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재정 악화가 ‘외국인 탓’이라 믿는 당신에게비영리 이주인권단체 활동가의 질문-국민건강보험의 이주민 차별2019년 7월부터 국내 6개월 이상 체류한 외국인들의 국민건강보험 가입이 의무화되었다. 내가 주로 만나는 난민들은 국민건강보험에 가입 가능한 난민과 가입 불가능한 난민으로 나뉜다.
난민과 관련한 체류비자는 크게 ‘난민신청자’, 난민인정은 되지 않았지만 인도적인 사유로 체류허가를 받은 ‘인도적 체류자’, 그리고 ‘난민인정자’로 나뉜다. 이전에는 난민인정자만 국민건강보험의 지역가입자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외국인들의 국민건강보험 가입이 의무화되면서 인도적 체류자 또한 국민건강보험에 의무 가입 대상이 된 것이다. 난민심사 과정에 있는 난민신청자들은 여전히 가입이 불가능하다. 특히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난민신청자들에 대한 심사가 장기화되면서,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하거나, 질병과 사고가 생긴 난민신청자들은 건강보험이 없어 높은 의료비용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건강보험 재정 악화가 외국인들 ‘먹튀’ 또는 혜택 때문? 실상은 외국인 건강보험 재정 매년 흑자, 피부양자 인정 기준 차별적
국민건강보험 가입이 외국인들에게 큰 혜택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외국인 건강보험 의무가입이 도입되었던 과정을 되새겨보면, 이주민들에 대한 혜택이 아니라 국민건강보험 재정악화에 대한 땜질에 가깝다. 당시 정부는 국민건강보험의 재정 악화가 건강보험료는 적게 내면서 ‘의료쇼핑’으로 많은 혜택을 받아가는 외국인 때문인 것처럼 언론플레이를 했다. 그 후 등장한 것이 외국인들의 건강보험 의무가입이다. 실상은 외국인들이 건강보험에 손실을 입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재정 흑자에 보탬이 되고 있다.
외국인 건강보험 의무가입 시행 초기, 현장에서 정말 많은 혼선이 있었다. 많은 활동가들이 한편으로는 보건복지부에 문의도 하고, 항의도 하는 시간을 보냈다. 내가 만나는 이주민들은 대부분 직장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일자리가 없어, 지역건강보험에 의무 가입해야 했다.
그리고 이주민들은 가족으로서 함께 살고 있음에도 가족관계임을 입증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출입국외국인청이나 건강보험관리공단에서 가족들이 각각 다른 유형의 비자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세대주와 세대원의 적용을 받는 가족관계로 인정해줄 수 없다고 하는 경우들도 있었다.
세대 구성에 대한 인정도 차별적이었다. 이주민의 경우,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만 세대원으로 인정해주기 때문에 자녀가 성인이 되거나, 노부모와 함께 사는 가정들은 각각의 지역건강보험을 따로 부담해야 했다.
당시 통화를 했던 보건복지부 직원은 이주민들에 대한 차별적 시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세대주와 세대원을 왜 한국인 기준과 다르게 차별하는지 묻는 질문에, 세대원을 인정해 주는 것은 ‘혜택’이라고 표현했다. 가족구성원을 인정해 주는 것은 국가로부터 ‘혜택’을 받는 것이기에 따질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당신의 가족들이 세대원인 건 권리이고, 이주민의 가족이 세대원인 건 혜택이냐’는 반문에는 답하지 못했다.
당시의 혼란들이 떠오른 것은, 최근 보건복지부가 ‘건강보험 도용으로 인한 악용자가 많다’며 ‘건강보험 본인확인 의무화제도’ 시행을 공고했기 때문이다. 타인의 건강보험을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건강문제가 있지만 치료를 받고 있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아닌가? ‘외국인들의 건강보험 의무가입’과 ‘건강보험 본인확인 의무화제도’는 동일선상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건강보험 역사를 보면, 지금의 외국인 차별과 비슷한 역사 존재해 ‘남성생계부양자 모델’로 여성노동자에게 거둬들인 건보 재정은 늘 흑자
이 얘기를 하기 위해서는 국민건강보험 등장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77년 의료보험법이 시행되었을 때부터 ‘누가 대상자가 될 것인가’는 지속적으로 변해왔으며, 사업 시작부터 ‘비용과 이익’의 관점이 내재되어 있었다.
이미숙(배재대학교 미디어컨텐츠학과 명예교수)의 「국민건강보험에 함의된 가족 규범과 피부양자제도 변천」(2008) 연구논문은 초기 의료보험법이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을 기반으로 한 ‘근로자와 그 피부양자’로 제한되어 있음을 밝힌다. 논문에는 여공으로 일하는 여성이 생계부양자 지위를 인정받지 못해, 실제로 부양하고 있는 부모와 형제들이 피부양자가 되지 못했던 사례들이 제시되어 있다. 여성노동자로부터 거둬들인 건강보험료는 늘 흑자를 기록했다고 한다.
1989년 의료보험과 지역의료보험을 통합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보험(전 국민의료보험)이 실행된 이래로도 ‘부양자와 피부양자의 범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는 재정안정성의 이슈와 함께하였다.
결국 국민건강보험의 역사는 누구를 가족으로 설정할 것인가, 그것이 보험재정에 도움이 되는가라는 관점으로 점철된 역사이다. 보험재정은 국민건강보험의 태생부터 늘 지적되어온 문제였고, 그 문제의 원인을 무엇으로 지목할 것인가가 시대적으로 변화해 왔다.
신광영(중앙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의 「한국의 경제위기와 복지개혁」(2002) 연구논문에서는 재정적자의 원인을 ‘의료 서비스는 시장에 의해서 공급되면서, 건강보험으로는 의료비만을 책임지는 구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의료서비스 제공이 시장화되면서 서비스 비용이 올라가는 자동화된 구조 속에서, 건강보험 재정적자의 원인은 너무도 쉽게 가입자들의 비도덕성으로 표적화되고, 가입자들의 구성을 변형시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때문에 국민건강보험의 재정적자의 원인은 이전에는 ‘외국인들의 먹튀’ 때문으로 지목되기도, 이제는 타인의 건강보험을 악용하는 사람들 때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그 다음에는 또 어떤 대상들이 지목될까.
나는 외국인 건강보험 의무 가입은 아마 보건복지부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수금의 형태를 실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주민의 실제 소득과 상관없이 납부비용을 ‘전년도 건강보험 가입자 평균 이상’이라는 고비용으로 설정하고, 세대원 등의 가구 구성을 제한하여 개별화된 가입자 수를 높이는 것 말이다.
소득에 관계 없이 고액 납부, 빈곤층도 감면 제외 등 이주민에게 차별적 적용…사회적 연대 의미는 어디로 갔나?
외국인의 국민건강보험 의무 가입이 실시된 후 ‘이게 뭔가’ 싶은 상황들을 목도하고 있다. 외국인 ‘먹튀’를 방지하겠다며 출입국외국인청은 체류비자를 연장할 때 건강보험 납입 내역을 조회한다. 납입이 되어 있지 않으면 체류 기간을 줄이고, 다음에도 납부하지 않으면 비자를 연장해주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때문에 체류 연장을 하기 위해 어떤 빈곤한 상황에서도 돈을 빌려 건강보험료부터 납부하는 이주민들을 보고 있다.
국민건강보험은 애초에 비용편익적인 관점을 가지고 진행되었으며, 재정위기 담론은 늘 존재했다. 국민건강보험을 재원으로 한 투자의 손실에 대해선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면서, 적자의 원인은 특정한 집단을 향하곤 한다.
우리는 이제는 국민건강보험이 사회 구성원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다시 질문해 봤으면 한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사회보험이란, 애초에 사회적 구성원들 간의 사회적 연대와 상호 부조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국민건강보험의 역사에서, 변화하는 사회 속에 새롭게 등장하는 다양한 가족들을 어떻게 적용시킬 것인가는 늘 논의의 대상이었다. 우리사회에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고 있는 이주민들을 국민건강보험에서 어떻게 포용할 것인가 역시 같은 선상에 놓여져 있다. 즉, 이주민을 한국사회 안에서 사회적 연대와 상호부조를 함께할 대상으로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시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지금의 국민건강보험제도는 우리 사회가 이주민들을 사회적 연대를 함께 할 동등한 구성원이 아니라, 차별과 배제의 대상으로 설정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표식이다.
[필자 소개] 박정형. 한국이주인권센터 사무국장. 현재는 아랍여성들과 함께하는 활동을 위해 센터에서 만든 ‘오아시스 와하’의 공간지킴이 역할이 크다. 이주민들이 처하는 어려움들을 상담하고 이주민들과 함께 활동하기도 하면서, 우리의 존재가 한국사회에 던지는 질문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쌓여갔다. 그 나름의 답을 찾기 위한 여정으로 문화인류학을 전공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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