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교육이 분리된 사회를 만들었다

‘도쿄 인클루시브교육 프로젝트’ 대표 가와바타 마이

가시와라 토키코 | 기사입력 2024/01/10 [17:17]

분리교육이 분리된 사회를 만들었다

‘도쿄 인클루시브교육 프로젝트’ 대표 가와바타 마이

가시와라 토키코 | 입력 : 2024/01/10 [17:17]

2022년 8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유엔 장애인권리 협약(일본은 2007년 서명하여, 실행을 위해 7년간 국내법을 재정비하였으며 2014년에 비준함. 한국은 2007년 서명하고 2008년 12월 국회가 비준하여 2009년 1월 발효함) 일본 심사가 진행되었다. 총괄 소견 중에서 가장 강력하게 개선 권고를 받은 사항 중 한 가지가 ‘장애-비장애 분리교육을 중단할 것과 통합교육(인클루시브 inclusive 교육)을 추진할 것’이다.

 

가와바타 마이(川端舞) 씨는 제네바로 날아갔다. 뇌성마비에 의한 운동장애와 언어장애가 있는 가와바타 씨는 일반학교 일반학급에 다녔고, 지금은 통합교육을 추진하는 활동을 한다. 자신의 생각을 영어로 적은 카드를 심사위원들에게 전달하자, 한 위원은 “분리교육은 문제”라고 답했다.

 

“장애인권리 협약은 ‘우리를 빼고 우리에 대한 사항을 결정하지 말라’는 이념하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당사자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하고 당사자가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얘기하는 가와바타 씨지만, 일반학급에서의 경험을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시기가 있었다.

 

▲ 가와바타 마이(川端舞) 1992년 일본 군마현에서 태어나 대학 때부터 이바라키현에 거주하고 있다. ‘츠쿠바자립생활센터 호냐라’ 회원이자 ‘도쿄 인클루시브교육 프로젝트’ 대표, 집필가. (사진: 오치아이 유리코 ©落合由利子)


일반학급에 다녔지만, ‘소통할 수 없었던’ 경험

 

초등학교 입학 즈음해 교육위원회는 특별지원학교(한국의 특수학교에 해당)에 보내라고 추천했지만, 가와바타 씨는 부모의 희망에 따라 일반학교의 일반학급에 입학했다. 학교에서는 지원인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선생님이 내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내가 이야기해도 지원인에게 통역을 시켰어요. 학교에서 나는 말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 친구들과도 점점 이야기를 할 수 없게 되었죠.”

 

가와바타 씨의 부모님은 “너는 장애가 있으니, 공부를 못하면 무시당한다”는 말을 계속해서 딸에게 했다. “나의 가치가 공부에만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 학교의 특별학급에는 지적장애가 있는 동급생이 있었는데, ‘나는 그 친구와는 다르다’라고 생각했었죠.”

 

중학교 2학년 때에 지원인이 바뀌었다. 그런데 가와바타 씨가 월경이 시작되어 화장실 지원을 요청하자 “더럽다”, “냄새 난다”고 반응했다.

 

“생리를 시작한 내가, 장애가 있는 내가 잘못된 거라고 생각해 누구와도 상의하지 못했어요. 이때 일이 무서워서 활동지원인을 쓰게 된 후에도 가급적 생리대를 갈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이 얘기를 대학 친구한테 처음으로 털어놓았는데, 친구로부터 “그건 학대”라는 말을 듣고 그제야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걸 깨달았다.

 

고등학교 때는 활동지원인 없이 학교에 다녔다. “고등학교에서 나와 직접 대화해주는 선생님을 처음으로 만나 놀랐어요. 반 친구들과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고요. 선생님의 대응 방식이 정말 중요하다는 거죠.”

 

‘혼자서 해내는 것’이 자립이 아니야

 

대학에서는 활동지원인을 쓰며 독립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졸업 후에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어느 날, 장애학생 지원조직의 대표와 식사를 할 일이 있었다. 그 대표도 뇌병변장애가 있었는데, 가와바타 씨에게 “상대방과의 대화를 즐기기 위해 식사 조력을 받으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시간이 걸려도 스스로 하는 것이 자립’이라고 생각하던 가와바타 씨는 그 얘기를 듣고서 자신이 이용하던 자립생활센터에 상의했지만,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하라”며 거절당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장애인 당사자가 운영하는 츠쿠바자립생활센터 ‘호냐라’. “그곳에 상담을 했더니 스태프가 ‘당신이 혼자서 식사를 하면 다른 장애인들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건 민폐니까 그러지 말라’고 한마디로 답하더라고요.(웃음) 그때까지 저는 진짜 비장애인이 되려고 했던 거죠. 장애는 해악이고, 공부로 보완해야 한다고. 하지만 호냐라에서는 장애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 무렵 ‘도쿄 인클루시브교육 프로젝트’를 설립한 고(故) 에비하라 히로미(海老原宏美) 씨와도 만났다. “에비하라 씨 등과 장애인권리 협약을 함께 공부했는데, 어떤 장애를 가졌든 일반학급에 다닐 권리가 있고, 누구나 지내기 쉽도록 학교를 바꿔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일반학급에서 힘들었던 이유는 내가 잘못된 게 아니라, 학교가 문제였기 때문이라는 사실을요.”

 

가와바타 씨는 ‘어떤 장애가 있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일반학급에 다닐 수 있다’고 당당하게 말하기 위해, 대학원을 그만뒀다. 그리고 인클루시브교육(통합교육) 활동을 시작하고, 지금은 ‘도쿄 인클루시브교육 프로젝트’의 대표를 맡고 있다.

 

‘인클루시브 교육이 인클루시브 사회를 만든다’

 

1년 반 전, 고등학교 동창이자 트랜스남성인 친구가 온라인행사에 가와바타 씨를 초대했다. 그런데 당일에 가와바타 씨에게 발언을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통역을 해 줄 활동지원인이 없어서 고사하자, 그는 “가와바타는 언어장애가 있지만, 몇 번 들으면 알아들을 수 있다”며 모두에게 소개했다. 결국 가와바타 씨는 사람들 앞에서 말을 했다. “그 친구와 같은 교실에서 지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그 행사에서 서로의 어릴 적 이야기도 나누었다고.

 

“장애인이든, 트랜스젠더든 학교에서 생활하기 힘들게 만드는 배경에는 같은 문제가 있습니다. 저 역시 성소수자에 대해 배우게 되었습니다. 에비하라 씨가 ‘인클루시브 교육이 인클루시브 사회를 만든다’고 했던 말이 이런 뜻인가 싶었어요.”

 

가와바타 씨는 현재 집필 활동도 하고 있는데, 웹진 ⌜뉴스츠쿠바」에서 칼럼 “전동휠체어에서 본 풍경”을 연재 중이다. 중학생 시절 겪은 학대 경험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어릴 적에는 말하는 게 제일 힘들었는데, 최근에 저는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걸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사고방식이 달라도, 상대의 의견을 듣고 내 의견도 분명히 전달하는 일. 귀찮지만 재미있어요.”

 

앞으로의 목표는 “인클루시브 교육의 권리를 친근한 언어로 확산”시키는 일이다. “살기 어렵다고 느끼는 다양한 입장의 당사자와 협력해서, 학교를 바꿔나가고 싶습니다.” (번역: 고주영)

 

-〈일다〉와 제휴한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 제공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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