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고, 고독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나날을 나누어 갖기

『고야마씨 노트』로부터③ 노트를 통해 고야마씨와 다시 만나다

요시다 아야코 | 기사입력 2023/12/24 [18:37]

가난하고, 고독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나날을 나누어 갖기

『고야마씨 노트』로부터③ 노트를 통해 고야마씨와 다시 만나다

요시다 아야코 | 입력 : 2023/12/24 [18:37]

[기획의 말] 고야마씨는 도쿄의 한 공원 깊숙이, 비밀처럼 펼쳐진 텐트 마을에 살았다. 그녀가 써 왔던 노트에는 홈리스 여성으로서 끼니가 걱정되고 추위나 더위로 힘들고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을 지키듯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고야마씨의 세계가 풍부하게 펼쳐져 있었다. 그녀가 죽은 뒤, 그 ‘쓸모 없어 빛나는 세계’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모여, 방대한 양의 노트를 컴퓨터로 문자화하는 ‘고야마씨 노트 워크숍’을 시작해 8년이 흘렀다. 올해 10월 30일, 워크숍 멤버들이 문자화된 노트를 편집하여 『고야마씨 노트(小山さんノート)』(etc. books)가 출판되었다. 『고야마씨 노트』중 고야마씨 노트 일부와 멤버들의 에세이를 번역하여 6회 연재한다.

 

1회 “어느 홈리스 여성이 남긴 기록, '쓸모 없어 빛나는' 세계”(신지영, https://ildaro.com/9768), 2회 “우리는 그녀의 노트를 태우지 않기로 했다”(이치무라 마시코, https://ildaro.com/9786)에 이은 3회 연재다. 매해 12월 22일 동짓날에는 ‘홈리스행동’(homelessaction.or.kr)에서 무연고로 돌아가신 분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집회를 열고, 월동 프로젝트(socialfunch.org/2023homeless)를 시작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 글의 필자 요시다씨가 고야마씨와 공유했던 “가난하고 고독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불안한 나날”들에 대한 기록이 권력에 의한 가난과 차별 속에서 죽어간 분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길 바란다.

 

▲ 필자 요시다 아야코 씨가 예전에 살았던 도쿄 하천 부지에 있는 텐트. 당시 요시다 씨는 홈리스를 배제하는 행정 권력에 저항하는 운동에 몰두하고 있었다. (촬영: 吉田亜矢子)


20대 무렵의 나는 홈리스 운동에 몰두하고 있었다. 홈리스에 대한 배제와 차별에 맞서 당사자와 함께 목소리를 내거나, 집단으로 생활보호를 신청하거나 했다. 일용직 파견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간신히 월세를 내고 있었던 내 가난한 생활은 홈리스의 존재와 서로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나도 하천 부지에 텐트를 치고 살게 되었다. 내 생활이나 인간관계는 노숙하는 것, 홈리스와 관계를 맺는 것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생활은 어느 날 갑자기 끝이 났다. 행정 권력의 거듭된 폭력적인 홈리스 배제에 계속해서 맞서다가 얻게 된 번아웃 상태, 혹은 당시 참여했던 홈리스 운동과 홈리스 커뮤니티의 마초적이고 호모소셜(homosocial, 배타적으로 유지되는 남성들 간의 카르텔)한 분위기. 여러 가지 일들이 겹치면서 마음이 지쳐버려 홀로 틀어박히게 된 것이다. 사회운동과도 멀어지고, 임금노동 등 사회생활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고독과 궁핍에 시달리는 나날들. 내가 고야마씨를 만난 것은 그런 때였다.

 

▲ 행정 권력에 의한 홈리스 배제는 현재도 계속되고 있고, 그 가혹함은 한층 더해지고 있다. 2022년 10월 도쿄도의 시부야구는 ‘구립 미타케 공원’을 강제적으로 봉쇄하고 홈리스를 추방하려고 했다. 촬영: 네루 회의(네루(ねる)는 '자다' 또는 '(작전을) 짜다'는 양의적 의미를 지닌다. 즉 '네루회의'란 잠을 잘 잘 수 있게 하는 모임이자, 홈리스 활동 등을 위한 작전을 짠다는 의미를 함께 지니고 있다.)


나는 노숙했던 시기에도, 홀로 틀어박혔던 이후에도, 텐트 마을에 사는 이치무라 미사코 씨가 주재하고 있던 여성 홈리스 그룹 모임인 '노라'에는 가끔씩 찾아가고 있었다. 그곳에서 고야마씨라는 홈리스 여성이 다른 사람들과 별로 교류하지 않고 조용히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고야마씨는 이미 건강이 많이 나빠진 상태였고, 이치무라 씨는 그런 고야마씨를 지원하는 네트워크를 만들려고 하고 있었다. 나도 고야마씨와 조금씩 신뢰관계를 쌓기 위해 텐트 수리를 돕거나, 음식을 가져다 주거나, 그녀의 아픈 다리를 주물러 주거나 하는 등 소소한 교류를 이어가게 되었다.

 

어느 날, 고야마씨의 베갯머리 옆에 여러 권의 노트가 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읽어도 돼요.”라고 고야마씨가 말했다. 하지만 뭔가 아주 중요한 내용이 담겨 있는 것 같아서 “다음에 천천히 읽어 보겠습니다.”라고 사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야마씨는 세상을 떠났다. 고야마씨와 함께한 시간은 짧았고, “다음에”는 이뤄지지 못한 채 그대로 마지막이 되어버렸다.

 

▲ 고야마씨가 돌아가신 날에는, 고야마씨의 텐트가 있던 장소에 멤버들과 모여 애도를 표했다. (출처-고야마씨노트워크샵)


고야마씨를 화장할 때, 우리는 그녀가 남긴 노트를 관 속에 넣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다음에”라고 말해 놓고는 [고야마씨의 노트를] 읽지 않고 태워버리는 것은 어쩐지 약속을 저버리는 것 같아서, 화장 차례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모두와 함께 페이지를 펼쳐 보았다. 그러자 거기에는 고야마씨가 살아온 하루하루를 새겨 놓듯이, 힘 있는 독특한 글씨로 텐트 마을에서의 생활과 여러 가지 생각들이 적혀 있었다. 이건 남겨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노트를 태우려던 것을 그만두고, 어떤 형태로든 남기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매일같이 고야마씨의 노트를 읽고 컴퓨터에 입력했다. 대다수가 남성인 텐트 마을에서 고야마씨는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살아왔을까. [홈리스 공동체에서 생활하면서] 어려움을 많이 겪었던 나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고야마씨의 노트는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내용이었다. 거기에는 텐트 마을에서의 생활, 과거의 경험, 그녀의 머릿속을 맴도는 다양한 생각과 공상이 정말 풍부하게 표현되어 있어 마치 고야마씨가 살아온 날들을 다시 경험하는 것 같았다.

 

▲ 〈불가사의한 노트〉 고야마씨가 남긴 여러 권의 노트 중에서 유독 눈길을 끈 것이 표지에 ‘불가사의한 노트’라고 쓰여져 있던 이 노트였다. 고야마씨를 화장할 때 관에 넣으려고 했지만 그만두었다. 나는 이 ‘불가사의한 노트’로부터 데이터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출처-고야마씨노트워크샵)


고야마씨가 길거리에서 멋진 물건을 주우면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고, 고야마씨가 폭력과 폭언을 당하는 장면은 가슴이 아팠다. 텐트에 술에 취한 남성이 찾아왔을 때의 분노와 당혹감, 땅을 관리하는 행정 공무원과의 긴장된 대화, 텐트 안에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불안한 기분.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음을 떠올리며 몰입해서 읽었다. 그 당시 홀로 틀어박혀 있던 나에게 고야마씨의 노트는 몇 안 되는 말동무와 같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 2020년에는 홈리스 여성이 폭력으로 목숨을 빼앗기는 사건이 연이어 있었다. 11월 16일, 시부야구 버스 정류장에서 노숙하던 60대 여성이 인근에 살던 남자에게 살해된 사건은 센세이셔널하게 보도되었다. 그런데 1월 23일에도 우에노 공원에서 70대 홈리스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된다. 우에노 사건은 범인 조차 판명되지 않았다. 텐트 마을에 사는 여성 홈리스 모임인 <노라>의 동료들과 헌화를 했다. 그녀에게 바친 꽃의 잎사귀에 “편안하시길”이라고 적혀 있었다. (촬영: 여성 홈리스 모임 ‘노라’)


일을 해서 자립해야 한다, 사회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런 인생을 살면 안 된다, 이런 관념에 휩싸여 자신이 무가치한 인간인 것 같은 느낌에 빠져버릴 것 같을 때, 노트 속에서 나와 똑같이 고민하는 고야마씨의 모습과 만나게 되었다. 때로는 방구석에서, 혹은 텐트 안에서,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과 자신의 이상과 현실의 차이로 고뇌하는 고야마씨. 하지만 마지막에는 반드시 “나는 나 자신이고 싶다”라고 자기 자신을 되찾곤 했다. 그 모습에 얼마나 많은 격려를 받았는지 모른다.

 

▲ 〈걷다〉 고야마씨도 매일 걸었을 큰 도로. 2015년 7월 ‘고야마씨 노트 워크숍’ 멤버들과 거리를 걷고 노트에 적힌 찻집과 신사를 찾아 답사하면서 노트를 낭독했다. (출처-고야마씨노트워크샵)


나에게 있어 고야마씨의 노트를 읽고 옮겨 적는 작업은 가난하고 고독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불안한 나날을 나누어 갖는, 고야마씨와의 대화의 시간이었다. 고야마씨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내가 일방적으로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니, 정확히 말하자면 ‘대화’라는 표현은 틀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히 나는 노트를 통해 고야마씨와 다시 만나면서 나 답게 살 수 있는 힘을 조금씩 되찾았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도 그러했듯이, 가난, 폭력, 고립 등 여러 어려움 속에서 매일매일을 살아가는 이웃인 고야마씨가, 이 노트가 읽혀지는 순간 활기차게 숲 속 오솔길을 걸어 나타나기를 살며시 기대하게 된다.

 

[필자] 요시다 아야코(吉田亜矢子) 2003년경부터 홈리스 운동에 참여했고, 2011년에는 아라카와 하천부지에서 살았다. 그후 운동에서 드롭 아웃(dropout)하여 한때 홀로 틀어박혀 지냈다. 현재는 ‘고야마씨 노트 워크샵’ 이외에도 여성 홈리스 그룹 ‘노라’나 ‘반올림픽회’ 등에 참여하고 있다.

 

#『고야마씨 노트』로부터 발췌

 

1991년 1월 7일

어릴 때부터 있던 성질이 변하지 않는다. 언제나, ‘여자인 주제에 건방지다’라고 억눌리고, 계속 억눌려 왔다.

‘현실 속 자신은 어떤 존재인가’ 라고 물어 온다면, [나는] 그 무엇도 될 수 없었다. 내일의 생활을 두려워하는 한 명의 작은 인간일 뿐이었을 때, 나는 구멍이 있다면 숨고 싶은 각성과 의식에 빠져, 사람들 앞에서는 다시는 입을 열지 않겠다고, 다시는 글을 쓰지 않겠다고, 마음에 맹세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이 내적인 약속은 날아가 버리고, 또다시 엉뚱한 글과 말이 쏟아져 나온다.

낮, 밤, 시간을 넘어 반복되는 이 인생….

 

▲ 2015년 7월, ‘고야마씨 노트 워크샵’ 멤버들과 고야마씨의 장소를 답사했을 때 방문한 신사에서 찍은 사진. (출처-고야마씨노트워크샵)


2001년 6월 22일

겨우 마음을 놓고, 혼자서 천천히 걷는다.

목이 마르다. 물이나 커피를 마시고 싶다. 이처럼 활기 없는 금요일 밤, 가진 돈 300엔으로는 아무것도 살 수 없다. 인간의 인생은 살아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아프지 않고 고통스럽지 않다면, 이대로 쭉 의식이 없어져도 어쩔 수 없다. ‘꿈과 희망을 안고 현재 생활의 걱정을 벗어날 수 있다면’ 하고, 짙은 구름에 갇힌 하늘을 올려다보며, 무능한 자신과 현실의 혹독한 공기를 몸으로 받으면서 걷고 있다. 작은 프랑스 생수 한 병이 있다. 아직 시원하다. 확 눈이 뜨였다. 맛있다. 다시 걷는다. 

 

▲ 발췌한 부분의 노트 원본. 고야마씨의 육필이 힘있다. (출처-고야마씨노트워크샵)


[기획 및 번역] 신지영
연세대학교 교수. 1945년 전후 동아시아 코뮌의 형성과 기록/문학을, 현재의 마이너리티 및 비/인간 존재들의 공통성과 기록/문학과의 접점 속에서 연구하고 있다.

 

[번역] 다카하시 아즈사(高橋梓) 니가타현립대학교 조교수. 한국근대문학. 매체와 언어라는 조건에 유의하며 식민지 조선의 작가들이 쓴 조선어/일본어 작품을 다시 읽는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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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H 2023/12/27 [12:41] 수정 | 삭제
  • 앞이 보이지 않는 시절이 나도 있었지요. 그 시간이 가장 힘들었는데... 나만 빠져나와서 과거의 일이 되어버린 것이 아니라, 그런 시간을 보내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네요. 고아마씨의 노트가 왜 다른 사람들에게 소중한 것이 되었는지 알 것 같아요.
  • 독자 2023/12/26 [15:21] 수정 | 삭제
  • 모든 고립된 생명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 serendipity 2023/12/25 [12:35] 수정 | 삭제
  • "300엔으로는 아무것도 살 수 없다." 너무 슬픈 말이다 . . . 메리 크리스마스 고야마씨 지금 계신 곳에서는 아프지 않고 평온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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