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출산제’…여성과 아동의 권리 거꾸로 가나?시행 앞둔 〈보호출산제, 무엇이 문제인가!〉 국회토론회에서 비판 쏟아져작년 6월 수원의 한 가정집에서 두 명의 영아가 살해되어 시신이 유기된 사건과 미등록아동의 현황이 알려진 후, 그에 대한 대책으로 ‘익명’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게 하는 ‘익명출산제’ 논의가 본격화되었다. 이후 10월 「위기임신 및 보호출산 지원과 아동보호에 관한 특별법」(이하 ‘보호출산제’)이 통과되어 올해 7월 시행될 예정이다.
그런데 이 보호출산제에 대해, 사회 각 분야에서 많은 이들이 반대의 목소리를 내며 문제점과 우려 지점을 지적해왔다. ‘여성과 아동, 그 누구도 보호하지 않는 제도’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보호출산제 시행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모든 사람에겐 ‘출생에 대해 알 권리’ 있어, 그런데 ‘익명출산제’? 부모가 양육을 포기하는 경우 ‘더’ 많아질 것
보호출산제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지금보다 더 쉽게, 부모가 자녀 양육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질 거라는 우려다.
김민지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이 법에서 “보호출산 및 출산 후 아동보호를 신청할 수 있는 위기임산부는 ‘경제적‧심리적‧신체적 사유 등으로 인하여 출산 및 양육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여성’으로 정해졌고, 심지어 보호출산을 신청하지 않은 위기산부도 의료기관에서 분만 여부와 상관없이 출산 후 아동보호 신청에 따라 익명성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됨”으로써 추진 당시보다 “위기임산부의 범위가 애초 예상되었던 범위보다 확대”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로 인해 “입양특례법에 따라 입양이 이루어져야 하는 경우도 이 제도로 유입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보호출산제가 “이를 신청한 모(母)의 출산 사실을 감추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되었지만, 결국 이를 통해 법적 친자관계의 단절 효과까지 발생하게 함으로써, 법적 친자관계를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조민호 아동권리연대 대표는 본인 또한 미아 아동에서 위탁시설로 이동, ‘고아(기아 棄兒)호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피해 당사자라 밝히며, “보호출산제는 ‘아동이 자기 부모를 알고, 원 가정에서 자신의 부모로부터 양육 받을 권리’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졸속으로 통과된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보호출산제의 대상은 많은 경우 ‘장애아동’일 것
보호출산을 ‘선택’하게 될 ‘위기임신’의 사례는 다양하겠지만, 경제적 어려움과 빈곤 또한 큰 사유다. 유미숙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은 “사단법인 ‘비투비’를 운영하는 김윤지 대표가 6개월 동안 베이비박스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며 상담일지를 분석한 내용에 따르면, ‘베이비박스를 찾는 이들은 기본적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안고 있다. (분석한) 340건 중 33.8%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고 밝힌 바 있다”고 설명했다.
김민지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부모가 양육을 포기하면서 가지는 바람 중 하나는 ‘아이가 좋은 가정에 입양되어 잘 성장하는 것’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보호대상 아동이 ‘시설’에서 양육된다. 보호 종료되어 홀로 세상에 나오는 ‘자립준비청년’에 대한 지원체계가 마련되어 가고는 있지만, 자립준비청년 2명 중 1명이 자살생각을 한 적이 있다는 연구결과처럼, 이들의 삶은 녹록지 않다.”는 것.
조민호 아동권리연대 대표도 “‘고아(기아)호적’ 신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성년 이후(보호 종료)로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없는, 그야말로 ‘편견과 차별’의 모든 소나기를 맞아가며 버티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현실을 호소했다.
플로어에 있던 백선영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활동가는 “보호출산제로 그 대상이 되는 이의 대부분은 장애아동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장애아동이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지, 이렇게 (보호출산제로 장애아 양육을 포기할 수 있도록 하는 건) 사회적 고립이자 장애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라고 분노를 표했다. 백선영 활동가는 오히려 필요한 것은 “장애아동, 장애아동과 함께 사는 가족이 온전히 자기 생을 다해 살 수 있도록 지원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국가와 사회가 할 일”이라 강조했다.
“생부에 대해선 왜 언급이 없나요?”
김민지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보호출산법에 따라 입력 내지 기재되는 정보에서 ‘생부 정보’ 부분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수집되는 정보는 “신청인 및 생부의 성명, 주민등록번호 등 인적사항과 그 외 건강상태, 당시 상담내용 등”으로 이 정보는 신청인인 생모 또는 그의 보호자에 의해 제공된다. 이중 “생부의 정보는 소재불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로 직접 또는 신청인을 통해 확인이 불가능한 사항에 대하여는 신청을 받은 지역상담기관의 장이 그 기재를 생략할 수 있고, 그 외 신청인 등의 정보제공 거부 및 부실기재를 방지하기 위한 별도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생부에 대한 정보는 신청인과 생부 본인의 정보제공 의지가 없는 한, 정보 자체가 입력 내지 기재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정보가 제공되더라도 생부 본인이 아닌 이상 실제 본, 등록기준지, 주민등록번호 전체, 유전적 질환 및 건강상태 등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기 어렵고, 심지어 지역상담기관의 장은 이를 확인이 불가능한 사항으로 판단하여 기재를 생략할 수도 있다”는 것.
김민지 부연구위원은 “생부에 관한 정보수집과 수집된 정보의 사실여부 확인은 강제되지 않아 수집되는 정보의 범위도 좁을 뿐만 아니라, 수집된 정보의 증명력도 담보되지 않는다. 이는 곧 ‘아동의 혈통을 알 권리’가 충분히 보장될 전제조차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한국 정부는 왜 ‘위기출산’이 되도록 내버려 두는가? 임신중지 입법부터…청소년부모, 한부모가정 소득 지원 등 우선돼야
정부는 ‘위기출산’에 대해 지원해야 한다, 그러니까 보호출산제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애초에 ‘위기출산’이 되지 않도록 예방을 강화하고, 그와 관련된 제도를 꼼꼼히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는 의견이 반복 제기됐다.
유미숙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은 부모가 아이를 포기하는 이유는 “경제적 어려움, 거주 불안정, 한부모/미혼모이어서, 가족(돌봄)의 부재, 임신과 피임에 대한 무지, 장애아동 출산, 혼외출산, 원치 않은 성관계로 인한 임신 등 여러 가지”라 설명하며 “이런 다양한 문제들을 각각의 원인을 해결하지 않고, 보호출산제라는 이름 하나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게 과연 가능하냐?”고 질문했다.
플로어에서 ‘미혼모 당사자’라 밝힌 한 시민도 “위기임신이라고 통칭하지만, 사실 굉장히 다양한 형태가 있다”며 본인의 이야기를 보탰다. “위기임신이라 생각하지 않고 아이를 낳았는데, 한 달도 안 돼서 생부가 도망갔다. 누군가에게 경제적으로 전혀 지원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 아이를 베이비박스 보내고 죽으려고 했는데, (미혼모 지원) 상담을 받고 양육을 결정했다. 사실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 하려면 가장 기본적인 성교육, 피임교육이 잘 이뤄져야 한다. 또한 요즘 저출산이라면서 애를 낳으라고 하지만, 애 키우는 일엔 왜 지원이 없는가? 미혼모 가정에 양육비 미지급이 실질적으론 90%가 넘는다고 하는데, 왜 제재가 없는가? 아이가 안정적으로 양육될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
김민지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보호출산 및 출산 후 아동보호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하기에 앞서, 여성의 임신 유지 및 종결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보장함으로써 다양한 임신 갈등 사항을 해결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모자보건법을 비롯한 임신중지 관련 입법 정비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허민숙 입법조사연구관에 따르면 “노르웨이에서는 한부모에게는 별도의 전환수당(transitional allowance)이 지급”되며, “자녀의 나이가 8세 미만인 기간 동안 최장 3년까지 소득 지원을 받을 수 있는데, 36개월의 기간을 연속적으로 받을 수 있고 분할해서 받을 수도 있다. 소득이 전혀 없는 경우 NOK22,241.25(약 278만원/월)이 지급”된다. 더불어 “임신기간 중에도 소득지원을 받을 수 있으며, 이 기간은 최장 지원기간 3년에 포함되지 않는다.” 한편 “영국에선 가족간호사파트너십(Family Nurse Partnership: FNP) 지원 제도”가 있어, 만 24세 이하 청소년 부모를 지원한다.
토론회에 참석한 아동권리보장원 보호출산제 실무추진단, 보건복지부 아동정책과 담당자는 ‘위기임신’ 관련 상담 기관을 늘리고, 상담원 역량을 강화하고,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는 등의 운영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보호출산제가 아니라, 여성과 아동의 삶 생애를 전반적으로 아우르며 지원하는 제도가 절실하다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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