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에 없는 것처럼’ 대기하세요, 엄마니까사진집 『투명인간』(Invisible Mom)을 낸 야마모토 미사토 작가표지 사진에 가슴이 철렁한다. 양장을 입은 모형 인형이 앉아 있다, ‘누군가’의 무릎 위에. 페이지를 넘기자 비수 같은 말. “‘엄마로서 부탁드립니다’라는 한마디로 이 세상의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되게 되어 있다.”
사진가 야마모토 미사토(山本美里) 씨는 작년에 사진집 『투명인간』(Invisible Mom)을 출간했다. 네 자녀 중 2008년에 태어난 셋째 미즈키에게는 중증의 심신장애가 있어 ‘의료적 케어’가 필요하다. 미즈키 씨가 특수학교 초등부에 입학하자, 학교에서는 야마모토 씨에게 ‘만일’을 대비해 학교 안에서 대기하라고 했다. 그것도 ‘거기에 없는 것처럼.’
사진집 『투명인간』 표지의 인형은 의료적 케어 연수용 인형인 ‘마쿤’이고, ‘누군가’는 바로 야마모토 씨이다. 모티프는 19세기 빅토리아 왕조시대의 초상 사진 ⌜Hidden Mother」(숨겨진 엄마). 당시에는 아이가 움직이지 않도록 어머니가 배경과 하나가 되어 아이를 앉혔다. “인형 조종자 같은 게 아니라, ‘투명인간’이에요.”
의료적 케어 필요한 장애아는 엄마가 학교에 항시 대기… “정말 그냥 죽고 싶었어요”
두 아이를 키우며 수입잡화를 취급하는 회사에서 일할 때 미즈키를 가졌다. 갑작스런 발작과 증상 악화도 있어 “미즈키를 두고 일할 자신이 없었어요.” 야마모토 씨는 일을 그만뒀다. “저는 항상 전업주부가 제일 편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해보니 지옥이라는 걸 알았죠.”
아이가 특수학교 입학 전에 다녔던 유치원에서 장애아의 어머니들과 만났다. 하지만, 학교 입학설명회에서 미즈키가 받는 것과 같은 의료적 케어가 필요한 아이는 통학버스에 탈 수 없으며, 어머니가 학교에서 항시 대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2021년에 ‘의료적 케어 어린이 지원법’이 시행되었지만, 어떤 의료적 케어를 하는지는 지자체나 학교마다 다르다.
“일상적인 푸념을 나누던 엄마들이 저한테 신경을 쓰기 시작하더니, 점점 거리가 생겼어요. 대기 시간에 할 일이 없어 SNS를 보면, 대기가 필요 없는 엄마들이 맛있게 고기 구워 점심을 먹고 영화를 보고 헬스장을 다니는데 반짝반짝 빛이 나 보이더라고요. 정말 그냥 죽고 싶었어요.”
학교장에게 호소하니 교육위원회에 미루고, 교육위원회와 협의해도 “불가능하다”는 응답. “인간, 다 싫다.”하며 야마모토 씨는 점점 스스로를 고립시켰고, 결국 본인에게 적응장애 증상이 나타났다.
분노를 유머가 담긴 풍자로 승화시킨 사진집 『투명인간』 출간 ‘내 모습을 보고도 못 본 척하는 건 비겁하지’
그 조금 전부터 유기묘 임시보호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다. 고양이의 움직임을 포착하기 위해 좋은 카메라를 샀다. 사진을 SNS에 올리니 반응이 온다. 사진의 재미를 알고는 2017년에 대학에 입학해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다.
“2016년에 츠쿠이야마유리원 사건(2016년 7월 26일, 가나가와현에 있는 중증 지적장애인 거주 시설 ‘츠쿠이 야마유리원’에서 전 직원에 의해 입소자 19명이 흉기로 살해당하고 26명이 넘게 중상을 입은 사건)이 있었는데, 저도 미즈키와 외출하기가 무서웠어요. 심지어 돌아가신 분의 실명이 보도되지 않아서, 왜 그게 금기시되는 건가 싶었죠. 의료적 케어 아동의 가족으로서 스스로 메시지를 전할 수 있도록 표현하는 법을 배우자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처음에는 미즈키를 찍었다. 하지만 대학에서 “당신 스스로를 찍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더 잘 와 닿는다”는 조언을 듣고, 미즈키의 학교에 대기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찍기로 했다. 교장에게 “촬영을 허락해주지 않는 건, 일본의 손실”이라고 말하며 설득해, 교직원들도 등장시켜 촬영했다.
이 방법은 유방암을 앓던 스스로를 피사체로 삼았던 사진작가 조 스펜스(Jo Spence)가 했던 ‘포토 테라피’이다. “교사들이 저를 투명인간으로 만든 구루라고 생각했었는데, 같이 목소리를 내줄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어요. 또 사진을 누군가에게 보여줌으로써 커뮤니케이션이 발생하고. 다른 사람과 연루된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강렬한 분노를 한방이 있는 유머와 풍자로 바꾸는 야마모토 씨의 사진과 글. ‘의료적 케어 어린이’라고 일본어로 입력하면 북유럽의 가구점인 ‘IKEA’로 변환되는 데서 착안해 ‘IKEA’ 앞에서 미즈키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진, 누구나 따르는 러버콘이 되고 싶다며 그걸 뒤집어쓰고 창고에 앉은 사진... “만약 당신에게 내 모습이 보인다면, 보고도 못 본 척하는 건 비겁하지.”
‘어머니’들에겐 존재가 삭제되는 공통의 감각 있어
같은 입장의 사람에게 가 닿았으면 하는 마음에 자비출판을 했더니 반향이 있었다. 이윽고 전시회도 열리게 되었다.
“다른 장애가 있는 아이의 어머니나 장애가 없는 아이의 어머니, 자녀가 없는 여성도 제 전시를 보러 와줬어요. 평소에 ‘어머니’는 여러 기준으로 구분되지만, 존재가 삭제되는 공통의 감각이 있기 때문에 가까이 다가갔는지도 모르겠어요. ‘아버지는 어디 갔지?’라는 질문도 던지고 싶었어요.”
야마모토 씨의 어머니는 끊임없이 일을 하던 싱글맘이었고, ‘어마어마하게 강한 사람’이었다. “어릴 때, 엄마가 학교에서 받은 ‘가족기입란’에 대해 열받아 하시는 걸 보고, 나와 남동생이 새파랗게 놀란 적이 있어요. 그 세대가 최선을 다해줘서 지금이 있죠. 제 아이들에게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페미니스트라고 이야기해줍니다.”
미즈키 씨는 올해 고등부에 입학했다. 고등부를 졸업한 후에 갈 수 있는 곳들을 찾기 시작했다. 한자녀 정책인 중국에서 부모가 자녀의 구혼 활동을 하는 방송 프로그램처럼, “아이의 구직 활동을 하는 나를 찍고 싶어요. 휘황찬란한 반지를 잔뜩 끼고. 그리고, 부모가 장애가 있는 자녀에게 의존한다는 느낌이 들기도 해서 그걸 담은 사진도 찍고 싶고요. 언제까지 미즈키를 둔 덕을 볼 거냐, 라는 소리도 들으니 장애와 상관없는 사진도 찍고 싶고요…” [번역: 고주영]
-〈일다〉와 제휴 관계인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 기사를 번역, 편집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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