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소개] 전서아. 프로젝트 하자의 작연출. 커튼콜이 좋아서 연극을 시작했습니다. 연극 〈240 245〉, 〈오르막길의 평화맨션〉, 〈무루가 저기 있다〉 등을 작연출 했습니다. 요즘은 연극 〈커튼〉이 4월 공연을 앞두고 있어, 연습 중입니다. @project.haja @jeonseoah
아무도 내 이야기를 하지 않아
코로나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극장이 차례차례 문을 닫던 2021년 겨울은 이은용 작가를 떠나보낸 계절로 기억한다. 개인적 친분은 없었지만, 그의 부고를 듣고 속수무책으로 울었다.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나도 그의 농담에, 농담같은 외침에 웃고 울던 ‘우리’니까.
2021년 7월, 미아리고개 예술극장에서 재연된 연극 〈우리는 농담이 (아니)야〉를 보고 집으로 가던 길. 어떤 기억이 자꾸만 떠올랐다.
문성: 연극만 끝난 거지, 네 인생이 끝났냐? 무대가 아니라도 상관없어. 분명 이것저것 더 할 수 있을 거야. 너 하고 싶은 거 아무거나 다. 아성: 어른이 말하니까 묘하게 신뢰가 가네. (이은용 희곡집 『우리는 농담이(아니)야』 120p, 〈그리고 여동생이 문을 두드렸다〉 중)
고1 겨울방학. 평소 잘 따르던 국어선생님에게 처음 쓴 소설을 보여드렸다. 제목은 ‘K에게’. (‘윤희에게’를 12년 앞선 제목이다.) 길을 떠돌던 고양이가 자신을 사람으로 착각하고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였다. 선생님은 어떻게 이런 소설을 쓰게 됐는지 물었다. 대견해하는 것 같았다. 커밍아웃을 하고 싶어서 썼다고 답했다. 아무도 내 커밍아웃을 들어주지 않아서, 이야기가 필요했다고.
이제 와 생각해보면 일터에서 당황스러웠을 선생님을, 황급히 종이뭉치를 돌려주던 손길을 이해한다. 하지만 그 때의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괜히 말했다. 교무실을 나서는 내 뒷통수에 선생님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테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다. 내가 퀴어인 것이 두려운 게 아니었다. 아무도 내 이야기를 말하지 않는, 들어주지 않는 그런 세상이 두려웠다. 어른이 곁에 좀 있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024년 겨울, 나는 요즘 퀴어 청소년이 등장하는 희곡을 쓰는 중이다. 오로지 편지로만 구성되어 있다. 장면이 잘 떠오르지 않으면 이은용 작가의 희곡집 『우리는 농담이 (아니)야』를 꺼낸다. 첫 페이지를 소리 내어 읽는다. “나는 여기 있다. 하지만 아무도 내 이야기를 하지 않아, 내가 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어른이 되고 싶어
작년부터 소액이지만 정기적인 후원을 시작했다.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 퀴어 청소년들의 곁에 서있는 어른이 되고 싶어졌다. 오랜 시간 세운 결심이었고, 분명 그 시발점은 이은용 작가와 연극 〈우리는 농담이 (아니)야〉였다.
극 중 “어른이 말하니까 묘하게 신뢰가 가네” 다음 대사를 공연을 보고나서는 기억하지 못했는데, 희곡집을 읽으며 다시 알게 되었다.
아성: 어른이 말하니까 묘하게 신뢰가 가네 문성: 비꼬는 게 아니야. 그래, 다 할 수 있다는 말은 정정할게. 지금보다는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어. 무대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어른이 곁에 있어주길 바라던 마음은 내가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청소년기를 뒤돌아보기만 하던 나는 퀴어 청소년들이 새로운 세상에서 살게 만들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이야기에는 그런 힘이 있다.
청소년을 만날 일은 적지만, 객석의 얼굴들 중 앳되어 보이는 이가 있으면 대사를 다시 한번 곱씹으며 조금 긴장하게 된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정체성에 관한 내용이 나오면 특별히 한번 더 나의 정체성을 언급한다. 그런 순간은 2021년 이후로 꾸준히 늘어났다. 그 때마다 나는 미세하게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고 느낀다.
삶이 연속된다는 것을 아는 한, 나는 계속해서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 같다. 변신과 성장은 완전히 다른 일이겠지만, 변신하는 사람과 성장하는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상상해보게 된다. 그런 존재들이 서로에게 용기를 줄 수도 있지 않겠나. 분명 변화한다는 용기 말이다.
그리고 새로운 이야기를 쓰자
“나는 여기 있다. 하지만 아무도 내 이야기를 하지 않아, 내가 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런 이야기가 당연한 세상을 상상해본다. 그런 이야기가 아주 많은 세상도 상상해본다. 우리는 분명 어딘가에서 만났을 것이다. 적어도 마주쳤을 것이다. 아니다, 실은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다.
남아있는 나는 새로운 문을 여는 연극을, 그런 연극이 매일 공연되는 극장을, 그리고 그곳에 앉아있는 우리 모두의 얼굴을 상상해본다.
퀴어 청소년들이 퀴어 어른의 삶을 보는 순간을, 그런 순간을 통해 자신의 삶이 이어질 것임을, 변신하거나 성장할 수도 있음을 알게 되는 날을 상상해본다. 대단한 가능성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당연한 일임을 목격하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 대신 두려움 없이 살아가는 얼굴을 마주 보여주고 싶다.
그 이야기는 무대에 오르고 관객들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더 많은 문을 두드릴 것이고, 더 많은 이야기를 쓸 것이다. 아주 많은 농담을 할 것이다. 농담이 아닌 존재로서.
그리고 언젠가 그를 만나게 되면, 첫 소설을 들고 교무실을 나서던 어떤 청소년 하나가 그에게 위로받았다고 전해줄 것이다. 그가 기뻐할 것이라 믿는다.
유령: 어떤 사람들은 평생에 걸쳐 애도한다고도 하죠. 사람: 애도하기 위해 사는 삶도 언젠가는 건너로 함께 떠나지 않을까요? 혹은, 애도와 함께 살아가는 데 익숙해진다든가. 유령: 그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어찌 되었든 위로는 고마워요. 나는 친구를 조금 더 기다려볼게요. 혹시 모르니까. (『우리는 농담이(아니)야』 194p, 〈가을 손님〉 중)
이 기사 좋아요 10
<저작권자 ⓒ 일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청년 페미니스트, 내 머리맡의 책 관련기사목록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