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친구는 친구!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인연

동네가수 이내의 로컬여행 13편: 우리는 서로를 멈추어 서게 하지

이내 | 기사입력 2024/03/09 [19:05]

친구의 친구는 친구!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인연

동네가수 이내의 로컬여행 13편: 우리는 서로를 멈추어 서게 하지

이내 | 입력 : 2024/03/09 [19:05]

싱어송라이터인 이내가 최근 가지게 된 꿈은 “마을과 사람들을 연결하는 것”이다. 이 꿈을 꾸게 만든 씨앗 같은, 짧지만 강렬한 여행이 있었다. 코로나 팬데믹 후, 일본 여행이 재개된다는 소식과 함께 떠난 그녀의 우연한 여행은 거기서 그치질 않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이내의 여행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한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이미 연결되어 있었던 우리의 이웃 마을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과거의 시간과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함께 느끼게 된다. 인연의 꼬리를 물고 계속되는 이내의 로컬 여행기, 종착지가 정해지지 않은 마을 이야기들을 연재한다. –편집자주

 

▲ 소라의 고향집 근처 숲. 어릴 적 뛰놀던 개울. (촬영: 이내)

 

소라(이번 여행에 초대해준, 부산에서 만난 일본인 친구)가 태어나 자란 집은 삼나무 숲이 우거진 산의 입구쯤에 있다.

 

산에서 이어진 하나밖에 없는 길을 따라 조금 내려오면 작은 신사가, 그 옆으로는 몇 백 년쯤 그 자리에 있었을 것 같은 커다란 나무가 든든하게 서 있고 작은 개울물이 흐른다. 물이 살짝 고였다 흘러가는 곳을 가리키며, 어릴 때 동네 친구들과 매일 같이 물장구치며 놀던 곳이라고 말했다.

 

조금 더 아래로 내려오면, 소라와 생일이 한 달쯤 차이가 나는 미오의 집이 나온다. 그러니까 두 사람은 태어난 이후로 지금까지 쭉 친구로 지내고 있다. 자기 나이만큼의 시간을 사귄 친구라니, 상상이 잘 안 되는 관계다. 쌍둥이 자매 같은 감각일까.

 

아랫집 윗집 한달 차로 태어나 평생 친구로 지내는 소라와 미오

 

후쿠오카에서 디제이와 셰프로 일하고 있는 미오를 만나러 갔다. 마침 쉬는 날이라 잠깐 같이 보자고 약속해 둔 모양이었다. 미오는 8월에 서울과 부산에서 공연이 잡혀 있어 한국을 방문할 예정인데, 미리 우리를 소개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약속 장소는 얼마 전 갓 오픈했다는 ‘키오스코 Kiosko’. 미오가 셰프로 일하는 스페인 식당 ‘이비자르테 Ibizarte’의 두 번째 브랜드로, 스페인 스타일의 타파스, 치즈, 와인 등을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작고 귀여운 가게다.

 

▲ 소라가 데려간 가게 ‘키오스코 Kiosko’의 모습. 미오가 셰프로 일하는 스페인식 가게로, 서서 먹는 곳이다. 이국적인 음식들이 먹음직스럽게 진열되어 있었다. (이내 제공)

 

일본에는 ‘타치구이’라는 서서 먹는 가게의 문화가 있다. 작은 공간을 활용하고 회전율을 높여서 음식의 가격이 저렴해지는 구조다. 서서 먹는 문화가 거의 없는 한국 사람에게는 조금 낯설지만, 바에 기대어 서서 맛있는 음식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너무나 ‘여행적으로’ 느껴져 기분이 좋다.

 

아침에 미오가 만들었다는 이국적인 음식들이 진열장에서 먹음직스럽게 존재감을 드러낸다. 숏커트에 귀여운 얼굴을 한 키오스코의 점장 요코가 친절하게 음식을 설명해주었다.

 

누가 봐도 아티스트 포스가 강렬한 미오와 가게에 모인 사람들의 대화를 듣고 있으니, 꼭 일본 드라마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소라도 부산에 여행 와서 새벽까지 놀았던 우리 동네 맥주집에서 이런 느낌이 들었을까.

 

아직 일본에 도착한 지 6시간도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쏟아지는 일본어에 점점 정신이 아득해져서, 굉장히 맛있는데도 뭐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잘 모를 지경이었다. 대신 가게 이름과 찾아가는 길만큼은 확실하게 적어 두었으니, 꼭 다시 찾아갈 거라고 결심했다. 언젠가 한국에서 친구들을 데려가고 싶은 동네와 가게였다.

 

텐진으로 돌아와, 마침 취재를 마치고 돌아온 히라바라 씨를 만났다. 그녀는 작년에 부산 지역 신문사에서 교환 기자로 근무한 경험이 있다. 그때 부산에서 한두 번 인사를 나눈 적은 있지만,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누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본 여행 첫날의 이 짧은 만남이 아쉬워서인지, 내가 떠나는 날 히라바라 씨는 일부러 기차역에 나와서 배 타러 가는 길을 배웅해 주었다. 알고 보니 나이도 같아서, 이제는 히라바라 씨라는 성이 아닌 ‘나오코’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로 했다.

 

“걷기와 노래가 기도였던 시절” 골목을 걸으며 노래하던 여행자

친구의 친구들을 만나며… 계속해서 작은 이야기를 찾고 걷고 노래해야지

 

나오코는 한국 역사를 전공했고, 한국에서 기자로 근무할 정도로 우리 말이 유창하다. 오래 전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미와코 씨를 취재하러 아리타에 갔다가, 그녀의 딸인 소라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 별다른 교류가 있지는 않았는데, 몇 년 후 BTS를 시작으로 갑자기 한국 문화에 관심이 생긴 소라가 나오코의 한국어 실력에 감탄하게 되면서 친구가 되었다. 소라의 적극적인 성격 덕분에, 함께하는 여행의 경험도, 만나게 되는 사람도 스펙타클 해진다.

 

▲ 후쿠오카에 다시 돌아온 여행의 마지막 날, 나오코 씨가 나를 배웅하며 찍어준 사진. 작별의 순간이다. (이내 제공)

 

한국어를 읽을 줄 아는 나오코에게 최근에 내가 만든 독립출판 산문집 『길과 말』을 선물했다. 나오코는 책을 받아 들고 찬찬히 읽으며 내 글이 “타치토마루 たち止まる”하게 한다고 말했다. 멈추어 서게 한다는 뜻이다.

 

나로서는 처음 듣는 일본어 표현이었고, 무엇보다 잊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이때부터 새로운 일본어 표현을 만날 때마다 핸드폰 메모장에 적어 두기 시작했다. 책의 뒤 표지에 적어둔 어느 문장을 나오코가 소리 내어 읽으며 소라에게 일본어로 설명해 준다. 이 부분이다.

 

“백지인 나의 지도 위에는 언제나 골목이 흐른다. 걸어서 만들어 가는 지도다. 혼자 걸어도 좋고, 함께 걸어도 좋다. 걷다 보면 발걸음마다 이야기가 쌓인다. 그러므로 골목에는 반드시 이야기도 함께 흐른다. 골목이라든가, 걷기라든가, 걷다가 만난 이야기는 사소하기 짝이 없다. 세상을 바꿀 만한 빠르고 강하고 거대한 이야기는 고속도로와 터널과 공항과 교각처럼 이미 너무 많이 있으니까, 나 하나쯤 계속해서 골목을 노래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걷기와 노래가 기도였던 어느 시절을 상상하며 골목을 걸으며 노래한다.” -『길과 말』 중에서, 이내 作

 

여행의 첫날, 시작을 응원해 주던 나오코는 일본에 있는 내내 나의 여정을 궁금해했다. 아리타에서의 내 공연이 궁금하다며 소라에게 사진과 영상을 부탁했고, 내가 소라와 헤어진 후에는 직접 메시지를 보내 안부를 물어주었다. 후쿠오카에 다시 돌아온 여행의 마지막 날에는 바쁜 시간을 쪼개 만나러 와 주고, 작별의 순간을 사진으로 남겨주었다. 그 사진과 함께 보내 준 나오코의 마지막 메시지가 놀랍고 과분해서 눈물이 났다.

 

“이내는 사람들이 잊고 지내는 중요한 것을 깨닫게 해주는 희귀한 사람이야.”라니.

 

계속해서 작은 이야기를 찾고, 걷고, 노래하겠다고 다짐할 수밖에 없다. 서로가 서로를 멈추어 서게 하면서.

 

[필자 소개] 이내. 동네 가수. 어디서나 막 도착한 사람의 얼굴로 두리번거리며 걷는다. 걸으며 발견한 것들을 일기나 편지에 담아 노래를 짓고 부른다. 발매한 앨범으로 『지금, 여기의 바람』(2014), 『두근두근 길 위의 노래』(2015), 『되고 싶은 노래』(2017), 디지털 싱글 「감나무의 노래」(2020), 「걷는 섬」(2022) 등이 있고, 산문집 『모든 시도는 따뜻할 수밖에』(2018), 『우리는 밤마다 이야기가 되겠지』(2021, 공저) 등을 썼다. 가수나 작가보다는 생활가나 애호가를 꿈꾼다. 인스타 @inesbr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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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리 2024/03/12 [00:34] 수정 | 삭제
  • 연말에 친구네 놀러가서 친구의 친구를 소개받았을 때 기분이 편안하고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 ㅇㅇ 2024/03/10 [21:59] 수정 | 삭제
  • 뭔가 자꾸 먹고 싶어 지네요
  • 스폰지 2024/03/10 [17:42] 수정 | 삭제
  • 삼나무숲이 너무 멋지다. 빨강머리앤에서 본 그 숲 생각이 나네요. 소라와 미오가 어렸을 적에 앤과 다이아나 같은 관계였을 것 같아요. 두 사람의 추억이 함께 한 개울이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을 것만 같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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