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워도, 더워도, 배고플 때도 그녀들은 춤춘다

『고야마씨 노트』로부터⑥ ‘룰라’와 함께 춤추기

하나사키 세츠 | 기사입력 2024/03/05 [10:00]

추워도, 더워도, 배고플 때도 그녀들은 춤춘다

『고야마씨 노트』로부터⑥ ‘룰라’와 함께 춤추기

하나사키 세츠 | 입력 : 2024/03/05 [10:00]

[기획의 말] 고야마씨는 도쿄의 한 공원 깊숙이, 비밀처럼 펼쳐진 텐트 마을에 살았다. 그녀가 써 왔던 노트에는 홈리스 여성으로서 끼니가 걱정되고 추위나 더위로 힘들고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을 지키듯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던 고야마씨의 세계가 풍부하게 펼쳐져 있었다. 그녀가 죽은 뒤, 그 ‘쓸모 없어 빛나는 세계’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모여, 방대한 양의 노트를 컴퓨터로 데이터화하는 ‘고야마씨 노트 워크숍’을 시작해 8년이 흘렀다. 작년 10월 30일, 워크숍 멤버들이 데이터화한 노트를 편집하여 『고야마씨 노트(小山さんノート)』(etc. books)가 출판되었다. 『고야마씨 노트』중 고야마씨 노트 일부와 멤버들의 에세이를 번역하여 6회에 걸쳐 연재한다. 이번은 6회째 즉 마지막회이다. 1~5회는 하단의 링크를 통해 볼 수 있다.

 

멀리, 경계를 넘어 퍼져나가고 있는 『고야마씨 노트』

 

작년 10월 말 『고야마씨 노트』가 일본에서 출간된 이후, 이 노트는 조용하고 강한 물결을 일으키며 퍼져나가고 있다. 유명 방송에서 다뤄주었고 멋진 서평들도 씌어졌지만, 무엇보다 기쁜 것은 작은 낭독회나 읽기 모임이 만들어졌고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작은 낭독회나 읽기 모임에 참여한 분들로부터 들려오는 소박하지만 깊은 울림을 지닌 다채로운 감상들은, 가난하고 폭력에 시달리고 앞이 보이지 않음에도, 하루 하루를 한 글자 한 글자 눌러 쓰듯이 살아가는 그/녀/들의 경험 없이는 출현할 수 없었을 연결을 만들어 내고 있다.

 

▲ 2023년 10월 30일에 발간된 『고야마씨 노트(小山さんノート)』가 진열된 모습. -고야마씨노트워크숍(小山さんノートワークショップ) 편, 엣세트라 북스(ect.Books)  ©고야마씨노트워크숍

 

전해져 온 감상들을 다 언급할 수 없지만, 잊을 수 없는 순간도 있었다. 출간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가정폭력에서 겨우 빠져나온 여성이 일본 에토세토라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힘이 되었다고, 고맙다고 전해 왔다. 이 이야기를 듣고 워크숍 멤버들이 얼마나 기뻐했고 안심했는지 모른다. 이 노트가 도착해야 할 곳에 제대로 도착하고 있구나 싶어 눈물이 나기도 했다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 감상에는 고통과 슬픔뿐 아니라 위로와 다정함이 강렬한 저항성을 담은 힘으로 존재한다. 낭독회나 독서회에 참여한 그/녀/들은, 처음에는 폭력을 당한 이야기가 많을까봐 읽기 무서웠는데, 읽고 이야기하다 보니 즐겁고 신나고 힘이 난다고들 했다. 워크숍 멤버들이 고야마씨 노트를 데이터화할 때 그러했듯이, 출판된 『고야마씨 노트』도 함께 이야기하며 낭독하며 춤추며 공연하며 읽어야 하는 책이다. 혹은, 홀로 작은 공간에 갇힌 채 읽을 때에도, 폭력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각자 모두가 이 우주의 한 부분임을 느끼게 하는 책인 것이다.

 

일다에 연재될 때마다 달린 독자들의 코멘트를 읽으면서도 큰 힘을 얻었다. 코멘트는 모두 모아 워크숍 멤버들에게 전달했다. 그때마다 멤버들이 얼마나 깊이 기뻐하고 널리 공감했는지 마지막 연재를 올리면서 한국어가 가능한 독자들에게도 꼭 전하고 싶었다.

 

그러나, 한 위치의 존재가 부각될 때 잊혀져 버리는 존재들도 있다. 이 선연하고 모순된 현실은 빼어낼 수 없는 가시처럼 내 마음 속에 늘 박혀 있다. 고야마씨는 기록을 남겼지만, 고야마씨의 마지막을 돌봤던 이치무라 씨는 텐트 마을에서 몸이 약해져 가는 또 다른 기록하지 못한 고야마씨들과 마주하고 있다고 했다. 국적이 없고 언어를 읽고 쓸 수 없는 여성들의 이야기도, 고야마씨의 기록에서는 희미한 연결고리만을 암시해줄 뿐이다…….

 

무엇보다, 모든 것을 ‘보이게 한다’고 능사가 아니다. 워크숍 멤버들은 『고야마씨 노트』 출간을 준비하면서, 공감이 아닌 동정이 되고 관심이 아닌 전시가 되어버리는 전형화된 '여성 노숙자 이야기'로만 이 노트가 읽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매번 신중하게 의견을 나누었다. 그 과정에서 몇 번의 제안들은 받아들이지 않아야 했고, 그 고민과 선택이 틀리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야마씨로부터도 워크숍 멤버로부터도 멀리 나아가고 있는 고야마씨의 노트가 “표현자로서 있다?!”. 이 노트를 읽을 때 출현하는 감정과 상황들이, 잊혀져 버리는 존재들이 쓰고 표현하고 공연하고 춤출 공간을 온갖 경계를 넘어 확~하고 넓혀 주었기를 바란다. 

 

6회 연재되는 동안 먼 곳 구석구석에 숨죽이고 있을 그/녀/들에게 어떻게 이 이야기를 도착하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다카하시 아즈사 씨와 함께 번역어를 고민하고, 워크숍 멤버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리고 일다 연재에 관심을 보여주신 분들 덕분에 한국에서도 번역 출판하기로 확정되었다. 번역될 때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고야마씨 노트와 그/녀/들이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의 마음 속 어딘가에 남아, 삶의 위로와 자기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용기를 전해 주고 있다면 기쁘겠다. 무엇보다, 마지막 회를 고야마씨와 워크숍 멤버들과 수많은 ‘룰라’들과 이야기하고 연기하고 춤추며, 또 다른 ‘룰라’들을 기다리며 끝낼 수 있어서, 늘 그렇듯이, 두려우며 동시에 설렌다. [신지영: 기획자]

 

『고야마씨 노트』로부터: ‘룰라’와 함께 춤추기 -하나사키 세츠 에세이 - 

 

표현자가 여기에 있다!?

 

나는 한때, 고야마씨가 생활하던 숲(공원)에서 열리던 여성들의 티파티에 때때로 참가했다. 이치무라 씨가 시작한 티파티는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어서 언제든지 가도 되고 언제든지 돌아와도 좋은, 나에게는 매우 편안한 모임이었다. 숲 속 나무 옆에 여러 모양의 의자가 놓여있고 얼굴을 맞대고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떤다. 당시에는 몇 사람 사이의 오붓한 모임이었고, 텐트 마을 주변에 사람들의 인기척이 있긴 했지만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고, 나는 확 굳어진 몸이 풀어지는 듯이 편안해졌다. 그렇게 알게 된 여성들과 여름 축제에서 작은 퍼포먼스를 한 적도 있었다.

 

▲ 『고야마씨 노트』 초판본을 받은 날, 출판에 참여한 워크숍 멤버들이 고야마씨에게 알리기 위해서 고야마씨가 살고 있던 공원에 모였다. 멤버 한 명이 “고야마씨가 공원에 돌아온 것 같다”고 말했다. (촬영: 하나사키 세츠)

 

얼마 후, 이치무라 씨가 몸 상태가 나빠진 고야마씨를 케어하기 위해서 텐트 마을 밖의 사람들도 연결된 ‘고야마씨 네트워크’를 만들자고 요청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야마씨를 만난 적은 없었지만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하면서, 집에 있는 물건을 가져 가거나 하는 사이에, 고야마씨가 죽고 말았다.

 

고야마씨의 노트를 만났을 때, 내 마음 속에서 “이건 엄청난 거야!?”라는 중얼거림이 멈추지 않았고, “표현자가 여기에 있다!?”라며 충격을 받았던 것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나중에 노트를 통해서 고야마씨가 문학이나 예술에 뜻을 두고 글 쓰는 것으로 자립하고 싶다, 생활을 해 나가고 싶다는 희망을 갖고 있었음을 알았다. 하지만 그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억울한 마음이나 견딜 수 없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고야마씨는 쓰는 것 자체는 그만두지 않았다/그만둘 수 없었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주변 정리나 세탁 등을 ‘잡무’라고 부르며 서툴러 했던 고야마씨는, 가족이나 동거인으로부터 읽고 쓰는 것은 “쓸모 없다”는 소리를 계속 듣는다. 돈이 되지 않는 것에 계속 집착하고 “여자이면서” 혹은 “여자인 주제에” 잡무를 잘하지 못하는 고야마씨에게 가해지는 비난은 심했다.

 

▲ 성폭력 피해자의 목소리를 사회에 전달하는 예술 단체 DAYA가 했던 길거리 연극. 가정폭력을 보여주는 장면. (촬영: DAYA 멤버)


하지만 고야마씨에게는 "읽고 쓰는 것은 나의 본업"이며, 텐트에서의 편치 않은 생활 속에서 카페에 가서 자유로운 혼자의 시간을 사수하여 “정신 해방의 일”을 하고 정신을 가다듬고 회복을 도모하는 일은 쓸모 없는 것이긴커녕 고야마씨가 고야마씨이기 위해서 빼놓을 수 없는, 생명을 구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더구나 고야마씨는 “약 3시간 정도의 자유로운 공간은, 오늘도 또 희미하게 희망의 실을 잇는다. 매해마다 겨울의 추위와 더운 여름은 찾아온다. 집 없이, 직업 없이는, 어떤 인생을 걷게 될까 하며, 나는 일기를 쓰고 있다.”(2001년 8월 3일)라고, 개인적인 필요성만이 아니라 개인의 영위를 뛰어넘는, 표현하고 기록하는 것의 의의도 의식하면서 계속 쓰고 있었다.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은 기술도 있다. “출판할 만한 내용의 글은 적다. 극히 소수의 사람 즉 앞으로의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힌트로 읽을 수 있겠지만, 현재와 같은 어수선한 세상에서 그만큼의 시간을 집중해서 생각할 수 있는 사람도 적을 것이다.(중략) 50대를 이 노트와 함께 하며 스스로 반복해 읽고 쓰고 끈기 있게 정리해서 조금이라도 현실의 기반을 쌓아 열어갈(開元) 수 있으면 좋겠다.”(2001년 6월 29일)

 

고야마씨는 노트가 자기 자신 이외의 누군가에게 "어떤 힌트로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기반을 쌓아 열어가다(開元)"라는 다소 어려운 말로 표현하긴 하지만 공론장에서 공개되길 원하고 의도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고야마씨 노트는 다양한 측면이 있지만, 나는 고야마씨라는 표현자가 한 ‘표현’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 고야마씨의 유품. 노트라든가 고야마씨가 손수 만든 것. 갖고 있는 재료들로 [무엇인가를] 손수 만드는 작업을 고야마씨는 “성스러운 작업”이라든가 “정신작업”이라고 불렀다. 음식을 나누어 받을 때 답례로 주곤 했다. (촬영: 요시다 아야코)

 

고야마씨와 함께 춤을

 

그런데, 연극을 하고 있는 내 입장에서 보면, 고야마씨는 연극이 갖고 있는 특성을 잘 활용하고 있었던 것 같다. 연극에도 여러 형태가 있는데, 물론 이 경우에는 엔터테인먼트나 예술지상주의적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찻집은, 여름의 더위나 겨울의 추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공간일 뿐만 아니라, 고야마씨는 그곳에 자기 자신의 연극무대를 설치하듯이 마음에 드는 자리에 ‘달의 자리’, ‘태양의 자리’ 등의 이름을 붙여, 고야마씨가 고야마씨로부터 보다 자유롭게 읽고 쓸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출현시킨다. 그곳에서 고야마씨는 읽고 쓰는 일에 집중한다. 픽셔널한, 연극무대라고도 부를법한 설정을 함으로써 현실의 사건에 “짓눌려 뭉개져 버린” 자아를 잃지 않고, 때로는 달에서 바라보듯이 생활을 기록하고 거기로부터 솟아오르는 생각을 노트에 새겨 넣었다.

 

토모노히토(共の人. ‘함께 있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고야마씨가 일하는 곳에서 만나 함께 살게 된 남성. 2002년 10월 7일에 세상을 떠나는데, 죽은 뒤에는 그를 ‘긴마’라고 부르기 시작함)가 죽고 말 그대로 혼자 생활하게 되면서, 고야마씨의 생활은 더욱 어려워지고, 인간관계도 더욱 고민하게 되지만, 그 시기의 고야마씨는 의식적 및 의도적으로 “환상의 세계”를 불러내어 헤쳐나가고 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밝고 품격 있는 모습의 ‘룰라’라는 가공의 인물을 출현시켜 파리의 골목 바에서 함께 술을 마시곤 한다는 점이다. 그러면 현실의 추위와 외로움을 잊고 불안으로 가득한 날들 속에서도 푹 잠을 잘 수 있다.

 

다른 한편 환상의 한계도 알고 있고, 환상은 지속되지 않으며, 현실의 잡무는 사라지지 않고, 환상으로 배고픔이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극도로 가난한 현실에 짓눌려 뭉개져 버릴 것 같을 때, 의식을 전환하여 일시적으로 다른 세계에서 다른 자신을 이미지로 만들어 즐기거나 기력을 회복하기도 한다. 그렇게 현실과 ‘환상’을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힘을, 세상에서는 ‘쓸모 없는 일’이라고 불리는 힘을 고야마씨는 획득했고, 그야말로 살아내는 데 활용했던 것이다.

 

▲ 〈삶과 성을 둘러싼 소소한 모험 – 여성편〉(生と性をめぐるささやかな冒険−女性編) (지역 이야기 2017) 공연 사진. 여성들과의 워크숍에서, 학대로부터 살아남기, 장애를 지닌 여성으로 살기 등을 이야기하고 연기하고 춤추면서 무대에서 발표했다. (촬영: 세타가야 퍼블릭 씨어터 世田谷パブリックシアター)


그리고 고야마씨는 자주 춤춘다. 배가 고파도 춤춘다. 온몸으로 리듬에 맞춰 춤추며 뭉친 어깨를 풀고 심신을 가볍게 한다. 가까운 음악당에서 춤추는 사람을 보면서 “영혼의 근원이 빛났다. 무거운 머리와 나른함, 감당할 수 없는 상태를 날려 버릴 듯한 리듬과 영상의 예술적 아름다움에 집중한다. 한 시간 동안 맘껏 춤춘다. 몸과 마음 상태가 나아졌다”라고 쓰는 식이다.

  

또한 사람들과 사귀는 일에 서투른 고야마씨가 춤추고 있을 때만은 주위의 사람들에게 말을 걸거나 하는 것도 흥미롭다. 고야마씨는 음악의 힘을 빌려, 덮쳐오는 생활의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때를 최대한으로 즐기고, 살아 있다는 것의 실감을 맛보고 있다.

 

그런 고야마씨의 삶의 방식을 현실도피라거나 어리석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살아가는 것은 매 순간 순간의 축적이며, 그때 그때를 온몸으로 느끼는 것, 맛보는 것, 맛볼 수 있는 것은 살아가는 시간을 빛나게 하는 풍부한 삶의 방식이지 않을까. 고야마씨는 노트에 사건을 기록하고 읽어가면서 잘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몸과 마음의 관계, 즉 고야마씨가 말하는 기력과의 복잡한 관계를. 배가 고픈데 춤추면 더 배가 고파져 버리는데 바보 같다거나, 돈이 없으니까 춤출 여유가 있으면 돈을 마련할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든가 하는 식의 이른바 합리적인 판단만이 인간을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고야마씨가 춤추는 것을 보고 싶었다. 함께 리듬을 느끼면서 춤춰 보고 싶었다.

 

우리는 자본주의적 가치관으로 자기 자신을 가치매기고 계속 겁을 먹고 꼼짝 못할 듯한 기분에 빠져들기 쉽다. 눈에 띄게 도움되는 일, 돈이 되는 것을 하면 어떨까 라는 시선이 끊임없이 몰려오고, 그런 것을 하지 않는 것은 ‘제멋대로’라고 여겨져, 돈 되는 일을 하지 않으면 낙오되어도 어쩔 수 없다고 하는 듯하다. 또한 남의 눈을 신경 쓰거나, 장래를 생각해서 현재를 희생하도록 과도하게 요구 받기 쉽다. 외부로부터 요구될 뿐 아니라, 더욱 힘든 것은 스스로 ‘검열관’을 내면에 끌어들여 자기 자신을 사회에서 통용되는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규범이나 가치관으로 얽매어 버리는 것이다.

 

▲ 약물 등의 중독에서 회복되길 원하는 여성들을 위한 민간 시설인 ‘다르크 여성 하우스’(DARC Women's House)와 관련된 여성들이, 필자가 담당하는 표현 시간에 만든 한 장의 ‘그림 연극’. (촬영: 하나사키 세츠)


고야마씨가 남겨 준 노트는 이러한 세상에서, 겉으로만 번지르르한 게 아니라 자신을 [누군가에게] 넘겨주는 것 없이 어떻게든 살아가자고 호소하고 있는 것처럼 나에게는 느껴진다.

 

동시에 고야마씨 노트에 마치 조각처럼 깊게 새겨진 달필인 문자와 노트의 [방대한] 양은, "혼자서는 전부 읽지 못하겠지요?"라고 말 걸듯이 고야마씨 노트를 데이터화하는 워크숍을 소환했고, 같이 읽어갈 동료들을 불러 모아 주었다. 이 책도 혼자서 읽는 게 힘들 때에는 꼭 누군가와 함께 읽어주면 좋겠다.

 

[필자] 하나사키 세츠(花崎攝) 씨어터 프랙티셔너. 텐트에서 공연을 하는 ‘검은색 텐트 68/71’(黒色テント68/71, 현재 명칭은 ‘극단 검은 텐트’[劇団黒テント] https://btt-tokyo.amebaownd.com)에 참여하면서 아시아 민중연극과 만난다. 이후, 여성과 장애인을 비롯한 다양한 사람들과 워크숍을 계속하고 있다. 잘 보이지 않는 경험과 들리지 않는 소리를 연극적인 형태로 전달하고 표현하는 것이 참가자들의 임파워먼트로 이어지는 것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

 

▲ 고야마씨 공개 낭독회(2017년)에서 낭독하고 있는 필자 하나사키 세츠(花崎攝) 씨. (촬영: 이치무라 미사코)

 

#『고야마씨 노트』로부터 발췌

 

2001년 7월 3일

저녁 6시, 혼자 일찍 거리로 나온다. 오늘도 약간의 돈을 활용하자. 나를 위해서…….

“태양은 가득히”(1960년 프랑스에서 제작된 르네 클레망 감독의 영화 주제곡)라는 음악이 흐르고 있다. 어릴 때부터 많이 들었던 아름다운 곡은 언제 들어도 밝은 희망으로 빛나고, 영혼을 울린다. 중단된 사고는 태양의 자리에 있는 잠시 동안, 기쁜 정신의 시간을 즐기게 해 준다.

치밀한 의식의 밤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매일 리듬의 변화는 있지만, 중심에 있는 내면은 변하지 않는다. 10년 전 문자의 흐름을, 10년 만에 새 노트에 써 본다. 마치 반복일기 같다. 거의 백수생활에 가까운 감각으로 생활하지 않을 수 없는 현재다. 이런 날들의 생활도 낙천적으로 지낼 수 있는 여름이 좋다. 조금이라도 현실에서 희망을 살려갈 수 있도록, 때때로 덮쳐오는 아픔과 불안을 떠나고 싶다. 자연 숲의 잠 속에서 엄마와 언니가 고기와 피망의 소금구이를 만들어 주었던 꿈을 꾸고, 허기를 달랬지만, 여름을 견딜 음식이 부족하다. 너무 무리한 육체노동을 하지 않도록 가만 가만히 우아하게 가자.

 

2003년 10월11일

오늘은 외출은 그만두고 조용히 느긋하게 있자. 마음을 정하고 환상의 방에서 지낸다.

밤이 되자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한다. 식욕도 없다. 소소한 요리에 약간의 맥주로 건배. 슬로우 재즈 곡으로 지르박 춤을 추며 마음의 활기를 불러 일으킨다. 샤워로 몸을 씻고, 10월 장마철과 같은 날씨, 남은 이틀만 지나면 55년의 인생도 끝. 새로운 여행이 시작된다.

룰라의 밝고 고상한 모습과 함께 11일을 무사히 마무리한다. 하늘에 오른 듯한 빛의 의식에 휩싸인 한때 잊지 않고 내일을 맞이하려고 현실의 으스스한 추위를 잊고 8시간 동안 푹 잔다.

 

[기획 및 번역] 신지영 연세대학교 교수. 1945년 전후 동아시아 코뮌의 형성과 기록/문학을, 현재의 마이너리티 및 비/인간 존재들의 공통성과 기록/문학과의 접점 속에서 연구하고 있다.

 

[번역] 다카하시 아즈사(高橋梓) 니가타현립대학교(新潟県立大学) 조교수. 한국근대문학. 매체와 언어라는 조건에 유의하며 식민지 조선의 작가들이 쓴 조선어/일본어 작품을 다시 읽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 느낌 2024/03/10 [22:01] 수정 | 삭제
  • 연극하시는 분이라.. 직접 이 글을 읽어주시는 걸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작은 2024/03/08 [13:20] 수정 | 삭제
  • 난쏘공이 생각나는 기록이네요
  • f 2024/03/07 [21:57] 수정 | 삭제
  • 연재 잘 읽었습니다. 처음 읽었을 때부터 "기록하지 못한 고야마씨들"을 생각했어요. 고야마씨 노트가 잘 가 닿은 독자 중의 한 명이 된 것 같습니다.
  • 디디 2024/03/06 [18:02] 수정 | 삭제
  • 나도 잡무에 서투른 사람입니다. "여자이면서" 잡무를 잘하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열등감을 느끼곤 합니다. 어렸을 때에도 쓸모 없는 일을 하며 살까봐 걱정했고, 쓸모 있어 보이는 일을 해야 나의 부족한 점을 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게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생각을 바꾸기가 쉽지 않지만, 이제는 좀 다르게 생각하긴 해요. 고야마씨 노트 워크숍 멤버 분들이 좀더 그런 생각을 괜찮다고 지지해주시는 것 같아 힘이 됩니다.
  • 오디세이 2024/03/06 [14:54] 수정 | 삭제
  • 연극이 어떻게 시작이 되었을까 생각해보게 되는 글이네요.
  • 목소리 2024/03/05 [20:47] 수정 | 삭제
  • 연재 글 고맙게 읽었습니다. 텐트마을의 여성들의 티파티에 저도 잠깐 다녀온 기분이 들었습니다.
  • 독자 2024/03/05 [19:53] 수정 | 삭제
  • 오늘의 추위를 잊고 춤추며 잠드는 밤. 우리 안의 생기와 힘이 있음을 알려주는 고야마씨의 노트 한국어로책으로 읽어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