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오늘’을 보낸 당신에게『고야마씨 노트』로부터④ 결코 자기 자신을 내줘버리지 않는 고야마씨[기획의 말] 고야마씨는 도쿄의 한 공원 깊숙이, 비밀처럼 펼쳐진 텐트 마을에 살았다. 그녀가 써 왔던 노트에는 홈리스 여성으로서 끼니가 걱정되고 추위나 더위로 힘들고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을 지키듯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고야마씨의 세계가 풍부하게 펼쳐져 있었다. 그녀가 죽은 뒤, 그 ‘쓸모 없어 빛나는 세계’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모여, 방대한 양의 노트를 컴퓨터로 문자화하는 ‘고야마씨 노트 워크숍’을 시작해 8년이 흘렀다. 올해 10월 30일, 워크숍 멤버들이 문자화된 노트를 편집하여 『고야마씨 노트(小山さんノート)』(etc. books)가 출판되었다. 『고야마씨 노트』중 고야마씨 노트 일부와 멤버들의 에세이를 번역하여 6회 연재한다.
1회 “어느 홈리스 여성이 남긴 기록, '쓸모 없어 빛나는' 세계”(신지영 https://ildaro.com/9768) 2회 “우리는 그녀의 노트를 태우지 않기로 했다”(이치무라 마시코 https://ildaro.com/9786) 3회 “가난하고, 고독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나날을 나누어 갖기”(요시다 아야코 https://ildaro.com/9797)에 이은 연재다. 팬데믹 기간 동안 ‘자가격리’가 장려되었지만, 동시에 가정 속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성/폭력도 급격히 늘어났음은 충분히 이야기되지 못했다. 여성들이 빈곤과 고통에 시달리는 큰 원인 중 하나가 가정폭력임에도, 여전히 이 논의는 불문에 부쳐진다. 연말연시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 요즘, 가장 친밀한 관계로 고통 받으면서도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고 폭력을 벗어날 수도 없는 ‘오늘’을 보내는 모든 이에게, 사코 씨가 만난 “결코 자신을 내줘 버리지 않는 고야마씨”의 말이 스스로를 지키는 힘이 되길 바래 본다.
그 후 고야마씨가 남긴 노트를 데이터화하는 워크숍에 참여하게 되었다.
‘고아마씨 노트 워크숍’에서는 힘 있고 리드미컬하게 날뛰는 글자, 독특한 음차표현 등을 모두 함께 읽고 해석하면서, 노트의 글자를 입력해 갔다. 멤버 몇 명이서 각자 자신의 PC를 향해 앉아 작업하면서 “있지 들어봐, 이런 말이 쓰여 있어, 이런 말을 하고 있어”라고 무심코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할 수 있는, 아주 즐겁고 안심할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데이터화하는 멤버들이 평소 어떤 일을 하고 있고 어떤 배경을 지니고 있는지는 자세히 몰랐지만, 고야마씨에 대해 관심을 갖는 방식,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면서 “여기는 괜찮다”고 안심할 수 있었다. 어느새 고야마씨와 대화하고 있는 내가 있다. 만난 적도 없는 고야마씨가 여기에 있는 듯했다. 고야마씨와 [워크숍] 멤버 분들과 함께 겁내지 말고 오늘을 살아가자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작업에] 조금 익숙해졌을 무렵, 멤버들과 고야마씨의 생활을 실제로 더듬어 보는 ‘필드워크’와 같은 것을 했다. 노트에 나오는 가게라고 추측되는 찻집에 가서 “태양의 자리”, “달의 자리” 등에 앉아 노트를 열어 본다. 토모노히토(共の人. ‘함께 있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고야마씨가 일하는 곳에서 만나 함께 살게 된 남성. 2002년 10월 7일에 세상을 떠나는데, 죽은 뒤에는 그를 ‘긴마’라고 부르기 시작함)와 만나기로 했던 듯한 장소에서, 그 부분에 해당하는 일기를 낭독해 본다. 육교에서 춤을 춰본다. 무와 부츠를 들고 걷는다 등등. 고야마씨의 발걸음을 따라 고야마씨의 생활을 조금 체험해 보았다.
이곳이니까 고야마씨 나름의 일상생활이 성립될 수 있었다고 느꼈고, 반대로 도시에서는 무엇을 하건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눈치채지 못한다, 라는 특유의 고독감도 맛본 기분이 든다.
가정폭력에 관해서는, 20여 년 전에 양손에 들 수 있는 만큼만 짐을 싸 들고 남편 곁을 떠났던 나 자신의 경험과 겹쳐진다. 때리고 차는 등 신체적 폭력 이외에도 ‘멍청한 년’, ‘아무 짝에도 쓸모 없어’, ‘나가 버려’ 등의 언어폭력, 동전을 던져주는 등 돈과 관련된 폭력, 욕하고 바보 취급하고 끊임없이 굴욕감을 느끼게 하는 정신적 폭력 등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그러다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변하고, 악귀 같은 표정으로 미쳐 날뛰고, 장황하게 설교하고, 그 후 아무렇지 않은 듯이 상냥해지는 것 등은 가정폭력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금방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힘을 이용한 지배관계에 놓여진 사람들은, 불 보듯 뻔하게 같은 장면이 벌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고야마씨도 이런 관계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토모노히토’를 떠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가정폭력 피해를 입은 많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집을] 떠나오는 것에 실패하거나,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을 반복하는 경우도 많다. 고야마씨는 노트에서 “아무리 해도 고쳐지지 않는 무리한 폭력과 폭언을 견딜 수 없다”, “혼자서 마음과 상처를 치유하고 싶다”, “똑같은 반복은 이제 서로에게 터부다”, “각자 간섭하지 않는 자유로운 입장과 일상이 필요하다”라고 자신의 마음을 부여잡고 있다.
한탄하기보다 사는 일에 집중해 간다, [글을] 씀으로써 살고 있다, 살려고 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고야마씨의 말이나 행동에 끌린다. 나 자신을 지켜 내기 위해서 “나는 누구에게도 내팽겨쳐지지 않는 인간이 되려고 했다”, “나는 내 마음에 충실하게 살고 싶었다”라고 쓰는 고야마씨. 그녀가 ‘이때다’ 싶을 때, 결코 스스로를 내줘버리지 않는 점에 강하게 끌린다 . 나는 고야마씨처럼 내 감정이나 생각을 상대에게 말하는 것이 좀처럼 쉽지 않았지만, 마지막에는 나 자신을 지키려고 집을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위 문단에서 스스로를 “내줘버리지 않는”이라는 표현은 책의 원문에서 “내주다, 양도하다” 등의 의미를 가진 明け渡す이다. 그러나 사코씨가 처음 썼던 단어는 明け渡す 한자를 미묘하게 변형시킨 空け渡す로, 직역하면 “비워서 내주다”가 된다. 사코씨는 표준어가 아닌 이 말을 "자신이 자신이 아닌 게 되어 갈 때의 두려움"을 표현하기 위해 썼다고 한 바 있다. 외부로부터의 폭력에 지속적으로 노출됨에 따라 자신의 내면이 텅 비게 되고, 그 상태로 자기 자신을 폭력적 상대에게 내줘 버리기 직전, 그 폭력과 폭력에의 길들여짐에서 도망쳐 생존한 사코씨의 경험이 이 말(空け渡す)에 담겨 있다. 번역어로 이러한 감정과 경험을 모두 표현하긴 어렵지만, 아슬아슬한 순간에 도망쳐 온 의지를 표현하여 ‘내줘버리지 않는’이라고 번역한다. [역자]
집을 나설 무렵의 나는 ‘노멘’(能面, 노[能]는 일본의 3대 고전연극 중 하나로, ‘노멘’이라고 부르는 가면을 착용하는데, 그 중에서도 여성의 가면은 표정이 없고, 배우가 얼굴 각도를 바꿔 미묘한 표정 변화를 만들어낸다)처럼 표정이 없어지고, 진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 방을 돌아다니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남편에 의해 원치 않는 성행위를 할 때에는 내 몸에서 빠져 나와 멀리서 나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 죽거나, 죽이거나, 미쳐버릴 것 같다고 느끼고 있었다.
나도 내 방식으로 아슬아슬하게 나 자신을 지켰다고 생각한다.
이 방대한 노트를 데이터화하자고 말을 걸어 건네 주었던 이치무라 씨, 그리고 이치무라 씨 등과 1주기 추도 전람회를 연 요시다 씨의 마음이 얼마만한 것이었는지, 지금에야 비로소 조금 상상할 수 있을 듯하다.
이치무라 씨나 요시다 씨는 홈리스 여성과 함께 있어서, 몸이 약해진 고야마씨의 생활을 돕고 있었다.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고야마씨는 돌아가셨다. 두 사람에게는 고야마씨만이 아니라 목숨을 잃은 많은 홈리스 여성에 대한 추모라는 의미가 크지 않을까? 나도 폭력 피해를 입었던 여성들의 보금자리 운영 등, 회복 지원 활동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동료들의 죽음을 마주하는 것이 어떤 것일지 상상해 본다. ‘괜찮아, 곁에 있어 줄게’라는 자세를 소중히 여기고 싶다. 결코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는 사회. 폭력을 용인하는 우리들의 의식이 이 사회를 형성한다. 나와 상관 없는 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어떤 경험을 했건, 어떤 상황에 있건,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 살아 남길 바란다. 지금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나날들이길 바라고 빈다.
[필자] 사코 마사코(さこうまさこ) 1999년, 양손에 들 수 있는 만큼의 짐을 들고, 가정폭력 때문에 집을 나왔다. 갈 곳이 없던 나에게 지역의 장애인 식사모임 등을 주최하는 민간단체가 주거를 제공해 주었다. 지역 사회를 통해 도움을 받았던 나는, 폭력 피해 여성들의 회복 지원과, 도망가지 않아도 되는 사회로의 변화를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
#『고야마씨 노트』로부터 발췌
1993년 12월 22~23일 나는 내 마음에 충실하게 살고 싶었다. 내가 한 일은 어떻게든 나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세상의 법칙상,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했다. 마음 속의 문이 열릴 때, 그런 내 자신이 좋았다. 싫은 건 싫다고 말할 수 있는 인생을 살고 싶었다. 말할 수 없는 세상 일은 힘들었다. 나는 특별한 명예도, 사람들의 연결도, 신용도, 이상한 의리나 은혜도 만들지 않고 살아보고 싶었다. 꿈, 이상, 희망이 있는 한, 그 이미지를 살아갈 현실 속 얼마간의 돈은 갖고 싶었다.
각자 간섭하지 않는 자유로운 입장과 일상이 필요하다. 이제, 나중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서로 도와가며 살자는 말을 들어도, 발작의 분노와 광란은 수백 번이나 반복되고 고쳐질 기미도 없다. 혼자 조용히 사는 것이 서로에게 필요해진 때인 것이다. 나에게는, 이제 그렇게 무거운 생활은 필요 없다. 도시락도 밥도 필요 없다. 다소간의 돈을 얻을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회복하고 빨리 돈을 벌 수 있는 일과 만나고 싶다. 용기를 내서 5월의 태양과 함께 본래의 영혼이 빛날 수 있도록, 내 나름대로 살아가고 싶다. 어서 죽어 버려, 죽여버리겠다고 욕설을 퍼붓은 사람으로부터 빨리 떠나고 싶다. 농담이라고 해도 그 순간 진짜 심하게 욕하고 때리고 협박하니까 상처가 나을 겨를도 없다.
[번역] 다카하시 아즈사(高橋梓) 니가타현립대학교(新潟県立大学) 조교수. 한국근대문학. 매체와 언어라는 조건에 유의하며 식민지 조선의 작가들이 쓴 조선어/일본어 작품을 다시 읽는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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