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소개] 유진솔. 모든 이의 이야기가 노래라 믿는 싱어송라이터. 2021년 『노래가 되길 기다리는 이야기』 가사그림책과 데모음원 CD를 공동 제작한 작업을 시작으로, 2022년 ⌜장모의 고양이」 싱글, ⌜만달라」 ep 앨범을 발매했다. 그 외 ‘초양’ 싱글 ⌜계절」, 맞배집 컴필레이션 앨범 ⌜사랑과 존경을 담아」에 참여했으며, 2023년 ⌜말을 건다」 싱글 음원을 발매했다. 1월 11일 대전의 보문산을 걷고 만든 노래 ⌜피난」이 발매된다. 인스타그램 @ujin_sol
‘유진솔’이란 이름을 짓고 나의 길을 찾아서
연두색과 진녹색, 하얀색 실을 꼬아 소원팔찌를 만들었다. 2020년 2월의 겨울, 팔찌를 손에 묶으면서 소원을 빌었다. “내가 노래하는 것을 내가 좋아하자.”
그 소원팔찌는 2020년 한 해와 2021년의 겨울 즈음까지 손목에 계속 있었다. 가끔 누가 무슨 소원 담겨 있냐고 물었는데, ‘소원은 비밀이어야 한다’고 답하며 대답을 피했다. 그러다 2021년 6월의 여름날, 대전 문화공간 맞배집과 인터뷰를 하게 됐다.
Q. 싱어송라이터로 활동을 시작해야겠다 결심한 순간에 어떤 심리적 환경적 변화가 있었는지, 그때 세운 목표가 있는지 궁금해요. 3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어떻게 달라졌고 또 같을까요?
A. 아직 제가 제 노래를 그렇게 많이 좋아하고 자랑스럽게 여기지는 못해요. 언제나 부족한 면을 찾고, 그래서 많이 불안한 마음이 앞서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달라진 것은 ‘내 노래를 내가 좋아하자’고 다짐하게 된 것? 누가 내 노래를 좋아해주는 것을 바라는 마음을 앞세우지 말고, 노래 부를 때 내가 정말 행복함을 느끼면 좋겠다고 바라게 되었어요.
이 인터뷰를 진행할 즈음엔 내가 ‘유진솔’이란 새 이름을 짓고 새 다짐을 할 무렵이다. 직업으로서의 활동가로 일하고 살다가, 직업으로서의 예술가로 일하고 살아보자 그런 다짐.
그때는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일 때였고, 세상에 불안이 판쳤다. 회사 바깥에서 나의 길을 새롭게 만들어보겠다고 야심 차게 새 이름을 짓고 새 다짐을 곱씹었지만, 불안감 내지는 고립감에 자주 끌려다녔다.
그때 맞배집을 운영하는 다영이 〈예술 빚는 여자들〉이란 공연을 기획해 싱어송라이터 시와 님과 나를 섭외했다. 고립감에서 한 발짝 벗어나, 연결감을 얻을 수 있었던 고마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여성 싱어송라이터 5인의 ‘이야기, 멀고도 가까운’
“자기만의 방도 좋지만 누군가 한 명이 있어 주는 게 진짜 좋은 것 같아요.” -뮤지션 이랑의 말, 책 『이야기, 멀고도 가까운』 중
『이야기, 멀고도 가까운』 책 제목 아래에는 “여성 싱어송라이터 다섯 사람의 말과 노래로 기록한 ‘나’의 시공간”이라는 문장이 적혀 있다.
신승은, 이랑, 성진영, 슬릭, 이호 님의 이야기가 담겨 있고, 이들의 이야기를 이끌어 낸 이들은 출판사 허스토리 류소연, 주승리 님이다. 이들의 대화는 ‘새처럼 자유롭고 풀잎처럼 여유롭고 나무처럼 조용하고 단단하’다.(성진영 - ‘꿈’ 가사)
이들 대화의 매개는 다섯 명의 싱어송라이터가 지나온 날들이 담긴 사진. 지나간 시절의 어렴풋한 기억을 꺼내다 보면 본가에서 억압적인 분위기를 느꼈던 기억이 덩달아 떠오르고, 무술 자세를 취한 어린 날의 자신의 모습을 보며 주어진 ‘여성성’에 대한 반발심이 어렸을 때부터 있었나 자신을 반추하게도 된다.
“스스로를 미워하게 되는 시간들의 깊고 깊은 구멍을, 정도는 다를지라도 겪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페미니즘은 그 시간들을 해명할 수 있는 언어가 되어준다. 내가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다 느꼈던 것이 내 탓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보이지 않았던 세계의 문이 보이게 된다. (중략) 슬릭은 이제 자신을 부정하는 말들에 부정당하지 않는다.”
힙합 씬에서 ‘랩 잘하는 여자’, ‘여자 래퍼 중에 잘하네’ 이런 칭찬을 받던 시기를 지나, 슬릭은 이제 ‘누구도 해치지 않는’ 노래를 만들고자 자신의 길을 걷고 있다.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나의 이야기를 겹쳐 떠올렸다.
“착함이란 뭘까/ 중립이란 뭘까/ 평화란 뭘까/ 사랑이란 뭘까 (중략) 평화를 강요하지마/ 사랑을 강요하지마/ 중립을 강요하지마/ 착함을 강요하지마” -유진솔 ⌜강요하지마」 노랫말 중 사랑이 중요하다 믿고 평화를 지향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누가 나에게 강요한다면 그건 ‘가짜’가 된다. 2019년 명상음악을 들으며 지내던 어느 날 만들기 시작했던 이 노래를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직후 정부가 선포한 ‘국가애도기간’ 그 다음날 사람들 앞에서 불렀다. ‘애도’라는 이름으로 대부분의 문화예술행사가 취소되고 연기되던 그때, 내 안에는 쉽게 말하지 못하는 ‘화’가 쌓여 있었다. 그때 그 노래를 부르는 게 나에게 가장 솔직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누구도 해치지 않는 노래.’ 그건 ‘나’를 해치지 않는 노래이기도 했다.
“우리의 방은 너무 작고 시끄럽고 우리에게 돈은 항상 멀리 있지”
책 『이야기, 멀고도 가까운』은 노래로도 이어진다. 위 가사는 이랑이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만든 노래 ⌜우리의 방」 가사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2023년 12월 31일이고, 맞배집이 문을 닫는 날이다. 나에게 ‘우리의 방’이 되어준 곳이다. 자기만의 방에서 침잠하던 나에게, ‘예술 빚는 여자들’이라 호명하고 ‘사랑과 존경을 담아’ 노래할 수 있도록 선배 아티스트, 지역 동료 아티스트와 연결해주었던 공간.
그동안 우리의 방은 너무 작고 시끄럽고 돈은 항상 멀리 있었더라도, 우리는 ‘넓은 곳으로 날아가려’ 하는 마음을 멈출 수 없다. 맞배집 문이 닫더라도, 이 마음이 우리에게 있는 한, 우리는 계속 노래하면서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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