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농촌에 사람이 없어서 내가 와서 일한 거예요. 열심히 일하면 사장님이 돈을 벌고 나에게 월급을 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사장님이 3년 7개월 동안 나에게 월급을 안 줬어요. 한국 정부가 이주노동자 임금체불 문제를 도와주면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 거예요. 그런데 여러 기관에서 조사를 받았지만, 결국 나는 한 푼도 못 받았어요. 이런 식으로 대우를 받으니까 너무 억울해요.”
쓰레이응(캄보디아 여성, 가명)씨는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2015년 6월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와서, 경기도 이천의 한 채소농장에서 일했다. 처음에는 월급을 매달 꼬박 받았다. 2016년 8월부터 월급이 안 들어왔다. 사업주는 월급을 주겠다고 쓰레이응 씨를 달랬다. 어느 날은 한 사업장에서 계속 일하면 다시 한국에 입국할 수 있는 ‘성실근로자’로 데려오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되면 다시 4년 10개월을 일할 수 있으니까,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쓰레이응 씨는 버텼다. 한국에서 일하는 남동생이 간간히 보내주는 돈으로 식료품을 사며 버텼다.
그렇게 3년 7개월이 흘렀다. 2020년 4월, 비자가 만료되어 캄보디아로 출국을 앞두고 있었다. 사업주는 돈이 없어서 임금을 줄 수 없다고 했다. 쓰레이응 씨는 밀린 월급을 달라고 항의하면서 노동시간을 기록한 수첩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사업주는 숙소 문을 부수고 들어와서 수첩을 빼앗아 불태웠다. 증거가 사라져버렸다.
언론 보도, 고용노동부 직권조사, 검찰 고발, 보증보험, 대지급금 제도 등 많은 구제 절차 있어도 다 소용 없었다
결국 출국을 앞두고, 경기도 안산에 있는 이주인권단체 ‘지구인의 정류장’에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김이찬 활동가도 “이렇게 임금체불이 많이 된 경우는 처음 봐요.”라고 혀를 내둘렀다.
쓰레이응 씨 임금체불 사건은 MBC뉴스데크스 2020년 4월 9일자, “수천만 원 떼먹고도 ‘당당’...빈손으로 울며 귀국” 뉴스로 보도되었다. 다음 날, 고용노동부는 발 빠르게 이 보도에 대해 “보도관련 해당 외국인 근로자(캄보디아, 93년生〈여〉)에 대한 금품체불 건은 사업주를 대상으로 직권수사 후 혐의 사실에 대해서 형사처벌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2020년 5월, 쓰레이응 씨는 ‘지구인의 정류장’과 최정규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경기도 성남 고용노동지청에서 임금체불 조사를 받았다. 계약서에 한 달에 226시간(하루 8시간 근무, 한 달 2일 휴식)을 바탕으로 3천만 원의 임금체불이 확인되었다는 ‘체불임금 등 사업주 확인서’를 받았다. 이것이 전부였다.
무료 변론을 맡은 최정규 변호사는 농장주가 고의로 임금을 주지 않았다고 보고, 수원지방검찰청 여주지청에 취업사기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검찰은 이를 형사조정으로 넘겼고, 2020년 8월에 형사조정 기일이 열렸다. 형사조정위원은 체불임금 3천만 원의 절반인 1천5백만 원을 받고 형사 합의할 것을 권유하였다. 그러나 서류상으로는 사업주가 가진 재산이 아무 것도 없었다. 땅도 모두 경매로 넘어갔다. 사업주는 결국 잠적했다.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주노동자가 사업주에게 임금을 받지 못하면, ‘임금체불 보증보험 제도’를 통해서 당시 기준으로 200만원을 받을 수 있어서 보증보험사에 신청하였다. 그러나 같은 사업주에게 먼저 임금체불을 당한 한 남성노동자가 이미 보험금을 받았다. 한 번 보험금이 지불되었기 때문에 쓰레이응 씨에게는 보험금을 줄 없다고 했다.
국가가 체불된 임금을 먼저 노동자에게 지급하고 사업주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대지급금’이라는 제도가 있어, 총 상한액인 1,000만원까지 지급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대지급금을 받기 위해서는 사업주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적용대상이어야 한다. 당시 5인미만 농업 사업장은 산재보험 의무 가입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에 대지급금도 이용할 수가 없었다.
이미 쓰레이응 씨의 고용허가제 비자는 만료되었고, 법무부 출입국사무소의 3개월짜리 기타(G1)비자를 받아서 조사를 받고 있었다. 이 비자로는 체류만 할 수 있고 취업활동을 할 수 없다. 한국에서 일하는 남동생이 보내주는 생활비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쓰레이응 씨는 한국에 있어야 그나마도 밀린 임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한국을 떠나지 않았다. 출입국사무소는 사건을 맡은 변호사가 있으니 비자를 더이상 연장해주지 않겠다고 했다가, 관련 뉴스 보도가 나가자 비자를 연장해 주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2024년 5월 현재, 쓰레이응 씨는 사업주로부터 한 푼도 받지 못했다.
2022년에만 28,030명, 체불임금 총 1,223억 원
쓰레이응 씨가 단순히 운이 나빠서 임금체불을 겪은 것이 아니다. 2020년, 임금체불을 신고한 이주노동자의 수는 31,998명이나 된다. 쓰레이응 씨는 그 중 한 명이었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임금체불을 신고한 노동자의 수와 임금 체불 금액이 꾸준히 증가해왔다. 2021년부터 2022년까지는 코로나19로 인해서 한국에 입국하는 노동자의 수가 감소하여, 이로 인해서 임금체불을 신고한 노동자의 수와 임금체불액이 주춤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2년 기준으로 28,030명의 노동자가 총 1,223억 원의 임금 체불을 겪었고, 1인당 평균 436만원이다.
“뉴스에 제 이야기가 나왔어요. 페이스북에 그 뉴스가 공유되었는데 캄보디아 사람들이 뭐라고 댓글 단 줄 아세요? 다 저를 욕하는 말이었어요. ‘바보 같다, 너무 멍청하다.’ 그런 댓글을 보고 정말 창피했어요. ‘내가 멍청해서 당했구나.’ 그런 생각에 거의 매일매일 혼자서 몰래 울었어요. 너무 힘들고, 외롭고, 우울하고 희망도 잃어버렸어요. 내가 약간 미친 사람 같이 느껴졌어요.”
4년 10개월 일을 하고 난 후 본국에 돌아가서 집을 짓고, 작은 가게를 차려서 물건을 팔려는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쓰레이응 씨의 뉴스가 몇 차례 보도되었고, 캄보디아어로 달린 악성 댓글에 힘들고 괴로웠다. “멍청해서 당했다”라는, 임금체불을 당한 노동자에 대한 따가운 시선도 견디기 어려웠다.
그러나 쓰레이응 씨는 “내 사건인데 내가 나서지 않는다면 누가 해결을 해주나요?”라고 물으면서, 자신의 문제를 알리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싸우겠다고 말했다.
2023년 9월 5일, ‘돈 벌러 한국 왔다 돈 떼였다’라는 제목으로 〈이주 노동자 임금체불 피해 증언 대회 및 대책 토론회〉가 국회에서 열렸다.(이주노동119, 이은주·고영인·이탄희 국회의원 주최) 쓰레이응 씨는 악성 댓글이 두려워 마스크를 쓰고 얼굴을 내보내지 않은 조건으로 마이크 앞에 섰다.
“제가 한국에서 3년 7개월 넘게 임금체불을 당했지만, 법 쪽에서는 더이상 저에게 해줄 것이 없다고 합니다. 현재 돈 못 받아서, G-1비자를 받고 있습니다. 이 비자를 갖고 있으면 돈을 벌 수 없습니다. 고향에 가고 싶었지만 갈 수도 없고,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가족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면서 저까지 이렇게 불행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국회의원들께서 저에게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불행한 모든 노동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국가가 알선한 고용허가제, 임금체불도 국가가 해결해야
오랫동안 이주노동자들의 임금체불 문제를 도와온 ‘지구인의 정류장’ 김이찬 대표는 이 문제를 고용노동부가 해결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고용노동부가 이주노동자의 취업을 알선했잖아요. 이주노동자와 사업주와 표준근로계약서를 맺도록 중간에서 다리를 놓잖아요. 그러면 이 전적인 과정이 정부 책임이에요. 근로시간의 이견이 있는 경우도 많아요. 노동자는 하루에 11시간 일했다고 주장하는데, 사업주는 8시간만 일을 시켰대요. 노동지청에 가서 조사를 받으면 또 노동자의 기록은 믿지 않아요. 연필로 작성하고 지우개로 지웠다는 게 그 이유래요. 출퇴근기록기를 하나씩 사서 지급해서 사업장에서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일했는지 기록하고, 그에 따라서 임금을 지급하면 되잖아요. 정부가 다 손 놓고 있잖아요.”
임금체불이 되고, 노동지청에 가서 체불 임금 등·사업주 확인서를 발급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불된 임금을 주지 않는 경우, 노동자는 법률구조공단에 가서 사업주의 재산명시 신청 및 재산조회 신청을 한다. 사업주의 재산목록이 나오지 않을 경우, 2~3년 뒤에 다시 신청하라는 연락을 받는다. 곧 있으면 비자만료로 인해서 노동자들이 본국으로 출국해야 한다. 체불임금의 공소시효는 5년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이마저도 사라진다.
고용노동부가 고용허가제라는 제도를 통해서 전적으로 외국 인력 고용을 알선해왔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에 대해서, 고용노동부와 한국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임금체불이 발생했을 때 권리를 빨리 회복할 수 있는 사회적인 구조 제도가 지금 거의 없는 상황이죠. 첫 번째는 보증보험이 너무 작습니다. 충분히 현실화시켜야 됩니다. 둘째, 임금체불을 해결하기 위해서 적은 금액이라도 기금을 마련해서 시범적으로 운영해볼 수 있어요. 예를 들어서 일종의 채권을 사는 거죠. 이주노동자의 임금 체불 채권을 기금이 사서 (체불된 임금을 노동자에게 임금을) 주고 이 친구는 이제 자유롭게 본국으로 떠나면 되죠. 그리고 이 기금을 활용해서 농장주와 이제 싸워 나가면 되지요. 이자까지 받아오거나 아니면 물론 체불된 임금을 못 받기도 하겠지요. 정부는 할까요? 안 할 것 같고, 정부한테는 어려운 일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시민사회가 할 수도 있죠. 한국이 이 정도 규모인데 공익법인은 이제 있어야 될 것 같아요.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공익법인 같은 거요. 우리나라는 이러한 것에 대해서 너무 인색한 것 같아요.”
홍정민 노무사의 제안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해결책이 모색될 수 있다.
첫째, 보증보험이 현재 200만원에서 400만원으로 상향 조정되었고, 이것이 현실에 맞는지 볼 필요가 있다. 둘째, 임금채권을 기금이 사고 이주노동자에게 밀린 임금을 지급한 뒤, 기금이 사업주에게 받아내는 방법이다. 정부에서는 대지급금 제도와 비슷하기 때문에 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셋째, 공익법인을 통해서 한국사회의 소수자인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실현할 수 있도록 창구가 마련되어야 한다.
임금체불, 그리고 20대 캄보디아 여성의 8년의 시간
그렇게 8년의 세월이 흘렀다. 쓰레이응 씨는 22살에 한국에 입국해서 벌써 30세가 되었다. 임금도 받지 못해 돈이 늘 없어서 생일 케이크를 한 번도 사본 적이 없었다. 임금체불은 경제적으로도 궁핍하게 만들었지만, 평생 한 번 있을 20대의 생일을 의미 있게 보내지도 못하게 했다.
“제 사건이 빨리 해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8년 동안 캄보디아에 가본 적이 없어요. 점점 지쳐갑니다. 부디 한국 정부에서 임금체불 문제를 해결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이 기사는 필자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와 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의 지원을 받아 연구한 사례를 기반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필자 소개] 우춘희. 『깻잎 투쟁기: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한 1500일』을 썼다. 미국 매사추세츠 대학에서 사회학 박사과정 중에 있다. 캄보디아와 한국에서 현장 연구를 했다. 지금은 한국으로 이주한 캄보디아 이주농업노동자들에 관해서 논문을 쓰고 있다. 먹거리, 이주, 젠더에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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