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소개] 류민희. 현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국제성소수자협회 아시아지부(ILGA-Asia) 이사를 지냈으며 2018년 낙태죄 헌법소원 청구인 대리인단에 참여했다. 크고 작은 승리들이 더 큰 대의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한다고 믿으며, 보다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모두의 결혼’에서 활동하고 있다.
지난 2024년 3월 14일, 일본에서 열렸던 2개의 혼인평등 소송 판결의 선고 참관을 위해 한국의 ‘모두의 결혼’ 활동가들은 도쿄와 삿포로를 방문했다. 결론은 2개 판결 모두 동성 간 혼인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고, 이것이 일본 사법부의 확고한 입장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국제면 기사를 통해 알게 되는 이 소식을 통해서는 이면에 수많은 노력과 손에 잡히는 변화를 다 담지는 못한다. 여기에 오기까지 지난 10여년 동안 일본 사회가 어떻게 차근차근 한발씩 나아갔는지 보고자 한다.
‘동성혼 불인정’ 위헌 결정, 갑자기 찾아온 변화 아닌 10여년의 노력 현재 대부분 일본 지방자치단체에서 ‘동성 파트너십 제도’ 제공
한국에서는 일본의 정치 지형을 자민당을 포함하여 ‘보수적’이라고 보지만 사실 일본은 오랫동안 차분히 성소수자 권리를 진전시켜 왔다.
1990년대 초반 성소수자 단체 아카(OCCUR)가 도쿄도를 상대로 제기한 대관 차별 손해배상 소송 이후 성소수자 차별금지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사실상 규범화되었다. 1997년 9월 17일 도쿄 고등법원은 “행정 측의 처분은 동성애자라는 사회적 지위에 대하여 태만으로 인한 몰이해에서 지방자치법과 조례가 금지하는 불합리한 차별적 취급을 했으며 위헌 위법이었다”(도쿄도 대관 차별 손해배상 소송)라고 판시했다.
그 이후 지방자치단체에는 성평등(‘남녀공동참여’), 인권 관련 조례, 행동, 지침에 성소수자가 포함된 곳이 늘어났다. 지방자치단체 차원뿐만 아니라 제정 법률, 중앙 행정부 부처의 성소수자 관련 정책들도 다양하다. 일단 중요 입법으로는 2003년 제정되어 2004년부터 시행된 트랜스젠더 성별정정 관련 법(‘성동일성장해특례법’)과, 미완의 법이지만 2023년 6월 제정된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이해증진법’이 있다.
또, 후생노동성은 남녀고용기회균등법에 대한 2017년 시행 새 지침에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언동 및 직장 내 괴롭힘도 ‘성희롱(Sexual Harassment)’에 포함된다고 명시적으로 밝혔다. 법무성 인권 정책에 성소수자가 포함되며, 인식 개선을 위한 다양한 유튜브 캠페인도 진행한다.
문부과학성은 2015년 트랜스젠더 학생에 대하여 의료기관의 진단서에 얽매이지 않고 유연하게, 학생의 교복/옷차림, 화장실 등 시설 이용에 관한 배려, 상담 체제의 충실, 취직 등에 제출하는 졸업 증명서에 졸업 후 변경한 성별과 이름을 적는 등의 트랜스젠더 학생에 대한 배려를 요구하는 통지를 전국 각급 학교에 내렸다.
국가 차원의 성평등 계획에 해당하는 제5차 남녀공동참가기본계획에는 복합차별을 겪는 여성 중의 한 집단으로 성적지향이나 성별정체성을 이유로 어려움을 겪는 여성(성소수자 여성)들을 언급하는 등 다양한 성소수자 정책이 명시되어있다.
국가 차원의 자살종합대책대강에서도 집단 별 정책 이행을 나열하며 ‘(문부과학성은 관련 정책으로) 성적 소수자는 사회와 지역의 몰이해와 편견 등의 사회적 요인에 의해 자살충동을 안고 있는 점도 있기 때문에, 성적 소수자에 대한 교직원의 이해를 촉진하고 학교에서 적절한 교육 상담 실시 등을 촉구한다’ 등의 각 부처별 성소수자 정책을 포함하고 있다.
2015년 도쿄의 2개의 시부야 구, 세타가야 구에서는 동성커플을 결혼에 상당하는 관계로 인정하는 ‘동성 파트너십’ 제도를 도입했다. 다른 국가에서는 가정동반자(domestic partnership) 제도로 불리기도 하는 이 제도는 법률상 결혼 같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지방자치단체의 권한 하에 제공 가능한 권리와 혜택을 인정하며 지역 내 사업자들이 이를 존중하고 배려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주거 임대 계약이나 병원 면회 시 배우자와 같은 제도 도입 이후 텔레콤 기업, 병원, 생명 보험 등이 이 증서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지방자치단체마다 요강(일종의 행정명령) 혹은 조례 형식으로 도입하며 이를 채택한 지방자치단체의 수는 지난 9년 동안 급속하게 늘었다. 2024년 4월 현재 445개 지방자치단체에서 동성파트너십 제도를 제공하며 이 지방자치단체들을 합산하면 일본 총인구의 84%에 해당한다.
그러던 중 동성혼 불인정이 헌법에 위반하는 기본권 침해이자 차별이 아닌지 묻는 전국 단위의 소송(Marriage for All, 모두에게 결혼의 자유를)이 2019년 제기되었다.
일본 동성혼 소송 5년, 5개 지방재판소에서 ‘위헌’ 내지 ‘위헌상태’ 선언
어느덧 5년이 지났다. 코로나로 변론기일이 더디게 진행되던 와중에도 지역에서부터 희망적 선고가 나오기 시작했다. 2021년 3월 17일 삿포로지방재판소는 (국가배상청구를 기각하며) 현재 상태가 14조 위반이며 위헌임을 선언하였다. 이후 삿포로를 포함한 5개 지방재판소에서 위헌 내지는 위헌상태를 선언하며 국회 내 입법 논의도 급물살 타기 시작했다.
‘동성결혼’ 혹은 ‘혼인평등’은 기본권이자 인권의 문제이다. 따라서 많은 국가 법원에서 (동성 간의 혼인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평등권과 혼인의 자유와 평등을 명시한 헌법 위반이 아닌지를 묻게 된다. 관련된 일본국 헌법 조항은 아래와 같다.
“일본국 헌법 제14조 ①모든 국민은 법 아래에 평등하며, 인종, 신념, 성별, 사회적 신분 또는 문벌에 의해 정치적, 경제적 또는 사회적 관계에 있어 차별 받지 아니한다.
제24조 ①혼인은 양성의 합의만에 근거하여 성립하며, 부부가 동등한 권리를 갖는 것을 기본으로 하여 상호의 협력에 의하여 유지되어야 한다. ②배우자의 선택, 재산권, 상속, 주거의 선정, 이혼과 혼인 및 가족에 관한 그 외 사항에 관하여는, 법률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본질적 평등에 입각하여 제정되어야 한다.”
5년의 소송 동안 대부분의 재판소에서 14조 평등권, 혹은 24조 혼인의 자유 조항을 위반한 위헌임을 선언했다. 이 경향은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 공교롭게도 홋카이도 삿포로 항소심과 도쿄 2차 소송의 선고기일이 2024년 3월 14일 ‘화이트데이’로 예고되었다. 제과회사의 마케팅에서 시작된 날이지만 어쨌든 화이트데이는 일본에서 대중문화적 의미가 있는 날이다. 항소심 판결로는 첫 번째, 그리고 1심 마지막 판결이 내려지는 역사적 순간을 함께 하기 위해 동료들과 함께 일본 열도의 북쪽 섬, 홋카이도로 향했다.
삿포로 항소심과 도쿄 2차소송 선고기일이 공교롭게 ‘화이트데이’에 열려 한국 ‘모두의 결혼’ 활동가들, 선고 참관하기 위해 일본으로
삿포로 소송 3쌍의 원고 부부 중 1쌍이 소속된 ‘니지로 홋카이도’에서 ”한국 성소수자LGBTQ+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이라는 자리를 마련했다. 한국의 정치 상황은 어떠한지, 왜 아직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지지 않는지,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제도는 어떠한지 질문하고 답하면서 법제도와 사회문화가 비슷한 국가에 사는 사람들끼리 깊은 대화를 나눴다.
드디어 일본에서 하루에 2개의 혼인평등 소송 결과가 나오는 날이 밝았다. 눈 내리는 삿포로에서 삿포로고등재판소의 오후 3시 선고를 기다리며 오전의 도쿄 선고를 생중계로 시청했다. 오전 10시 30분, 일단 국가배상청구 기각이라는 1보 속보가 떴지만, 선고 이유를 기다렸다. 역시, 위헌이다! 도쿄지방재판소는 동성 간 혼인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혼인이나 가족의 법률은 개인의 존엄에 입각하여 제정해야 한다’고 한, 일본 헌법 24조 2항을 위반하는 상태라는 판단을 내렸다. 위헌 혹은 위헌상태 판결은 이제 5번째다.
특히 이번 도쿄 2차 판결은 트랜스 당사자가 원고이기도 하여, 재판부가 성적지향뿐만 아니라 성별정체성 차별에 대해 실시한 의미 있는 판결이었다. 하지만 혼인에 관한 24조 1항, 평등권에 관한 14조는 위반하지 않았다고 하여 다소 아쉬움도 남겼다. 이제 무대는 삿포로로 옮겨졌다.
3인 재판부가 입장하고 언론 촬영이 끝났다. 재판장이 판결문을 읽기 시작한다. 일본어에 능숙하지 않기 때문에 3명의 판사, 원고단, 원고 변호인단, 피고/정부 측 변호인단의 표정을 번갈아 주목했다.
(국가배상을 요구하는 청구를 기각하는 주문 이후) 재판장이 판결 이유를 밝히는 아주 처음의 문단, “본건 규정은 헌법 24조 1항 및 2항을 위반한다. 본건 규정은 14조 1항을 위반한다.”라고 읽는다. 원고들은 무척 놀랐다. 법정 안에서는 컴퓨터나 핸드폰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기자들은 속보를 전하러 후다닥 복도로 뛰쳐나갔다. 판결 이유가 계속된다. 변호인단 표정은 다양하다. 옅은 미소를 띠는 사람, 입을 막으며 열심히 받아 적는 사람, 한 문장마다 펑펑 우는 사람.
혼인의 자유에 대한 24조 1항이 이성간의 혼인 뿐만 아니라 동성 간의 혼인도 보장하는 규정임을 밝히는 강한 설시가 7번의 판결 중 처음으로 나왔다. 20분간의 판결문 낭독 동안 재판정은 훌쩍이는 소리로 가득했다.
“동성애자들은 혼인이 가지는 중요한 법률상의 효과를 향유할 수 없는 것뿐 아니라 그것으로 인하여 사회로부터 이성애자보다도 열등하다고 취급받고, 그 존엄을 매일 침해당하며, 동성애자에 대해 사회는 이성애자보다 열등하다는 인식을 심어왔다. 그 상태를 시정하기 위해서는 동성애자들에게 이성애자와 같은 혼인제도로의 접근을 인정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없다는 점을 지적해 두고 싶다.”
위헌 상황은 인정하면서도 해결 방안과 입법에 대한 입법부의 재량을 인정하기도 했던 다른 재판부와 달리 이번 삿포로 판결은 일본 혼인평등소송 항소심의 첫 번째 판결로서 헌법 해석에 대한 새로운 기준이 되었다.
소송의 결과들은 이제 최고재판소와 국회로 옮겨졌다! 일본 사법부 판결은 일본을 넘어 한국에 던진 질문이기도 해 어떤 국가가 되고자 하는지, 한국 사회에 질문을 돌릴 때
그 이후 삿포로 소송들의 원고들은 상고하여 이 소송은 최고재판소로 옮겨졌다. 하지만 인권의 요구를 더 크게 하기 위해 다른 지역 일본 전국의 소송은 계속 된다. 매달 새로운 변론기일이 있으며 지역에서 사회적 대화도 활발하다. 이 소송이 지속되는 동안 사회적 지지도 올라갔다.
또한 이날 이후 위헌 상황을 해소해야 하는 일본 국회의 입법자로서의 의무는 더욱 분명해졌다. 두 개의 판결 선고 일주일 후인 3월 22일 일본 국회 안에서는 혼인평등을 지지하는 정당과 국회의원들이 모여 사법부의 요청에 대해 국회도 응답할 것을 다짐했다.
이제 한국에 질문을 돌릴 때다. 일본에 비하면 많이 늦었지만, 먼저 현재 대법원에 계속 중인 건강보험 동성배우자 소송에서부터 차근차근 우리가 수호하는 헌법의 가치를 확인해보자.그리고 우리가, 새로 열리는 22대 국회가, 정부가, 기업이, 공동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 우리가 아끼고 사랑하는 한국 헌법이 이 땅의 부정의 상황에 대해 제대로 말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은, 이제 여기 사는 우리 모두에게 달린 일이니까.
(이 글은 희망법 소식지에 실린 글들을 다시 편집한 것입니다. “일본 도쿄, 삿포로 ‘화이트데이’ 동성결혼 판결: 한국 사회에 던지는 질문”, “[희망법 브리핑] 동성혼 불인정의 위헌성을 인정한 판결을 통해 들여다 본 일본 동성커플 권리의 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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