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들이 마침내 말한다면, 그 이야기 들어볼래요?

다큐멘터리 영화 〈돌들이 말할 때까지〉

박주연 | 기사입력 2024/04/11 [09:39]

돌들이 마침내 말한다면, 그 이야기 들어볼래요?

다큐멘터리 영화 〈돌들이 말할 때까지〉

박주연 | 입력 : 2024/04/11 [09:39]

제주4.3사건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정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p536,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2003

 

벚꽃이 활짝 핀 모습을 드러내는 4월이 시작되면 ‘제주 4.3사건’을 기억하고자 하는 여러 목소리가 들려온다. 제주 4.3사건은, 당시 제주도민 10분의 1 이상이 목숨을 잃은 비극적 역사다. 인명 피해는 2만5천 명에서 3만 명으로 추정되며, 공식 집계된 희생자 14,738명 중 30세 이하가 8,070명으로 절반을 넘는다. 희생자는 사망하거나 행방불명이 된 경우, 크게 다쳐 장애를 갖게 된 경우뿐만 아니다. 또 다른 희생자들이 있으니, 바로 수형인이다. 제주4·3 당시 불법 군사재판을 받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수형인들은, 수형인 명부에 기록된 수만 2,530명이다.

 

▲ 제주 4.3사건을 겪은 다섯 여성의 증언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돌들이 말할 때까지〉(김경만 감독, 2024) 포스터. 영화는 4월 17일 개봉 예정이다. (제공: 무브먼트)

 

이런 수형인으로서의 경험을 포함, 제주 4.3사건을 겪은 다섯 여성의 증언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돌들이 말할 때까지〉(김경만 감독)가 4월 17일 개봉한다. 이제 대부분 90대인 영화 속 여성들이 말하는 이야기는 아주 오랜 시간 혼자 끌어안고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오랜 침묵이 마침내 깨지는 순간을 목도할 수 있는 소중한 간접 체험이다.

 

죄명도 모른 채 형무소로

 

영화는 당시 18세 제주읍 오라리 출신의 양농옥 씨, 20세 제주읍 화북리 출신의 박순석 씨, 22세 표선면 가시리 출신의 박춘옥 씨, 20세 표선면 가시리 출신의 김묘생 씨, 23세 남제주군 의귀리 출신의 송순희 씨의 증언을 담았다. 이 중 양농옥 씨를 제외한 네 명은 제대로 된 재판도 없이 전주형무소로 보내져 감옥 생활을 했다.

 

물론 감옥 생활도 힘든 것이었지만, 사실 이들이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워한 건 육지에 있는 형무소를 가기 전까지다. “감옥에 와서야 이제야 살았구나 싶었지.”라고 말할 정도로, 제주의 당시 상황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 다큐멘터리 영화 〈돌들이 말할 때까지〉 중 바위들이 자리한 곳에 눈비바람이 몰아친다 (제공: 무브먼트)


아버지가 군인에게 끌려가는 모습을 목격한 후 아버지를 찾아 나섰지만 결국 총살 당했다는 소식을 접하거나, 군인/경찰이 온다는 소식에 산에 올라가 숨거나, 비가 오는 날 핏물이 내려오는 모습을 보며 두려움에 떨거나, 집에 불을 지르는 군인을 보고, 총을 들이미는 군인에게 “나를 왜 쏘려고 하냐”며 도망치거나, 수많은 시신 속에서 사람을 찾기 위해 뒤적거리는 일까지…

 

군인/경찰에게 잡혀가면 고문을 당했다. 어린 아이를 업고 있어도, 마구 맞을 수밖에 없었다. 작은 유치장에 백명 넘은 사람이 모여 있는 곳에서 한 달 동안 눕지도 못하고 앉아있어야 했다. 아기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주먹밥을 쪼개 나눠먹었다. 그야말로 “죽을 지경”이었다.

 

그런 점에서 육지 형무소로 간 건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그 과정은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군사재판’이라 불린 재판은 주먹구구식이었다. 큰 강당 같은 공간에 사람들을 잔뜩 모아놓은 후 이름을 부르고 “(징역) O년” 부르는 게 끝이었다. 죄명이 무엇인지도 알려주지 않았고, 소명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어느 형무소로 가는지도 몰라서 도착한 후에야 자신이 어딨는지 알 정도였다.

 

묻는 이가 있어야 침묵을 깰 수 있다

 

이런 끔찍하고 말도 안 되는 일을 겪은 이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이야기를 오랫동안 꺼내지 못했다. 〈돌들이 말할 때까지〉 속 인물들 대부분은 자신의 4.3사건 경험, 특히 감옥살이에 대해선 자녀들에게도 밝히지 않았다. 자신이 대체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의문을 가졌고 억울함이 컸음에도, 감옥살이를 했다는 것에 대한 수치심이 있었을테다. 또한 두려움도 큰 이유였다.

 

▲ 다큐멘터리 영화 〈돌들이 말할 때까지〉 중 김묘생 씨가 딸 옆에서 조사원과 대화하고 있다. (제공: 무브먼트)


90대인 김묘생 씨는 (제주4.3사건 수형인 명부 관련 조사를 담당하는 4.3도민연대) 조사원이 묻는 질문에, 자꾸 “모른다”고만 답한다. 70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으니 ‘세세한 기억이 없을 순 있지’ 싶다가도 ‘왜 저렇게 다 모른다고만 할까?’ 궁금해졌다. 이후 김묘생 씨의 딸이 전한 이야기에서 그 이유가 드러난다. “무서워서” 였다. “지금도 말 잘못하면, 또 나 간첩으로 몰리는 거 아니냐고.”

 

그런 두려움이 있음에도 결국 말을 꺼내는 건, 그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된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괜찮다고 말해주는 딸이 있었고,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끈기있게 기다리고 질문하는 이들이 있었으니까. ‘왜 지금까지 말하지 않았냐?’는 질책이 아니라, 침묵의 배경을 알아가기 위해 여전히 “무섭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는 이들이 등장했으니까.

 

이 영화는 그 대화들을 묵묵히 담아낸다. 마치 ‘돌들이 말할 때까지’ 기다렸다는 듯이.

 

끝나지 않은 이야기

 

피해생존자들이 말하기 시작한 덕분에, 불법적이고 반인권적이었던 군사재판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행동도 시작할 수 있었다. 2018년 수형인들에 대한 재심 개시 결정이 확정됐고, 재심 재판도 진행됐다. 이후 2019년 1월 17일, 제주지방법원은 소송을 제기한 수형인 18명 모두에게 ‘공소 기각 판결’을 내렸다. ‘나는 (합법적인) 재판을 받지 않았다’는 수형인들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고로 그것은 재판이 아니었음으로, 그 때 선고된 죄도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 정말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수형인들은 억울함을 풀 수 있었다.

 

▲ 다큐멘터리 영화 〈돌들이 말할 때까지〉 중 2019년 제주지방법원에서 소송을 제기한 수형인 18명 모두에게 공소 기각 판결이 나던 날 (제공: 무브먼트)

 

하지만 그것이 이야기의 끝일 수 없다. 김경만 감독은 〈관객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그 시대, 봉기를 일으킨 사람들을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제주를 무차별적으로 진압하라는 학살 명령을 내린 이승만을 우상화하는 일이 오늘까지도 되풀이 되고 있다”는 것에 경종을 울린다. 그리고 “홀로코스트에 비견될 그런 끔찍한 일을 뻔뻔하게도 정당화하는 국가라면, 그런 사회라면, 이런 곳에서 살아가야 하는 나는 과연 괜찮은 것일까요?”라는 질문을 던진다.

 

영화 속에서 송순희 씨의 딸들은 몰랐던 엄마의 삶을 알게 된 후 “스물세 살, 인생을 시작하지도 않을 땐데…”라며 엄마가 겪었을 일들을 감히 이해해 보고자 한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도 그것이다. ‘돌들’의 이야기에 다가가, 그 이야기를 듣는 것. 이제 생존자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이 이야기가 계속 전해질 수 있도록 하는 것. 김경만 감독과 영화는 그 계단의 돌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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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리안 2024/04/18 [11:00] 수정 | 삭제
  • 글만 봐도 뭉클하네요. 이런 다큐가 나와서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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