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엄청난 집에 가 보겠네요!” 과연 엄청났다

동네가수 이내의 로컬여행 15편: 마음의 자리

이내 | 기사입력 2024/04/13 [20:33]

“그 엄청난 집에 가 보겠네요!” 과연 엄청났다

동네가수 이내의 로컬여행 15편: 마음의 자리

이내 | 입력 : 2024/04/13 [20:33]

싱어송라이터인 이내가 최근 가지게 된 꿈은 “마을과 사람들을 연결하는 것”이다. 이 꿈을 꾸게 만든 씨앗 같은, 짧지만 강렬한 여행이 있었다. 코로나 팬데믹 후, 일본 여행이 재개된다는 소식과 함께 떠난 그녀의 우연한 여행은 거기서 그치질 않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이내의 여행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한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이미 연결되어 있었던 우리의 이웃 마을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과거의 시간과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함께 느끼게 된다. 인연의 꼬리를 물고 계속되는 이내의 로컬 여행기, 종착지가 정해지지 않은 마을 이야기들을 연재한다. –편집자주

 

▲ 부산에서 만난 일본인 친구 소라가 유년시절을 보낸 고향 집은 그녀의 아버지가 직접 설계하고 지었다. 모든 창문과 문은 아름다운 정원의 풍경을 담은 액자 역할을 한다. (사진-이내)

 

신비롭고 아름다운, 친구의 고향집

 

소라(이번 여행에 초대해준 부산에서 만난 일본인 친구)가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낸 집은 그녀의 아버지, 무라카미 쿠니오 씨가 직접 설계하고 지었다. 길쭉한 형태의 건물 두 채가 나란히 단정하게 서 있고, 모든 창문과 문은 아름다운 정원의 풍경을 담은 액자 역할을 한다. 마당에 어떤 나무를 심을 것인가도 하나하나 계획해서 지었다는데, 돌아가신 소라의 할머니의 바람이 담긴 것이란다.

 

설명을 덧붙이면, 소라의 부모님은 이혼을 했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아리타 마을에서 살고 있다. 그러니까 소라가 태어난 집에는 아버지가 살고 있고, 이혼 후 소라의 어머니는 아리타 마을의 다른 집으로 옮긴 것이다.

 

쿠니오 씨는 오래된 물건을 모으는 수집가다. 건물 하나는 쿠니오 씨와 재혼한 소라의 새어머니, 테루코 씨가 함께 사는 집이지만, 다른 하나는 쿠니오 씨가 모은 온갖 물건들의 집이다. 악기, 전축, 스피커, 도자기, 카메라, 망원경, 알 수 없는 기계들이 가득 모여있는 방도 장관이지만, 영화 〈토니 타키타니〉(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원작, 이치카와 준 감독이 2005년에 연출한 영화로, 쇼핑중독인 여성주인공이 등장한다)를 떠올리게 하는 옷으로 가득 찬 방을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모두 쿠니오 씨의 옷이라고 했다. 

 

엄청난 양의 물건이 질서 있게 전시된 모습은 그 자체로 마치 예술품처럼 사람을 압도한다. 난, 숨 쉬는 게 조금 불편해졌다.

 

▲ 오래된 물건을 모으는 수집가인 무라카미 쿠니오 씨의 옷 방! (사진-이내)


오래된 정원과 조각들, 그러나 어수선해지는 내 마음

 

마당에는 오래된 빨간 우체통이 제법 어울리게 장식되어 있는데, 쓸모는 없다. 깔끔하게 정돈된 일본식 정원이면서 문득 특이한 조각품이 나무 아래에서 튀어나오기도 했다.

 

집과 집 사이에 놓여있는 벤치는 가운데를 ㄱ자로 파내고 조약돌을 채워 넣어 두었다. 유난히 눈에 띄어서, 원래 그런 의자였는지 나중에 쿠니오 씨에게 물어보았다. 평범한 의자에 초록색을 입힌 것도, 그사이에 돌멩이를 넣을 자리를 만든 것도 다 쿠니오 씨의 작업이라고 했다. 재미있을 것 같아서라며.

 

▲ 두 개의 집 사이에 놓여있는 벤치. 초록색으로 칠하고, 자르고, 조약돌로 장식해 눈에 확 띈다. (사진-이내)


처음에 소라가 나를 초대했을 때 그녀의 바람은 내가 특이하고 아름다운 자기 아버지의 집 마당 어딘가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후쿠오카에서 만난 나오코 씨도 ‘그 엄청난 집에도 가 보겠네요!’라며 기대감을 더해주었더랬다. 예상에서 벗어난 여행을 즐기는 내 성격 탓이었을까, 물건에는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일까, 이번 여행에서 쿠니오 씨의 집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는 못했다. 어딘가 자꾸 어긋나는 느낌이 들었다.

 

일본어에 ‘이고코치(居心地)’라는 단어가 있다. 어떤 자리에서 느끼는 기분을 뜻한다. ‘이고코치가 좋다’라는 표현을 처음 배웠을 때, 내가 거기 있어도 괜찮다는 안심을 주는 장소를 칭하는 특정한 표현이 있다는 게 신기해서 단숨에 외웠다.

 

쿠니오 씨의 집은 신비롭고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나의 이고코치를 편안하게 만들어 주지는 않았다. 이유가 궁금했다. 힘과 질서를 대변하는 ‘아버지의 세계’와 내가 아직 화해하지 못한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버지를 미워하는 데 10대와 20대를 몽땅 썼다. 한 인간으로 겨우 독립한 30대에는 아버지의 존재를 그냥 한쪽에 무심하게 밀어 두었다. 점점 약해지는 아버지에 대한 책임이 다가오는 요즘, 나는 가끔 무서운 마음에 침울해진다.

 

소라에게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냐고 물어보았다. “이 마을과 이 집에서 태어나고 자라게 해주었다는 것만으로 존경하고 있다.”라고 했다. 자신의 근원을 사랑하는 사람의 힘이 느껴졌다. 고향이 변함없는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다는 것부터 부러워서 화가 날 지경이었다.

 

부모님의 이혼 후, 소라는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두 아이의 생계와 교육을 혼자 떠안은 미와코 씨는 밤낮없이 일해 돈을 벌었다. 소라는 그런 어머니를 보며, 대학에 가는 것은 꿈도 꾸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찍 시작한 사회생활이 소라를 더 빨리 어른으로 만들었을까. 자신의 두 다리로 든든하게 서 있는 소라가 멋있어 보였다.

 

언젠가는 친구의 고향집 마당에서 노래 부를 수 있기를

 

나중에 전해 들은 쿠니오 씨의 교육철학에 머리카락이 쭈뼛 설 정도로 놀랐다. ‘남의 밑에서 돈 받고 일할 생각이면 이 집에 돌아오지 말라’는 주의라나? 내 안에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로 우물쭈물하다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 길쭉한 형태의 건물 두 채가 나란히 단정하게 서 있는 소라의 고향집. 할머니의 유지대로 아버지가 직접 설계해 지었다. 한 채는 ‘수집품의 집’이다. (사진-이내)


사실은 잠시도 쉬지 않고 개그를 던지는 소라의 새어머니, 테루코 씨 덕분에 얼마나 많이 웃었는지 모른다. 만나자마자 요즘 빠져 있다는 스님 가수의 유튜브 동영상을 보여주며 갑자기 노래를 부르고(아마도 내가 가수라는 얘길 들어서겠지), “가슴은 없지만 지혜는 있지.” 같은 멘트를 서슴없이 던지고, 엄청 서툴고 느린 운전 실력으로 차를 몰다가 양보하는 차가 나타나면 “당신의 앞날에 좋은 일만 있기를!” 하며 일일이 소리 내어 기도를 하셨다.

 

언젠가 다시 만나서 두 사람과 긴긴 대화를 나누고 싶다. 그때는 소라의 처음 계획처럼 그녀의 고향 집 대청마루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으면 좋겠다. 반듯하게 정리된 먼지 쌓인 오래된 물건들과 훌쩍 흘러가 버린 누군가의 시간이 관객이 되어 줄 것이다. 그때의 내가 자신의 근원을 조금은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 있기를 바란다.

 

이고코치는 장소(地)보다 마음(心)에 따라 정해진다. 마음의 자리가 자주 흔들리는 만큼, 보이지 않는 뿌리를 기억해야 한다. 나무의 키만큼의 뿌리가 땅속에 있다.

 

[필자 소개] 이내. 동네 가수. 어디서나 막 도착한 사람의 얼굴로 두리번거리며 걷는다. 걸으며 발견한 것들을 일기나 편지에 담아 노래를 짓고 부른다.

발매한 앨범으로 『지금, 여기의 바람』, 『두근두근 길 위의 노래』, 『되고 싶은 노래』, 디지털 싱글 「감나무의 노래」, 「걷는 섬」 등이 있고, 산문집 『모든 시도는 따뜻할 수밖에』, 『우리는 밤마다 이야기가 되겠지』(공저) 등을 썼다. 가수나 작가보다는 생활가나 애호가를 꿈꾼다. 인스타그램 @inesbr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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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니 2024/04/15 [16:55] 수정 | 삭제
  • 아름답지만 편안하지는 않은 그 기분 조금은 알 것 같네요. 노래가 저절로 나오는 곳은 따로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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