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을 걸고’ 사죄와 보상 요구한 징용피해자의 마음 떠올려연극 〈봉선화〉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역할 맡은 배우 무토 요코“65년간의 고통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업신여기지 마!”
무대 위에서 목을 쥐어짜듯 대사를 하는 무토 요코(武藤陽子) 씨. 2022년 9월, 공연된 〈봉선화 2022-이어지는 기억과 계승〉의 한 장면이다.
무토 씨가 맡은 역할은 태평양전쟁 당시 조선에서 일본으로 건너와 노동력을 착취당한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중 한 명인 양금덕 씨. 이 작품은 2003년 초연 이후 19년 만인 2022년에 재공연을 올렸다.
‘징용공 소송’ 당사자 양금덕 씨와 잊지 못할 만남
무토 씨가 연기한 양금덕 씨(1929년생)는 공부도 운동도 잘하는, 소학교에서 반장을 맡는 어린이였다. 소학교 6학년이었던 1944년, 학교에서 “일본에 가서 일하면 돈을 벌 수 있고 진학도 할 수 있다”는 말에 속아 말리는 부모를 뿌리치고 바다를 건넜다. 13~15살의 1,700여 명의 소녀들이 조선여자근로정신대라는 이름으로 나고야, 토야마, 누마즈의 군수공장에서 노동을 강요당했다.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로 강제동원된 양금덕 씨 등은 신나 같은 화학품을 다루는 가혹한 노동을 해야만 했다. ‘진학’을 지원해준다는 것은 얼토당토않은 거짓말이었다. 일한 만큼의 월급도 받지 못했다. 1944년 도난카이(東南海) 대지진으로 친구 6명을 잃었다. 해방 후에 조국으로 돌아와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았지만, 남편은 양 씨가 일본에서 군인을 상대했다고 의심하며 ‘더러운 여자’라고 욕을 했다.
양 씨 등은 1999년에 일본에서 재판을 제기했지만, 패소. 2012년 한국 대법원에 제기한 ‘징용공 소송’은 일본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이미 해결이 끝났다고 주장하며 물러서지 않았다.
무토 요코 씨(1964년생)는 고등학교 때 연극을 처음 만났다. 사회인으로 바쁜 생활을 하던 중, 문득 연극이 그리워져 나고야의 극단 메이게이(名藝)의 문을 두드렸다.
아이치현고등학교 직원조합으로 직장을 옮긴 35살 때,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에 대해 알게 되었다. 피해자를 지원하는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에 가입, 2003년 연극 〈봉선화〉에서 양 씨 등을 꼬여 일본에 가게 한 담임교사를 연기했다.
“양금덕 씨 등도 보러 오셔서 공연 후에 같이 뒷풀이를 했어요. 거기에서 일본인 헌병 역을 맡았던 남자배우와 담임교사 역을 맡았던 제게 ‘당신들 때문에 고초를 겪었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분들의 입장에서 보면 감정을 억누르기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러자 헌병 역할을 한 남자배우는 바로 무릎을 꿇고 사죄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그러기는커녕 ‘난 그저 연기를 한 것뿐인데…’라고 마음속으로는 억울해했죠.”
그때 일이 계속 무토 씨를 괴롭혔다. ‘남자배우는 마주했지만, 나는 도망쳤구나. 연기할 때는 인권을 지키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현실의 나는 이런 인간이구나….’
“결코 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양 씨의 분노와 슬픔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 온몸을 통해 감정을 표현했습니다.”
공연 후, 양금덕 씨의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는 한국의 감독이 무토 씨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영화 마지막에 ‘나고야의 양금덕’으로서 양 씨와 마주해줬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둘은 한국에서 다시 만났다. 무토 씨는 19년 전의 일에 대해 굳이 꺼내지 않았다. 양 씨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본인은 계속 품고 갈 것이라고 무토 씨는 말한다.
뉴스가 전하지 않는 것 알리는 연극의 힘…광주 공연 앞둬
징용공 소송은 2023년 3월부터 원고를 완전히 무시한 채 ‘정치적 결론’을 내려고 하는 모양새다. (2018년 한국 대법원이 손해배상 판결을 확정했지만 미쓰비시중공업은 배상하지 않았고, 작년 3월 윤석열 정부는 가해기업 대신 한국정부가 판결금을 지급하는 제3자 변제안을 발표했다.)
어디까지나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에 사죄와 보상을 요구했던 양금덕 씨와 세 명은 한국의 재단이 대신하는 배상을 받지 않았다.
“그분들은 온 생을 걸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영혼 없는 사죄, 사죄 없는 배상금을 받을 수는 없는 거죠. 함께 싸우다 먼저 세상을 떠난 원고 동료들에게 당당하게 ‘제대로 해결했어’라고 말하고 싶을 겁니다.”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은 2007년부터 도쿄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앞에서 월 2회 ‘금요행동’을 계속하고 있다. 무토 씨도 가능한 한 나고야에서 올라와 참여한다. 미쓰비시중공업 대표이사에게 보낸 편지에, 무대에서 양금덕 씨 역할을 연기한 사실과 본인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적었다. 미쓰비시중공업은 이전에 양 씨 등과 몇 번이나 협상을 거듭한 ‘전적’이 있다.
“협상 테이블에 나와 앉기 바랍니다. 사람으로서 양심이 있다면 무언가 울림이 있을 겁니다. 체념하고 싶지 않습니다. 뒤흔들고 싶습니다.”
연극 〈봉선화〉는 2024년 2월에는 양금덕 씨가 사는 한국 광주에서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현재 한창 연습 중이다. (공연 주관: 광주문화재단 대외협력팀 062-670-7424)
“관객들이 공연을 통해 어르신들의 기나긴 싸움의 여정을 알게 됐다고 하시더라고요. 뉴스가 전하지 않는 사실을 알릴 수 있다는 점이 연극의 힘인지도 모릅니다.” (번역: 고주영)
-〈일다〉와 제휴한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 제공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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