무엇도 될 수 없었다. 내일의 생활을 두려워하는 한 명의 작은 인간일 뿐이었을 때, 나는 구멍이 있다면 숨고 싶은 각성과 의식에 빠져, 사람들 앞에서는 다시는 입을 열지 않겠다고, 다시는 글을 쓰지 않겠다고, 마음에 맹세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이 내적인 약속은 날아가 버리고, 또다시 엉뚱한 글과 말이 쏟아져 나온다. 낮, 밤, 시간을 넘어 반복되는 이 인생….
겨우 마음을 놓고, 혼자서 천천히 걷는다. 목이 마르다. 물이나 커피를 마시고 싶다. 이처럼 활기 없는 금요일 밤, 가진 돈 300엔으로는 아무것도 살 수 없다. 인간의 인생은 살아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아프지 않고 고통스럽지 않다면, 이대로 쭉 의식이 없어져도 어쩔 수 없다. ‘꿈과 희망을 안고 현재 생활의 걱정을 벗어날 수 있다면’ 하고, 짙은 구름에 갇힌 하늘을 올려다보며, 무능한 자신과 현실의 혹독한 공기를 몸으로 받으면서 걷고 있다. 작은 프랑스 생수 한 병이 있다. 아직 시원하다. 확 눈이 뜨였다. 맛있다. 다시 걷는다.
[번역] 다카하시 아즈사(高橋梓) 니가타현립대학교 조교수. 한국근대문학. 매체와 언어라는 조건에 유의하며 식민지 조선의 작가들이 쓴 조선어/일본어 작품을 다시 읽는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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