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는 모두에게 닥쳐오는 일이고 모두에게 위협이 된다는 이야기가 반복되고 있을 때 “아닌데요?”라는 말을 꺼낸다면 어떨까? 기후위기, 기후재난이 불평등하게 다가간다는 이야기는 어떤 사람에겐 별로 흥미롭지 않거나 와 닿지 않거나 혹은 그저 또 ‘불편한’ 이야기로 여겨질지 모른다. 하지만 명백한 사실이다. 기후위기는 모두에게 똑같이 위협적이지 않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박사과정 중인 박진아 씨는 ‘장애인이 폭염 노출에 취약하다’는 주제로 연구를 수행했다. 여러 장애 유형에서 폭염 영향을 살펴 본 이 연구는 세계적으로도 선도적인 사례로 꼽힌다. 연구를 토대로 두 개의 논문을 발표한 박진아 씨와 장애인 당사자와 활동가가 함께 이야기 나누는 자리가 지난 5월 10일 서울 ‘대항로’(마로니에공원 옆 장애인운동단체들이 모여있는 건물)에서 열렸다.
장애여성공감, (준)전국장애인건강권연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한국장애포럼이 주최한 〈연구로 보는 기후재난, “기후정의X장애인건강권 수다회”〉에선 기후위기와 취약집단, 보호와 돌봄을 둘러싼 다양한 논의가 오갔다.
장애인이 폭염에 더 취약하지만, 폭염 대응 정책에서 논외
박진아 씨는 장애인의 폭염 노출에 따라 응급실을 경유한 입원 위험을 분석했다. 정신장애인에 속하는 자폐스펙트럼 장애인, 지적장애인, 정신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와, 신체장애인으로 분류되는 지체장애인,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뇌병변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또 하나의 연구를 진행했다. 이를 위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급여 기록 데이터를 받았고, 2006년부터 2021년 여름철(6~9월) 장애인의 병원 방문 기록을 분석했다.
“도시와 농촌을 비교했을 땐 농촌의 위험이 전반적으로 높았고, 고소득층보다 저소득층이 더 위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장애인 인구만 분석해도, 전체 인구를 분석해도 비슷”하다.
신체장애인 대상 분석 결과도 유사했다. “경증장애인보다 중증장애인의 위험이 더 높았고 특히 뇌병변장애인의 위험이 두드러지게 높아”, 박진아 씨는 이 부분이 주된 관심사였다고 밝혔다.
병원을 방문한 원인의 경우 “지적 장애인은 비뇨생식기계 질환과 정신질환을 주 호소로 한 병원 방문 위험이 특히 높았으며, 정신장애인의 경우 정신질환, 호흡기계 질환, 비뇨생식기계 질환 두루 높은 위험을 보였다”는 결과가 도출됐다. 박진아 씨는 “장애인구가 비장애인구 집단에 비해 폭염에 취약하다는 사실 자체도 주목할 만하지만, 한 단계 더 나아가 장애인구 내에서도 위험도가 상이하며, 병원 방문 원인 역시 상이하다는 것도 중요한 발견이었다.”라고 말했다.
이런 차이가 명백함에도 “현재 우리의 폭염 대응 정책은 전국, 전국민을 대상으로 동일한 온도 기준에 따라 재난 안내 문자를 발송하고, 취약계층(주로 저소득층 및 노인)에게 폭염 키트를 제공하고, 무더위 쉼터를 운영하는 정도에 그친다는 점”은 문제다. 박진아 씨는 “개개인마다 폭염에 대한 취약성이 상이하고, 폭염 대응 정책 논의에서 배제되어온 장애인구에서 높은 위험이 드러났다는 연구 결과가 중요하다”고 짚었다.
폭염에 휠체어 타면 온몸이 열로 가득…집 밖으로 나설 수 없어
당사자들은 공감을 표하며, 자신의 경험을 공유했다. 유진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는 여름에 휠체어를 이용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휠체어를 보면 알겠지만, 다 검은색이다. 햇빛을 흡수하는 색. 그러다 보니 여름에 휠체어를 만지면 손이 뜨겁고, 온몸이 열로 가득해 땀이 많이 난다. 해가 거듭될수록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고 이와 동시에 내 휠체어 온도도 올라가고 있다.” 유진우 활동가는 “이는 사막과 동행하는 기분”이라 설명했다.
유 활동가 역시 재난안내 문자, 취약계층에게 제공하는 폭염키트, 무더위 쉼터 운영으로만 한정되는 폭염 대책의 문제점을 재차 짚었다. “일단 문자는, 손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장애인은 바로 읽을 수 없다. 확인한다고 해도 어디로 피해야 할지 모른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갈 수 있는 무더위 쉼터가 과연 몇 군데나 될까? 거기다 무더위 쉼터의 위치도 정확히 확인할 수 없다.”
“폭염일 때 장애인은 집에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한 유진우 활동가는 “이는 장애인의 사회생활에 제약을 가하는 것”이라 비판했다.
“정부는 선풍기나 에어컨을 지원하고 전기 요금을 지원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는 일률적인 접근으로 개개인의 건강과 특성, 취약한 사람들의 건강 수준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김신애 준비위원장은 의료 시스템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의 ‘의사 지역근무 현황 및 유인 방안 연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체 의사 중 대도시를 제외한 시 단위에서 근무하는 의사는 20.4%, 군 단위 농촌에 있는 의사는 4%밖에 되지 않는다.”는 건 도시와 농촌의 위험 차이와 연결된다는 것.
장애인을 ‘취약한’ 사람, ‘보호’ 대상으로만 보는 건 경계해야
기후위기가 불평등하게 장애인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장애인을 기후위기의 일방적 희생자, 취약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유의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최한별 한국장애포럼 활동가는 “이번 연구로 사회에서 더 깊은 차별의 구멍이 어디에 형성되어 있는지 비춰줘서 의미가 있다”고 평했다. 그리고 앞으로의 논의, 해결 방안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당사자인 장애인이 “스스로 결정하고 말하는 존재로서 여겨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애가 있으니까, 이 사람은 원래 약하니까, 뭐 본래 취약하니까’라는 사회의 차별적인 지형 속에서 장애인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봐야 한다”고 한 최한별 활동가는 “‘보호’라는 말이 차별적으로 사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런 점에서 “누가 더 많은 피해를 받고 있는지만 가지고 보호해 주기 위한 방식, 안전할 것이라 여겨지는 보호 체계를 구축하는 것보다, 정말 이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어떻게 문제를 인식하고 있고 (어떤) 해결 방안을 생각하고 있는지 물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해진 자리에만 있으라고 하는 것은 결국 보호주의가 작동하는 것”이라며 “왜 장애인은 가장 먼저 감금이 되어야 했을까?” 질문을 던졌다. “성장과 효율을 중시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장애를 가진 몸들을 ‘쓸모 없다’, ‘비생산적이다’라고 규정하고 집단화하면서 시설 감금을 정당화한 역사”를 지적한 조경미 활동가는 “이런 자본주의 체제가 시설사회와 만나, 재난에 취약하기 때문에 더 보호가 필요하다며 격리와 배제를 강화 시킨 것”이라 설명했다. 또한 “이런 돌봄이 필요한 몸들이 가치절하되고 이것이 보호주의와 같이 작동하기에, 차별이 더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조경미 활동가는 “취약하다고 하는 사람들을 의존적이라고 구분하지만, 사실 모든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선 돌봄이 필요하며 상호의존 하는 관계임에도 이것이 간과”된다고 지적했다.
기후정의와 장애인건강권 요구가 배치된다는 생각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최한별 한국장애포럼 활동가는 “모든 곳에 저상버스가 있어야 한다고 했을 때, 어느 환경단체 활동가가 자꾸 그런 개발하지 말고 장애인들이 신도시 중심에 살면 되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해서 아찔한 적이 있다”는 경험을 털어놨다. “장애인이 (환경에 위해가 되는) 어떤 기술 도입이나 발전을 요구한다고 하는데, 저상버스로의 교체가 그런 발전은 아니지 않냐, 장애인에게도 주거선택권이 보장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하지 않냐?” 반문했다.
이처럼 수다회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앞으로 계속 이어질 기후위기 속에서 우리 사회가 ‘취약함’을 얼마나 감지하고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의 물꼬를 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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